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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언론의 딜레마, 소유-경영-편집 분리의 오랜 숙제.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30, 2021

한국의 양대 경제지,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이 거세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이하 매경 한경으로 통일). 2015년 3월, 한경이 주최하는 골프대회에 비씨카드가 후원사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매경에서 비씨카드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한경이 매경 계열사인 MBN의 약탈적 광고 영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확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폭주 언론(한경)”, “일탈과 파행, 횡포(매경)” 등의 거친 표현이 날마다 지면에서 맞붙었다.

두 신문의 상호 비판은 한경이 장대환 당시 매경 회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경 편집국장이 한경 편집국에 찾아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업계에서는 한경이 장 회장의 약점을 잡자 매경이 꼬리를 내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경 관계자는 “합의한 것은 없고 매경의 일방적인 사과였다”며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너’가 매경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이다.

2015년 10월, 머니투데이와 연합뉴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합뉴스TV 기자가 머니투데이 계열사 행사에서 취재 거부를 당한 사건 이후 서로 비판 기사를 쏟아내면서 치고 받던 도중 갑자기 홍선근 당시 머니투데이 회장이 연합뉴스를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일단락됐다. 연합뉴스는 머니투데이 비판 기사를 멈추고 머니투데이는 연합뉴스에 대한 정부 지원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도 연합뉴스가 홍 회장을 ‘저격’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난 직후였다. 구체적인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머니투데이 기자들은 이런 식의 ‘휴전’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머니투데이의 한 기자는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홍 회장의 방문이 마치 머투가 연합에 항복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어 기자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 계열사인 뉴스1 노조 지회는 성명을 내고 “홍 회장이 독단적으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돌아온 과정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어떤 합의나 정보 공유 없이 이뤄진 것”이라며 “뉴스1 기자들은 아무런 반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사이비 언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데다 연합뉴스가 뉴스1 등을 ‘유사 언론’으로 비난한 데 대해 제대로 반격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울분이 거셌다.

왜 부끄러움은 기자들의 몫인가.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면 ‘오너’가 있는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언론사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오너’는 실질적으로 언론사를 지배한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되면 ‘오너’를 지키기 위해 기사를 뒤집기도 하고 이미 내보냈던 기사를 삭제하기도 한다. 심지어 기사가 잘못된 게 없는 데도 경쟁 언론사에 굴욕적인 사과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왜 부끄러움은 기자들의 몫인가. 이 기자들은 과연 누구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것인가.

1999년 9월30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가던 날 아침. 중앙일보 기자 40여명이 대검찰청 로비에 도열했다. 이들은 홍 사장이 차에서 내리자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중앙일보 기자들로 구성된 ‘언론장악 음모 분쇄 비상대책위원회’는 대검 기자실에 들러 “사태의 본질은 중앙일보 흠집 내기를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장자연 사건 때 여러 차례 바닥을 드러낸 바 있다. 방상훈 사장은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정리됐지만(동생과 아들이 연루됐는데 모두 무혐의 처분) 조선일보 전체가 방 사장 가족의 보위에 동원됐다. 조선일보는 방상훈이라는 이름을 거론할 경우 소송을 걸겠다고 다른 언론사들을 겁박했고 실제로 수십억 원 규모의 소송을 남발했다. 조선일보 출신의 한 기자는 “상층에서 기사 제목이 내려왔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김재호 사장의 딸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역시 사실 관계를 밝히기 보다는 이 문제를 처음 보도한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고 나섰다. MBC는 김 사장의 딸이 2014년 하나고등학교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채점표가 조작됐을 가능성과 검찰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했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겠지만 동아일보는 사주의 비리 의혹을 감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언론에 권력이 있다면 그 권력은 불의에 맞설 때 발휘된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오너’ 리스크는 진실에 복무하는 언론의 아킬레스 건이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기자들이 사주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저널리즘 원칙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정말 참담한 일이다. 권력에 맞서라고 우리가 언론에 언론 부여한 공적인 권력을 언론 위에 군림하는 ‘오너’가 휘두르고 있는 꼴이다. 기자들의 부끄러움은 저널리즘을 잠식한다.

