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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부수 조작 파문, 종이신문 패러다임의 종말.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2, 2021

누가 요즘 종이신문을 보나 싶지만 아직도 날마다 찍는 종이신문이 900만 부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700만 부 가까이 팔린다고 하고요.

오래된 거짓말이고 신문 산업의 구조 개편을 지연시켜온 거대한 사기극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여러 차례 ABC 부수공사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죠.

정철운 기자의 조선일보 언박싱 영상도 추천합니다. 정철운 기자가 옥션에서 5970원어치 신문지 뭉치를 주문했는데 다음날 펼쳐 보지도 않은 빳빳한 조선일보 한 뭉치가 왔습니다. 주문한 날이 3월8일, 신문도 3월8일자였죠. 펼쳐 보니 모두 60부. 한 부에 1000원 하는 신문이 신문지로는 100원 꼴에 팔리는 셈입니다. 아마도 이 신문도 조선일보 발행부수에 포함돼 있고 정부가 집행하는 광고단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죠.

ABC가 뭔가요? ABC협회도 잘 몰라요.

ABC라는 건 ‘Audit Bureau of Circulation’의 줄임말인데요. 신문 발행부수를 공적으로 검증하는 기관을 말합니다. 발행 부수를 ‘공사(公査)’한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발행부수를 현장 조사하는 분들을 공사원이라고 부르고요. ABC협회는 풀어서 신문부수인증공사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부수공사(公社)에서 부수를 공사(公査)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ABC협회 홈페이지에 가보면 ABC를 ‘Audit Bureau of Certification’의 줄임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거 언제 고치나 보자’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몇 년째 계속 그대로입니다. 조직 소개부터 잘못돼 있는 조직이라니, ABC도 모르는 조직이라니, 뭔가 징후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수 공사할 때 동행 취재가 가능한가요?

공공연한 비밀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편집국장이던 때부터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여러 차례 부수 공사에 동행 취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뭐 감출 게 있다고 저러나 싶었죠.

부수 공사 결과가 조작되고 있다는 제보도 끊이지 않았는데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수 공사를 제대로 하려면 특정 신문사의 특정 지국을 찍어서 예고 없이 방문을 해야죠. 장부를 들춰보고 정확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주고요. 당연히 신문사들은 발행 부수를 많아 보이게 하고 싶겠죠. 그걸 바로 잡고 실제에 가까운 숫자를 확인하는 게 ABC협회가 할 일이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ABC협회에서 부수 공사를 할 샘플 지국을 선정하면 그 정보가 미리 새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나갈 공사원들보다 신문사들이 먼저 알고 준비를 했고요. 윗선에서 누군가가 흘려준 거죠. 알 수 없는 이유로 샘플 지국을 교체하는 일도 많았고 공사원들이 교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지국은 안 하기로 했으니 다른 지국으로 가라고 지시가 내려오는 식이죠. 3000부를 받으면서 5000부를 받고 있다고 신고한 지국이 협회에서 조사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면 부수를 충분히 넘겨 받아 맞추겠죠. 물론 본사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지국 단위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유료 부수가 아니라 유령 부수.

이를 테면 한 신문사 지국에 독자가 2000명인데 본사에서 2800부를 내려 보낸다고 해보죠. 지국에서는 2000부를 배달하고 800부는 ‘서비스’로 뿌리거나 요즘은 그것도 다들 부담스러워하니까 뭉텅이로 폐지로 내다 팔게 됩니다. 그런데 또 본사에는 2800부 대금을 올려 보내야 하고요. 몇 년 전 남양유업 사태가 터졌을 때 신문사 지국의 갑질 문제는 더 심하다는 제보도 많았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국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신문사 지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평균 8.5종을 함께 취급합니다. 하루 평균 신문 2759부 신문을 받는데, 지국의 평균 수입은 688만 원, 지출은 542만 원이고, 수입은 146만 원, 여기에 지국장 본인 인건비가 포함됩니다.

