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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언론 개혁 논의, 핵심 요약과 제안.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5, 2021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고 언론노조 등은 반발하고 있죠.

사실 저도 이런저런 소송을 많이 겪어봤고 말지 시절에는 박정희 명예훼손 사건으로 검찰이 저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한 적도 있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해마다 수십여 건의 소송을 치르고 있고요. 저나 미디어오늘이나 소송은 두렵지 않습니다. 징벌적 손배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언론사들은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요즘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언론 개혁 논의를 지켜보면 엉뚱한 봉창을 두들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단히 핵심 정리를 해봅니다. 이 글은 지난 22일 미디어X 뉴스레터로 발송했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미디어X 뉴스레터 구독은 다음 링크에서. https://www.leejeonghwan.com/5179

몇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겠습니다.

1. 이 법으로 지금까지 처벌하지 못했던 것을 처벌할 수 있나.

= 아니다. 징벌적 손배는 형사 소송이 아니라 민사 소송에 해당하는 것이라 애초에 처벌의 개념이 아니다. 지금까지 배상 금액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피해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2. 지금까지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던 걸 받을 수 있게 하는가.

= 역시 아니다. 손배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일 뿐, 손배의 기준이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3.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보호 받았던 것들이 보호 받지 못하게 되는가.

= 아니다. 일단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판단과 평가의 영역이라면 애초에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다. 허위의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진실이라 믿을 이유가 있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라고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위법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민사의 경우는 사실을 보도했더라도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고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등이 쟁점이지만 역시 징벌적 손배와 무관한 논의다.

4.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금과 달라질 게 없다. 비판에는 책임이 따르고 지금도 허위 사실을 보도하면 소송에 걸리고 소송에서 지면 손배를 해야 한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언론의 자유가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도 면책 받을 자유는 아니다. (그런 자유는 위축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징벌적 손배가 도입되면 패소할 경우 배상 금액이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최강욱 의원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사가 망할 정도로”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제대로 사실에 근거해서 보도한다면 징벌적 손배를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애초에 검찰과 법원을 못 믿겠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역시 이 법안 통과와는 무관한 문제다.)

5. 지금까지 손해배상 금액이 너무 적었던 건 사실 아닌가.

= 방송 조작 논란이 있었던 SBS 찐빵 소녀 사건은 지난 2013년 3억 원의 손해 배상이 확정됐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로 참여했던 홍가혜를 정신질환자로 매도했다가 6000만 원의 손해배상 명령을 받았다. 고발뉴스 기자 이상호가 가수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에게 1억 원의 손해 배상을 하라는 판결도 있었다. 누군가는 적다고 볼 것이고 누군가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너무나도 악의적인 보도였고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큰 경우 “언론사가 망할 만큼” 징벌적 배상을 명령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판사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이 기사 하나만으로 이 언론사는 망해도 싸다”고 생각할 기사가 다들 있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주류 언론이라면 100억 원쯤 돼야 망할까.)

6. 언론을 소송으로 겁박하는 일이 늘어나지 않을까?

= 늘어날 수 있고 실제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한겨레를 상대로 5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가 취하한 적 있다. 정치인들이 언론사 상대로 소송을 거는 건 흔한 일이지만 실제로 선고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고 가더라도 완전한 날조가 아닌 이상 언론사가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언론중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언론사 상대 손배 소송에서 원고 승소율은 34.2%였다. 언론사 상대 소송이 10년 사이에 세 배 가까이 늘었지만 평균 손배 금액은 줄어들고 있다. 자잘한 사건이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법원이 관대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소송 자체가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그건 징벌적 손배가 없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언론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저널리즘 원칙을 지켰다면 귀찮긴 하겠지만 소송이 두려울 게 없다.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하여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명예훼손에 따른 책임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 그만큼 언론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취재의 기본을 지켰다면 망할 정도로 손배를 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7. 사실이라고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허위인 경우도 손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맞다. 언론은 사실 확인의 책임이 있고 허위의 사실을 보도해서 명예훼손이나 실질적 손해를 끼쳤다면 형사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민사적으로 배상을 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블 체크를 하고 당사자 확인도 거쳐야 한다. 실수라고 해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여기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는 4억 원의 소송에 걸려 있다. 조선일보는 당사자 확인을 거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기사 삭제와 함께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소송을 피할 수 없었다.

8. 실효성 논란도 나온다.

= 한국 법은 기본적으로 전보배상(Compensatory damages)의 원칙을 따른다.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최근 하도급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징벌적 손배 조항이 생겼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기존의 징벌적 손배 조항도 사문화된 종이 호랑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어떨까.

= 지금 민주당 법안은 손배 최고액을 높이자는 것이라 실제로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손배 규모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언론사가 망할 정도로” 손배를 때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게 때려야 한다는 법은 아니다. 결국 판사의 재량의 문제다. 애초에 이 법이 없어서 배상 규모가 적은 것이 아니고 지금도 거액의 손배 판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 관련 재판에서 고의성과 허위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알 권리를 위해 기사를 썼고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할 테니까.

