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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와 노동자, 누가 회사의 주인인가.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4, 2005

기업의 주인은 주주일까. 아니면 그 기업의 노동자들일까. 기업이 팔려나갈 때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놓고 LG카드를 비롯해 최근 매각을 앞둔 기업 노조들이 한데 뭉쳤다. 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우리사주조합의 인수 참여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회사가 팔리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 남아있는 게 가장 좋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면 지금까지 보다 더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미뤄보면 주주의 이익과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노조가 경영권 매각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가능하면 지배주주가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대위가 제안한 매각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전략적 투자자에게 전체 지분의 30% 정도만 매각한다. 이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없어 매각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겠지만 기업이 지배주주에게 넘어가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나머지 지분은 국민연금이나 연기금, 공제회, 자금출처와 목적이 분명한 사모펀드(PEF), 우리사주조합 등 다양한 주체들에게 분산 매각한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11월 1일 서울 중구 YTN타워에서 열린 공대위 2차 기자회견은 공대위의 향후 투쟁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공대위에는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LG카드, 브릿지증권 등 4개 회사 노조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참여하고 있고 외환은행 노조 등도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우리사주조합을 지분인수의 한 주체로 인정해달라고 정부와 채권단에 요구했다.

공대위는 특히 이번 지분 매각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기회로 삼자고 제안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브릿지증권 노조 김필수 수석부지부장은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를 사례로 들었다. “과거 오너 경영체제에서 부실을 벗어나지 못했던 기업이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경영 개선에 성공했다. 채권단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주주의 전횡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지분을 특정 주체에 50% 이상 일괄 매각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황원섭 LG카드 노조위원장은 “과거 카드 사태는 대주주와 대주주의 수족인 경영진의 일방적 경영권 행사에서 비롯했다”면서 “6500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급여를 동결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겨우 정상화에 성공했는데 이런 회사를 다시 특정 대주주에게 넘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황 위원장은 “우리은행이나 신한금융지주 등도 인수 대상으로 적격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은 2008년 민영화를 앞두고 재매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신한금융지주는 일본계 자금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는 게 반대의 이유다.

공대위는 기업의 사회적 소유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지배주주 없이 다양한 주체들이 골고루 지분을 나눠 갖는 대신 전문 경영인을 두고 경영의 합리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돼야 기업의 이익이 특정 대주주가 아니라 다양한 주주들과 사회 전반에 합리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기업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공적 자금이나 공공 자금이 들어간 기업부터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의 지분 인수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대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창두 대우건설 노조 위원장은 “우리사주조합이 지분 인수에 참여하면 대주주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 노조의 경우 26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지분의 10~12%를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자산관리공사의 지분을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LG카드 노조도 지분의 3%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노조가 공적자금 회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50% 이상 지분을 일괄 매각하지 않으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못 받게 된다. 매각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지분을 쪼개서 매각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노조의 영향력이 세다는 인식 때문에 매각 자체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공대위는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운영위원은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라는 원칙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기업이 특정 주체에게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수조원대의 매물 기업들을 일괄 매각할 경우 결국 인수 주체는 국내 재벌이나 외국 투기자본 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다. 장 운영위원은 “공적자금의 회수에 급급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G카드의 경우 산업은행 등의 손익분기점은 주당 3만1천원 정도로 추산된다. 11월 4일 주가 4만2950원과 비교하면 주당 1만1950원의 시세차익을 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굳이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챙기면서 매각하지 않더라도 공적자금 회수는 물론이고 투자이익까지 충분히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22.9%를 보유하고 있는데 다른 채권은행들과 연계해 51%의 지분을 한꺼번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공대위는 “일괄 매각이 아니라 산업은행 지분만 매각하고 나머지 은행은 각자 알아서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 위원장은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산업은행이 대주주의 지위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값을 올려 받기 위해 정작 ‘LG카드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황 위원장은 이를 주제로 공청회를 열자고 제안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여론에 순응하겠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이날 산업은행을 항의방문한데 이어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등 매각반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노조가 나서서 회사를 청산시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여론은 이들의 편이 아니다. 정 위원장은 “우리들의 진심과 선의가 왜곡되고 호도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강도 높은 투쟁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외환은행 노조도 하나은행 인수에 반대,

