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만년 꼴찌 LG텔레콤이 살아난 까닭은.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11, 2006

한때 LG그룹에는 ‘못난이 3콤’이란 말이 유행이었다. 이익도 못 내면서 돈만 까먹었던 LG텔레콤과 파워콤, 데이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었다. 툭하면 인수합병 시나리오가 나돌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만큼 3콤의 전망은 불투명했다. 그런데 이 3콤이 어느새 모두 살아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LG텔레콤의 약진은 특히 두드러졌다.

이제는 누구도 LG텔레콤의 생존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2월 말 기준 LG텔레콤의 가입자 수는 660만7905명에 이른다.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무려 56만9987명, 1년 사이에 9.4%나 늘어났다. 시장 점유율은 16.5%에서 17.1%로 0.6% 늘어났다. 아직 SK텔레콤이나 KTF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51.3%에서 50.8%로, KTF는 32.3%에서 32.2%로 각각 0.5%와 0.1%씩 줄어들었다. SK텔레콤과 KTF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LG텔레콤이 그 틈을 파고 들고 있는 것이다. “번호이동성 제도의 진정한 승자는 LG텔레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해부터 LG텔레콤 남용 사장이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는 “18%만 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조사 업체인 AT커니가 세계 이동통신 회사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경우 자체 영업이익으로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 만약 18%에 못 미치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남 사장은 추가 투자를 위한 이익 규모를 2천억원으로 보고 있다. 국내의 경우 18% 이상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면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LG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17.1%, 남 사장이 강조했던 고지가 그리 멀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는 LG텔레콤의 올해 순이익이 3천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G텔레콤의 가입자 수는 아직도 2위 KTF의 절반 수준이다. LG텔레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이지만 이게 오히려 싸구려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SK텔레콤과 KTF가 엄청난 광고 공세를 퍼부어 가면서 온갖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때도 LG텔레콤은 늘 한발 뒤쳐져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게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CJ투자증권 진창환 연구원은 “LG텔레콤의 약진은 기술의 진보와 무관하게 저렴한 가격에 음성통화 정도만 하기 바라는 수요계층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진 연구원은 “앞으로도 LG텔레콤이 가격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통화 품질은 이제 세군데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안 터지거나 잘 안 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화 요금입니다. 누가 걸어 다니면서 인터넷을 얼마나 쓰나요. 와이브로니 DMB니 하는 것들 안 돼도 좋으니까 일단 요금이 싸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거죠.” LG텔레콤 마케팅실 윤준원 상무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모두 구찌나 페라가모 같은 명품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이왕이면 최고 브랜드를 쓰고 싶겠지만 굳이 품질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더 싼 제품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동통신 회사도 마찬가지다. LG텔레콤은 일찌감치 고급 사용자 시장을 포기하고 저렴한 요금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요금도 요금이지만 LG텔레콤을 기사회생 시킨 1등 공신은 무엇보다도 직영점 중심의 가판 판매였다. SK텔레콤과 KTF가 대리점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릴 때 LG텔레콤의 직영점 직원들은 길거리에 나가서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다. 2003년 9월 뱅크온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은행 지점마다 휴대전화 판매대를 가판 영업에 나섰다.

뱅크온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는 원래 SK텔레콤이 먼저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국민은행과 제휴를 추진하던 SK텔레콤이 금융거래 정보의 소유권을 요구하다가 무산되자 사업권이 LG텔레콤에게 넘어온 것이다. LG텔레콤은 금융거래 정보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국민은행을 비롯해 13개 은행 2300개 지점을 판매 점포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LG텔레콤 직원들이 길거리로 뛰쳐나간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LG텔레콤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SK텔레콤이나 KTF만큼 파격적인 리베이트(모집 수수료)를 줄 수 없었고 결국에는 대리점들이 LG텔레콤과 거래를 하지 않으려 했다. LG텔레콤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직영 소매점을 늘려나갔다.

