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대안 모델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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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900만명도 안 되는 이 작은 나라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나라가 경제적 효율과 사회적 형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많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경제고문을 맡고 있는 앙드레 사피르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교수는 최근 ‘세계화와 유럽의 사회모델 개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4가지 유형의 유럽 사회모델을 비교 분석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 네델란드 등 이른바 노르딕 모델이다. 이들 나라들은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과 보편적인 복지 시스템을 제공한다. 정부가 노동시장에 폭넓게 개입하고 강력한 노조가 임금구조를 통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영국과 아일랜드 등 앵글로색슨 모델. 상대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잘 돼 있지만 약한 노조와 높은 임금 불평등과 저임금이 특징이다. 세 번째 독일,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대륙형 모델은 사회보험과 노령연금 혜택이 잘 돼 있다. 노조 가입률이 낮은데도 상대적으로 강성 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네 번째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지중해 모델로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고용과 노후보장 혜택을 제공한다.

사피르 교수는 고등교육 분배율과 고용률을 기준으로 평등성과 효율성 지표를 산출했는데 앵글로색슨 모델은 효율이 높지만 평등성이 떨어지고 대륙형 모델은 거꾸로 평등성이 높은 반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딕 모델은 두 지표 모두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딕 모델의 경우 25세 이상 64세 이하 고등교육 보급률이 75%, GDP 대비 조세지출 비중도 51%에 이른다. 또한 고용률도 모두 70%를 웃돌아 다른 나라들과 월등한 차이를 보였다. (그림 참조)

사피르 교수는 “노르딕 모델은 대륙형 모델처럼 평등한 사회면서도 유연한 노동시장과 높은 고용률을 자랑한다”면서 “평등과 효율이 상충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굳이 고르자면 우리나라는 지금 평등도 효율도 챙기지 못한 지중해 모델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면서 온갖 찬반 양론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늘 무엇으로 어떻게 타협을 이룰 것이냐는 부분에서 벽에 부딪혔고 무엇보다도 타협의 주체가 마땅치 않았다. 1938년의 스웨덴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노동운동을 대표할만한 중앙집권화된 노조가 없다.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노조 가입률은 통틀어 12.4%밖에 안 된다.

그 무렵 스웨덴의 노동운동은 지금 우리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유럽 최고 수준의 노조 조직률과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었다. 노조에 우호적인 사민당이 1932년 집권에 성공하면서 노조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1933년에는 건설부문 노조가 무려 10개월에 이르는 장기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동유럽이 잇따라 공산화 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찰츠요바덴 협약은 이런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스웨덴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회적 타협이 가능하려면 노사 양측의 힘이 어느 정도 대등해야 하고 서로 양보할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사용자들은 임금인상 억제를 요구했고 노조는 중앙교섭체계를 요구했다.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협약이 가능했던 것이다.

인천대학교 이찬근 교수는 재벌의 지배구조에서 해답을 찾는다. 사민당이 한때 발렌베리 등 주요 대기업의 국유화를 검토했다가 찰츠요바덴 협약을 통해 자본의 지배권과 노동의 방어권을 상호 인정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사회적 통제 가능성을 전제로 자본의 국적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대책 없이 재벌해체를 주장하거나 초국적 금융자본에 산업주권을 넘기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재벌의 해체가 아니라 재벌로 하여금 국민적 사회적 필요성에 공헌토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이 꾸준히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첨단기술투자로 국가 기술력을 키우고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내놓는다면 얼마든지 기업의 지배권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게 이 교수가 보는 유일한 사회적 타협의 가능성이다.

서울대학교 안상훈 교수는 복지제도의 수혜 범위를 늘릴 것을 제안한다. 스웨덴의 복지 개혁정책들이 노동계급 뿐만 아니라 농민과 중간계급을 포섭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됐다는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이를 “이른바 친복지동맹의 지평을 확대하려는 사민주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빈곤계층의 권리확보에 매진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수급자를 양산하는 쪽으로 둘러 나가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또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나 고용확대 전략, 암이나 노인병 등까지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전략 등을 제안했다.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는 “스웨덴 모델을 그대로 복사해 올 수는 없겠지만 스웨덴의 성공 사례가 우리 사회에 갖는 여러 가지 함의를 고민하고 부분적으로 반영할 수는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약한 수준의 연대임금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 중앙교섭체계까지는 안 되더라도 산별교섭체계 정도는 도입할 수도 있다. 또한 스웨덴처럼 공공육아 서비스를 확충해 여성취업률을 늘리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신 교수는 “단기 성과주의를 벗어나 장기적인 시각에서 복지모델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종훈 회계사는 스웨덴의 조세정책의 장점을 반영해 대대적인 조세개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최대 50%에 이르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지 않고는 복지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도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회계사는 “모든 세금과 연금 징수를 일원화한 스웨덴의 조세정책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간단명료하다”고 지적한다. 윤 회계사는 “우리나라도 소득신고를 받는 수동적 방식에서 벗어나 국세청이 직접 부과액을 산정하고 나중에 이의신청을 받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회계사는 이를 위해 광범위한 과세정보의 수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톡홀름=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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