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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를 다시 보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9, 2006

흔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경을 서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성경은 최선의 기록이겠지만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간단하게는 번역본 성경이 히브리어 원본 성경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과 역사의 기록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과 다를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 또는 가르침에 마음을 열어놓지 않고 성경의 자구 해석에 매달리는 것 역시 우상 숭배다.

성경에는 물론 예수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알려져 있지 않을 뿐 그는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혼을 했다면 아들이나 딸을 낳았을 수도 있고 낳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의 삶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 것일까.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외쳤다. 그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하느님이었지만 사람으로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해냈다. 그는 사람으로 살았고 사람으로 죽었다. 그가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건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다빈치 코드’는 과장됐거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만 언뜻 그럴 듯해 보인다. 예수가 결혼을 했다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So, What?”

이 책 또는 영화의 재미는 예수의 비밀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과 오해에 있다. 그가 죽은 뒤 2천년 가까이 그런 편견과 오해가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왜 비밀이 되는 것일까. 시온 수도회는 목숨을 걸고 이 비밀을 지키려고 하고 오푸스데이는 숨기거나 영원히 묻어두려고 한다. 예수의 결혼이 그의 신성(神性, sanctity)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왔는데 우리는 사람인 그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걷도록 명령하고 호수 위를 걷고 떡 다섯 조각으로 5천명을 먹이는 전지전능한 신, 그런 그가 여성과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칫 그가 신이 아니라 사람일뿐이라는 증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그리고 예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느님은 왜 사람의 몸으로 이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야 했을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가 보여준 놀라운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하느님의 대속(代贖), 그리고 그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대속과 사랑을 믿고 받아들일 때, 그때 구원은 따라오는 것이다.

예수는 곧 하느님이지만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신성을 버리고 기꺼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는 2천년 동안 예수를 신격화해 왔다. 예수의 결혼이 비밀에 부쳐져 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만큼 그의 인성(人性)은 철저히 부정돼 왔다. ‘다빈치 코드’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이면서 사람인 예수의 이중성, 그리고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날카롭게 파고 든 것이다.

물론 ‘다빈치 코드’의 가정은 대부분 과장됐거나 지어낸 것이다. 소설은 소설로 영화는 영화로 받아들이면 되겠지만 성경이 사람의 손으로 쓰여 편집됐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예수의 결혼이 고의로 누락됐을 수 있다는 가정은 꽤나 그럴 듯하고 흥미롭다.

흔히 착각을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기록이 성경에는 없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 곳곳에 등장하고 여성들 가운데서는 늘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온다. 예수가 광야에 나간 때가 서른살 무렵,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고도 한다. 성경은 아니지만 빌립복음에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제자들 가운데 가장 사랑했고 자주 입맞춤을 했다고도 적혀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예수의 결혼이 예수의 신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예수의 결혼이 진실이냐 아니냐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예수의 결혼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의 주장이 책이나 영화 이상의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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