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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과 자산가치 매력, 지주회사 다시 보기.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9, 2006

지주회사가 뜨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 사태와 관련, 지주회사가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의 모델로 새삼스럽게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주식 시장은 불확실한 수익성보다 확실한 자산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우량 자회사보다 지주회사의 주가가 더 뛰어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업 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투자 관점에서도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지주회사, 그 매력과 가능성을 살펴본다.

현대자동차와 LG그룹의 지배구조를 비교해 살펴보면 최근 현대자동차 사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현대자동차는 고질적인 순환출자 구조를 아직까지 그대로 이어왔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에 출자해 지분 38.7%를 보유하고 기아자동차가 현대모비스 지분 18.2%, 현대모비스가 다시 현대자동차에 출자해 지분 15.0%를 확보하는 구조다. 세 회사가 서로 물고 물리는 구조인 셈이다.

모두 계열사가 최대주주로 있기 때문에 이 회사들 가운데 한군데에서만 2대주주가 돼도 그룹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게 된다. 구속된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각각 5.2%와 7.9%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순환출자 구조에서는 보유 지분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횡령과 계열사 부당지원, 경영권 편법 승계 등은 모두 이런 영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LG그룹의 지배구조는 전혀 다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창업주 일가가 ㈜LG 지분 51.3%를 보유하고 ㈜LG가 LG전자와 LG화학을 비롯해 15개 자회사의 지분을 각각 30% 이상 보유하는 구조다. 15개 자회사 밑에는 다시 16개 손자회사가 있다. 순환출자 구조가 아니라 피라미드 구조인 셈이다. LG그룹은 2001년 LGEI와 LGCI을 중심으로 출자 구조 재편을 시작해 2003년 7월, 두 회사를 합병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에 성공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정 회장이 5.2%의 지분에 계열사 출자지분을 더해 26.1%, 또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달리 LG그룹의 대주주들은 정확히 LG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만큼만 자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현대자동차에서는 정 회장의 이해와 계열사들의 이해가 다를 수도 있지만 LG그룹의 대주주들은 LG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고 LG의 이해는 자회사들의 이해와 일치한다.

현대자동차와 LG그룹의 경영권 승계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정 회장은 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와 엠코, 본텍 등 비상장 계열사들에 그룹 차원의 밀어주기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사장은 이들 기업의 지분을 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남겼고 그 돈으로 기아자동차 지분을 늘려왔다. 과거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에버랜드를 활용한 것과 비슷하다.

한편 2004년 LG그룹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한 구광모씨는 GS홀딩스 등의 주식을 매각해 ㈜LG의 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 절차를 밟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순환출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여러 자회사에 손을 뻗치지 않아도 LG의 경영권만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씨의 지분은 2.8%로 6대주주다.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지분까지 더하면 2위가 된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서 현대자동차 그룹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국 정 회장 일가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증여하고 50%에 이르는 세금을 내거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지배구조를 일대 혁신하는 두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의 경우, 현대자동차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나 현대제철(옛 현대INI스틸)이 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주회사가 되려면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 그룹의 지주회사가 되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지분 15.0%에 15%를 더 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제철 등의 지분을 사들이려면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 회장 일가의 다른 계열사 지분을 정리한다고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규모다.

지주회사가 뒤늦게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해부터 지주회사의 주가가 자회사들보다 더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 자회사를 비롯해 자산가치가 재평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LG를 비롯해 삼성물산이나 두산 등이 모두 지난해 핵심 자회사 대비 초과 수익률을 기록했다. LG의 경우는 LG전자나 LG화학보다, 삼성물산의 경우는 삼성전자보다, 두산의 경우는 두산중공업보다 주가가 더 올랐다.

그동안 지주회사들은 비상장 자회사의 가치를 장부가 이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LG의 경우는 지난해 순이익이 819억원에 이르는 LGCNS를 비롯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0%가 넘는 우량 자회사들이 많지만 이들의 수익가치가 주가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사무용품 관리 업체인 서브원, 소재 업체인 LGMMA,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LG엔시스, 반도체 부품 업체인 루셈 등이 모두 ROE가 10%가 넘는다.

