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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4, 2006

최근 언론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 관련 보도는 문제의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감정적이고 선정적이기만 할 뿐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민족주의 담론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설명하겠다.

먼저 투기자본이라는 말부터 다분히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라 마땅한 다른 표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연 자본을 투기적인 자본과 투기적이지 않은 건전한 자본으로 나눌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자본은 본질적으로 투기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이 흔히 투기자본을 외국 자본과 동의어로 쓴다. 외국 자본은 투기적이고 국내 자본은 그렇지 않다는 근거 없는 이분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런 이분법을 넘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해 벌어들이게 될 4조5천억 원의 시세차익은 과연 부당하게 많은 것일까. 론스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에 1조3834억 원을 투자했다. 그 무렵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이었는가를 놓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론스타는 정부의 승인을 얻어 합법적으로 투자를 했고 그 시세차익을 챙긴 것이다. 애초에 헐값 매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매각을 승인해준 정부의 잘못이지 론스타의 잘못은 아니다. 싸게 사들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에서는 심지어 론스타를 놓고 ‘먹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먹고 튄다는 의미의 줄임말인데, 역시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다. 세금을 내지 않고 튄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겠지만 굳이 론스타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론스타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주식을 샀다가 팔았을 뿐이고 그동안 주가가 크게 올라서 이익을 챙긴 것뿐이다. ‘먹튀’라는 표현은 론스타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벨기에는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벨기에에 본사를 둔 론스타, 더 정확히는 론스타 펀드 4호의 자회사, LSF-KEB홀딩스는 우리나라에 주식으로 번 돈에 대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벨기에에만 세금을 내면 되는데 정작 벨기에는 주식을 비롯해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거의 받지 않는 나라다. 결국 합법적으로 우리나라와 벨기에, 어디에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론스타가 벨기에를 경유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고 그 무렵 회의록을 보면 정부 관료들도 이런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출발해 버뮤다와 룩셈부르크, 벨기에를 넘나드는 7단계의 복잡한 투자구조를 보고 금융감독위원회 위원 가운데 누군가가 묻는다.

“론스타의 투자 구조는 왜 이렇게 복잡한가.”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대답한다.
“조세회피 목적이라고 한다.”

그걸로 설명은 끝이었고 다른 질문은 더 나오지 않았다. 정부 관료들은 론스타가 세금을 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론스타는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고 벨기에든 미국이든 론스타의 본사가 있는 나라에 세금을 내거나 말거나는 관심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론스타의 엘리트 쇼트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내겠다”고 말했다.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제 와서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게 세금을 받아낼 방법은 거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세금을 매길 수는 있겠지만 정작 문제는 론스타가 불복할 경우 재판에 가서 이길 수 있느냐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아마도 우리 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나라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웬만한 나라와 모두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다.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사고팔아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언론에 인용된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은 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외국 자본도 국내에서 이익을 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이야기고 아무런 현실성도 없는 원론적인 이야기다. 언론마다 발언과 주장의 강도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받을 수 없는 세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론스타가 갑자기 반성하고 자진해서 세금을 내줄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누가 더 애국적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 역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독자들에게 잠깐이나마 위안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태도는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론스타는 딱히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문제는 론스타가 아니라 이들이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시스템에 있다.

론스타뿐만 아니라 제일은행의 대주주였던 뉴브리지캐피털이나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던 칼라일펀드와 JP모건 컨소시엄 역시 우리나라 정부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모두 조세회피 지역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줬을 때부터 이미 세금 받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다.

뉴브리지의 리처드 블룸 회장은 지난해 4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섰다.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우리는 세금을 회피하고 있지 않다. 한국과 미국은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다. 두 나라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세금은 과세협약에 따라 내는 것이고 우리는 그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안 낸다.”

주식을 사고팔아서 만든 이익을 주식양도 차익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상법과 증권거래법에서는 주식양도 차익에 대해 매우 관대한 편이다. 비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주식양도 차익의 10%를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세금이 없다. 대주주의 경우는 1년 미만 보유했을 경우 30%, 1년 이상일 경우는 20%의 양도세를 내야 하지만 대주주가 아니라면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된다. 받지 않는 세금을 어떻게 낸단 말인가.

SK로 재미를 보고 나갔던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우는 대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 최근 KT&G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칼 아이칸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외국 자본을 탓할 것 없이 국내 투자자들도 대주주가 아니라면 주식으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딱히 론스타만 놓고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언제부터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을 매겼단 말인가.

