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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과 ‘날리면’ 논란이 던진 질문.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7, 2022

(10월15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홍원식 교수님의 발표에 대한 토론문입니다.)

객관주의의 관행을 벗어나 목적론적 윤리관으로서 객관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홍원식 교수님의 발표문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먼저 생각했던 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객관주의 관행과 객관적인 사실 추구를 구분하는 이런 논의의 사례로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몇 년 전 조국 사태가 더 이런 주제를 다루기 적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고요.)

바이든-날리면 논란의 경우 일부 언론이 기계적 균형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당수 언론이 명확한 판단을 갖고 개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 언론이 객관주의의 관행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시작됐고 누구나 어느 한 쪽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나는 ‘바이든’이라고 들린다고 크게 외친다고 해서 정리되는 이슈가 아니죠.

물론 ‘바이든’으로 들리면서 동시에 ‘날리면’으로도 들리기도 한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고, 나는 ‘바이든’이라고 들리지만 누군가에게 ‘날리면’으로 들린다면 ‘바이든’이라고 단정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기자들은 누구나 사실 추구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단 첫 보도를 내보냈던 상황에서 MBC 기자가 ‘날리면’이라고 들리는데 그걸 ‘바이든’이라고 바꿨다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쩌나”로 들렸다면 “국회에서” 앞에 괄호 열고 “(미국) 국회”라고 자막을 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저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MBC가 확실하지 않은 발음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처음 들었을 때 ‘날리면’으로 듣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 이게 문장이 이상하거든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평소 중언부언하는 스타일을 보면 실제로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 같은 표현을 썼을 가능성도 여전히 있습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뭐였든 일단 ‘바이든’이라고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들으면 ‘바이든’으로 들리게 된다는 지적도 있었죠. 음소거 영상이 이런 확증 편향을 강화할 뿐 실제로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었고요.

음소거 영상보다 더 확실한 건 발언의 맥락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에 6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뒤라 이게 통과 안 되면 바이든이 쪽팔릴 수 있겠다,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추론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한국 국회가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내가) 쪽팔려서 어쩌나’로 해석하기에는 맥락이 맞지 않고요. 뭘 날린다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미국이 60억 달러를 내고 한국도 1억 달러를 내기로 했는데 이걸 날린다는 취지로 말한 걸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1억 달러는 국회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물론 윤 대통령이 이걸 모르고 한국 국회 승인 어쩌고의 취지로 말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고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들을 때는 ‘바이든’이라고 들렸는데, 나중에 ‘날리면’이라고 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발언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물론 어떻게 이게 ‘날리면’으로 들릴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이 보도 이후에 제기됐다면 그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했을까.

일단 반론을 충분히 받고 과정을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대결 구도로 끌고 온 게 대통령실이었고요. 이건 굉장히 좋지 않은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MBC가 수세적으로 반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이죠. 진실 공방이 돼 버렸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MBC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당연히 보도 가치가 있는 사안이죠. 대통령실은 필요하면 반박하고 해명하면 됩니다.

그런데 MBC가 진영 논리에 따라 진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건, 그러니까 ‘날리면’인지 ‘바이든’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일부러 ‘바이든’이라고 강조해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건 MBC의 저널리즘 윤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태도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죠. 진실이 아니라 진영을 가르고 우리 편이 아니라 우리를 공격한다고 본질을 외면하면서 핵심에서 빗겨나는 전략입니다.

보도 이후에는 “동맹을 이간하고 국익을 자해한다”는 대통령실의 논평이 있었는데, 이건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보도가 나간 직후 누군가에게는 명백하게 ‘바이든’이라고 들리는데 일부지만 ‘날리면’이라고 들린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비율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홍 교수님의 논리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적용해 보면 기자가 “나에게는 ‘바이든’이라고 들린다”고 주장하는 건 객관주의를 벗어난 것이지만 객관적 사실 추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주의를 벗어났다는 건 어차피 진실은 하나고 판단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자 역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라 규정하게 됩니다. 설령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객관적 사실 추구라는 언론의 사명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통령실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을 한 뒤, 그래도 ‘바이든’으로 들리지 않느냐고 주장하면 현실에 개입하는 결과가 되는 것인가.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기자가 어느 한 편에 서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진영의 갈등에 뛰어드는 것과 다른 문제죠.