“신문 한 뭉치를 파지로 팔면 1kg에 100원 쳐줍니다. 가장 두껍다는 조선일보가 5부에 1kg 정도 나갑니다. 물량 밀어내기로 내야 하는 신문대금은 1부당 월 4000~5000원인데 파지수입은 월 500원 나오는 거죠.” (주요 일간지의 한 지국장)

신문사들이 유료 부수라고 주장하는 부수의 상당수가 이렇게 지국에 쌓여 있다가 폐지로 팔려 나가는 유령 부수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상식적인 질문, 구독률 10분의 1토막인데… 발행 부수는?

아래 그래프를 볼까요?

종이신문 구독률은 1996년 69.3%에서 2020년 6.3%까지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2009년부터 10년 동안만 놓고 보면 29%에서 5분의 1 토막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ABC협회 자료에 따르면 협회 등록 신문사의 발행 부수는 이 기간 동안 1279만 부에서 886만 부로 30.7% 줄었고요. 유료 부수는 789만 부에서 695만 부로 12.0%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 한국에서 종이신문을 발행하는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ABC협회에 가입돼 있으니 이게 전체 신문 시장을 반영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발행 부수는 크게 줄었는데 유료 부수는 거의 줄지 않았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은 애초에 발행부수가 크게 부풀려져 있다가 줄었거나, 아니면 발행 부수를 줄이면서(실제로 신문을 적게 찍으면서) 유료 부수를 부풀리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ABC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유료 신문 부수 가운데 가구 독자 비중은 45.01%인데요. 이런 자료를 내밀면서 가구 독자는 줄지만 비가구 독자가 많아서 유료 부수가 유지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해 왔던 거죠.

이걸 전체 유료 부수에 대입하면 가구 구독 부수는 313만 부, 비가구 구독 부수는 382만 부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것만 보면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죠.

좀 더 살펴볼까요?

2019년 기준으로 한국에는 2012만 가구가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가구 수는 좀 늘었죠. 전체 가구의 6.4%가 신문을 구독한다고 했으니 계산해 보면 129만 부가 되는데요. 313만 부에서 129만 부를 빼면 적어도 가구 구독에서만 184만 부가 부풀려져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유료 부수가 700만 부에 육박한다는 게 ABC협회 조사고 실제로 구독률을 반영한 가구 유료 부수는 130만 부가 채 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최소 184만 부 이상 부풀려져 있을 가능성.

가구 구독 부수가 최소 세 배 이상 부풀려져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집에서 신문을 두 부 이상 볼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세 배 가까이 차이날 수는 없습니다.

가구 구독은 그렇다 치고 비가구 구독 역시 상당한 규모로 부풀려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래 그림은 가구 구독률을 감안해서 가구 유료 부수를 추정하고 비가구 유료 부수는 ABC협회 자료를 기준으로 환산한 것입니다.

ABC협회 조사에 따르면 비가구 구독이 2011년 280만 부로 바닥을 찍고 2019년에는 382만 부까지 100만 부 이상 늘어났군요. 위 그래프의 파란색 부분입니다.

요즘 세상에 신문 구독이 늘어나다니, 이걸 누가 믿겠습니까. 이 바닥을 좀 아는 업계 사람들이라면 모두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잠깐, 기업 구독이 늘어났다고요?

미디어오늘 기사가 나가고 난 뒤 한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이 제보를 해주셨습니다.

“기자들이 봐달라고 하니 구독을 하긴 하는데, 회사에서도 아무도 신문을 안 보니까요. 구독료만 내고 신문을 넣지 말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요. 한때는 임원들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신문을 넣어주기도 했는데 그 분들 사시는 동네 지국에서 구독료를 달라고 하는 일이 많아서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본사와 지국이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도 다 정리했습니다. 구독료는 내고 신문은 안 받는 거죠. 아마 다른 회사들도 그런 유령 부수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가구 구독 382만 부에도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에게 구독료 명목으로 돈을 받고 신문을 집어넣지 않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고 실제로 구독 부수로 잡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수를 유료 부수로 신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요?

