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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취재 후기.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30, 2005

모두가 비슷비슷한 월급을 받는 나라.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크게 가난한 사람도 없고 크게 부유한 사람도 없는 나라.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병원비도 공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학비도 모두 공짜. 늙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정부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주는 나라. 직장을 잃어도 정부가 생계를 책임져 주는 나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고 직업훈련까지 시켜주는 나라.

좀처럼 믿기지 않지만 그런 나라가 이 세상에 있다.

출장을 떠나기 전, 그리고 다녀온 뒤 아직까지도 가장 큰 고민은 스웨덴 모델이 아직도 유효한가 하는 것이다. 이건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 다르다. 유효하다는 사람도 있고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스웨덴 모델을 배울 것이냐 말 것이냐, 배운다면 어떻게 배울 것이냐도 역시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금융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탐욕이 과연 이 나라를 빗겨 갈 것인가. 스웨덴 모델은 과연 그만큼 탄탄한가.

나는 혼란에 빠졌다.

스웨덴 모델은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는 복지 모델이다. 아무리 부자 나라라도 마구 퍼주는 복지는 할 수 없다. 많이 받으려면 국민들은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핵심은 낸만큼 돌려 받는게 아니라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낼 수 있는 사람은 적게 내서 그걸 모아서 다 같이 나누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가능하려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을 하고 열심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일자리가 줄어들고 세금이 줄어든다면 스웨덴 모델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적자를 감당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스웨덴 정부는 일찌감치 국민들의 일자리를 늘리는데 앞장서 왔다. 여성들을 끌어내기 위해 동네마다 공공탁아소와 노인요양소를 만들어 여성들의 일손을 덜어줬다. 많은 여성들이 그곳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여성 취업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물론 공공부문 일자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스웨덴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스웨덴에서도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많은 공장들이 더 싼 임금을 쫓아 해외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기업은 여전히 돈을 벌지만 국민들은 가난해지는,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스웨덴 모델은 지금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스웨덴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들과 노동운동 관계자들도 모두 그런 우려를 드러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를 맡았던 얀 엘딩은 그런 질문을 곤혹스러워 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물론 복지 혜택을 일부 줄이는 것일뿐 스웨덴 모델은 여전히 그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무너진 제조업의 활로를 서비스업과 컨설팅, 연구개발 투자에서 찾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못지 않게 더 질 높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더 많은 세금을 내고. 그래야 이 고도로 발달한 복지 천국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연대였다. 누군가는 자기 몫을 쪼개서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그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거라는 확신이 공유돼야 한다. 스웨덴은 지난 70년 동안 그런 확신을 증명해왔고 그래서 그 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직도 강고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그리고 사회적 합의와 연대가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은 스웨덴 모델이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결론은 잠정적이고 내게 확신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관건은 결국 두가지다. 스웨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계속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것과 그때까지 스웨덴 국민들이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깨뜨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느냐는 것.

참고 : 스웨덴, 사회적 연대 무너진 복지천국의 고민. (이정환닷컴)
참고 : “젊어서 많이 내고 늙어서 돌려받는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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