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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ISDS 소송 패소의 의미.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31, 2022

론스타 10년 재판이 끝났다. 한국 정부가 일부 패소해 2억1650달러를 배상하게 됐다. 당초 46억8000만 달러에서 크게 줄어든 금액이지만 선방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큰 금액이고 어쨌거나 한국 정부에 매각 지연의 책임이 인정됐다는 데서 안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나는 2002년 월간 말 기자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이 사건을 취재해 왔다. 정리 차원에서 이 사건을 거꾸로 복기하면서 요약하면 이렇다.

1. 론스타의 주장.
첫째,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의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지연시켜 가격이 급락했다는 것이고 둘째, 부당하게 세금을 과잉 징수했다는 것이다. 세금 문제는 한국 정부에 명분이 있지만 매각 지연은 한국 정부에 불리했다.

2. 왜 매각이 지연됐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나가려고 했던 2007년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이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승인 심사를 미뤘다. 금감위원장이 “국민 정서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론스타의 엑시트는 그 뒤로 5년이 더 걸렸다. 사실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외환은행 매각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매각 지연의 명분이 이것 밖에 없었고 그나마 배상금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한국 정부는 애초에 2003년 외환은행 인수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씨알도 안 먹혔을 것이다.

3. 애초에 불법 매각 아니었나.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매각했다는 건 론스타가 불법으로 인수했다는 말이다. 한국 정부는 한 번도 론스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불법 매각이라면 그걸 지시하거나 묵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실체가 드러난 바 없다.

4. 처벌 받은 사람이 왜 없나.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냈던 변양호와 외환은행장이었던 이강원 등이 재판을 받았지만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변양호가 외환은행의 부실을 과장한 정황은 있지만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뇌물 수수 혐의도 무죄로 결론났다.

5. 애초에 론스타에 자격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맥락이 있다. 외환은행에 앞서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이 각각 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에 팔려나갔는데 둘 다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이라는 이유로 은행법 시행령 예외 조항을 적용해서 승인을 받았고 칼라일은 JP모건과 컨소시엄인 것처럼 속여 승인을 받았다. 론스타는 이 두 경우와 다른 게 외환은행은 부실 금융기관이 아니었고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이었다. 결국 금감위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이라는 명목으로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다. 외환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부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등”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어떤 이유를 갖다 대더라도 한국에서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은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당시 결정권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뭉갰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불법 매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6. 2003년 매각이 불법인 것과 2006년에 팔고 떠나는 건 별개 아닌가.
애초에 인수가 잘못 됐으면 팔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원금만 돌려 주고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먹튀 논란을 의식해서 시간을 질질 끌었고 약점을 잡혔다. 2003년 매각이 문제였다면 그때 바로 잡았어야 했다.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론스타에도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변양호가 희생양으로 나섰고 구국의 결단이었던 것처럼 포장됐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해준 한국 정부에 잘못이 없다면 론스타에도 잘못을 묻기 어렵다. 그게 이 사건의 본질이다.