과거 한국신문협회는 여러 차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구독률을 믿을 수 없다는 성명을 낸 적 있습니다. ABC협회 조사에서는 훨씬 더 높게 나타나는데 다른 조사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신문 구독자 수가 실제 이상으로 급감한다는 인상을 갖게 해 신문 구독 결과에 왜곡을 초래한다”고도 했군요. 구독률이 6.3%지만 실제로는 더 영향력이 크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 텐데요.

그런데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는 실제로 미디어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고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와 지국을 상대로 한 조사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돌아보면 ABC협회 조사가 더 믿기 어렵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9개 신문에 정부 광고 4961억 원.

아래 그림은 지난 10년 동안 9개 일간 신문의 정부 광고 집행 금액을 나타낸 것입니다. 모두 4961억 원에 이릅니다. 동아일보가 877억 원으로 가장 많고 조선일보가 811억 원, 중앙일보가 791억 원 순입니다. 서울신문이 487억 원, 한겨레가 446억 원으로 뒤를 잇고 있고요. 2019년에 정부 광고 규모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유료 부수 감소와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9개 주요 일간신문의 지난 10년 동안 정부 광고 집행 내역입니다. 단위는 100만 원이고요.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가구 구독률이 5분의 1 이하로 줄었는데 정부 광고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둘째, 정부는 ABC협회 공사 결과를 기준으로 광고 단가를 책정해 왔고요.

조중동 광고 단가는 한겨레 경향의 두 배.

정부 광고가 2019년에만 7872건인데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거의 두 배 수준의 광고 단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게 결국 이 세 신문의 구독 부수가 그만큼 많이 때문일 텐데요. 구독 부수가 부풀려져 있다면, 그리고 이게 조작된 것이라면, 그만큼 세금이 필요 이상으로 지출된 것입니다.

위의 그림이 2019년 기준으로 광고 단가를 계산해 본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852건의 광고를 실었는데 71억 원, 광고 1건에 1030만 원 꼴입니다. 중앙일보는 774건에 984만 원씩 받았고요. 조선일보는 723건에 977만 원씩 받았군요. 나머지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은 모두 도긴개긴, 500만 원 수준입니다.

조선일보의 무리수.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던 관행이 이번에 드러났던 건 조선일보가 상식을 뛰어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래프가 지난 10년 동안 조선일보의 발행 부수와 유료 부수를 나타낸 것입니다. 발행 부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유료 부수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보면 조선일보는 전체 발행 부수 가운데 95.4%가 유료 부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ABC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박용학씨의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따르면 절대 불가능한 비율이라는 겁니다.

보통 신문사 지국에서는 배달원들에게 배달 부수의 5% 정도 여분 부수를 지급합니다. 그리고 지국에서도 3~5% 정도 예비 부수를 남겨두고요. 배달 사고가 있을 수도 있고 비가 와서 신문이 젖거나 분실 사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신문 대금 수금 비율이 90%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애초에 발행 부수 대비 유료 부수가 80%가 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래서 직접 들여다 봤더니…

논란이 되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실사에 나섰습니다. ABC협회는 못 믿겠고, 직접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이죠. 아래 보는 그래프가 바로 그 결과인데요.

조선일보 지국 9군데를 샘플로 찍어서 유료 부수를 따져 봤더니 실제로 조선일보가 유료 부수라고 주장하는 부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성실율이 49.8%에 그쳤습니다. 이들 지국이 특별한 게 아니라면 조선일보가 유료 부수라고 주장하는 116만 부 가운데 실제로 인정할 수 있는 건 58만 부밖에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겠죠.

