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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연대임금제에 대한 보충 설명.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 2005

아래 그래프를 보자. 왼쪽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 앵글로색슨 모델, 오른쪽은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안 모델의 고용과 임금 분포를 나타낸 그래프다. 우리나라는 물론 왼쪽에 가깝다.

이해하기 쉽도록 일반화해서 설명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값싼 일자리가 있다. 월 100만원은 물론이고 50만원만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에 5~6만원씩 받고 일한다. 새벽에 인력시장에 가면 그런 일자리조차 얻기가 쉽지 않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에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두고 있지만 그 기준이 너무 낮아서 현실성이 없거나 대개는 유명무실하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값싼 일자리가 거의 없다. 고용보험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차라리 놀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직종이나 근무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를테면 월 200만원 밑으로는 사람을 쓸 수가 없다.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직업훈련을 받도록 해서 더 나은 일자리로 옮겨가도록 돕는다. 정부의 실업급여가 임금의 하한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만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스웨덴 모델의 원칙은 그걸 감당할 수 없으면 그런 기업은 문을 닫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쓰려면 제대로 임금을 주고 써야 하고 일단 사람을 쓰면 최대한 많은 일을 시켜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 노동 강도가 높고 그만큼 1인당 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커피 심부름만 하는 사람을 따로 쓸 수 없다. 누구나 커피 심부름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도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게 바로 연대임금제의 효과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기로 하면 상대적으로 대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어 이익을 본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버틸 수 없어서 아예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이게 바로 스웨덴 사회가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노동자들 임금을 깎아서 살아남으려면 차라리 문을 닫으라는 것이다. 그 기업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실업급여를 주거나 모두 정부가 책임진다.

언뜻 대기업을 키우고 중소기업을 죽이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스웨덴 모델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평등의 모순 구조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건 시장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는 불평등하지만 그런 불평등이 사회적으로는 평등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평등은 시장을 통제할 때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다행히 인구 900만명의 스웨덴은 10여개의 우량 대기업이 나라 전체를 먹여살리는 구조가 가능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이는 걸 감수했고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최악의 경우 실업을 감수했다. 이런 사회적 합의와 연대는 정부가 국민들의 고용을 보장했고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쩌면 이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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