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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생명보험에 가입하겠습니까.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4, 2005

슈퍼마켓에서 칫솔 하나를 살 때도 우리는 가격과 품질, 브랜드 등을 꼼꼼히 따져본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와 노후를 의지할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험 설계사의 말만 믿고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린다.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보험회사를 무턱대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가장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공적 보험보다 보험회사 등 사적보험의 수익률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과 보험회사의 사적 연금보험을 간단히 비교해보자.

먼저 국민연금의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25세부터 40년 동안 9%의 보험료를 내면 65세 이후 평균 소득의 60%를 급여로 받게 된다. 연봉 3천만원을 받는 노동자는 달마다 22만8600원을 내는데 회사와 노동자가 절반씩 나눠서 내니까 실제로 내는 돈은 달마다 11만4300원 밖에 안 된다. 그렇게 40년 동안 내면 65세 이후에 달마다 152만4천원씩 받게 된다.

40년 동안 낸 돈은 모두 5486만원인데 만약 이 사람이 평균 수명인 77.4세까지 산다고 치면 죽을 때까지 그 세배가 넘는 2억2677만원을 받게 된다. 보험료 대비 급여의 수익비율을 계산하면 413%에 이른다.

물론 이건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나온 계산이다. 정부의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보험료가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라가고 급여는 50%로 줄어든다. 연봉 3천만원의 경우 보험료는 20만1930원으로 늘어나고 65세 이후에 급여는 127만원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에도 40년 동안 낸 돈은 9693만원인데 죽을 때까지 받는 돈은 평균 1억8898만원이나 된다. 개정 이후에도 수익비율이 195%나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핵심은 급여와 수익비율이 현재가치로 계산됐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65세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동안 물가와 소득 상승률을 감안해 보험료의 현재가치를 산정하는데 이 경우 급여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지금부터 물가가 해마다 5%씩 오르고 이를 모두 반영한다면 이 사람이 65세부터 77.4세까지 받게 되는 급여는 모두 5억7071만원이 된다. 굳이 따지자면 이 경우 실제 수익비율은 589%라고 할 수 있다.

보험회사에서 내놓은 연금보험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교보생명의 21세기슈퍼골드연금보험의 경우를 보자. 25세 김아무개씨의 경우 달마다 12만650원을 20년 동안 내면 60세 이후에 달마다 42만5천원씩을 받게 된다. 이 경우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여러 혜택을 포함해 9792만원을 받게 된다. 원금이 모두 2895만원이니까 수익비율은 338%에 이른다. 국민연금보다 훨씬 더 낮은 수익률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여기에 물가와 소득 상승률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만약 물가가 해마다 5%씩 오른다면 40년 뒤에 42만5천원의 가치는 6만350원 밖에 안 된다. 현재가치로 환산해 계산하면 평균수명까지 살아도 1260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수익비율이 원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3.5%다. 물가가 7%씩 오른다면 이 금액은 597만원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에는 원금의 5분의 1 밖에 안 된다.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와 임금 상승률을 보전해주는 국민연금과 보전해주지 않는 사적 보험의 차이다. 보험의 만기는 보통 10년 이상 길게는 이처럼 30년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수익률은 그때 가서 그때 가치로 판단해야 안다. 대개는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보잘것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보험회사들은 이런 착시현상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계약자들은 어설프게 속아 넘어간다.

또 하나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예정이율과 배당금이다. 교보생명은 이 보험을 팔 때 예정이율을 6.5%로 잡고 배당금을 해마다 1397만원씩 주겠다고 광고했다. 이게 바로 두 번째 착시현상이다. 6.5%에 1397만원이니까 5%만 나와도 1천만원이 넘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운용 수익률이 6.5%에 못 미치면 배당금을 단 한푼도 받을 수 없다.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보험료를 받아서 운용을 해서 이익을 내면 보험금와 환급금을 지급하고 그래도 남으면 배당금을 지급한다. 이 경우 6.5% 이상 운용수익률이 나야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보험에 가입할 때 예정이율을 꼼꼼히 따져보고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험설계사들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가입설계서에도 구석이나 뒷면에 조그맣게 적혀 있을 뿐이다.

보험회사는 예정이율과 배당금을 내세워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실제로 이 배당금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예정이율만큼 운용수익률을 내지 못하면 배당금을 안 주면 그만이다. 계약자들은 배당금을 받지 못해도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보험회사들은 전체 통계만 밝힐 뿐 각각 상품마다 운용수익률이 얼마나 나왔는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계약자들은 그냥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과 생명보험의 차이는 예정사업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받으면 먼저 예정사업비를 뗀다. 사업비는 보험회사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말한다. 사옥 건축비용이나 지점 임대료, 전산비용, 보험설계사들 수당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문제는 보험회사들마다 예정사업비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잡아놓고 쓰고 남으면 고스란히 이익으로 챙긴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더 많은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을 주주가 가져가는 구조다. 구체적으로는 보험료를 올리고 예정사업비를 더 많이 잡아 더 많은 사업비차익을 올리는 게 목표가 될 수 있다. 주주들과 계약자들의 이해가 상충되고 흔히 계약자들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주주인 국민연금은 사업비차익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모든 운용 이익이 그대로 자산에 환원돼 계약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결정적으로 국민연금의 관리비와 보험회사의 사업비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새해 예산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관리비는 4021억원이다. 그 대부분이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인건비로 들어간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지난해 예정사업비를 1조9991억원 거둬서 1조4490억원을 쓰고 5501억원을 남겼다. 사업비차익은 주주들의 몫이지 계약자들의 몫은 아니다.

