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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으로 3400만원 벌기.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7, 2001

의정부 백병원 신경외과 의사인 정경훈(37)씨는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씨가 1천원에 200계약 사들인 60.0 풋옵션은 다음날 50만4천원까지 뛰어올랐다.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무려 504배의 수익을 올렸겠지만 지레 겁을 먹은 정씨는 일찌감치 17만원 언저리에서 팔아치우고 빠져나왔다. 그래도 무려 170배에 이르는 수익이 났다. 단돈 20만원으로 34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까무라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정씨는 이날 60.0 풋옵션 말고도 57.5와 62.5를 각각 500계약과 50계약 들고 있었다. 각각 50만원이 4천만원으로, 65만원이 2천만원으로 불어났다. 모두 더하면 정씨는 하루 사이에 135만원으로 94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수익률은 무려 6963%에 이른다.

주식시장이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옵션시장은 때 아닌 활황을 맞고 있다. 옵션에서 한몫 챙긴 사람들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옵션시장 거래량은 4조6천억원에서 5조7천억원으로 24%나 늘어났다. 사상최고 기록이자 세계최고 기록이다. 돈을 잃어줄 신출내기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돈 벌기가 쉬워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제는 사그라들 법도 하지만, 반짝 신화를 둘러싼 호들갑은 갈수록 더 시끄러워져만 간다.

대박을 터뜨린 사람답게 정씨는 얼굴 가득 여유로움이 넘쳐 보였다.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자꾸 말을 시키니 이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돌아보면 정씨의 지난 투자일지는 꽤나 험난하다.

주식투자 경력 7년인 정씨는 1998년 대우사태 때 엄청난 손실을 입고 빈털터리가 됐다. “며칠 뒤에 부도날 주식이 계속 상한가를 치고 있었죠. 일이 터질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겠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미수까지 쳐가면서 뒤늦게 따라 들어갔다가 반대매매를 당해 이른바 깡통계좌가 된 겁니다.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2억원 가량을 잃고 주식에서 손을 뗀 정씨는 옵션으로 옮겨왔다.

“남아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일이십만원밖에 안 되는데 그걸로 뭘 사겠습니까. 그동안의 손실을 한번에 만회하려면 옵션에 들어가 대박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일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흔히 주식하다 망하면 선물로, 선물하다 망하면 옵션으로 뛰어든다고 하는 이야기처럼 정씨도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옵션에 매달렸다. 그뒤로도 전세금을 빼서 집어넣었다가 홀라당 까먹기도 하고 운 좋게 몇번의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날려버렸다. 이번의 큰 대박은 그동안의 역경을 한번에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짜릿했을 것이다.

그럼 정씨의 대박 전략을 살펴보자. 운이 따르기는 했지만 이번 대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씨는 지난해부터 최저가격 1천원짜리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터무니없는 종목이라 거의 물량이 나오지 않지만, 가끔 최저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정씨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정씨의 설명에 따르면 한달에 10번 가량 1천원짜리가 나오는데 지난 2년 동안 100배가 넘는 대박을 터뜨려준 게 4번이나 된다. 확률로 치면 60분의 1이다. 59번을 잃더라도 한번 벌 때마다 100배를 벌 수 있다면 분명히 해볼 만한 게임이다. 정씨는 잃을 셈치고 1천원짜리가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몇십만원씩을 집어넣어왔다. 그러다가 운 좋게 테러가 터진 덕분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복권에 가깝다. 복권은 복권이지만 정씨는 당첨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정씨는 철저하게 매수만 한다. “매도하고 나면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어요. 안정적이면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한방에 다 날릴 수 있으니까요. 매도에서는 한번도 큰 재미를 못봤습니다.” 이제 정씨에게 옵션투자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환자를 보는 틈틈이 주가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수술이라도 할 때는 혹시라도 터질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해 헤지를 걸어놓고 나간다. 정씨는 돈을 모아 병원을 개업할 꿈에 부풀어 있다.