사실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한겨레도 유료 부수 비율이 93.7%나 된다고 신고했습니다. 문화일보도 92.8%고요. 이 신문사들도 유료 부수 비율을 부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겨레는 논란이 되자 사과문을 내고 “정가를 다 받아야 유료로 보는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한겨레 부수도 정직하지 못했고 협회의 실사 절차 또한 엄격하지 못했다”면서 “자체적으로 발송 부수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먼저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배달되지 않는 신문이 최소 3분의 1.”

신문사 지국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지국까지 발송은 됐지만 배달되지 않는 이른바 잔지의 비율이 조중동은 3분의 1 수준, 10대 일간지 가운데 나머지 신문은 절반 규모에 이릅니다.

심 교수가 인터뷰한 한 신문사 지국장은 “발송 부수를 밀어내고 지대를 요구하다 보니, 잔지를 팔아서 지대를 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유료 부수를 부풀리고 지국에 신문을 내려 보내면서 그만큼 판매 대금을 올려 보내라고 하니 울며겨자먹기로 폐지라도 팔아서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신문사 지국의 주요 수입 가운데 하나가 신문에 삽지로 들어가는 홍보 전단과 폐지 판매에서 나온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전단 의뢰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만.

권력과 언론의 구조적 유착과 은폐.

이성준 ABC협회 회장은 한국일보에서 편집국장과 부사장까지 지내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언론 특보를 지냈던 사람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보좌관을 잠깐 맡았다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대 이사장에 임명됐고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ABC협회 회장에 임명돼 아직까지 맡고 있습니다.

임기는 3년인데,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연임했다가 2018년에 한 번 더 연임을 했죠. 광고주협회 등이 반대했지만 신문협회가 강하게 밀어붙여 연임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광고주협회 곽혁 상무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인증 시스템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면서 “독자명부와 수금내역 등 유료부수 산정 기준이나 근거를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표본 지국 선정에 대한 정보도 없어 특정 매체에 우호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했는데 이 인터뷰가 중앙일보에 게재된 것은 흥미롭군요. 이성준 회장이 취임한 이후 동아일보가 유료 부수 1위를 차지한 것도 공교롭고요.

부수 공사는 기밀 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박용학씨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는 공사팀원-공사팀장-사무국장-부회장&회장으로 보고가 이뤄졌는데 이성준 회장 취임 후에는 공사팀원-공사팀장-회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무국장 박용학씨를 배제한 것이죠. 그리고 아마 이 과정에서 정보가 샜을 가능성이 큽니다.

얼마로 맞춰 드릴까요?

박용학씨의 중앙일보 인터뷰에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2018년엔 C신문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공사원 두 명에게 공사팀장이 부수 임의 수정을 요청했다. 두 사람이 거부하자 팀장은 회장에게 보고하겠다며 압박했고, 2019년부터 이들을 주요 일간지 공사 업무에서 배제했다. 2019년 C신문 공사엔 회장 지시에 잘 순응하는 공사원을 집중 배치해 95% 이상의 성실률(신문사가 주장하는 유가부수 중 ABC협회가 인정하는 비율)을 맞췄다. 또 원래 협회 관리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던 부수 보고를 2018년부터 공사팀장이 메일로 받는 방식으로 바꿨다. 관리시스템 안에서는 의당 기록으로 남았던 부수 수정 과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졌으니 인적 개입 요소가 많아진 것이다.”

박용학씨 증언에 따르면 공사 결과가 기존에 보고된 것과 크게 다를 경우 보정 자료를 요청하게 되는데, 이성준 회장이 보정 자료를 그대로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보정 자료는 말 그대로 신문사의 주장일 뿐인데 말이죠. 회장이 특정 신문사의 부탁을 받고 샘플 지국을 교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고요.

ABC협회 이사회는 일간지 9명과 잡지 1명, 전문지 1명, 광고주 6명, 광고회사 5명, 협회 임원 1명 등 23명으로 구성됩니다. 애초에 신문협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구조고 회장이 연임을 위해 신문사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공사 결과에 개입할 유인이 작동하는 구조죠.