실제로 SBS는 MBC가 공격을 받자 “우리도 바이든이라고 들렸다”, “우리도 자체적으로 확인을 거쳐 보도했다”면서 MBC가 조작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죠. MBC 보도를 따라 쓴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전제하고, (그렇게 주장하니까.) 그렇지만 명백하게 ‘바이든’으로 들리고, ‘바이든’이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는 건 설령 결과적으로 ‘날리면’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홍 교수님의 질문,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 질문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 사건에서 어떤 다른 논의가 가능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상식적인 상황은 대통령이 나서서 이 새끼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하고 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국민 여러분이 듣기에 따라서는 바이든이 쪽팔리면 어쩌나로 들렸을 수도 있는데, 이러저러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 않다, 만약 한국 국회가 통과 안 시켜주면 내가 쪽팔릴 거다, 이런 취지로 말한 게 맞다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을 했어야 합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진실 공방을 벌여봐야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히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은 ‘바이든’으로 들을 것이고 ‘날리면’으로 듣고 싶으면 그렇게 듣겠죠.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지만 참과 거짓을 가르기 어려운 영역이 많습니다.

오히려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은 이거죠. 대통령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됐고 그걸 보도한 언론사를 비난하고 겁박했습니다. 사과와 해명을 하고 이에 합당한 비판을 감수하면 될 일을 논란을 만들고 갈등을 부추기는 게 대통령실이었다는 겁니다.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상당수 언론이 미묘하게 프레임을 전환한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논란이 아니라, ‘바이든’이라고 주장하는 언론과 “청와대가 ‘날리면’이라고 반박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날리면’인데 왜 ‘바이든’이라고 하느냐”고 주장하는 기사는 많지 않았고요. 대통령실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왜곡은 아니라고 하겠죠.

홍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널리즘이 다른 커뮤니케이션과 구분되는 것은 진리, 사실, 실제 등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든’-‘날리면’의 진실은 모릅니다. 다만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죠. ‘바이든’ 논란이 드러낸 진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UN 연설에서 자유를 21번이나 외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찍어누르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참혹한 진실이죠.

언론은 원래 권력 감시가 본령입니다. 언론의 비판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진심을 다해 해명하고 반박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청와대의 반박이 MBC의 보도를 뒤집지 못했고, 오히려 MBC의 의도를 비난하면서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날리면’ 논쟁이 만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홍 교수님의 질문,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객관주의와 객관적 사실 추구를 구분해서 접근하면, 언론은 늘 100%의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합리적 의혹이라는 표현이 남발되고 있기도 하지만 의혹은 늘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기되기 때문에 의혹인 것이고, 그래서 더욱 정교해야 하고 언제나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요.

MBC의 보도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설령 ‘날리면’이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저널리즘이 객관성인 사실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실이나 일부 MBC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MBC가 객관주의를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데 한쪽에 섰다는 거죠.

홍 교수님이 “사실 세계의 붕괴는 저널리즘의 객관주의 관행이 무기력하게 제도적(관료적) 사실 세계에 의해 포획된 결과”라는 표현을 쓰셨던데, 지금 벌어지는 일이 바로 그렇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건 판단하지 마라고 요구하는 것이 제도적 관료적 사실 세계에 언론을 포획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 교수님이 저널리즘의 객관성 추구를 “다중의 층위로 구성된 ‘사실’에 대하여 보다 깊은 층위에 놓여있는 심층적 실체를 발견하고자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전달하는 실천적 저널리즘 행위를 독려하는 저널리스트의 윤리적 가치이자 세계관”이라고 정의하셨죠.)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죠.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지만 진영 논리의 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언론을 진영에 가두려는 시도가 있죠.

MBC가 정파적이라서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보도했다거나 ‘날리면’으로 들리는데 ‘바이든’으로 왜곡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이 정도의 상식적인 판단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오히려 MBC에 정파적이라는 비난을 씌우면서 MBC 보도를 진위 공방의 국면으로 끌고 온 것이 오히려 국민들을 사실 판단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공론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의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건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적 이해 보다는 다른 주장에 대한 사실 타당성의 판단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셨죠.

