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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조 명예 조합원, 그 무명의 삶.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5, 2006

“그 비결이 무엇이었던가? 그 시절 숱한 민중이 내쫓기고 굶주리고, 헬 수 없는 동지들이 총에 맞고 구덩이에 파묻혀 죽어간 격동의 현실에서, 내가 겪은 고난이 그리 새삼스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고난은 겨레와 인민이 겪은 고난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는 누구도 개인의 명예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지껏 내 무명(無名)을 달갑게 여기고 살았다. 이 나라와 세계의 노동자들이 한 걸음이라도 ‘해방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내 이름 따윌랑 티끌이 되어도 좋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 읽을 수 없는 글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온 후보들을 지지하는 글인데 나는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이 글을 쓴 이수갑 선생님도 지나다가 몇번 뵈었을 뿐 잘 모른다. 이수갑 선생님은 올해 82살이다. 이 나이에 나도 이렇게 몸이나 마음이나 건강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도 이렇게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을까. 이름도 없이 현실에 견결하게 맞설 수 있을까.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수갑 선생님은 아시아공동행동이라는 단체의 한국 대표를 맡고 계시다.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그 사무실에 세들어 살고 있다. 웬만해서는 무단 전재를 하지 않는데 이 글은 좀 특별한 경우다. 원문은 여기. http://labortoday.co.kr/news/view.asp?arId=60605)


혁명하는 노조가 돼야 / 이수갑 철도노조 명예조합원.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선 이정훈(기호1번) 선거캠프에서 ‘고문을 맡아 달라’고 요청해 와서 쾌히 승낙했는데 이틀 뒤 선거캠프에서 전화로 딴 이야기를 전해 왔다. “‘고문’으로 모셔서 ‘부담’을 드린 것 같다. 기성 정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지 않겠느냐? ‘이름’을 빼 드리고 싶다.” 나는 “괜찮다. 그런 ‘부담’은 괘념하지 않는다”고 대뜸 말을 잘랐다. 나는 왜 이들을 기꺼이 ‘공개지지’ 하는가? 내 삶의 이력을 소개함으로써 그 까닭을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해방되는 해, 스물한살 나이로 부산에서 철도노동자가 되었고, 갓 출범한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 들어갔다. 어언 60년 전 이야기다. 지금도 아스라이 떠오르는 장면은 1946년 9월23일 12시, 내가 조직의 지침에 따라 기관차로 몰래 들어가 길고 길게 ‘기적소리’를 울린 것이다. 이 신호를 받아, 기관사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갔고 가까운 바다에서 해상노조 선원들도 덩달아 ‘고동소리’를 내고 파업투쟁에 동참했다. 우리 부산철도 7천 노동자들이 ‘선봉’에 서자, 다음 다다음날 전국 총파업이 터졌다. “인민을 학살한 미군 물러가라! 독립된 나라를 세우자!” 뒤이어 대구에서는 인민항쟁이 일어났다. 조선 인민의 앞날을 둘러싸고 한판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일고여덟번은 쇠고랑을 찼다. 갖가지 ‘고문’에 시달렸으나, 끝내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몸도, 이름과 정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오랜 세월을 이 사회에서 무명(無名)으로 살았다(내 인생 저물녘에 이르러서야 철도노조가 고맙게도 초창기 선배를 불러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희망을 품고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던가? 그 시절 숱한 민중이 내쫓기고 굶주리고, 헬 수 없는 동지들이 총에 맞고 구덩이에 파묻혀 죽어간 격동의 현실에서, 내가 겪은 고난이 그리 새삼스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고난은 겨레와 인민이 겪은 고난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는 누구도 ‘개인의 명예’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지껏 내 무명(無名)을 달갑게 여기고 살았다. 이 나라와 세계의 노동자들이 한 걸음이라도 ‘해방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내 이름 따윌랑 티끌이 되어도 좋다.

무릇 노동운동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첫째,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 요즘 항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 자리가 ‘국회의원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속설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권력’이 된 셈이요, 자리와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꾀어들리라. 그러나 이런 속설이 나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노동운동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전태일 열사가 제 이름을 탐하여 분신하지 않았다. 해방정국에서는 전태일 못지않게 제 삶을 내던진 무명의 동지들이 헬 수 없이 많다. 그들을 본받고 뒤따를 마음이 없는 사람은 민주노총 위원장 자격이 없다.