멀쩡한 신문이 계란판 재료로.

신문 1장에 20g(잉크 무게 포함), 48면이면 240g 정도니까 신문 1부의 폐지 가격은 보통 20원, 최저 5원 정도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인쇄된 신문이 다시 신문용지 생산 업체로 팔려나갈 때 신문지 가격은 1kg에 210~250원, 계란판 자재나 채소 포장용지, 건축용 재료 등으로 팔려 나갈 때는 1kg에 500원 꼴이라고 하죠. 최악의 경우 폐지로 팔려 나갈 때는 1kg에 20~80원까지 떨어지고요.

결국 신문사 입장에서는 깨끗하고 예쁜 비싼 종이를 사서((2017년 기준으로 톤당 70만 원.) 굳이 잉크를 찍어서 싸게 계란판 용지로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계란판은 다시 폐지로 돌아와 신문지가 되고요.

 

신문지의 생애 주기.

여기서 의문은,

1. 어차피 계란판은 만들어야 하니, 그래도 신문지가 필요한 것인가?

2. 신문지가 없다면 계란판은 어떻게 만드나? 다른 데서 폐지를 더 비싸게 사들이거나 가공에 비용이 더 들거나 할 텐데.

3. 그렇다면 신문사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계란 공장에 보조금을 주고 있는 상황인 건가?

4. 신문용지 구입비용은 기업들이 대는 거니, 그럼 기업들이 계란 공장에 보조금을 주는 건가?

5. 덕분에 계란 가격이 약간이라도 싸졌으니 기업들이 계란을 구입하는 소비자(국민)들을 돕고 있는 건가?

6. 차라리 잉크 안 묻은 신문용지를 계란 공장에 바로 보내거나,

7. 어차피 폐지를 모아서 신문용지를 만들기 때문에 폐지를 바로 계란판으로 만들 수는 없나? 굳이 폐지를 신문지로 만들고 그걸로 계란판을 만드는 자원 순환의 비효율성이라니 정말 한심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 그리고 신문이 쓰레기라는 인식 또는 오해.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신문 시장의 왜곡을 만들죠. (품질 경쟁이 사라지고, 아무도 읽지 않아도 돈은 벌리는 기형적인 구조가 저널리즘의 질적 경쟁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피 같은 세금, 얼마가 샜나.

아래 표가 2019년에 집행된 정부 광고의 단가입니다. 전국 단위 신문과 경제 전문 신문이 단가가 다르고 또 발행 부수와 유료 부수에 따라 또 다르죠. 여기서 단가라는 건 1단×1cm 기준이고요.

보통 신문이 가로 37cm에 세로 51cm고 세로 3.4cm를 1단이라고 합니다. 보통 신문 하단 광고를 5단 광고라고 하죠. 그러니까 조선일보가 ‘중앙지’ ‘A군’으로 분류된다면 1면 하단 광고 한 판에 5단×37cm×23만 원 = 4255만 원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한겨레는 ‘중앙지’ ‘B군’이니 5단×37cm×15만 원 = 2775만 원을 받게 되고요.

그런데 만약 조선일보의 발행 부수가 80만 부를 밑돌거나 유료 부수가 60만 부를 밑돈다면 조선일보도 ‘B군’으로 분류될 거고 광고 한 판에 1480만 원을 부당하게 더 받아왔다는 계산이 됩니다.

2010년부터 조선일보가 11년 동안 받은 정부 광고가 887억 원이니까 34.8%면 309억 원 정도를 토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히 정부 광고 뿐만 아니라 신문사들에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도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조선일보 등이 챙긴 부당이익은 훨씬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이 부풀려져 있고 그래도 조선일보가 1위 아니냐고, 등급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조작은 조작이니까요.)

정부 광고 뿐만 아니라 기업 광고도 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발행 부수가 반토막으로 조정된다면 기업 광고도 단가가 달라질 테니까요.

