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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외환은행 문서검증 보고서.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7, 2005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관련된 문서검증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10월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 외환은행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문서검증을 벌인 바 있다.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최근 작성돼 재경위 전문위원들 검토를 끝내고 재경위 의원들의 승인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과 금감위는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거짓말을 했다. 외환은행에서 받았다고 주장한 자료는 외환은행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출처는 짐작은 가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배임 혐의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금감원과 금감위는 물론이고 재경부를 비롯한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대거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외환은행 불법매각은 자칫 노무현 정부 최대의 비리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번 문서검증의 핵심은 외환은행 매각 무렵 금감원이 내놓은 비관적 시나리오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금감위는 이 시나리오를 토대로 외환은행을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보고 자격이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을 승인했다.

금감원은 2003년 5월 27일까지만 해도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8.44%로 전망한다. 이 전망은 6월 16일이면 9.14%로 올라간다. 그런데 7월 25일에는 6.16%로 확 줄어든다. 금감원은 그 근거로 외환은행에서 받았다는 팩스 5장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팩스가 외환은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환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을 작성했던 실무책임자가 올해 8월 사망해 관련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강원 전 행장은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관련 문서도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2003년 7월21일 오전 9시55분에 금융감독원으로 송신된 이 팩스는 표지도 없고 송수신인 이름도 없다. 이 팩스가 온 다음 날 김진표 당시 부총리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무렵 외환은행 이사록에 따르면 그해 4월 7일부터 5월 7일까지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이 동시에 자산실사를 했다. 삼일은 외환은행, 삼정은 론스타를 대리해서 각각 실사를 한 것이다. 만약 이 5장의 팩스가 외환은행에서 나온 자료라면 삼일의 자료와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낙관적 시나리오의 경우는 삼일의 자료가 맞는데 비관적 시나리오는 자산손실 규모가 무려 3400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이 팩스는 삼일에서 나온 자료도 아니고 외환은행에서 나온 자료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실사를 한 곳이 삼일과 삼정, 두군데 밖에 없는데 삼일은 아니다. 삼정과 론스타는 아무런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 팩스는 결국 삼정, 즉 론스타에서 나온 자료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게 이 보고서가 내린 결론이다.

이 결론이 맞다면 결국 금감원과 금감위는 론스타의 전망만 믿고 외환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판단해 매각을 승인했다. 관리감독의 역할을 완벽하게 방기한 것이다. 그것도 덜렁 팩스 5장에 이 엄청난 사건을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다.

외환은행의 이사회 속기록을 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이 눈에 띈다. 이달용 당시 부행장의 발언이다. “론스타와 외환은행 모두 회계법인을 통해 자산 실사를 하고 있는데 론스타 쪽에서 1조6천억원의 자산손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1조6천억원은 팩스에 나온 자산손실 규모와 정확히 일치한다.

문서검증반은 정황을 상당부분 밝혀내기는 했지만 이 팩스가 삼정과 론스타에서 나온 것이라는 완벽한 물증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한나라당이 검찰 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필요하다면 특검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기세다.

최근 금감위 박대동 감독정책1국장이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에서 “외환은행 매각은 은행 스스로 내린 결정이고 정부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친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해 고민해볼 수 있다. 하필이면 지금 박 국장은 정부의 결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문서검증 보고서의 공개를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 말이다.

안타깝게도 박 국장의 변명은 논점을 크게 벗어났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게 불법 매각을 합리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례적으로 그 글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댓글이 달려 눈길을 끌었다. “잘 보았습니다.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과연 이 사건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정말 의혹이 해소됐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편 이번 문서검증에서는 몇가지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먼저 외환은행 인수대금은 미국의 씨티뱅크가 HSBC와 도이체방크 등 4개 외국계 은행을 통해 분산 입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왜 외환은행을 통해 환전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씨티뱅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강원 당시 행장 등 경영진의 뇌물 수수 의혹도 제기됐다. 이 전 행장은 퇴임 이후 경영고문으로 남았는데 계약서를 보면 3년 만기 이전에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한다는 규정이 들어있다. 실제로 이 전 행장은 2004년 5월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으로 옮겨가면서 29개월 분의 잔여 연봉 7억1050만원을 3차례에 걸쳐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은 이 전 행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행장에서 물러나기 전에 외자유치에 대한 성과급으로 7억200만원을 받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 전 행장이 외환은행에서 받은 돈은 모두 14억원 이상이다. 이밖에 이달용 당시 부행장 역시 잔여연봉이라는 명목으로 8억7500만원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부행장은 또 퇴임 이후에 36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현재 평가차익이 무려 21억원에 이른다. 이 전 부행장 역시 배임 혐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감위가 고의로 외환은행 매각 관련 문서를 파기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최경환 의원이 금감위에서 제출받은 그 무렵 문서접수대장에 따르면 9월 26일 “불필요 비밀문건 일제 정리 협조”라는 항목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금감위가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 승인하던 날이다. 비밀문건이면서 불필요한 문건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외환은행 불법매각 사건의 윤곽은 이제 거의 드러났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란다면 어설픈 댓글놀이가 아니라 결단을 내려서 책임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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