= 조선일보의 세브란스병원 기사도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 지어내서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취재가 부실한 상태에서 잘못된 기사를 내보냈고 조 전 장관 가족의 명예를 실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고 생각했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조선일보는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정황이 있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손배 규모를 결정할 것이다. 당사자 확인을 거쳤는지 확인을 요청했는데 답을 받거나 받지 못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 세상을 바꾼 언론 보도는 의혹으로 출발한다. 사실로 확인된 의혹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100%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보도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사실이 아닐 경우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9. 그렇다면 악의적인 왜곡 보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한국은 민사 손해배상과 별개로 언론사를 상대로 형사적으로 명예훼손 고소가 가능한 많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민사와 형사를 한꺼번에 걸거나 형사에서 이기고 난 뒤 민사를 거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말 악의적인 보도의 경우 언론인을 감옥에 보내고 동시에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히 기자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거는 경우도 많다.

=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언론 보도의 경우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조국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월간조선 기자 출신의 유튜버 우종창이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구속 수감됐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례도 있다. 손석희에게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기자 김웅도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 표현물에 대한 형사 처벌을 없애되 민사 손배 금액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징벌적 손배도 이 연장선에 있는 논의다. 국가가 나서서 표현물을 규제하고 책임을 묻기 보다는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 당사자에게 실질적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과 부당한 피해를 배상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는다.

10.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6대 언론 개혁 법안이 모두 통과되면 달라질까.

= 다시 강조하지만 징벌적 손배는 손배 상한의 문제일 뿐 그동안 손배가 아니던 게 손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비판 보도를 겁박하는 것도 아니다. 통과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언론계가 굳이 반대할 명분도 없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언론의 책임을 무겁게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 정정 보도를 원래 기사 크기의 2분의 1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은 취지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다. 오죽하면 이런 법안이 나왔을까 싶은데 사실 기사 크기나 분량 보다는 지면에서의 배치와 노출이 더 중요하다.

= 기사 열람 차단권을 규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게시판 운영 제한 조치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기사나 게시물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판단을 누가 할 것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명백하게 잘못된 기사와 악의적인 주장이나 댓글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자칫 잃는 게 더 클 수도 있고 위헌 소지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 개혁, 무엇이 필요할까요?

징벌적 손배 좋고 정정 보도 크기 키우는 것도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재판에서 이겨야 손배나 정정도 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위법성 조각 사유를 내세워 빠져나갈 틈도 많고요. 어떤 법을 만들든 표현의 자유를 지금보다 후퇴시키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게시물 삭제 등의 법안은 사실 언론 개혁과는 거리가 있는 이슈입니다. 지금도 임시조치 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많은데, 그보다 훨씬 더 나간 법안이 거론되고 있다는 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언론 개혁은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정부 광고를 정리해야 합니다. 언론 개혁을 외치면서 그 언론을 국민들 세금으로 돕는 걸 멈춰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수 언론에 광고를 많이 줬으니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많이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언론에 뿌리는 효과없는 광고를 모두 중단해야 합니다. 광고 효과도 없지만 정책 홍보가 필요하다면 이제 새로운 채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9개 일간신문에 집행한 정부 광고가 525억 원에 육박합니다. 정부 광고의 10%로 책정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수료 수입이 2020년 기준으로 840억 원이니까 전체 정부와 공기업 광고는 연간 8400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둘째, ABC 부수 공사를 손봐서 발행 부수를 속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발행부수를 부풀리고 광고비를 부풀리면서 신문 산업의 몰락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121만 부를 찍고 이 가운데 116만 부가 유료 부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적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다른 신문사들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ABC 부수공사 기준으로 한국에서 찍는 신문은 500만 부. 실제로 이 가운데 배달되지 않는 신문이 180만~200만 부에 이릅니다. 홍보지를 뿌리는 거야 알아서 선택할 문제지만 실제로 상당수 신문이 포장도 뜯지 않고 계란판 공장으로 실려가는 게 현실입니다. ABC 공사만 제대로 해도 거품이 많이 빠질 것입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가 신문사들에 지급한 보조금이 조선일보 46억3800만원, 동아일보 42억2900만원, 중앙일보 40억5700만원, 한겨레 22억5500만원, 매일경제 21억7900만원, 경향신문 20억600만원, 한국일보 19억4800만원, 국민일보 16억600만원, 서울신문 13억7000만원, 한국경제 13억6600만원 등입니다. 만약 ABC 부수가 두 배 가까이 부풀려져 있다면 정부 광고 뿐만 아니라 보조금도 그에 맞게 환수돼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이명박 정부 시절 편법으로 부여했던 종합편성채널의 특혜를 회수해야 합니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에게 종합편성채널의 의무 송출을 법으로 강제하고 동시에 수신료까지 받을 수 있도록 특혜를 남발했죠. 2019년에서야 의무전송 채널에서 제외했지만 황금 채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종편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의무전송 채널이 아니라고 해도 갑자기 채널이 빠질 것도 아니고 수신료를 받을 수 있으니 달라질 게 없죠. 특혜를 회수한 게 아니라 특혜를 보장하는 결과가 됐던 것입니다.