이제 어떻게 되나.

한겨레 문화팀장을 맡고 있는 유선희 기자가 지적했듯이 지난 2004년 미국의 댈러스모닝뉴스는 평일판과 일요판 발행 부수를 각각 1.5%와 5.0% 늘려 발표한 사실이 드러나 공개 사과를 하고 광고주들에게 2300만 달러(276억 원)을 돌려줬습니다. 실태 조사 비용으로 300만 달러(36억 원)를 추가 책정했고요.

정확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한국은 규모가 훨씬 크고 구조적입니다.

조직적인 규모로 부수 조작이 드러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죠.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신문사들이 발행 부수를 부풀리고 정부 광고를 부당하게 더 많이 받아갔다면 이건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명백한 조작이고 범죄행위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을 속인 것이죠.
문화체육관광부는 ABC협회의 해체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요. TV 시청률 조사를 한 곳에서 하지 않는 것처럼 해외에서도 부수 공사를 여러 기관에서 맡고 있습니다. ABC협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서 전면적으로 다시 공사를 하는 것도 대안이 될 거고요. 이번 기회에 경쟁 체제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법적 처벌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 등이 조선일보와 ABC협회 등을 고발한 상태고요. 구체적으로 실체가 드러나면 이미 집행된 정부 광고 등도 일부 환수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부수 조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은 업무 방해와 사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앞서 살펴 봤듯이 한국의 대표적인 신문사들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숫자를 내세우며 국민들을 속여 왔습니다. 구독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이 정도 밖에 안 떨어졌다고 우기면서 계속해서 정보를 빼돌리고 장부를 조작하고 정부 광고와 보조금을 챙겼던 거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무도 이들을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해 왔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침묵하고 적당히 마사지하고 덮고 나면 그 이슈는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신문사들이 내놓은 부수 자료를 검증해야 할 기관이 아예 작당하고 부수 조작을 거들고 나섰고요. 세상 정의롭던 언론사들이 진보 보수 막론하고 조작에 가담했습니다. “한국의 신문 산업은 아직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숫자로 보여주고 싶었겠죠. 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종이신문 패러다임의 종말, 새로운 경쟁의 시작.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광고 시장의 가장 큰 손입니다. 정부 광고는 해마다 늘어나서 지난해에는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삼성전자보다 세 배 이상 많은 광고를 집행합니다. 인쇄 매체 비중을 줄여가는 추세지만 일찌감치 디지털로 무게 비중을 옮긴 민간 부문과 비교하면 정부 광고는 여전히 인쇄 매체 의존도가 높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기형적인 광고 시장도 변화가 불가피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 늦기도 했고요.

아래 그림은 뉴욕타임스의 매출 구조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 그림은 구독자 수 추이를 나타낸 것이고요.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디지털 매출이 종이신문 매출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뉴스가 공짜라는 오래된 편견을 넘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뉴스를 만드는 질적 경쟁에 돌입했고요. 뉴욕타임스가 1000만 구독자라는 불가능한 목표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는데 그건 남의 나라 뉴욕타임스 이야기고 우리는 안 돼, 이렇게 말하는 기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국은 아직 종이신문 시장이 살아있으니까, 하고 생각했겠죠. 신문은 안 팔려도 광고는 들어오니까요. 독자들은 모두 디지털과 소셜로 옮겨갔는데 종이신문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기형적인 구조, 그 이면의 오래된 조작과 유착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한국 언론의 질적 혁신을 바란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렸던 “산으로 가는 언론 개혁 논의, 핵심 요약과 제안”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결론 부분을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 미디어X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건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언론이 민주주의의 확장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의제와 토론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가로막고 있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언론 개혁의 방향이 돼야 합니다. 공론장을 황폐화시키고 건강한 토론을 가로막고 불신과 냉소, 거짓 프레임을 퍼뜨리는 언론이 힘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을 좇고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는 텍스트에 힘이 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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