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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으로 가는 뒷문, 그 치명적인 유혹.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14, 2006

반포텍은 등산용 텐트를 만드는 평범한 회사였다. 전체 직원이 48명, 2004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111억원, 당기순이익이 6억원인 거의 눈에 안 띄는 작은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가 지난해 11월 말부터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년 내내 4천원을 넘지 못했던 주가가 은근슬쩍 치솟기 시작하더니 12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12월 22일에는 무려 2만4700원까지 뛰어올랐다. 한달 전인 11월 22일 주가 3580원에 비교하면 6.8배나 뛴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반포텍의 지난해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유가 급등에 환율 하락이 겹치면서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고 3분기까지 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랬던 회사가 12월 6일 스타엠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와 주식을 교환하기로 했다는 공시를 내보내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됐다. 스타엠엔터테인먼트는 영화배우 장동건씨를 비롯해 공형진씨, 조미령씨 등 9명의 연예인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반포텍은 이 회사와 43.7 대 1의 비율로 주식을 교환하기로 했다. 오는 2월 27일이면 스타엠엔터테인먼트는 반포텍의 자회사가 되고 스타엠엔터테인먼트 주주들은 이 비율만큼 반포텍 주식을 갖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합병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스타엠엔터테인먼트는 명실상부한 코스닥 기업이 된다. 반포텍은 지난해 12월 6일 사업목적 변경 신고를 내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코스닥 시장에는 지난해부터 우회등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회등록 또는 우회상장이란 주식시장에 올라있는 기업을 사들여 합병하는 것을 말한다. 코스닥의 경우 우회등록,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우회상장이 된다. 우회등록을 하면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아도 코스닥 시장에 등록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된다. 백도어리스팅(뒷문등록, back-door listing)이라고도 부른다.

이번 우회등록으로 반포텍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주가까지 올라서 좋고 스타엠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 등록기업으로서 지명도를 얻고 자금조달도 훨씬 쉽게 된다. 단순히 주식 교환만 했을 뿐인데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반포텍은 12월 27일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소속돼 있는 브라보엔터테인먼트에 출자할 계획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연히 주가는 또 한 차례 크게 뛰어올랐다.

일찌감치 지난해 3월, 보안 솔루션 업체인 데이타게이트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금상미디어와 영업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회등록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금상미디어는 아예 회사이름을 여리인터내셔널로 바꾸고 변신을 서둘렀다. 지난해 3월 온라인게임업체 아발론소프트를 인수한 것을 비롯해 9월에는 인터넷 포털 네띠앙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10월에는 권상우씨와 이동건씨, 김사랑씨 등의 소속사인 아이스타시네마를 인수했다.

여리인터내셔널은 이제 연예 매니지먼트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음반 및 디지털 문화 콘텐츠의 제작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해 1월 590원에서 올해 1월 13일 1만1900원으로 1년 만에 20배 이상 뛰어올랐다. 합병 과정에서 성과급 형태로 주식을 받았던 권상우씨와 이동건씨는 주가가 뛰어오르면서 각각 11억원과 6억원씩 시세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돈 방석에 올라앉은 회사로 케이앤컴퍼니도 빼놓을 수 없다. 광모뎀을 만드는 정보기술(IT) 기업이었던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트라이언픽쳐스와 오크필름 등 14개의 영화제작사를 인수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이제 <두사부일체>와 <실미도>, 등 내로라할 흥행작을 배출한 전력을 갖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됐다. 이 회사도 한때 주가가 10배 이상 뛰어올랐다.

최근 반년 사이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코스닥 우회등록은 얼추 꼽아봐도 열손가락을 넘어설 정도다. 케이앤컴퍼니의 자회사인 케이앤엔터테인먼트는 모바일 솔루션 업체인 휴림미디어를 통해 우회등록에 성공했다. 케이앤엔터테인먼트는 추상미씨와 소지섭씨 등의 소속사다. 가방과 여성의류를 만드는 정호코리아는 영화배우 송윤아씨 소속사 스타아트를 인하겠다고 밝혀 한 달 만에 주가가 1720원에서 5410원까지 치솟았다.

이병헌씨 소속사인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는 동물사료업체인 EBT네트웍스와 골프공 제조업체였던 팬텀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지난해 7월 결국 팬텀의 품에 안겼다. 이밖에도 호신섬유는 이효리씨 소속사인 DSP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알루미늄 주방제품을 만드는 남선홈웨어는 가수 성시경씨 소속사인 뮤투엔터테인먼트와 음원·동영상 콘텐츠 제조업체인 아지트를 흡수 합병했다. 웬만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은 죄다 코스닥에 한발을 걸쳐놓은 셈이다.

엔터테인먼트 업종이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게 바로 지난해부터다. 구멍가게 수준이던 연예 기획사들이 잇따라 코스닥 문을 두드리고 주주들이 이에 폭발적인 호응을 보이면서 우회등록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2000년 초반 IT 열풍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가치 평가고 뭐고도 없어요. 실적은 형편없는 기업들이 연예인들 이름만 걸어놓으면 주가가 그냥 서너 배는 뜁니다.” 한국투자증권 박정근 연구원의 이야기다.