기자들이 소유한 언론사의 힘.

하지만 독립적인 소유 구조를 확보한 언론사들은 확실히 다르다. 경향신문에서는 사장이 광고주의 요청을 받고 기사 삭제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사장과 편집국장이 사퇴한 일도 있었다. 2019년 12월13일, SPC그룹이 다음날 아침 신문에 게재될 예정인 “파리바게뜨가 중국에서 상표등록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면서 5억 원을 제안했고 편집국장이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언론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기자가 “사장의 지침에 따르겠다”고 말하면 기사가 날아가고 회사는 협찬금을 받고 기자는 공로를 인정 받는다. 성과급을 주는 곳도 있다. 그러나 경향신문에서는 기자가 다음날 사직서를 냈고 노동조합이 진상 조사를 한 뒤 성명서를 내고 책임자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건 이후 9일이 지난 22일 노조 지부 명의의 사과문이 지면에 게재됐다.

경향신문은 사원주주회 지분이 37.7%에 자기 주식이 58.7%(2020년 말 기준)로 사실상 직원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다. 정연우 세명대학교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경향신문 사태를 보면 그래도 희망을 갖는다”면서 “다른 언론사 같으면 이렇게 공개하고 문제 삼지 못했을 것이다”, “곳곳에서 돈 받고 기사 써주고, 기사 빼는 작태가 만연해 있지만 자정 노력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도 경영과 편집의 분리가 엄격한 회사다. 지난 1월에는 한겨레 기자 41명이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자 이춘재 사회부장이 보직에서 물러난 일도 있었다. 2017년 11월에는 김종구 편집인이 LG그룹 전무를 만난 뒤 기사 수정을 지시하자 길윤형 편집장이 사표를 던지며 반발한 사건도 있었다. 결국 기사는 수정 없이 그대로 게재됐다.

한겨레는 우리사주조합이 13.5%로 최대 주주고 자기주식이 10.7%, 나머지 75.8%가 1988년 창간 때 가입한 독자 주주들이다. 상대적으로 우리사주조합 지분은 많지 않지만 직원들이 2년 마다 선거로 사장을 선임한다. 한겨레 기자들은 2019년 9월에도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 보도가 삭제된 것을 이유로 편집국장 등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건 적 있다. 국장 등의 보직 사퇴는 없었지만 당시 양상우 사장은 이듬해 선거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많은 언론사들이 소유와 경영, 편집의 3권 분리를 핵심 원칙으로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유하는 자가 지배하고 지배하는 자가 편집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애초에 언론사의 경영이 편집 방향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사장을 선임하고 사장이 편집국장을 지명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경영과 편집의 분리는 사장의 선의나 의지의 문제거나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경계를 확인하고 싸우면서 지켜야 하는 문제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편집국장이 ‘오너’의 뜻을 거스르면 잘린다. 애초에 그런 사람을 편집국장으로 내세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언론사에서는 기자들과 다른 의견을 강요하는 편집국장이 못 버티고 물러나는 일이 벌어진다. 기사를 쓴 기자도 모르게 기사를 날리고 광고를 받아 챙기는 언론사도 있지만 기사 삭제를 지시했다가 사장이 물러나는 언론사도 있다. 언론사의 지배 구조가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태도와 조직의 문화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들에게 언론사는 여전히 싸고 매력적인 투자 대상.

