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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전기, 절반 값에 팔렸다가 6개월만에 청산?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3, 2005

오리온전기의 사례는 이제 제조업 기업들도 투기자본의 공격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오리온전기는 외국 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간 뒤 반년 만에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1500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지만 이 외국 자본은 막대한 청산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그 내막을 파헤친다.


10월 31일 저녁, 오리온전기 직원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날 오후 임시 주주총회에서 법인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는 이야기다. 오리온전기의 대주주는 홍콩에 본사를 둔 오션링크.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이 절대주주가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이 회사 직원 1300명은 모두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오리온전기의 지난 50년 파란만장했던 역사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사양산업의 도산과 폐업은 딱히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오리온전기의 경우는 다르다. 안영회계법인 실사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으로 오리온전기의 자산가치는 1264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 4월 매틀린패터슨은 이 회사를 그 절반도 안 되는 600억원에 사들였다. 지금 이 회사가 청산되면 매틀린패터슨은 6개월 만에 600억원 이상을 챙기게 된다. 무려 1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래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는 지금부터 매틀린패터슨이 오리온전기를 인수해 사업부문을 분할하고 청산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보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을 파헤칠 것이다. 미리 경고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골치가 아플만큼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게 바로 투기자본이 제조업을 약탈하고 이익을 만드는 방식이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대우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는 1999년 8월 대우사태 여파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2003년 5월에 최종부도를 냈다. 그 4년 남짓한 동안 이 회사에 들어간 공적자금만 무려 3967억원에 이른다. 다행히 기업개선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오리온전기는 이른바 클린컴퍼니로 거듭났다. 채권단은 지난해 7월 이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고 그렇게 맞아들인 새 주인이 바로 매틀린패터슨이었다.

매틀린패터슨은 처음부터 오리온전기의 OLED(유기 발광다이오드)와 PDP(플라즈마디스 플레이 패널) 사업부문에만 관심을 가졌다. 오리온전기의 핵심 사업부문인 브라운관(CRT)은 이미 사업성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매틀린패터슨은 1차 입찰에서 오리온전기의 전체 자산가치를 1028억원으로 평가하고 이 가운데 CRT 사업부문 228억원을 뺀 나머지를 8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일괄매각을 고집했고 결국 1차 입찰은 무산됐다. 그 뒤 2차 입찰에서는 매틀린패터슨의 태도가 달라진다. CRT 사업부문까지 같이 인수할 테니 가격을 500억원으로 깎아달라고 한 것이다. 채권단은 당연히 펄쩍 뛰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서고 채권단 대표인 서울보증보험이 한발 물러서면서 결국 매각이 성사됐다. 600억원에 인수하되 그 가운데 100억원은 다시 돌려받아 운영자금으로 쓴다는 조건이었다.

매각 과정을 돌아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1차 입찰에서는 CRT 사업부문을 빼고 800억원이던 것이 2차 입찰에서는 CRT를 포함하고도 600억원 밖에 안 된다. 게다가 100억원을 운영자금으로 돌려받았으니 실제로 투자한 돈은 500억원밖에 안 됐다는 이야기다. 자산가치가 228억원이라던 CRT 사업부문을 함께 인수하는 조건으로 오히려 인수 비용이 300억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이밖에도 매틀린패터슨은 모든 사업부문을 일괄 인수하되 OLED 사업부문을 추후 분사하는 것을 인수 조건으로 내걸었다. (PDP 사업부문은 이미 물적분할 형태로 분사돼 있는 상태였다.) 인수하지 않겠다던 CRT 사업부문만 오리온전기에 그대로 남겨놓고 원래 욕심을 냈던 OLED와 PDP 사업부문은 새로운 회사로 떼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채권단이나 정부는 이 조건이 갖는 의미나 그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CRT 사업부문을 청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집어넣는데 그쳤다. 노조는 필사적으로 고용 안정에 매달렸다. 결국 매틀린패터슨은 3년 동안 인력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분할 또는 합병, 매각, 청산 등 모든 종류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합의서를 썼다. 부득이하게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는 노조와 협의하겠다는 조항도 합의서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모든 조치들도 매틀린패터슨을 막지 못했다.

매틀린패터슨은 4월 27일 오리온전기를 인수하고 그 일주일 뒤인 5월 2일 오리온전기의 주식 100%를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넘긴다. 이 회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는 이틀 뒤인 5월 4일 OLED 사업부문을 분사해 오리온OLED를 설립한다. 결국 CRT 사업부문만 오리온전기에 남고 나머지 OLED와 PDP 사업부문은 모두 다른 회사로 떨어져 나간 셈이다.

진짜 복잡해지는 건 지금부터다.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는 5월 13일 오리온전기 주식을 50%씩 나눠 트랜스캐피털그룹과 파트너얼라이어드그룹에 넘긴다. 구체적인 매각가격은 역시 알려진 바 없다. 이 두 회사는 모두 조세회피지역인 버진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고 100% 주주는 홍콩에 본사를 둔 오션링크라는 회사다. 결국 오리온전기의 지분 100%가 오션링크에 넘어간 셈이다. (그림 참조)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OLED와 PDP 사업부문은 따로 떨어져 나가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에게 넘어가고 CRT 사업부문만 남게 된 오리온전기는 오션링크에 넘어갔다.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가 매틀린패터슨이니까 결국 OLED와 PDP는 남겨두고 CRT만 다른 회사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알짜배기 사업부문과 자산은 매틀린패터슨의 몫으로 남고 CRT 사업부문과 부채는 정체불명의 오션링크에 넘어간 것이다.