LG텔레콤의 직영 대리점은 전국에 걸쳐 250여개. 전체 대리점의 85%에 이른다. 대리점이 본사에서 주는 리베이트로 연명하는 구조라면 본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영 소매점은 어떻게든 발로 뛰어서 매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리점을 직영 소매점으로 전환하면 인건비나 관리비용이 추가로 들지만 리베이트 등 마케팅 비용은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든다.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마다 은행 직원들하고 같이 출근해서 셔터도 올려주고 청소도 하고 손님들 오시면 밝은 목소리로 인사도 하고 말이죠. 할머니들은 통장 정리도 도와드리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대리점에서 10명이 5대 팔던 걸 뱅크온 가판에서는 1명이 10대를 팔기도 했습니다.” 윤 상무의 이야기다.

LG텔레콤 직원들은 직영 소매점의 성공을 ‘가판의 승리’라고 부른다. 가입자 수가 650만명을 넘어서던 지난해 12월 남 사장은 전체 직원들에게 격려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SK텔레콤이나 KTF도 대리점을 직영 소매점으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대리점 연합회 등의 반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11개월째, KTF는 4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LG텔레콤이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대우증권 김성훈 연구원은 “LG텔레콤은 직영 소매점 중심으로 유통망을 정비하면서 우수한 영업 인력을 대거 확보했다”면서 “경쟁사들이 이를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LG텔레콤은 지난해 번호이동성 제도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번호이동으로 LG텔레콤으로 옮겨온 고객은 199만명, 지난해 전체 가입자의 31%에 이른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의 평균 1인당 매출액이 4만7천원으로 기존 고객의 3만6천원보다 무려 1만1천원이나 많았다는 사실이다. SK텔레콤과 KTF의 우량 고객들이 대거 LG텔레콤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제 시장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선 단말기 보조금이 부활되더라도 영향이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보조금 전쟁이 한창이던 2000년에는 2년 동안 무려 1283만명이나 가입자가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1년에 100만~150만명 수준이다. 공격적으로 보조금을 쏟아 부을 만한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동전화 보급률은 올해 1월 기준으로 이미 79.5%에 이른다. 이제 새로운 가입자를 받기 보다는 기존의 가입자를 뺏어 와야 하는 상황인데 문제는 그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보조금 지급 대상 가입자당 10만원씩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마케팅 비용이 두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달리는 LG텔레콤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목표를 늘려 잡는 분위기다. 과도한 출혈경쟁만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 사장은 올해 가입자 목표를 지난해보다 120만명 늘어난 720만명으로, 매출과 순이익 목표를 각각 3조5천억원과 6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다만 HSDPA나 와이브로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늦다는 지적도 많다. SK텔레콤과 KT는 휴대 인터넷 와이브로에 각각 1700억원과 5천억원씩, SK텔레콤은 추가로 HSDPA에 57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반면 LG텔레콤은 와이브로의 경우 아예 사업권조차 확보하지 못했고 동기식 서비스인 EVDO rA의 경우도 초기 투자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N번방 이슈를 끌어올린 건 언론의 침묵에 맞선 독자들이었다.

N번방 이슈를 끌어올린 건 언론의 침묵에 맞선 독자들이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20년 6월호 기고입니다.) “이슈는 묻어가지만 단독 따라가긴 부담스러워”… 한국 언론 의제 설정 시스템에 던진 질문. 뉴스는 생물이다. 살아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별 거 아닌 것 같은 뉴스가 다른 뉴스와 연결돼 엄청난 이슈로 확산되기도 하고 중요한 뉴스가 관심을 받지 못해 사그라 들기도 한다. 사건의 이면에는 수많은 변수와 맥락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전조가 있고 우연과 의도가 작동한다. 사건과...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광고 중독을 끊어야 저널리즘이 산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광고 중독을 끊어야 저널리즘이 산다.

(민중의소리 창간 20주년 특별 기획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익숙한 기시감이지만 위기와 재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언론의 바닥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바야흐로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무너진 언론의 신뢰도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고 있다. 한국 언론은 지금 불가항력적인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누가 나에게 언론 개혁 방안을 한 줄로...

누가 한국 언론을 지배하는가.

누가 한국 언론을 지배하는가.

때로는 소유가 존재를 규정한다. 한국 언론의 소유지배 구조를 살펴보면 몇 가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아래 수치와 그래프는 모두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산업 실태조사와 언론연감을 기초로 미디어오늘 직접 취재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을 교차 확인해 보완한 것이다.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모두 2018년 말 기준이지만 최근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업보고서 등 후속 자료가 나오는대로 계속 업데이트 할 계획이다.)...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