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알박기’? 특허 사냥꾼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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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은 연구·개발의 성과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후발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기도 하고 자칫 선발 업체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특허를 선점했다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난 뒤 권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허를 내세워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이들을 미국에서는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른다. 우리 식으로 하면 디지털 시대의 ‘알박기’라고 부를 수 있겠다.

넷피아와 디지털네임즈의 특허 분쟁은 역사가 꽤나 길다. 디지털네임즈 조관현 사장이 한글 인터넷 키워드라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받은 때가 1998년. 그 무렵 학생이었던 조 사장은 넷피아와 특허 공유 계약을 체결한다. 넷피아의 주장에 따르면 조 사장은 그때 넷피아와 경쟁 관계의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분쟁의 발단은 2003년, 조 사장이 디지털네임즈를 설립하고 넷피아와 경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한글 인터넷 키워드란 인터넷 브라우저의 검색 창에 ‘www’로 시작하는 주소 대신 한글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관련 웹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는 서비스다. 이를테면 ‘이코노미21’이라고만 집어넣어도 바로 이코노미21 홈페이지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넷피아는 한때 9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키워드 등록·유지 비용도 1년에 19만8천원까지 올렸고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폭리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넷피아와 디지털네임즈의 지루한 분쟁.

이 서비스는 주소 창에서 한글 키워드가 전송될 경우 넷피아의 데이터베이스로 자동 연결되도록 설정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디지털네임즈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을 설득해 한글 키워드와 넷피아의 연결을 끊으면서 넷피아의 사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코노미21’이라고 집어넣어도 이코노미21 홈페이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넷피아에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한글 키워드를 사들였던 사람이나 기업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넷피아를 떠나 디지털네임즈와 손을 잡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는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 이 두 회사의 초고속 인터넷 시장 점유율은 30%를 웃돈다. 넷피아는 하루 아침에 30% 이상의 시장을 잃어버린 셈이다. 넷피아가 발끈한 것도 당연했다.

디지털네임즈는 등록되지 않은 키워드가 전송될 경우 하나로텔레콤의 하나포스닷컴의 검색 결과에 연결해주겠다고 제안해 하나로텔레콤을 끌어들였다. 하나로텔레콤 입장에서는 사이트의 방문자를 늘려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사용자들인데, 이제 한글 키워드를 등록하려면 넷피아와 디지털네임즈 두 군데에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연스럽게 한글 키워드에 대한 신뢰도 크게 떨어졌다.

한때 “주소창에 (한글로) ○○○라고만 치세요”라는 광고가 유행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검색창에 쳐보라는 문구로 바뀐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때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했던 넷피아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두 회사는 소송에 맞소송을 거듭하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두 회사 모두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특허로 쌓은 기득권, 특허로 무너지다.

핵심 쟁점은 결국 누구에게 특허권이 있느냐다. 넷피아는 특허 공유계약을 체결한데다 조 사장이 경쟁 관계의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기 때문에 조 사장이 동종 사업을 하는 건 계약 위반이라는 입장이고 디지털네임즈는 그런 약속은 애초에 한 바 없으며 공유 계약인 만큼 조 사장에게도 사업을 할 권한이 충분히 있다는 입장이다. 두 회사는 서로의 시장 기반을 깎아먹으면서도 조금도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한글 키워드라는 사업 모델이나 그런 사업 모델의 독점을 보호하는 특허에도 문제가 많았지만 넷피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네임즈의 조 사장은 사업 아이디어만 냈을 뿐이고 정작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넷피아의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디지털네임즈가 특허를 내세워 넷피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자칫 시장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질 위험까지 있다.

넷피아 이금룡 공동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건 부동산에서 말하는 ‘알박기’나 마찬가지에요. 디지털네임즈는 투자를 하지도 않고 제대로 영업도 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할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 회사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죠. 법원 판결이 2~3년씩 걸리면 그동안 누가 피해를 봅니까.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물론 디지털네임즈도 할 말은 많다. “시장 진입장벽은 특허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만족도 또는 충성도가 만드는 겁니다. 그동안 넷피아는 어땠습니까. 독점을 누리면서 가격을 터무니없이 끌어올렸죠. 그렇게 선발 업체에 불만이 쌓이니까 후발 업체들이 파고들 틈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정당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민원 사장의 이야기다.

두 회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라 선뜻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특허로 기득권을 쌓아올린 넷피아가 특허로 그 기득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넷피아에게 특허가 없었다면 아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 차원에서 한글 키워드 서비스를 시작했을 수도 있고 온갖 다양한 서비스가 쏟아져 나와 애초에 표준화에 실패했을 가능성도 크다.