인천에 사는 전업 투자자 유형선씨도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다. 유씨도 테러가 터지기 하루 전날, 62.5 풋옵션을 1만3천원에 300계약 390만어치를 사들였다. 이 가운데 100계약만 2만원에 처분하고 나머지를 들고 갔는데 저녁 때 기대하지 않았던 테러가 터진 것이다. 유씨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시장이 미국 시장보다 10% 가까이 고평가돼 있었고 떨어질 때가 됐는데도 용케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던 때였다. 테러가 아니라도 폭락은 충분히 예견됐었다는 이야기다.

테러 다음날 유씨는 나머지 200계약을 50만원씩에 처분했다. 390만원으로 1억원 넘게 벌어들인 셈이다. 내친 김에 유씨는 욕심을 더 부렸다. 주가가 더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이틀 뒤 60.0 풋옵션을 100계약 더 사들이는 한편, 65.0 콜옵션과 62.5 풋옵션을 용의주도하게 매도했다. 유씨의 지난 한달 수익률은 무려 2642%에 이른다.

인천 집까지 찾아가서 만난 유씨는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옵션을 사고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러 증권사의 트레이딩 시스템을 동시에 띄워놓고 갖가지 지표들을 번갈아가면서 살피는 한편, 미국 나스닥의 선물 동향이나 국내외 뉴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증권사 영업직원 출신인 유씨는 한때 하루 거래량이 350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유씨는 자신을 ‘목포 세발낙지’ 장기철 못지않은 큰손이라고 소개했다. 전업 투자자로 돌아선 지금은 개인 돈 2억원 정도를 굴리고 있다. “큰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옵션으로 돈 벌기는 주식보다 훨씬 쉽습니다. 출렁거림을 잘 따라가다가 하루에 100만~200만원만 먹고 빠져나오면 되니까요.”

정씨가 매수만 하는 반면 유씨는 매도도 적절히 병행한다. 종목이 처음 올라올 때는 고평가된 콜과 풋을 동시에 팔아 안정적인 수익을 남기지만, 만기일에 가까워질 때 쯤이면 전략을 바꿔 저평가된 콜과 풋을 공격적으로 사들인다. 유씨의 전략은 나눠서 사고팔고, 철저하게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수익률보다는 승패율입니다. 한번에 크게 먹기보다는 여러번에 나눠 조금씩 먹는 전략이 바람직합니다. 잘못하면 한방에 날아가는 수가 있으니까요.”

정씨와 유씨보다 훨씬 큰 대박을 터뜨린 사람도 있다. 키움닷컴증권의 한 고객은 1천원짜리 62.5 풋옵션 2만396계약과 60.0 풋옵션 3만5937계약 들고 있다가 각각 161배와 76배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5633만원이 59억2264만원으로 105배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키움닷컴증권 관계자는 이 고객이 다른 부분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하루 45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 고객은 10억원 가까운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가 터지지 않았으면 휴짓조각으로 바뀔 종목을 왜 5천만원이 넘도록 들고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유씨의 이야기처럼 버리는 셈치고 5천만원 정도를 집어넣을 정도라면 그동안 그 사람의 손실도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했을까.

버리는 셈치고 묻어둔 돈이 난데없는 돈벼락을 낳았고 이들의 신화는 부풀려진 허상을 낳았다. 호들갑스런 움직임과 달리 지난 한달 개인투자자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개인의 매매 비중은 테러 뒤 60%를 넘어 어느덧 70%에 육박하고 있다. 테러 다음날인 9월12일부터 10월24일까지 개인은 콜옵션 58만4066계약, 풋옵션 36만556계약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기관이 콜옵션 66만872계약, 풋옵션 45만9208계약을 순매도한 것과 정반대다. 기관이 팔려고 내놓은 물량을 모두 개인이 악착같이 사들였다는 이야기다. 덩치는 개인이 크지만 몸놀림은 우둔하기 짝이 없다.

개인투자자들의 옵션투자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옵션은 결국 파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죠. 테러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질 때는 옵션을 쥐고 있는 쪽에서 대박을 터뜨리지만 주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보통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는 쪽이 유리하게 돼 있어요.” 동양증권 선물옵션팀 전균 과장의 이야기다. 만기일이 가까워지면 시간 가치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떨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사는 쪽에서 고스란히 날려버린 원금을 파는 쪽에서 그대로 집어삼키게 된다. 지난 한달, 또 다른 테러가 터질 것으로 내다보고 앞다투어 옵션을 사들였던 개인은 대부분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매도로 일관한 기관들은 어설픈 개인 덕분에 짭짤한 재미를 봤을 것이다.