핵심은 특혜로 출발한 종편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특혜를 회수할 수 없다면 재승인 심사를 엄격하게 해서 기준에 못 미칠 경우 과감하게 퇴출시키거나 오히려 진입 장벽을 낮춰서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색을 빼고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하면 됩니다.

넷째, 정부가 앞장서서 정부 부처 출입처와 기자실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기자들에게 자리 만들어주고 보도자료 나눠주면서 기사 관리하는 관행을 끊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실 폐쇄를 밀어붙였다가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긴 했지만 기자들이 날마다 기자실로 출근하고 홍보·공보 담당자들과 점심 먹고 저녁 먹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일부 정부 부처 기자실은 아예 출석 일수를 기준으로 자리를 빼기도 하죠. 그래서 기자들이 출석 일수를 채우려고 성실하게 출근하는 기묘한 일도 벌어집니다.

국회 기자실이 그나마 가장 진입 문턱이 낮은 편인데, 자리를 더 많이 받으려고 난리법석입니다. 그래서 시청률이나 ABC 부수, 랭키닷컴 기준으로 자리를 배정한다느니 심지어 기사 건수가 기사 길이를 평가해서 배분한다느니 하는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의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실 칸막이를 없애고 공간을 터서 개방형 브리핑룸을 늘리고 프레스 센터 형식으로 운영하면 됩니다. 공공 도서관의 좌석을 배정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됩니다. 누구나 자격만 되면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하되 자리를 찜해서도 안 되고 물건을 쌓아두고 다음날 아침에 소유권을 주장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자들은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는 브리핑룸에서 쓰거나 자리가 없으면 바닥에 앉아서 쓰거나 나가서 써야 합니다. 기자들에게 지정석을 마련해 주는 건 취재 지원이 아니고 취재 편의 제공도 아닙니다. 해야 할 이유가 없고 기형적인 취재 관행을 만드는 오래된 악습입니다. 기자실이 사라지면 당장 기자들이 혼란스러워하겠지만 기사가 달라질 것입니다.

다섯째, 기자실 해체와 함께 정보 공개를 확대 강화해야 합니다. 언론의 범주와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기자실에 앉아있는 기자만 기자가 아니고 굳이 기자들에게만 따로 자세히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든 회의 자료와 데이터를 기자들에게 메일 보내는 것과 동시에 투명하게 공개하면 굳이 기자단에 가입하려고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겠죠.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거라면 애초에 공개하지 않는 게 맞고요. 공개해야 할 사안이라면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맞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나 법원 판결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기자단 카르텔과의 유착을 허물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청와대가 청와대 브리핑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내보내니까 춘추관 기자들이 반발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왜 기자실에 와서 브리핑을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바로 내보내느냐는 항의였죠. 기자단에 스크립트를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내보내라는 요구도 있었고요. 기자들이 청와대 페이스북 동영상을 받아치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그렇게 받아치는 기사는 이미 경쟁력이 없다는 겁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똑같은 100개의 기사에 1개의 기사를 더 얹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좀 더 빨리 쓰느냐 늦게 쓰느냐도 큰 의미 없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정보를 오픈하기 시작하면 언론이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 언론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여섯째, 방송통신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에 낙하산을 내려보내지 않았지만 그게 정권의 선의로 가능한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KBS와 MBC가 좀 더 공적 책임을 다하도록, 그러면서도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도록 독립성을 보장하고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수신료 인상도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유명무실한 방송통신위원회 구조를 개편해 판을 키우면서 동시에 공적 책임을 제도화하는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시대착오적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할 거고요. 플랫폼의 공정성과 망 중립성도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합니다.

일곱째, 언론 개혁은 낡은 권력을 해체하는 작업이 돼야 합니다.

가짜 뉴스 때려잡겠다고 외쳐봐야 그게 주류 언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징벌적 손배로 문 닫을 언론사도 아마 나오지 않을 겁니다. 언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지만 그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꺾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언론 개혁을 이야기할 때 공동의 문제의식은 일부 언론의 영향력이 실제 그 언론의 공적 가치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대변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그 영향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판의 시장과 경쟁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고 주류 언론의 낡은 관행과 카르텔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공론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언론 개혁의 목표를 먼저 이야기하면 방향도 명확해 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건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언론이 민주주의의 확장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의제와 토론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가로막고 있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언론 개혁의 방향이 돼야 합니다. 공론장을 황폐화시키고 건강한 토론을 가로막고 불신과 냉소, 거짓 프레임을 퍼뜨리는 언론이 힘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실을 좇고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는 텍스트에 힘이 실려야 합니다. 그건 사실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래서 언론 개혁의 구호가 공허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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