특허는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기술 산업에서 특허는 하나의 시장을 만들기도 하고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한다. 넷피아의 경우처럼 특허는 독점 시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선발 업체의 발목을 잡아 기득권을 갉아먹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얼마든지 있다. 특허 괴물이 출현하고 ‘알박기’가 성행하는 것도 그만큼 특허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의 한글자판 입력방식을 놓고 한바탕 특허 전쟁을 치른 바 있다. 2002년 삼성전자 직원이 제기한 소송을 합의로 끝내고 났더니 지난해 비슷한 특허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나선 것. 1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났지만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밖에도 D램 특허와 관련해 마쓰시타와 파나소닉 미국 법인 등과 맞소송을 벌이고 있다.

삼성SDI 역시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원천기술과 관련해 후지츠와 마쓰시타 등과 소송을 벌였거나 아직 소송을 진행 중이다. LG필립스LCD와 하이닉스반도체 등도 크고 작은 특허 소송에 휘말려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아예 최고특허책임자(CPO)를 신설하고 본격적인 특허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특허 전담 인력을 250명에서 2010년까지 45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특허 소송으로 폐업 위기에 몰리기도.

한편 MP3 업계도 특허 비상이 걸렸다. MP3 특허를 갖고 있던 레인콤이 올해 1월, 특허권을 미국의 시그마텔에 넘기면서 MP3플레이어 업체들을 상대로 줄 소송을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시그마텔이 텔레칩스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내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 등도 소송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편 USB 메모리 특허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12월, 원고 패소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소송을 낸 아이피아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뿐 제품을 생산한 실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특허심판원은 아이피아의 특허를 인정했고 다만 피고 회사들 제품의 파일 전송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만약 파일 전송 방식이 같다면 특허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SK증권 등 8개 증권사들과 마켓포인트는 무선인터넷을 활용한 증권 거래 서비스와 관련해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마켓포인트가 특허를 취득한 때가 2003년 7월, SK증권 등이 모바일로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때는 이보다 앞선 2001년 11월이다. 마켓포인트가 올해 3월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고 SK증권 등이 곧바로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한편,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는 통화 연결음, 이른바 컬러링 서비스와 관련한 특허 분쟁에서 승소한 바 있다. 휴대폰 결제 서비스 업체 다날은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와 관련, 특허 분쟁에 휘말려 코스닥 등록 일정을 늦추기도 했다. 다날은 모빌리언스와 인포허브 등 경쟁 업체들과 잇단 특허 소송을 벌이면서 서로 발목을 잡기도 했다. DVR(디지털비디오레코더) 칩을 만드는 에이로직스도 경쟁업체들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바 있다.

국내 사례는 아직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최근 치명적인 ‘알박기’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리서치인모션은 2003년 8월, NTP라는 회사와 특허 소송에서 패소, 한때 폐업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법원은 미국에서 블랙베리 판매를 금지하라는 가혹한 판결을 내렸고 NTP는 매출의 5.7%를 달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리서치인모션은 올해 2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패소했고 결국 6억1250만달러에 겨우 합의를 봤다.

특허 괴물, 변호사만 있는 페이퍼 컴퍼니.

리서치인모션은 특허 분쟁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한 사례였다. NTP는 직원도 없고 아무런 생산활동도 하지 않는 변호사와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였다.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회사들은 부도난 회사들의 특허권을 헐값에 사들여 문제가 될 만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거액의 합의금을 챙긴다. 정보기술 혁명 이래 최고의 성장산업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서치인모션에 비교하면 이베이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9월 미국 법원은 이베이의 ‘바로 구매’ 기능이 머크익스체인지의 특허를 침해한다고 판결하고 2500만달러를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이베이는 머크익스체인지를 ‘특허 사냥꾼’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고 올해 5월, 가까스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은 특허를 침해하더라도 손해배상만 제대로 하면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역시 특허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해마다 특허 소송을 방어하는데 1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구글은 최근 VoIP(인터넷 전화) 사업과 관련, 특허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특허 괴물’을 규제해 달라는 입법 청원을 내기도 했다.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에 발맞춰 의회도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술 전문 사이트 ‘지디넷’은 정보기술 업계의 특허 남용과 관련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5천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단 하나의 특허를 침해했다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엄청난 합의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스코 관계자의 말을 인용, “만들어 놓은 제품이 있고 하고 있던 사업이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금지 당한다는 건 너무나도 치명적인 보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특허 남용을 규제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가 더욱 강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와도 어긋나고 자칫 미국 기업들의 특허 공세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를 노려 미국산 ‘특허 괴물’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사무국장은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는 외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과 문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해서 우리의 필요에 맞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적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인 양보의 위험성이 큰 영역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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