물론 론스타나 뉴브리지, 칼라일 등의 경우는 대주주였기 때문에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이중과세 방지협약 덕분에 우리나라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론스타의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소버린과 헤르메스펀드의 경영권 위협 때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 언론의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외국 자본이 많은 돈을 벌었다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다거나 아무리 목청 높여 비난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05년 우리나라를 찾은 마크 스톨슨 소버린 상무는 “소버린이 투기꾼이면 한국의 대부분 주식 투자자들은 모두 투기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안타깝게도 모두 옳았다.

“우리는 거대한 음모 조직도 아니고 보시다시피 머리에 뿔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한국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안 냈지만 배당에 대해서는 세금을 모두 냈다.”

소버린이나 헤르메스는 과연 투기자본이었을까. 그 무렵 어떤 언론도 이런 고민을 제대로 담아내지 않았다. 이들은 주식시장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주식을 사 모았고 주주가 할 수 있는 정당한 요구를 했고 주식을 오래 보유하다가 주가가 충분히 오른 뒤 내다 팔았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편법을 쓰지도 않았다. 이들은 대주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식양도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언론이 분노하고 단결한 것은 이들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공격한 것은 국내 기업이 아니라 국내 기업의 대주주였다. 대결의 전선이 외국 자본과 국내 기업이 아니라 주주와 대주주, 더 정확히는 주주와 재벌 체제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럴 때 언론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서야하는 것일까. 쉽지 않은 문제지만 생각해 보면 해답은 명확하다.

국부 유출을 염려한다면 애초에 외국 자본에게 주식 시장을 개방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장을 개방한 이상 이들이 주식을 사고팔아 돈을 벌어가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받을 방법도 없다. 국부 유출이니 ‘먹튀’니 하는 논란은 그야말로 아무런 해답도 없는 감정의 배출일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게임의 룰을 바꿔야지 룰을 잘 지키고 있는 게임 참가자들을 비난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론스타의 경우부터 설명하면 진짜 문제는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은행의 경영권을 넘겨줬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탓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은행 매각의 역사는 1999년 제일은행의 경우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에서는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부 소유의 은행을 벌써 세 번이나 사모펀드에 팔아 넘겼다. 우리는 론스타를 탓할 게 아니라 정부 관료의 무지와 무능력, 그리고 도덕적 해이를 탓해야 한다.

소버린이나 헤르메스의 경우도 문제의 핵심은 재벌의 취약한 지배구조와 방만한 경영, 그리고 경영진의 비도덕성에 있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고 소버린을 내보내도 또 다른 소버린이 오게 돼 있다. 소버린은 외국 자본이었지만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소버린의 역할을 하는 주주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게 게임의 룰이다. 여기에는 선도 악도, 호도 오도 없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최근의 KT&G 사태다. KT&G는 독점적 사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유구조만 민영화됐다. 그 이익은 모두 주주들에게 돌아갔고 특히 그 대부분을 외국인 주주들이 챙겼다. 독점의 정도는 다르지만 KT나 포스코, 국민은행, 한전 등 비슷한 시기에 민영화한 공기업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배 주주가 없는 이들 민영화한 공기업들은 언제라도 KT&G처럼 경영권 위협에 놓일 수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의 차이에 있지 않다. 돌아보면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지난해 말 도입된 퇴직연금까지 적극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상당부분 자본시장에 저당 잡혀 있다. 정부에서는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해 앞으로 해외 주식투자에도 나설 계획이다. 한국투자공사가 외국에 나가서 론스타나 소버린과 같은 짓을 하지 말란 법이 없다.

외국 자본에 맞서려면 감정적인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 냈을 뿐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부분도 없다.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분노할 게 아니라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과 게임의 룰을 문제 삼아야 한다. 외국 자본의 선악을 따질 게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본의 투기적 속성을 폭넓게 경계해야 하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국민연금과 론스타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투자공사와 소버린은 또 어떻게 다른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본질적으로 거의 같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의 투기적 속성과 탐욕이다. 우리는 론스타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공적 연금의 금융화를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 정부의 무분별한 자본시장 육성 정책을 비판해야 하고 좀 더 근본적으로 주식양도 차익에 대한 전면 과세를 요구해야 한다. 그게 론스타를 막는 본질적인 해법이다.

건전한 자본 또는 자본의 양심을 기대하거나 요구할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자본을 통제하고 규제하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론스타와 소버린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게 우리가 딛고 있는 시장의 현실이다. 시장을 버릴 수 없다면 시장과 시장의 시스템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어설픈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는 본질을 흐트러뜨릴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론스타를 흔들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장을 부정하지 못하면서 론스타를 부정하는 것, 언론의 민족주의 담론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월간 ‘인물과사상’ 5월호에 들어갈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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