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공개 문서들이 말하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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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내년 3월 발효를 앞두고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협상 도중 교환한 문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18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2차 사전 준비회의에서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는 이와 관련, 최근 브리핑에서 “우리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미국의 협상 원칙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미국 쪽에서 “앞으로도 다른 나라들과 해야 할 협상이 많은데 문서가 공개되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종훈 우리 쪽 협상 대표는 “미국 쪽에서는 10년으로 하자고 했는데 줄여서 3년이 됐다”고도 했다.

도대체 한미 FTA 협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 의회나 국제무역위원회 등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바라는 것, 그리고 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식 또는 비공식 문서에 드러난 한미 FTA 경과와 현재 상황, 그리고 핵심 쟁점을 살펴보자. 비공식 문서라고 해도 웬만한 문서는 이미 구글 등 검색엔진에 올라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먼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2001년 보고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미 모두 GDP나 고용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FTA 체결 4년 후면 미국이 한국과 교역에서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한국이 무역 적자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4년 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출은 54% 늘어나는 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수출은 21% 늘어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작성된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초 한국이 미국 쪽에 FTA 협상을 먼저 제안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한국 쪽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설명회를 열었고 그 이듬해인 2005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사전 실무회의가 열렸다.

2005년 11월 미국 의회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한미 FTA 협상과 관련, 미국 농업과 자동차, 영화, 제약 산업의 우려를 충분히 검토했다. 협상에 앞서 이런 쟁점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한국의 통상장관은 이런 우려들이 적절한 시점에 처리될 것이라고 확인해줬다.”

결국 핵심 쟁점과 관련, 미국 정부의 사전 요구가 있었고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를 양보했다는 이야긴데 지난해 2월 우리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 명의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두루뭉술하게 처리돼 있다. “한미 FTA는 정부가 오랜 기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 나온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오히려 솔직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미 경제 규모와 의존도를 볼 때 미국이 협상의 의제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불만은 한국의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청, 환경부 등 외국 정부나 기업과 접촉이 없는 국내용 부처들과 관련돼 있다. 미국 쪽 전략은 핵심 쟁점에 한국 국무회의가 직접 나서서 해당 부처에 압력을 넣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이와 관련, “몇몇 ‘촌스러운’ 해당 부처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무회의 전체 안건으로 상정해 해당 부처를 고립시켜 관철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크린쿼터가 미국의 이런 전략에 말려든 전형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에는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협상을 개시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김현종 통상장관에게 말했다”는 내용에 이어 “자동차와 의약품, 소고기와 스크린쿼터 등 4대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한국 정부의 정치적 능력을 평가하는 리트머스 테스트로 보고 있다”고 적혀있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어땠을까.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6년 1월 말 4개 부문 모두를 양보한다고 미국 정부에 알려왔다.”

한편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놓고도 두 나라의 전망이 다르다. 2001년 미국 보고서를 보면 한국과 대미 무역수지는 2002년 98억달러에서 FTA 체결 4년 뒤에는 9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국내총생산이 최대 1.99%까지 늘어날 거라는 굉장히 긍정적인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는데 이 보고서는 상당부분 왜곡 날조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한미 FTA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 투자 관련 조항이다. 과거 미국이 싱가폴이나 칠레 등과 체결한 FTA 협정문을 살펴보면 투자자의 투자유치국에 대한 제소권이 포함돼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특히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투자유치국의 현지 법원을 우회 또는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항인 셈이다.

이해영 교수는 “국제투자분쟁중조정센터에 접수된 85건의 분쟁 가운데 피소국은 대부분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고 청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국적 기업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절차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 실패를 투자 유치국 정부에 전가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투자 관련 조항과 관련해서는 이미 2004년에 체결된 한미투자협정(BIT)의 조항이 대부분 그대로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전 단계부터 내국민 대우를 적용한다거나 최고경영자의 국적을 문제 삼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은 주권 침해의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아무런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를 비롯해 교육과 통신, 방송, 법률 시장 등 공공 서비스의 개방도 비슷한 우려를 더한다.

올해 2월 미국 무역대표부가 미국 의회에 보낸 보고서는 한미 FTA의 초안이라고 할만하다. 이 보고서에는 가능한 모든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철폐, 자유무역기구(WTO) 기준에 맞는 지식재산권 보호, 각종 투자 장벽의 축소 또는 제거, 독점기업과 공기업의 경쟁제한 제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동안 미국이 호주와 싱가폴, 칠레 등과 체결했던 FTA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미국이 5년 이상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해왔던 반면 우리나라는 실증적 검토는커녕 협상력조차도 갖추기 못한 상황이다. 이 교수는 “분명한 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통상협정 가운데 가장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신자유주의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단군 이래 최대규모의 통상협정이 한일합방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체결되리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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