다른 보험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3개 보험회사가 거둬들인 예정사업비는 모두 7조2496억원, 이 가운데 실제 집행된 사업비는 5조3483억원이고 1조9013억원이 사업비차익으로 남았다. 지난해 보험회사들이 거둬들인 보험료는 모두 47조3242억원인데 이 가운데 15.3%가 예정사업비로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다. 당신이 보험료 1만원을 내면 보험회사가 일단 이 가운데 1530원을 떼고 나머지 8470원으로 운용을 한다고 보면 된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보험회사 전체 이익에서 사업비차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65.2%에서 2003년에는 67.6%로, 2004년에는 68.2%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자산운용실적은 형편없다. 이를 이차익이라고 하는데 2002년 301억원 이익을 낸데 이어 2003년에는 4130억원 손실, 지난해에도 1693억원의 손실을 냈다. 예정사업비를 듬뿍 늘려 잡아서 이익을 챙기는 데만 골몰할 뿐 정작 운용은 뒷전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예정사업비 내역만 공개돼도 계약자들은 상대적으로 예정사업비 비중이 낮고 계약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큰 보험을 골라서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상품을 선택할 아무런 기준도 없었다.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의 담합인 셈이지만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마냥 손을 놓고 있다.

보험회사들의 폭리는 또한 터무니없이 낮은 해약환급금에 숨어 있다. 삼성생명의 무배당 종신보험의 경우 30세 남자가 한달에 17만3천원씩 20년 동안 내면 평생 언제든 죽을 때 1억원을 받을 수 있다. 보험에 들고 한달 뒤에 죽어도 1억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꽤나 매력적인 상품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교묘한 속임수가 숨어있다.

이 사람이 앞으로 20년 동안 달마다 17만3천원씩 낸다면 원금만 무려 4152만원에 이른다. 보험회사가 제시하는 4.8%의 이자를 감안하면 원금과 이자는 모두 6153만원이 된다. 50세에 죽어도 4천만원 가까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62세가 되면 원금과 이자가 1억원을 넘어선다. 1억원을 내고 죽을 때 1억원을 돌려받는다? 이 남자가 62세 이상을 산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 남자 입장에서 이 보험은 앞으로 32년 동안만 이익을 내도록 돼 있다. 생명보험협회의 4차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30세 남자는 앞으로 평균 44.4세를 더 살 수 있다. 평균만큼 74세까지 산다면 무려 5천만원 이상 손해를 보게 된다. 만약 이 돈을 이자가 센 상호저축은행에 집어넣는다면 이자율을 7%만 잡아도 20년 뒤에 70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복리예금에 넣어둔다면 이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앞으로 20년 동안 이 남자가 죽을 확률은 4.4% 밖에 안 된다. 흔히 계약자들은 죽을 때 받게 될 1억원의 보험금을 생각하느라 정작 해약환급금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1년 이상 계약 유지율은 73.6%, 2년 이상 계약 유지율은 62.6%에 그쳤다. 10건의 보험 가운데 1년 안에 3건, 2년 안에 4건이 해약된다는 이야기다.

종신보험의 함정은 죽을 때까지 해약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약환급금의 비율이 매우 낮게 잡혀 있기 때문이다. 1년 안에 해약을 하면 단 한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2년 동안 415만원을 내고도 해약할 때는 67만원 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원금이라도 건지려면 최소 14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물론 가능한 빨리 최장 32년 안에 죽는 것도 원금 대비 이익을 내는 방법이다.

보험회사들은 적은 보험료를 내고 높은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해약환급금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다. 해약환급금 비율이 형편없이 낮은 것은 보험회사들이 신계약비를 계약 초기에 몰아서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가 들어오는 대로 신계약비를 충당해 나간다는 것인데 이를 신계약비 이연이라고 한다.

신계약비란 보험 설계사의 수당과 수수료, 서류발행 비용 등 보험 계약을 처음 체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2003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비 가운데 71.9%가 신계약비다. 전체 보험료의 12.3% 수준이다. 이 엄청난 비용을 처음에 몰아서 받기 때문에 해약환급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1년에서 길게는 2년 안에 해약할 경우 정작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한 수당을 상당부분 회수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수당을 계약자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신계약비 이연을 핑계로 계약자들에게 해약환급금을 적게 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보험설계사들의 수당까지 뺏고 있는 셈이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계약자들이 1년 안에 해약을 해도 고스란히 그 보험료를 이익으로 챙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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