이 복잡한 지분구조의 의미는 10월 31일 오션링크가 오리온전기를 청산하기로 결정하면서 명확히 드러났다. 매틀린패터슨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노조와 합의서까지 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매틀린패터슨과 노조 사이의 문제다. 오션링크는 자기들은 모르는 내용이라고 발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매틀린패터슨은 오션링크에 지분을 넘겼을 뿐 자기들이 회사를 청산한 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가 그동안의 사건 경과다. 결국 매틀린패터슨은 자산규모가 1264억원에 이르는 회사를 단돈 500억원에 사들여서 청산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문제는 매틀린패터슨이 그 과정에서 CRT 사업부문과 이 사업부문의 고용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헐값에 회사를 넘겨받았다는 데 있다. 채권단은 지나치게 순진했거나 어리석었다. 특히 앞장서서 헐값 매각을 독려했던 정부는 그 배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매틀린패터슨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매틀린패터슨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KSC파트너스의 박준범 전무는 “공동 인수의 파트너로서 손을 잡았을 뿐 매틀린패터슨과 오션링크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KSC파트너스가 오션링크의 법률자문도 동시에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전무는 “오션링크는 인수 이후 경영상황이 급속히 악화돼 청산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션링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박 전무는 오션링크의 지분이나 소유구조에 대해서는 본인도 모르고 설령 알더라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션링크의 자본금은 14만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치면 2천만원이 채 안 된다. 윤세화라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대표이사로 있다는 것 정도가 추가로 확인됐다. 박 전무가 윤세화씨의 사위라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박 상무는 이에 대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꺼렸다.

이밖에도 KSC파트너스의 방상길 대표는 매틀린패터슨 홍콩지사에 근무하는 김영이라는 사람과 사촌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 대표는 오션링크가 오리온전기의 경영진으로 선임한 김주만 사장이나 김익수 상무 등과 고려합섬에서 함께 근무한 사이다. 전혀 무관한 관계라고 밝힌 것과 달리 매틀린패터슨과 KSC파트너스, 오션링크를 잇는 인맥 관계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김익수 상무는 이 모든 의혹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달마다 비용이 150억씩 들어가는데 매출은 100억도 안 나왔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직원들 퇴직금조차 못주고 파산하게 될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오리온전기를 처음 인수할 때는 이런 상황을 예측 못했느냐고 묻자 그는 “서너달 사이에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접는 게 최선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배태수 노조 지회장은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설비투자와 공정 개선이 절대적인데 오션링크는 투자는커녕 자산을 빼돌리는데 급급했다”고 반박했다. “매틀린패터슨은 애초부터 오리온전기의 경영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보유자산을 싸게 사들였다가 제값 받고 처분해서 이익을 챙길 생각이었던 거죠. 우리 정부가 투기자본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겁니다.”

노조는 “회사를 정상적으로 경영할 생각이었으면 장기적으로 보고 공장 부지를 담보로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를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 상무는 “대출을 받으려고 알아봤지만 어느 은행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김 상무는 또 “노조에 임금 삭감도 요청해 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회사를 살릴 방안을 안팎으로 모두 강구해봤지만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회사 생산직 직원들은 지난 8년 동안 임금을 동결해 왔고 최근 공장 가동일수가 줄어들면서 월 평균 임금이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상황이다. 노조는 임금 삭감이 대안이 아니라 가동일수를 늘려서 생산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 지회장은 “애초에 경영진이 청산을 목적으로 경영개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오션링크가 임금 삭감 운운하는 건 청산의 책임을 노조에게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쪽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리인터내셔널의 허경무 변호사는 노사 합의서에 근거해 매틀린패터슨과 오션링크 등 관련 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3년 동안 고용보장을 약속했다가 깨뜨렸으니 최소한 3년 동안의 임금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변호사는 “더 강력하게 대응하려면 채권단이나 정부에서 직접 매틀린패터슨 등을 사기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변호사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매틀린패터슨과 오션링크가 동일 주체라는 사실을 밝혀내거나 오리온전기를 인수한 뒤 청산한다는 계획을 공모했다는 근거를 잡아내야 한다. 또한 국무조정실이 이 사건에 왜 그렇게 깊숙하게 개입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박상은 대사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엄청난 손실을 감당하면서 매각을 묵인한 서울보증보험도 공식적인 답변을 꺼렸다.

한편 오리온전기가 청산에 들어가면서 법원과 정부도 난처하게 됐다. 법원은 오션링크가 오리온전기를 인수한 직후인 6월 14일 이 회사가 정상화 기로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회사정리절차를 종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어가며 2년여의 법정관리 끝에 살려놓은 회사가 넉달만에 청산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법원의 판단착오였을까 아니면 오션링크의 경영 실수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의도적인 청산이었을까.

정부도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 특히 국무조정실은 1500명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명분으로 채권단을 설득해 오리온전기의 매각을 성사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박상은 경제통상대사는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매각 이후 오션링크로부터 감사패까지 받기도 했다. 박 대사를 비롯해 국무조정실은 엄청난 공적자금 손실과 국부 유출을 초래한 이 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현재로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사기혐의로 고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상태다.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친 이상 청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다. 노동자들의 한숨은 깊고도 깊다. 도대체 누가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일까.

구미=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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