공영 언론으로서 MBC가 지금 할 일은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에 나서기 보다는 “we go high, when they go low”, 품격 있게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이 할 일은 계속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기자들이 ‘바이든’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아직도 그 보도를 뒤집을 이유가 없다면 그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고 보도의 정당성을 입증하면 됩니다.

공격에 반격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우리는 진실을 추적할 뿐이고, 객관적 사실 추구라는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됩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김어준은 탁월한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합니다. ‘뉴스공장’이야 말로 홍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적극적으로 사실 판단의 책임을 다하는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김어준씨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죠.

홍 교수님이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인용한 표현에 따르면 김어준은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한 사실 타당성의 판단의 과정”을 강조하지만 질적 구성원들의 통합과 실용적 화용적 결과를 추구하기 보다는 팬덤을 구축하고 다른 주장을 배격하는 전략으로 갔기 때문에 공영 방송의 정체성에 맞느냐는 논란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발표자가 인용한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뉴스공장이 공동체에서 격리된 채 자기 완성의 논리에 빠졌다는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MBC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무슨 진영이 있는가, 무슨 국익이 있는가, ‘날리면’일 수도 있다, 사소한 논란일 수도 있지만 언론이 문제 제기를 할 책무가 있고 대통령은 설명해야 할 책무가 있다, 오히려 지금 갈등을 부추기는 게 대통령실이다, 왜 우리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됐으며 논의 과정에서 어떠어떠한 부분을 검토했다, 바로 이것이 저널리즘이다, 이게 공영방송의 태도다, 계속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손석희 같은 분이 있었으면 달랐을까요.

안타까운 건 결국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로 논란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 전반의 신뢰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고요. 논란이 만들어지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죠. 언론에 대한 신뢰가 취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론을 뒤흔드는 게 가능하다는 게 참담한 현실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언론 보도를 반박하기 보다 언론을 부정하고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부추겨서 논쟁을 무력화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도 그렇고.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도 그렇고. 친구가 범인이다 아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둘러싼 논란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죠.

마지막으로 홍 교수님의 이 말씀이 지금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선을 추구하는 공론장에서 필요한 것은 무지의 베일 뒤에 놓여진 탈맥락적 판단의 주체로서 언론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적극적 사실 판단의 책임이 부여된 언론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홍 교수님께서 “정치-관료에 의해 구획되는 제도적 사실 세계를 회의하고 이에 대한 실체적 사실 판단의 책임과 용기”를 강조하셨는데, 최근 한국 저널리즘의 당면토장 현상이 책임과 용기로 해결될 문제인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판단의 책무에는 그 판단에 따른 책임이 따르고 높은 윤리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객관주의의 함정 만큼이나 객관적 사실 추구라는 명분 이면에 숨은 우리 모두의 편향을 경계해야 하고. 좀 더 겸허하게 사실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늘 옳은 것을 위해 싸우지만 결국 가치 판단의 영역이고 나의 가치와 신념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는 태도는 위험하고, 그렇게 비춰지는 것도 위험하고요. 언론 스스로 언론에 대한 오해와 불신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론장이 작동하지 않고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상당수 언론이 판단을 해야 할 때 판단을 미루거나 권력과 이해 관계를 반영하거나 정파적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발전적인 토론을 위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소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순환 논리라고 표현하셨는데, 이건 다시 객관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우리 편에게 어필하는 저널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객관적인 것처럼 보여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적인 저널리즘과 성찰적인 저널리즘이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도 필요하고요.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진실이 드러났다면 그걸 포장하거나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 자체로 진실이기 때문이죠.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과 과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답이 아니라 과정을 알고 싶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공론장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객관주의를 넘어 객관성의 추구라는 홍 교수님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객관성의 추구는 언론의 사명이지만 언론이 진실의 담지자가 될 수는 없다. 언론이 진실을 규정하는 게 아니고,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객관성의 가치가 의심받고 진실을 향한 노력이 폄훼당한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객관적 사실 추구라는 우리의 사명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고 그 진실을 수용하게 만드느냐는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의 당면토장 현상을 넘어서는 건 공론장의 신뢰 회복이고, 맥락의 복원과 언론의 설명 책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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