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아내, 만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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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에서 일주일에 한번 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온갖 과목을 다 해봤지만 국어가 가장 어렵다. 한때는 과목마다 교과서를 직접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국정 교과서를 쓴다.(문제집을 가져다 요점 정리만 보고 넘어가는 강학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엉터리 지문이 가끔 눈에 띈다. 오늘 읽은 ‘현명한 아내, 만카’ 같은 글이 그렇다.

아래는 오늘 수업 일지 가운데 발췌. 오늘 수업의 주제는 ‘이야기의 구조’였다.

참고 : 성광야학. (성광야학 홈페이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설, ‘현명한 아내, 만카’는 문제가 많은 글이다. 이런 글이 어떻게 교과서에 실렸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먼저 간단히 이야기의 구조를 보면, 여기에는 다섯가지 수수께끼가 나온다.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은 시장이고 푸는 사람은 만카다. 만카는 수수께끼를 풀어 시장의 아내가 되고 또 나중에는 그 수수께끼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만카는 현명한 여성이다. 시장은 만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카, 내 말 잘 들어요. 당신이 현명하다고 해서 내 일에 참견하면 안 되오. 난 당신이 내가 심리하는 사건에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소. 만일, 당신이 나한테 판결해 달라고 오는 사람에게 군말을 하는 날엔, 당신은 내 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가게 될 줄 아시오.”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어진다.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집안 살림하느라 바빴던 만카는 시장이 맡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그러던 만카는 어느날 남편의 어리석은 판결때문에 억울하게 된 한 농부를 도와준다. 만카가 그를 도와준 걸 알게 된 시장은 만카를 내쫓는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 하나만 가져가라고 하자 만카는 잠든 시장을 밤에 친정으로 데려간다. 다음날 아침 잠이 깬 시장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만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 소설은 철저하게 가부장주의의 시선에서 쓰여진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만카의 현명함이 매력이었지만 결혼한 순간부터 만카는 현명함을 숨기도록 요구받는다. 그런 요구를 어겼을 때 만카는 집에서 쫓겨난다. 만카는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다. 이 소설이 해피 엔딩이 되는 건 만카가 현명했기 때문이다. 현명하지 않은 여자라면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만카는 현명할뿐만 아니라 순종적이기도 하다. 심지어 쫓겨날 때도 만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아요, 여보.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죠. 하지만, 저녁은 먹은 후에 쫓아내세요. 그 동안 행복하게 지냈으니 마지막으로 당신과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어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이런 소설을 당신은 과연 당신 딸에게 읽히고 싶은가. 나는 아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이 이런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해 봐라. 정말 끔찍한 일이다.

다섯가지 수수께끼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많은 학강들이 다섯번째 수수께끼를 꼽았다. 학강들은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사랑의 힘으로 만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돌아가서 만카는 과연 행복할까.

이 땅의 수많은 만카들은 오늘도 침묵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소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교과서에 실리고 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바리데기 공주’도 문제가 많다. 잠깐 인용한다.

갑자기 중전이 계신 후원에서 무슨 울음소리인가? 대왕이 놀라 뛰쳐나가려 하니 상궁이 벌벌 떨며 아뢰는구나.
“아뢰나이다, 아뢰나이다, 아뢰……”
“어허, 조급하다. 어서 일러라. 세자냐! 응? 세자겠지? 그런데 왜 우느냐? 죽었더라는 말이냐?”
“일곱째, 일곱째, 아이구 말을 어찌하오리까?”
“이미 다 하지 아니했느냐? 그래 칠 공주라는 말이냐? 허허허, 허허허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더란 말이냐?”
아, 이를 어찌하라는 말인가? 이 사직을 어찌하라는 말인가? 중전이 평생 자식만 생산하다가 말라는 말인가? 왕이라도 이리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인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았기에 나라를 끊으며 신하를 맡기지 못한다는 말인가? 야속하구나, 원망스럽구나, 아니 답답하구나. 에잇, 이제 난 어쩌란 말인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전은 울고 임금은 탄식한다. 결국 이들은 갓 태어난 딸을 강물에 내다 버린다. 그 딸은 살아남아서 역경을 딛고 세상을 구원하지만 세상의 질서를 조금도 건드리지는 않는다. 그게 바리데기 공주가 홍길동과 다른 점이다. 바리데기 공주는 현실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현명한 아내, 만카처럼 다만 묵묵히 견뎌낼 뿐이다. 홍길동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상을 바꾸지만 바리데기 공주는 결국 다시 여성의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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