“기관은 매도해서 신나게 먹고 있는데 개인은 무턱대고 사서 오르기만 기다리는 꼴이죠. 가뜩이나 요즘은 모든 종목이 고평가돼 있습니다. 테러라도 터지기 전에는 도무지 돈 벌 가망성이 없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요.” 한빛증권 김병웅 팀장의 이야기다. 한 팀장은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경마나 복권을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충고했다.

다들 알고 있지만 100배 수익률은 일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정도다. 대박의 꿈을 좇아 앞다투어 뛰어드는 개인투자자들은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덤벼드는 불나방과 같다. 또한번 테러가 터지지 않는 이상 그들이 100배 수익률을 올리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번에 수백억원을 날린 기관투자가들은 새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지나친 욕심과 단 한번의 실수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를.

이정환 기자


지금은 파는 사람이 먹는 게임.

10월25일 현재 KOSPI200 지수는 66.89다. 시세표를 들여다보면 50.00짜리 풋옵션이 1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앞으로 며칠 사이 주가가 엄청나게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당신은 이 풋옵션을 사도 된다. 그러나 KOSPI200이 50.00까지 떨어지려면 종합주가지수는 542.19에서 405.28까지 떨어져야 한다. 테러가 아니라 테러 할아버지가 일어난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그런 주가를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풋옵션을 팔면 된다. 다만 풋옵션을 팔려면 증거금이 필요하다. 만약 증거금률이 10배라면 1천원짜리 한 계약에 1만원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테러만 터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1만원을 넣어두고 한달 뒤에 1천원을 챙길 수 있다. 월 수익률이 10%에 이른다. 대박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는 성에 안 차겠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익률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논리는 맞다. 모험을 즐긴다면 싸구려 옵션을 사고 테러가 터지기를 빌어라. 안정된 수익을 원한다면 적당한 옵션을 팔고 주가가 제자리 걸음을 하기를 빌어라.

자금력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은 보통 후자를 선택한다. 돈 대신 주식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는 기관은 보통 개인투자자들보다 훨씬 낮은 증거금을 내걸고 옵션을 팔 수 있다. 테러만 터지지 않는다면 대체로 파는 사람이 먹는 게임이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옵션의 가치는 떨어진다. 결국 사는 쪽에서 홀라당 까먹은 원금은 파는 쪽의 몫이 된다.

대박을 노리고 옵션을 사들이는 개인투자자와 야금야금 옵션을 팔아 수익을 챙기는 기관투자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옵션이란.

주가지수 옵션은 미래의 KOSPI200 지수를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옵션이라고 하고, 팔 수 있는 권리를 풋옵션이라고 한다.

쉽게 풀이하면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풋옵션을 사면 되고,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콜옵션을 사면 된다. 만기일까지 예상대로 주가가 움직여주면 주가지수와 옵션 행사가격의 차이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주가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콜옵션을 샀는데 생각만큼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권리를 포기하면 된다. 포기한 옵션의 값, 프리미엄은 콜옵션을 판 사람이 갖는다. 거꾸로 주가가 행사가격보다 더 오르면 프리미엄도 껑충 뛰어오르고, 판 사람에게 그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사는 쪽에서는 여차하면 프리미엄만큼 잃으면 되지만, 파는 쪽에서는 얼마로 뛰든지 그 위험을 다 감당해야 한다.

사는 쪽은 권리는 있지만 의무는 없고, 파는 쪽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사는 쪽은 무한대의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거꾸로 파는 쪽은 무한대로 손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대수익률이 높으면 확률이 낮은 법. 시간이 흐를수록 프리미엄은 낮아지고 결국 사는 쪽보다는 파는 쪽이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테러 뒤 9월12일~10월25일 중 기관과 개인의 옵션 순매수 현황.

콜옵션
기관 -674251
개인 626795

풋옵션
기관 -486639
개인 38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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