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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못 잡으면 다음 대권도 없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0, 2005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금 개혁안을 들고 나와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3년 반을 끌었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연말 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조바심을 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과감하고 화끈한 대안을 내놓았다. 분명한 것은 어느 정당이든 국민연금을 잡지 못하면 다음 대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그 치열한 정책대결의 현장을 소개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앙적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했다. 뾰족한 해법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국가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만큼 국민의 세금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다.”

김 장관은 결국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더 내고 덜 받는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수준에서 그쳤을 뿐이다. 지금 제도에서는 2047년이면 기금이 모두 고갈된다. 정부는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데 그 작업을 이미 2003년에 했다.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료를 9%에서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자는 것이다.

유망한 대권 주자로 손꼽혔던 김 장관은 대권의 첫 번째 관문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셈이 됐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대안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다. 김 장관은 “지지자들에게 실망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정치인 김근태의 미래는 끝났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연금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김 장관뿐만 아니다. 정치권은 모두 이 국민연금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는 해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납득 가능한 전망을 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느냐가 관건인데 정부와 김 장관은 일단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내고 덜 받자는 정부의 대안은 어딘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여전히 기금고갈의 위험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보험료를 더 늘릴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2047년, 더 나아가 2070년을 내다볼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당장 내년의 지방선거와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벌써부터 보험료 인상으로 여론의 반발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55%, 조금 더 양보하면 5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좀 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는 데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축소하고 기초연금을 도입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국민연금과 별개로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평균 소득의 20%를 정부가 무상 지급한다는 것이다. 대신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9%에서 7%로 줄이고 소득대체율도 60%에서 20%로 줄이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을 바닥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국민연금을 깔아 2원적인 연금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대안은 지금까지 제기된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준다. 한나라당은 당장 내년부터 달마다 13만5천원씩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나눠주자고 제안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단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2028년이면 평균 소득의 20%인 31만원 수준까지 늘어나게 된다. 2인 가구 최저 생계비 67만원의 절반 수준인데 노인 부부의 경우 각각 기초연금을 받으면 대략 이 정도를 맞출 수 있게 된다.

기초연금은 무엇보다도 사각지대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1718만명 가운데 484만명이 소득이 파악되지 않거나 적어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의 비율이 88%가 넘는다. 이 비율은 2030년이 돼도 여전히 54%나 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내놓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의 기금고갈 문제도 말끔히 해결된다. 보험료는 9%에서 7%로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소득대체율이 60%에서 20%로 3분의 1 규모가 된다. 수입은 거의 그대로인데 지출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재정이 탄탄해진다. 또한 적립금 규모가 줄어들면서 몸집도 한결 가벼워지고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게 된다. ‘연못 속의 고래’라고 불리던 과잉적립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역시 재원인데 한나라당 전망에 따르면 내년에 당장 9조원이 들어가는 것을 비롯해 2010년이면 17조원, 2030년이면 170조원이 들어가게 된다. 기초연금의 재원은 2050년이면 무려 61조까지 늘어난다.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늘리는 등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정도다. 최근 감세 논란을 주도해 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사뭇 이례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을 들고 나오면서 논의의 핵심은 기초연금의 타당성 여부에 맞춰졌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모든 노인들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부자 노인들에게 돈 십만원 쥐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행 경로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걸로 충분하다. 기초연금제의 취지는 좋지만 국민연금 못지않게 재원이 많이 들어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내년 기준으로 기초연금의 예산은 9조원.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하분 4조원과 기초연금 도입으로 줄어들 공적부조 예산절감 1~2조를 감안하면 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할 금액은 3~4조원 밖에 안 된다. 윤 의원은 “2050년이면 기초연금 예산이 61조까지 늘어나겠지만 그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7%라는 걸 감안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로 기초연금의 재원을 마련할 경우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이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한다. 윤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재원 조달은 역진적이지만 그 혜택이 누진적이기 때문에 누진 효과가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모든 노인들에게 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원 조달 방법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대안은 오히려 열린우리당보다 더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 집권당의 한계 때문인지 열린우리당은 기금고갈과 재정안정 문제에만 골몰할 뿐 국민연금의 틀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관심도 한나라당보다 덜한 편이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과 관련, “당장 집에 물이 새는데 그걸 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집을 새로 짓자고 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도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나라당과는 조금 입장이 다르다. 먼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한나라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보험료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고집한다. 보험료율을 유지하되 소득대체율을 지속가능한 수준까지 낮추고 그 부족한 부분만큼 기초연금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연금이 45%, 기초연금이 15%를 각각 보장하는 방식이다.

민주노동당은 소득대체율이 60%는 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장기적으로 보험료율을 20% 이상까지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소득 상위 30%의 경우 기초연금을 다시 환수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똑같이 기초연금을 지급하지만 부자 노인들은 나중에 이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한나라당의 국민연금은 강제 조항이 빠져 있어 가입자들의 대거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적 가입을 허용하면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적연금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 의원은 “기금고갈과 사각지대를 외면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고 기초연금을 내세워 국민연금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몹시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모처럼 국회에서 특위까지 구성해 머리를 맞댔지만 의견이 좁혀들 수가 없다. 특위는 11월 29일 첫 회의에서 대국민선언문을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의원들의 갈등으로 무산됐다. 이날 회의에서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여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며 선언문 채택을 거부했고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공감하는 의원만 일어나서 선언문을 낭독하자”고 했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기도 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또는 소득비례연금)의 2중 연금구조는 대체로 평가가 좋다. 현재로서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꺼리고 있어서 도입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구위원은 “워낙 입장 차이가 커서 정치권의 원만한 합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정안 도입 시기를 대선 이후인 2008년으로 미룰 계획이고 다른 야당도 급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결국 시간만 끌다가 다음 대선까지 승부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내년부터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고 노무현 정부의 집권 말기 레임덕 현상이 시작되면 국민연금 개혁의 논의는 다음 정부로 넘어가거나 한동안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늦추면 늦출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이 더 늘어나고 개혁도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작성한 유권자의 연령별 추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 50세 이상 비율은 올해 31.9%에서 2012년에는 40%를 넘어서게 된다. 대선과 총선을 줄줄이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뜻을 거스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 비율은 2022년이면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게다가 제도 도입 20년째를 맞는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연금을 수령하는 세대가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주장은 일단 소득대체율만 60%에서 50%로 낮춘 뒤 보험료율은 2008년 재정 재계산 결과를 보고 다시 논의하자는 것인데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때 가서는 지금보다 더 가입자(유권자)들 눈치를 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석현 의원은 “결과는 가봐야 안다”면서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한편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문 연구위원은 “2010년 이후 5년마다 1.38%씩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2060년이 되면 24.2% 수준에서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균형을 찾는다는 건 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적립금 범위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선순환 구조가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경우 정부가 내놓은 15.9%보다는 높지만 2070년 이후까지 지속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대안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만약 5년마다 2%씩 보험료를 인상하게 되면 2035년 21% 수준에서 균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훨씬 더 빨리, 더 낮은 보험료 수준에서 균형을 찾게 되고 그만큼 다음 세대들의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만큼 지금 세대들이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나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구위원은 “국민들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수준에서도 부담을 느껴서 가입을 안 하거나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보험료가 더 올라가면 사각지대가 더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재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제도 자체가 뿌리부터 뒤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년 간 실험을 해왔지만 지금 제도는 실질적으로 작동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문 연구위원의 시나리오와 관련, “기금고갈이나 재정안정 문제만 해결하는 이른바 모수개혁으로는 본질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사각지대 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개혁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참고 : 국민연금을 둘러싼 치명적인 오해 5가지.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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