지난 몇 년 사이 신문사 인수합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일찌감치 사양 산업으로 전락한 뉴스 산업이 여전히 매력적인 매물로 거론되는 건 한국에서 자본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주요 신문사의 최대주주가 되면 청와대에 초청 받아 대통령과 만찬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고 그 지위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언론사 사주가 됐더니 몇 달씩 걸리던 인허가 절차가 사흘도 안 걸리더라”, “대통령과 사진 한 번 찍고 왔더니 동료 기업인들의 시선이 달라지더라”는 ‘회장님’의 전언이 나돈다. 언론사 사주라는 명예와 가업을 대를 이어가며 물려줄 수 있고 권력으로부터 든든한 방패막이를 확보하고 필요할 때 기자들을 로비스트로 동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수백억 원의 ‘투자’를 아깝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중흥토건이 헤럴드경제신문의 지분 47.8%를 684억 원에 인수한 게 2019년 5월의 일이다. 중흥토건은 중흥건설 정창선 회장의 아들 정원주 사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던 서울신문 지분 19.4%를 180억 원에 인수해 3대 주주로 합류한 건 2019년 6월이다. 호반건설은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의 지분 28.7%를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내부 반발이 거세 지분을 되파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최근 전자신문 지분 34%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몇몇 인터넷 신문과도 지분 인수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방송의 최대주주이기도 한 호반건설은 최근 호반그룹의 자산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서면서 광주방송 지분 전량을 JD인베스트에 넘기기로 하고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전방송은 우성사료에서 대웅으로 대주주가 바뀌었고 UBC울산방송도 프렌지공업에서 삼라건설로 대주주가 바뀌었다.

몇 차례 ‘빅 딜’이 성사되기 이전에도 ‘큰 손’들의 입질이 끊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언론사가 매물로 나오는 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처럼 개인이 소유하고 대대로 물려가며 지배하는 족벌 언론사들은 이미 3세 경영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SBS와 한국일보, 아시아경제, 청주방송, 강원방송 등은 기업이 최대주주지만 역시 그 기업의 ‘오너’가 언론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다.

“아무개 기업이 얼마를 제안했다더라”, “아무개 언론사가 몇 백억을 불렀다가 거래 직전에 캔슬했다더라”는 등의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 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매물로 거론되는 언론사들 몸값은 갈수록 더 오르는 추세다. 최대 주주 자리를 거래할 수 있는 언론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언론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오랜 경험에다 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SBS의 눈물과 한국일보의 회생.

1990년 태영건설이 SBS를 설립하면서 투자한 자본금이 300억 원이었다. 그런데 1995년부터 2020년까지 태영건설이 SBS에서 챙긴 배당금만 853억 원에 이른다. 1990년까지만 해도 태영건설은 도급 순위 60위 밖의 무명 건설업체였는데 2020년 기준으로 14위까지 뛰어올랐다. 2015년에는 윤세영 당시 회장이 SBS 보도본부장 등을 불러 놓고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 윤석민 회장은 그 아들이다.

SBS의 지난 10여년의 변화를 보면 이익이 안 되는 플랫폼 부문과 이익이 되는 콘텐츠 부문을 분리해 태영건설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신해 왔다. 현재 SBS의 지배구조는 태영건설이 지주회사 성격의 TY홀딩스를 지배하고 TY홀딩스가 SBS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고 이 회사가 SBS와 SBS콘텐츠허브를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다. 태영건설이 과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BS미디어홀딩스에 이익이 집중됐고 SBS는 갈수록 속 빈 강정이 됐다.

지난해 12월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SBS 보도본부를 동원해 태영건설의 하수처리 사업장 건설 수주를 돕도록 하거나 광명시 역세권 개발 계획을 승인 받기 위해 광명동굴 홍보를 지시하는 등 보도와 편성에 개입해 왔다. 윤석민 회장의 동생인 윤재연씨가 대표로 있는 인제스파디움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보도본부 기자들을 동원해 로비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법정 관리를 벗어나 동화그룹에 인수된 게 2014년 11월의 일이다. 동화기업과 동화기업의 계열사 동화엠파크가 한국일보 지분을 100%를 나눠서 매입했다. 인수 금액은 513억 원. 동화기업 인수 이후 한국일보의 경영 상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2014년 570억 원 매출에서 이듬해 608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만년 적자 구조를 벗어났다. 2018년에는 매출이 700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2020년 매출은 676억 원이었다.