삼성물산은 법적으로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순자산가치에 삼성전자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47.5%에 이르는 등 사실상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삼성물산의 출자회사에는 ROE 21.3%의 삼성전자 외에도 18.0%의 삼성SDS나 삼성종합화학, 삼성네트웍스 등 ROE 10%가 넘는 우량 자산이 많다. 비상장 주식이 많은데 장부가만 463억원이고 실제 시장가치는 이를 훨씬 웃돈다.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GS홀딩스 역시 전제 순자산가치 가운데 GS칼텍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9.6%, 그밖의 다른 자회사들이 15%에 이른다. 특히 GS홀딩스의 이익은 거의 GS칼텍스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비상장회사인 GS홀딩스의 ROE는 14.6%에 이른다. 두산중공업 등의 대주주인 두산도 네오플럭스나 에스알코리아 등의 순자산가치가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두산그룹은 최근 박용만 전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지주회사의 최고 경영자로 외국인을 물색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두산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평균 19%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하려면 수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부채비율도 311%로 지주회사 요건 100%보다 터무니없이 높다.

2001년 LG와 세아홀딩스가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대웅, 2003년에는 풀무원과 농심홀딩스, 동화홀딩스가 지주회사 대열에 동참했다. 2004년 다함이텍과 STX, GS홀딩스, 2005년 대상홀딩스를 포함해 상장 지주회사는 10개로 늘어났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지주회사는 모두 22개, 금융지주회사 3개를 포함하면 25개다. 일반 지주회사의 자회사는 모두 137개, 이 가운데 올 들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했거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두산이나 태평양, 금호석유화학, 평화산업, SBS 등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설립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주회사 요건이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는 반면, 외국은 별도의 제한 규정 없이 개별기업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별개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외국에서는 하나의 회사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전경련에서 지주회사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공정위는 지주회사 부채비율 한도를 기존 100% 에서 200%로 완화하고 자회사와 사업 관련성이 없는 손자회사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 법률안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자회사 지분 비율 요건을 현행 30%에서 20%까지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주회사 투자의 또 다른 매력은 이른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회사들 실적이 좋을 때 지주회사는 자회사보다 초과이익을 낼 수 있지만 실적이 부진할 경우에는 오히려 손실을 낼 수도 있다. LG나 삼성물산, GS홀딩스, 두산 등 실적 좋은 우량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들이 최근 놀라운 초과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발빠른 사업 구조조정도 지주회사의 경쟁력이다. LG는 전자와 화학, 통신 등 주력 사업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아래 지난해 11월 엘리베이터 제조회사인 LG오티스 지분을 과감히 전량 매각했다. 3천억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룹의 핵심 역량을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과거처럼 순환출자 구조를 고집하고 있었다면 이처럼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회사를 과감하게 털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물산도 택배회사인 HTH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것을 비롯해 삼성테스코와 삼성카드, 삼성네트웍스, 삼성SDS 등 비주력 계열사들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 또는 상장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이상대 사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사업위험을 안고 있는 비핵심 기업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매각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핵심 사업분야만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구성하겠다는 이야기다.

LG는 이르면 내년에 LGCNS를 상장할 계획인데 장부가치가 2조6420억원인 반면 시장가치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세차익만 531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GS도 GS리테일을 상장하면 6천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도 자회사들을 매각 매각 또는 상장해 4597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둘 전망이다. 삼성카드와 삼성SDS의 상장은 2008년 이후로 예정돼 있다.

우리투자증권 이훈 연구원은 “지주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이들의 자회사에 대한 대안 투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 자회사보다 초과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데다 자체적으로도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는 LG의 경우 브랜드 가치만 2조263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했다. LG는 자회사들에게 매출액의 0.2%를 수수료로 받고 있는데 올해는 154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원은 “LG와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평균 ROE가 17.5%와 10.7%로 자기자본비용을 웃도는데 이런 수익성을 감안할 경우 이 기업들이 실질 자산가치 이하로 거래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주가는 지나치게 낮다는 이야기다. 실질 자산가치 대비 할인율은 삼성물산이 45.2%, LG와 GS홀딩스와 각각 37.8%와 33.3%다.

과거 SK 사태에서 보듯 그동안 지주회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최근 지주회사의 움직임은 디스카운트 요인을 말끔히 털어냈다고 볼 수 있다. 외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 지주회사들은 크게 저평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지주회사로 꼽히는 홍콩의 청콩홀딩스나 스와이어퍼시픽 같은 지주회사들의 실질 자산가치대비 할인율은 지난 15년 동안 15~21% 수준에 머물렀다.

지주회사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대주주와 투자자들의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데 있다. 특히 LG나 GS홀딩스의 경우 대주주들이 자회사 지분을 모두 정리했기 때문에 이들은 지주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의 이해가 곧 투자자들의 이해와 맞물린다는 이야기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처럼 대주주가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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