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회적 연대 무너진 복지천국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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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물론 영원불멸한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러나 돈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고 아파서 병원에 가도 마음 편히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정부에서 새로운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는 나라, 늙어서 은퇴한 뒤에도 죽을 때까지 정부가 모든 생계와 복지를 책임지는 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나라, 그런 나라는 세계에서 스웨덴이 유일하다.

기자는 스웨덴 서비스통신노조와 올로프 팔메 센터의 초청으로 11월 5일부터 13일까지 스웨덴을 방문해 이 나라의 공공복지와 노동, 보건의료, 조세 정책 등을 취재하고 돌아왔다.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지만 스웨덴의 복지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을 준다. 정치경제적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현실에 구현할 자신감,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다.

스웨덴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상식 이하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제할 수 없다. 연대임금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 임금이 비슷한 수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겠지만 실업급여를 받으면 된다. 스웨덴의 실업급여는 우리나라처럼 6개월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 나온다.

실업급여는 이전 직장의 노동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전업 노동자의 경우 일당 기준으로 최소 640크로나는 된다. 우리 돈으로 8만3200원 정도다. 만약 지금 다니는 직장이 이 정도 급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굳이 이 직장에서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일정 수준 이하의 노동조건이나 질 낮은 일자리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도 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면 직업훈련을 받고 더 수준 높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줬는데도 일을 하지 않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것까지 거부하면 실업급여가 깎이거나 아예 끊길 수도 있다. 어떻게든 정부는 일을 시켜야 하고 노동자들은 결국 무엇이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전체 국민들의 고용과 생계를 책임지는 이 시스템은 산업의 변화를 따라잡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높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도 그런 직장에 굳이 목을 매지 않는다. 정부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일을 시켜야 세금을 받을 수 있고 세금을 받아야 이런 복지시스템을 지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 시스템이 그동안 이 나라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를 싸게 부릴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고용을 하면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 한다. 임금 수준이 높은 만큼 최대한 노동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업자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직업훈련을 받고 얼마든지 더 나은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질 높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은 것도 이 시스템의 작동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02년 기준으로 46%에 이른다. 스웨덴 정부는 이 여성들을 직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파격적인 수준의 아동수당과 공공탁아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성들은 가정을 벗어나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환상적인 시스템에도 약점은 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실업이 늘어나고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다. 이 경우 정부의 지출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데 오히려 세금은 줄어드는 상황이 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스웨덴이 꼭 그런 상황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는 이미 세계 최대 수준으로 늘어났고 정부 지출은 해마다 엄청난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최근 스웨덴의 위기의식은 자못 심각하다. 한때 89%에 육박했던 고용률이 최근 75%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고용률 80%를 목표로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고 있지만 2001년에 79%를 찍은 뒤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고용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는 한때 국내총생산(GDP)의 16%를 넘어서기도 했다.

혁신시스템청(Vinnova, 비노바) 얀 엘딩 연구원은 “전체 노동인구의 20% 이상이 일을 하지 않으면서 실직급여와 질병보험, 조기퇴직 등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복지 기생자 문제가 스웨덴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1억일 병가’가 심각한 화두로 떠올랐다. 스웨덴 노동자들이 2003년 한해에 쓴 질병휴가가 무려 1억일을 넘어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아팠든 꾀병을 부렸든 노동자 1명당 평균 한달꼴로 병가를 쓴 셈이다. 정부가 이들에게 지출한 비용은 무려 1천억크로나, 우리 돈으로 13조원에 이른다.

스웨덴 정부가 대대적인 복지제도 개혁에 착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개혁의 핵심은 정부지출을 개인 부담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소득과 연계하는 것. 소득이 많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소득세의 세율을 크게 낮추고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의 세율을 높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복지제도 개혁은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복지시스템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특히 노령연금의 변화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1990년대 후반 연금개혁에 나서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지급했던 기초연금을 저소득계층에게만 제공되는 최저연금으로 전환했다. 또한 임금의 총 18.5%에 해당하는 보험료 가운데 2.5%를 개인 계정에 적립하도록 했다. 부분적이나마 개인의 미래를 개인이 직접 책임지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고용주가 전담하던 보험료를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도록 바꾼 것도 중요한 변화다.

이밖에도 복지시스템의 축소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질병보험의 경우 1일 대기일을 두고 질병휴가 첫날에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비용이 절감된다. 또 일부 지방정부는 그동안 전액 무상지원해 왔던 공공탁아 서비스를 부분적으로 유료화하기도 했다. 아동수당과 가족수당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무엇보다도 각종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는 추세다.