한국일보는 동화기업 인수 직후인 2015년 2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가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요” 발언을 누락해 논란에 휘말린 적 있다. 나중에 공개된 녹취록에는 동화그룹 승명호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한 대목이 있었다. 당시 한 한국일보 기자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신문의 기강과 지휘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면서 “기업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동안 유지됐던 신문의 중도 논조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1954년 창간 이래 60년 가까이 장씨 일가들이 지배해 왔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배임 혐의로 고발해 3년 형을 선고 받고 물러난 장재구 당시 회장은 창업자 장기영 회장의 아들이다. 기자들이 부패한 사주를 몰아내고 법정 관리를 신청해 새로운 주주를 찾아나선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일보는 동화그룹에 인수된 이후 비교적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면도 꾸준히 개선됐고 편집권 독립을 둘러싼 갈등도 드러난 바로는 없다.

다만 동화그룹 인수 이후 한국일보에 동화그룹 관련 기사가 크게 늘어나 우려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한국일보가 동화기업이나 동화엠파크를 다룬 기사가 1년에 6건 밖에 안 됐는데 2015년에는 48건, 2016년에는 51건으로 늘어났다. 지난 3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소개하는 기사가 한국일보에 실렸을 때 뒷말이 돌았던 것도 동화엠파크가 중고차 시장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기 때문이었다.

독립 언론의 꿈, 서울신문의 깊은 고민.

호반건설 지분을 다시 사들이기로 한 서울신문 기자와 직원들의 깊은 고민도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사주조합의 계획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19.4%를 넘겨 받으면 우리사주조합이 48.5%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된다. 다만 180억 원을 조달하려면 419명의 조합원들이 달마다 50만 원 이상의 원리금을 부담해야 한다. 6월29일 조합원 투표에서는 차입 인수 방안에 반대표가 절반이 넘어 부결됐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의 독립 언론을 향한 열망을 이해하려면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사주조합을 구성하고 연봉의 3분의 1 이상을 부담하면서 지분을 인수해 어렵게 최대 주주의 자리를 확보했지만 그때도 정부와 공기업 지분을 더하면 우리사주조합보다 많았고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인사에 개입했다. 이후 퇴사자가 늘어나면서 우리사주조합 지분이 줄었고 2006년부터 다시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됐다.

서울신문은 20년 이상 낙하산 사장들과의 지난한 투쟁을 치러왔다. 기자 경력이 없는 현대건설 출신의 채수삼 사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기도 했고 한국일보 출신의 노진환 사장도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정작 정권이 바뀐 뒤 사퇴를 강요 당했다. 신재민 당시 문화부 차관이 “망신 당하는 것보다 자진 사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압박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계속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고광헌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겨레 기자 출신의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교감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본인이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공모 마감 며칠 남겨 놓고 제안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광헌 사장은 기획재정부를 찾아가 서울신문 독립을 보장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약속 받아오겠다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사퇴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장에 취임했다.

단순히 지분이 좀 더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민간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던 낡은 관행이 독립 언론을 향한 절박한 열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사주조합 입장에서는 30.5%의 정부 지분을 사들이는 것보다 19.4%의 호반건설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 부담이 더 적고 정부 지분을 우호 지분으로 남겨두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주조합이 경영권을 확보하면 2대 주주인 정부 지분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우리사주 지분을 괜찮은 가격에 사주겠다는 호반건설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백억 원의 빚을 끌어안고 독립 언론으로 전환하려는 용감하지만 고통스러운 선택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 투표에서 차입 안건이 부결됐기 때문에 한동안 호반건설과의 ‘동거’가 계속될 수도 있다. 사실상 지분 인수가 무산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초 지분 매각을 공언했던 기획재정부도 계산이 복잡하게 됐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에 따른 결과는 그들이 감당할 몫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저널리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소유와 경영, 경영과 편집의 분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언론학자 줄리아 카제가 말한 것처럼 공공재로서의 저널리즘이라는 가치와 주식회사 언론사라는 현실이 부딪히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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