유독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우회등록은 코스닥의 거의 모든 업종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말 코스닥시장본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과 2005년 코스닥시장에서 우회등록을 끝낸 업체만 모두 59개에 이른다. 현재 진행 중인 기업을 포함하면 거의 100개에 육박한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유형별로 보면 합병이 34개로 가장 많았고 포괄적 주식교환이 16개, 자산양수나 영업양수가 9개 기업이었다.

이처럼 우회등록이 늘어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금조달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시장상황이 좋으면 증자를 받아 자금을 끌어모을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채권 또는 전환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절차가 훨씬 간단해진다. 또한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으니 대주주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금회수가 쉬워진다.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코스닥시장의 등록요건은 여전히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은행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을 줄이거나 자격심사 요건을 까다롭게 한 것도 우회등록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된다. 어떻게든 코스닥시장에 발을 걸쳐놓으면 주식을 담보로 내놓고라도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 전문인 법무법인 새길의 이광수 변호사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중에서도 아주 탄탄한 실적을 내는 회사가 아니라면 장외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는 우회등록 말고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우회등록을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는 등록기업이 애초부터 굴뚝산업이거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사양화된 경우다. 이 경우 우회등록이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둘째는 사업다각화와 시너지 효과를 노리기 위해 내부자금이 풍부한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다. 셋째는 창업 대주주가 출자자금 회수의 방법으로 우회등록을 이용하는 경우다. 이 경우 자칫 머니게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유진로보틱스처럼 벤처캐피털이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우회등록을 주선한 사례도 있다. 2001년 이 회사에 31억5천만원을 투자했던 한국기술투자는 지난해 9월 이 회사를 완구회사인 지나월드와 합병, 우회등록에 성공했다. 유진로보틱스는 유망한 회사였지만 해마다 적자를 기록해 코스닥등록이 요원한 상태였다. 이번 우회등록으로 한국기술투자는 68억원의 투자이익을 회수하고 남은 지분에 대해서도 110억원의 평가이익을 보고 있다.

이처럼 우회등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매물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뛰었다. M&A포럼 김종태 대표에 따르면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기업은 고작 30여개 정도인데 우회등록이나 인수합병을 원하는 기업은 그 10배 이상이다. “1년 전만 해도 10억에서 많아봐야 30억이면 살 수 있는 기업들이 널려 있었는데 이제는 100억을 줘도 못 삽니다. 가격이 너무 뛰었어요. 마치 잘 나갈 때 부동산 시장처럼 호가만 있고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요즘 인수합병 시장의 등록 프리미엄은 주가의 10~30%에 이른다. 심지어 주가의 두 배 이상을 얹어준다는데도 거래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요가 절대적으로 공급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독하게 거품이 끼었는데 한동안은 걷힐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우회등록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회등록을 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뛰어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동부증권 장영수 연구원은 “우회등록한 기업들은 정상적인 가치평가를 할 수 없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며 “소문만으로 뒤늦게 추격 매수했다가는 크게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최소한 지난해 사업실적 정도는 살펴보고 투자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적발한 우회등록 관련 불공정거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주식을 미리 사들인 뒤 인터넷에 공시 내용을 과대 포장해 유포하는 행위, 둘째, 사업목적을 거짓으로 추가해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행위, 셋째, 우회등록을 앞두고 미리 주식을 사들여 직간접적으로 주가를 띄우는 행위 등이다. 증선위는 지난해 12월 팬텀 등 7개 회사 11명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팬텀은 세 번째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준범 사장 등은 이 회사 주식 34.4%를 타인 명의로 위장분산한 뒤 통정매매와 고가매수주문 등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사실이 적발됐다. 검찰 고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트루윈테크놀로지는 첫 번째 유형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사는 1월 10일 영화제작사 팝콘필름에 160억원을 출자한다는 공시를 내보냈는데 주가는 이미 6일부터 크게 뛰어올랐고 공시가 나온 다음에는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동일패브릭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1월 5430원에서 올해 1월 31만3천원까지 무려 57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미국계 제약회사 바이럴제노믹스에 피인수됐는데 공시가 발표되기 한달 전부터 주가가 뛰어오른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8월말 1만9천원이던 주가가 공시가 발표되던 10월 11일에는 이미 6만원까지 세배 이상 뛰어오른 뒤였다.

코스닥시장본부는 이런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우회등록 뒤 재무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 최소 1년에서 3년까지 매각을 제한하고 있다. 자본잠식 상태거나 경상손실을 낸 기업 또는 부채비율이 업종 평균의 1.5배가 넘는 기업이 대상이다. 상장심사1팀 강홍기 팀장은 “우회등록의 길은 열어두되 단기 시세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가기는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변호사는 우회등록 기업에 접근할 때는 실적과 성장가능성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라고 조언한다. 철저하게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회등록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하려면 인수하는 회사나 당하는 회사나 둘 중의 하나는 어느 정도 내실이 있어야 합니다. 또 변화를 끌고 나갈 재원이 확보돼 있어야 합니다. 외부자금을 끌어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현금흐름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죠.”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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