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 한미은행을 덮치다.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4, 2006

2000년 9월 한미은행이 칼라일펀드에 넘어가게 된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한미은행은 그해 당기순손실이 3960억원에 이를 만큼 경영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만큼 자본 확충이 절실했다. 칼라일은 그해 3월 금융감독위원회에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역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앞세워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받아낸다. JP모건과 50 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미은행이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면 칼라일과 JP모건 컨소시엄이 이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발행규모는 4559억원, 주당 발행가격은 6800원이었다. 이 컨소시엄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차지해 최대주주가 됐고 덕분에 한미은행의 자본금은 1조5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JP모건이 들러리만 섰을 뿐 실제로 인수주체는 칼라일이었다는 것이다. JP모건을 내세워 편법으로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펀드들의 지분 구성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지분이 많은 펀드는 16.3%를 보유한 KAI(한미은행 투자펀드)였는데 이 펀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게 맞다. 문제는 나머지 지분인데, 채드윅과 프리웨이라는 펀드가 각각 3.6%를 보유한 것을 비론해 스칼렛이 3.4%, 이글이 2.5%, 코란드가 1.0% 등 9개 펀드에 분산돼 있었다. 이 펀드들은 모두 페이퍼컴퍼니로 칼라일이 의결권을 갖고 있었다. 칼라일은 공공연하게 홈페이지에서 이들 펀드와의 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4% 미만의 보유 지분은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JP모건은 전체 지분 36.6% 가운데 8.2%만 보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28.4%는 칼라일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칼라일과 JP모건이 반반씩 투자한 걸로 돼 있지만 이미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돼 있었던 것이다.

한미은행 투자 구조를 잘 살펴보면 JP모건이 아니라 JP모건코세어2호라고 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JP모건의 세계적 명성만 믿고 투자를 허락했지만 사실은 JP모건이 만든 또 하나의 사모펀드였을 뿐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당장 의결권을 제한시키고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칼라일은 1987년에 설립된 사모펀드다. 칼라일이라는 이름은 창립 멤버들이 모였던 칼라일 호텔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본금은 162억달러, 본사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정책 보좌관을 지냈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창립 멤버고 IBM 회장을 지냈던 루이스 거스트너 등도 이곳에서 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동이나 유럽의 부호들 300여명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주로 군수산업에 투자하고 평균 투자수익률이 3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의 임원진 구성 역시 매우 흥미롭다. 제임스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오사마 빈 라덴의 이복형인 샤피크 빈 라덴도 핵심 멤버다. 이밖에도 아서 레빗 전 미국 증권거래위의장, 토마스 맥라티 전 백악관 비서실장, 루이스 텔레즈 전 멕시코 에너지 장관 등이 활동하고 있다.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도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현직 미국 대통령도 칼라일의 투자회사에서 사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 가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과 친밀한 사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군수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답게 칼라일은 이라크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는 칼라일 고문 자격으로 이라크를 여러차례 방문했고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 다녀간 바 있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에도 미국 정치권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거라는 의혹이 떠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버지 부시는 1998년 칼라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면담한 것을 비롯해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아시아 고문회의에서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당시 국무총리 등을 만나기도 했다. 칼라일이 한미은행 인수를 발표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박태준 전 총리는 칼라일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김병주 칼라일아시아 회장은 그의 사위다.

주목할 부분은 칼라일이 동원한 광범위한 인맥이다. 칼라일의 법률자문은 김&장법률사무소와과 법무법인 세종이 맡았는데 그해 8월 금융감독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김&장과 세종의 법적 해석이 떡 하니 인용돼 있다.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이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칼라일이 내세운 주장을 금융감독위원회가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던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퇴직 후 세종으로 옮겨간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김&장과 세종, 그리고 칼라일의 유착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병주 회장은 장인인 박태준 전 총리뿐만 아니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8월 ‘파이낸스아시아’가 김병주 회장과 한 인터뷰는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JP모건 지분 50%만 받아오면 허락해주겠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 경제의 트로이카 3명 모두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동일인 주식 보유한도를 면제해주거나 관계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보여줬습니다.”

칼라일은 결국 JP모건이라는 들러리를 내세워 한미은행을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칼라일은 이렇게 사들인 주식을 2004년 5월 주당 1만5500원에 씨티은행에 넘겨 7017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 빠져나갔다.

뉴브리지와 칼라일이 각각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제일은행이나 한미은행이나 경영 현황이 그리 좋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제일은행의 경우 추가 출자를 하지 않으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뉴브리지나 칼라일의 대주주 자격인데 금융감독위원회는 제일은행의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뉴브리지 같은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한미은행은 부실금융기관도 아니었고 더구나 칼라일은 금융기관과는 거리가 먼 군수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였다. 누가 봐도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지만 칼라일은 JP모건을 내세워 50 대 50으로 투자하겠다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득했다. 그런데 정작 JP모건의 투자비율은 전체 투자금액의 4분의 1밖에 안 됐던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 정부를 속인 것이다.

결국 제일은행에서 잘못 꿰어진 첫 단추의 여파가 한미은행과 외환은행에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다. 론스타는 JP모건 같은 들러리를 내세우지도 않고 단독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이기는커녕 오히려 실적이 눈부시게 개선되고 있는 상태였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2000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의 은행 인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해 5월 조흥은행이 미국계 투자펀드 서버러스에서 5억 달러를 유치하기로 전략적 제휴를 맺었을 때도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법의 대주주 적격성 조항을 들어 반대했다. 5억달러면 14%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금융감독위원회는 법에 따라 4% 미만인 1억4000만 달러까지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

금융감독위원회는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도 같은 이유로 완강히 반대해왔다. 그런데 그해 6월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그때부터 금융감독위원회의 원칙은 마구 흐트러졌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