스웨덴 국세청의 마츠 헨릭손 국제협력담당 디렉터는 “실업자와 노령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존의 조세제도와 공적연금 시스템에 일부 수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혜택을 조금 줄이기는 했지만 복지시스템의 기본 골격이 무너졌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일련의 변화를 보는 스웨덴 국민들의 반발은 그리 거세지 않다. 스웨덴의 실업률은 아직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낮고 복지수준 또한 월등히 앞서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연대임금제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과거와 달리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서비스업과 공공부문의 비중이 커지면서 블루칼라 노동자 단체인 LO(노동자총연맹)가 노동운동의 대표성을 잃게 된 것이다. LO 관계자는 “중앙교섭은 완전히 무너지고 지금은 산별교섭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1970년대 이후 사민당의 지지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LO의 정치적 지지기반은 조금씩 사라졌다. 화이트칼라 노동자 단체인 SACO나 공공부문 노동자 단체인 TCO는 그동안 LO가 주도해왔던 연대임금제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임금인상을 시도했다. 사용자 단체인 SAF는 한때 자율적 노사합의의 전통을 깨뜨리고 직장폐쇄를 추진해 사상 최대의 노사분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른바 노노갈등을 틈타 사용자 단체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LO의 쇠락과 연대임금제의 붕괴는 사실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1938년 찰츠요바덴 협약에 합의한 순간 LO는 이익단체를 뛰어넘어 정치조직으로 바뀌었다. 연대임금제는 자본과 기업의 소유 집중을 심화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노동운동의 힘은 갈수록 약화시켰다. 임금인상 자제를 고집했던 LO는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앙조직의 통제를 벗어난 비공인 파업이 늘어났다.

웁살라대학의 빅터 페스토프 교수는 “임금인상 자제와 복지 팽창은 애초부터 모순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페스토프 교수는 “파격적인 복지제도가 강력한 복지의존 계층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공공부문의 확대를 민간부문의 보완이 아니라 대안으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확대가 제조업 기반의 노조를 와해시키고 임금인상 자제라는 전제조건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인건비가 치솟고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고용이 줄어들고 결국 복지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아주대학교 안재흥 교수는 이와 다른 맥락에서 “LO가 기업과 자본의 소유 집중이 가져올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때는 이미 자본과 노동의 협약모델이 깨진 뒤였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 모델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된 구조를 갖는다. 성장산업에 자본을 집중하고 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완전고용과 광범위한 복지를 제공해 평등을 추구한다.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평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노사간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사회적 연대의식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은 OECD 나라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 정도가 낮은 나라지만 자본과 기업의 소유 집중은 가장 높은 나라다. 대기업 의존도도 그만큼 높다. 스웨덴에서 상위 10대 기업이 차지하는 고용비율은 58.6%에 이른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SAF는 공공연히 “스웨덴 모델은 죽었다”고 외치면서 노사합의 체제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LO가 누진세율과 노동법 개정 등에서 상당한 양보를 했는데도 최종단계에서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한편 대기업들의 해외이전도 급격히 늘어났다. 스웨덴 대기업들의 해외고용비율은 1962년 12%에서 1978년에는 26%로, 1987년에는 37%까지 늘어났다. 1996년 기준으로 스웨덴 25대 기업 가운데 12개 기업이 판매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8개 기업은 고용의 4분의 3 이상을 해외에서 충원하고 있고 7개 기업은 해외고용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스웨덴의 세계화는 유럽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스웨덴의 진짜 고민은 최근의 위기가 단순히 복지혜택을 일부 줄이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웨덴 모델은 결국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거나 그나마도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더 싼 임금과 유리한 입지조건을 찾아 잇따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기업은 성장하지만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 세계화의 덫에 빠진 셈이다.

물론 아직 스웨덴 모델의 붕괴를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스웨덴 정부는 여전히 기본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비록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시장 원리를 일부 도입하고 있지만 그 근간에는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이라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깔려있다. 복지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거나 민영화하려는 움직임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스웨덴 모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여전하다.

스웨덴 모델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세계화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경제성장과 완전고용,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스웨덴은 최근 산업의 핵심을 제조업에서 연구개발과 컨설팅,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테면 제조업 공장이 해외로 빠져 나가더라도 핵심 기술과 연구개발 능력은 스웨덴이 계속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벤처투자와 중소기업 육성에 나서고 연구개발투자와 교육비 지출에 예산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톡홀름=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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