7. 그때 론스타에 팔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외환은행이 건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BIS 비율이 조작됐다고 해서 논란이 됐지만 사실 전망이라는 건 어차피 고무줄과 같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봐야 한다. 팩스 한 장에 팔려 나갔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 전후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다만 그 팩스가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이 보냈을 가능성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여러 기록과 증언을 보면 가격 협상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변양호 등이 자격 미달의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 과정에서 김앤장이 기준을 잡고 방향을 제시한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8. ‘부실 기관 정리 등’의 예외 조항을 적용한 건 합법 아닌가.
얄팍한 꼼수지만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 그때는 무릎을 쳤을 것이다. 변양호는 “외환은행의 잠재적 부실이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자본 확충이 시급했다”고 주장해서 빠져 나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건 애초에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라면 그 어떤 예외 조항도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부실 기관 정리 등’은 물론이고 “하늘이 두 쪽 나도(전성인 교수의 표현)” 한국에서 비금융 주력자가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요한 건 이른바 10인 비밀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를 알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9. 10인 비밀 회의가 뭔가.
외환은행 매각에 두 달 앞서 2003년 7월15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회의가 있었다. 변양호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추경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김석동, 은행감독과장 유재훈, 외환은행 행장 이강원과 부행장 이달용, 경영전략부장 전용준, 한국 정부의 매각 자문을 맡았던 모건스탠리 전무 신재하, 청와대 행정관 주형환 등이다. 이 자리에서 변양호가 “‘등’으로 가는 게 현실적”이라며 예외 승인 시나리오를 밀어붙였고 김석동이 “‘등’에 걸고 넘어가려면 삼라만상이 다 ‘등’에 해당된다”면서 반발했지만 결국 변양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적어도 변양호와 추경호는 론스타가 비금융 주력자라면(애초에 제대로 실사도 안 했던 것으로 보지만) 어떤 예외 조항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0. 변양호 윗선이 누구였을까.
전윤철은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고 권오규는 외자 유치 정도로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김진표는 한창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인데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김진표는 “다른 인수 후보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론스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지금도 그때의 상황 인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김진표가 외환은행 매각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던 것 같지는 않다. 이헌재와 한덕수, 진념 등의 여러 명의 역대 총리와 부총리가 등장하고 이들의 회전문 네트워크가 드러났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11.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질질 끌려가는 재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변양호가 정말 우국충정에서 욕을 먹더라도 외환은행 매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른 정부 관료들은 변양호를 믿고 맡겼을 수도 있고 그때만 해도 외자 유치에 목을 맬 때라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모두 순진해서 속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IMF 이후 금융기관 매각 과정에서 금융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절차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비금융 주력자 여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걸 공무원의 소신이라고 보고 적당히 덮고 넘어갔기 때문에 배상금까지 물어주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 공무원이 헌신적으로 일하다 저지른 실수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깨야 한다. 권한을 부여 받은 만큼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변양호 윗선들도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3년의 불법 매각 논란과 별개로 2007년 이후 매각 지연의 책임 소재도 가려야 한다. 이때는 이미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였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억울하면 소송 걸어서 받아가라”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소송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귀책이 명확했고 금액이 관건이지 무조건 먹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12. 그리고 또 이야기해야 할 것들.
외국 자본은 악이고 국내 자본이 선이라는 이분법으로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론스타는 합법적으로 사고 팔고 이익을 챙겨서 나갔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이나 스타시티 조세 포탈 등은 별개로 하고 적어도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과정은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됐다.) 론스타가 악마든 뭐든 작동해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고위 관료들과 대형 로펌의 회전문과 기득권 네트워크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포기하는 게 변양호 개인의 소신과 결단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게 구국의 결단이라면 결과와 상관 없이 그를 지켜줘야 하나. 외국 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자본은 원래 투기적 속성이 있고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안전장치를 두는데 그게 변양호 등이 우회한 은행법 시행령 같은 조항이다. (이런 게 아직까지 금과옥조의 원칙인지 논의해 볼 수 있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걸 인맥과 로비와 외자 유치 등등의 명분으로 포장해서 공적 자금이 들어간 은행을 팔아넘기고 금융의 공공성을 무너뜨렸다는 게 핵심이다. 론스타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느라 정말 멀리 돌아왔다. 손해 배상이 우려했던 것보다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남은 이야기가 있다.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론스타가 얼마나 나쁜 놈들인 것과 별개로 매각 지연은 한국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애초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지만 한국 정부가 스스로 절차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은 이상 론스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은 ‘투기 자본의 천국’ 맺음말 가운데 일부다.

“이제 막 IMF를 졸업했는데 다시 금융 위기를 맞기보다는 론스타가 내민 달콤한 달러를 받아들이고 약간의 불법은 묵인해도 된다는 오케이 사인을 누가 주었는지 늦게라도 밝혀야 한다. 약간의 불법이 아니라 법의 근간을 흔들고 금융 감독 정책과 정부의 시스템을 농락한 심각한 범죄였다. 한국 정부와 법원이 이를 묵인하는 순간 우리는 론스타에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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