둘째, 제 한몸 다치고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노동재해’로 다치고 병드는 노동자가 어디 헤아릴 수 있는가. 폭력정권의 방패날과 구둣발에 골병들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동지들이 어디 한둘인가. 노동자 농민의 눈물을 닦아주러 나서는 사람은 그들이 다치고 병들고 힘들어 하는 만큼 자신도 고통을 겪어낼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자본의 공세 앞에 견결하게 맞서다 숱한 열사들이 제 몸을 불살랐다. 그들의 뜻을 앞장서 계승하려는 자가 어찌 응접실에서 노닥거리며 ‘안일함’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요즘 민주노총 간부들은 ‘막아낼 현안은 숱한데 현장에 투쟁 동력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변명에 불과하다. 다들 짓눌려 사는 노동현장에 어디 ‘불만’이 부족한가. ‘노동자의 눈물’이 부족한가. 앞장서 싸우는 본보기가, 뭉클한 감동이 드물 뿐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올곧게 ‘혁명사상’을 품은 사람이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진 뒤로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는 ‘혁명/변혁’이 냉소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자본에게 투항하라!’는 선무방송이 너무나 요란해졌다. “한국적 사민주의야말로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니까 노동은 자본과 ‘합의(!)를 추구하라!” 그 이데올로기 뒤에 감춰진 말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기정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강요의 소리다. 그러나 ‘20대80의 사회’에서 어느새 ‘10대90의 사회’로까지 악화된 현실에서 ‘개량의 열매’라니 어디 될 법한 이야기인가. 대공장과 중소영세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뿔뿔이 찢기고 갈라진 계급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체념과 비관에 사로잡힌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주려면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긴요한 것이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사상’이다!

물론 내가 젊어서 몸 담았던 ‘전평’의 시대와 지금의 21세기는 ‘혁명의 과제’가 많이 달라졌고, ‘혁명하는 방식’도 많이 수정되어야 한다. 그때는 ‘봉건적 관계의 철폐’가 주된 과제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아니고, 그때는 ‘전위정당’이 주도했지만 그 시절에서 교훈을 얻어 지금 시대의 전략은 새로 정교하게 짜야 한다.

다만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겠다는 ‘혁명의 정신’만큼은 그제나 이제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눈앞의 좁은 경제적 실리 추구에만 갇혀서 안된다는 것도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대중과 더불어 노동조합을 하되, ‘전체’ 노동자 계급을 위해 일하라! 칠십만 조합원만 ‘내 식구’가 아니라, ‘천만 노동자’를 섬기는 노조가 되라! 무너져가는 농민들을 대변하여 나서는 노조가 되라! 당장의 생존권을 위해 ‘정리해고 반대’ ‘민영화(사유화) 반대’만 외치지 말고, ‘재벌 혁파’를 다그치라! 투기자본의 짓거리를 징치하라! 국가금융계획에 개입하여 ‘공공화’ 하라! 요컨대, 이 사회를 뿌리부터 재구성하겠다는 ‘변혁의 기풍’을 품고, 혁명하는 노조가 되라!

나는 이정훈 캠프에 이러한 ‘변혁의 기풍’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기꺼이 동참했다. 아직 구체내용은 덜 갖춰져 있지만, 이들은 ‘연대와 변혁’을 구호로 내걸었다.

반세기 전, 조선 인민은 요즘의 빈민보다 더 궁핍했으나 ‘새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살았다. 그 시절 우리 철도노동자들은 요즘 ‘대공장 정규직’ 못지 않게 부러움을 사는 처지였으나 저희들 유복한 처지를 선뜻 버리고 ‘노동해방’ 세상의 건설에 자기 인생을 던졌다.

동지여! 동지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가? 전태일과 전노협의 정신이 살아 있는가? ‘전평’ 노동자들보다 더 넓어진 눈길로, 더 높은 포부로 이 세상을 일구어 가고 있는가? 동지는 지금 죽어가는 민주노총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용기가 있는가?

백기완 동지는 이정훈 후보에게 “민주노총 위원장을 하려거든 목숨을 내걸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보탠다. “전평의 실천에서 버릴 것 버리고 취할 것, 취하라! 다만 ‘전평’의 ‘혁명하는 정신’만큼은 온전히 이어 받으라! 그리하여 우리가 가다 못 간 길을 한 발 더 개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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