외환은행이 매각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외환은행 노조가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의 유력한 인수 후보 가운데 하나다. 외환은행 노조는 1일 성명을 내고 “국민의 자산인 외환은행을 외국계 자본이나 그에 결탁한 세력이 독점 장악해 사익 추구의 발판으로 삼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성명에서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을 인수할 능력이 없어 외국계 자본을 더 끌어들이거나 외상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외환은행은 외상매각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는 우량은행”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또 “외환은행은 당기순이익과 자산건전성, 수익성 등 모든 지표에서 하나은행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외환은행의 당기순이익은 6459억원, 하나은행은 4663억원이다.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외환은행은 1.32%, 하나은행은 1.09%로 외환은행이 앞서 있다. 납입자본금도 외환은행이 3조2245억원으로 하나은행의 9872억원보다 훨씬 많다. 외환은행의 외환시장 점유율은 46.3%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노조는 특히 “하나은행이 토종은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하나은행은 결코 론스타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1월 4일 기준, 하나은행의 외국인 지분비율은 76.8%에 이른다. 하나은행은 오는 12월 골드만삭스에 지분 6.3%를 넘길 계획인데 이 경우 외국인 지분비율은 8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외환은행 노조는 또 하나은행의 고액배당도 문제 삼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초 1300억원의 배당을 실시한데 이어 상반기 결산 직후에도 657억원의 중간 배당을 실시했다. 기업대출 비중도 2000년 69.4%에서 지난해 말 42.1%로 떨어졌다. 외환은행 노조 김보헌 전문위원은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넘기는 것은 외환은행을 비롯해 국내 금융산업의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수합병 지도에서 빠진 이야기들.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던 인수합병 지도에서 군인공제회를 비롯한 각종 공제회와 사모투자펀드(PEF), 그리고 우리사주조합이 빠졌다. 모르고 빼먹은 건 아닌데 사실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 전쟁에서 정작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 대한 논의를 빠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참고 : 한국 경제 뒤흔들 초대형 M&A 시나리오. (이정환닷컴)

대규모 부실과 출자전환 이후 정상화와 매각에 이르기까지 하이닉스반도체의 노동자들이 겪었던 그 고통에 우리는 별 관심이 없다. LG카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카드대란 이후 6552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투기펀드에 넘어간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던 외환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경영 정상화는 상당 부분 이들의 희생을 딛고 이뤄졌다.

인수합병 전쟁에서 기업은 하나의 매물일 뿐이다.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은 숱하게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거나 정리해고 되거나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린다. 기업은 더 우량하고 건실해지는데 그 기업의 이익은 특정 대주주에게 넘어가고 사회에 환원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이 인수합병 전쟁의 모순이다. 기업의 경영권이 송두리째 넘어가는데도 노동자들은 흔히 아무런 선택권도 갖지 못한다.

최근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LG카드 등 노조들이 모여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인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핵심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었다. 민간 기업이라면 어떻게 서로 인수합병을 하든, 정부가 개입할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다. 그러나 정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라면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미치게 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50% 이상의 지분, 즉 절대적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특정 주체에 넘기느냐 마느냐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업을 특정 주체의 소유로 만드느냐 아니면 다수의 분산 소유로 남겨두느냐의 문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다만 비싸게 팔기 위해 기업이 특정 주체에 넘어가는 걸 방치해왔다. 재벌 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외쳐왔으면서도 정작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해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론스타에 넘어간 외환은행이다.

발상을 바꾸면 해법은 분명하다. 정부가 조금 이익을 덜 보더라도 지분을 조금씩 나눠 파는 것이다. 어차피 이 엄청난 물량을 소화해낼 만한 인수 주체도 마땅치 않은 상황 아닌가. 군인공제회든 교원공제회든 우리사주조합이든, 건전한 투자자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기업의 지배권을 넘겨주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특정 주체의 지배권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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