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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버랜드 빅딜 사건, 그 실체를 밝힌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9, 2005

중앙일보 직원들과 주주들은 홍석현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 아래 두 가지 사건은 매우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최근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다른 한쪽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두 사건의 연관성을 파고들어갈 계획이다.

첫 번째 사건.
에버랜드는 1996년 11월, 99억5459만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그 전환사채를 이재용 남매들이 대부분 샀다. 에버랜드의 대주주는 중앙일보에서 이재용 남매들로 바뀌었다.

두 번째 사건.
중앙일보는 1996년 10월, 3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그 전환사채를 홍석현이 대부분 샀다. 중앙일보의 대주주는 이건희에서 홍석현으로 바뀌었다.

법원은 10월 4일 첫 번째 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게 바로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이다.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아주 간단히 이들의 혐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996년 11월 에버랜드는 99억5459만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에 발행했다. 이 전환사채는 주주배정 방식으로 하되 실권되면 제3자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그 제3자가 이재용과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등 삼성그룹의 로열 패밀리 4남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에버랜드의 주주들은 제일제당만 빼고 모두 청약을 포기했고 이 제3자들이 전환사채를 사들였다.

문제는 이 전환사채의 전환가격이 턱없이 낮았다는데 있다. 이들 4남매는 96억6181만원으로 이 회사 주식 50.2%를 사들였다. 참고로 1996년말 기준으로 이 회사 총자산은 8387억원, 자본총계는 1581억원에 이른다. 이 정도면 헐값이 아니라 거의 거저 수준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에버랜드 주식 1주의 순자산가치는 22만3659원에 이른다. 이재용 등이 받은 7700원의 29배가 넘는 금액이다.

전환사채가 전환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그때도 순자산가치는 8만618원, 역시 전환가격 7700원의 12배가 넘는 금액이다. 게다가 1993년에는 에버랜드의 주식이 주당 8만5천원에서 비싸게는 8만9290원에 거래된 기록도 있다. 이밖에도 에버랜드의 주주였던 신세계백화점과 제일제당은 1996년 사업보고서에서 에버랜드의 주가를 각각 12만5천원과 23만4985원으로 산정하기도 했다.

전환사채 발행 2년 뒤인 1998년에는 중앙일보가 에버랜드의 주식을 주당 10만원씩에 내다판 사례도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어떤 경우에도 전환가격 7700원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재판부의 결론은 허태학 등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이재용 등에게 지배권 확보에 필요한 지분을 넘겨주면서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이번 판결의 결과에서 주목할 부분은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들이 보인 태도다. 이들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에버랜드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이런 저런 핑계로 모두 청약을 포기했다. 물론 이 부분에 사전 공모가 있었더라도 이를 밝혀내거나 처벌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매력적인 주식이라도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청약을 포기한 것을 두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두 번째 사건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자료도 찾기 쉽지 않다. 중앙일보는 1996년 10월 3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역시 주주배정 방식으로 하되 실권되면 제3자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첫 번째 사건보다 겨우 한달 앞선 시점에 벌어졌는데 그 수법은 두 번째 사건과 완벽하게 같다. 최대주주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전환사채 청약을 포기했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은 제일제당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이 포기한 전환사채를 모두 사들였다.

그 결과 이건희의 지분은 26.4%에서 20.3%로 떨어졌고 홍석현의 지분은 0.6%에서 18.4%로 뛰어올라 3대주주가 됐다. 당시 홍석현은 전환사채의 78%를 사들였는데 30억원의 78%면 23억4천만원 정도다. 대략 17.8%의 지분을 23억4천만원에 사들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정리하면 지분 1%를 1억3146억원씩에 넘겨받았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는 1990년 당기순이익 4억9674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거래가 이뤄졌던 1996년까지 계속 흑자를 냈다. 1996년 기준으로 자산총계가 6595억원, 자본총계가 1186억원에 이르는 탄탄한 회사였다. 게다가 중앙일보는 당시 에버랜드의 주식을 48.2%나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이밖에 삼성전자를 비롯해 알짜배기 삼성 계열사들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과연 그 무렵 중앙일보 주식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을까.

먼저 첫 번째 사건에서 재판부의 판단처럼 순자산가치를 구해볼 수도 있다. 자산총계가 6595억원이니까 지분 1%의 순자산가치는 6억5천만원이 된다. 이 경우 홍석현의 지분 17.8%는 115억7천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환사채 인수대금 23억4천만원의 5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더 현실적인 해답은 2년 뒤인 1998년 1월 지승림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나온다. 지 부사장은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앙일보 주식 1%의 가격이 약 22억원이나 돼 지분을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에게 넘기는 데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지 부사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홍석현은 2년 전 404억8천만원 상당의 지분을 17분의 1밖에 안 되는 23억4천만원에 넘겨받았다는 이야기다. 그 무렵 정부나 사회 분위기는 하루라도 빨리 중앙일보를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해야 한다는 쪽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 문제를 신경쓰지 못했다. 이 경우 홍석현은 시세보다 381억4천만원 가량 주식을 싸게 사들인 셈이다.

2005년 6월 기준으로 중앙일보의 지분 14.7%를 보유하고 있는 CJ의 경우 사업보고서에서 장부가액을 121억5천만원으로 잡고 있다. 이 경우는 지분 1%에 8억3천만원 꼴이다. 이 비율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당시 홍석현의 지분 17.8%는 147억7천만원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의 지분을 홍석현은 겨우 23억4천만원에 사들였다는 이야기다. 6배 이상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을 비교하면 우리는 몇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이재용 남매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주식을 넘겨받아 회사에 재산상 손실을 끼쳤다면 그것은 두 번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석현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주식을 넘겨받았고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124억원에서 많게는 381억원 가량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사건에서 책임이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했던 당시 에버랜드 사장 허태학 등에게 있었다면 두 번째 사건에서의 책임은 중앙일보 사장이었던 홍석현에게 있다.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특히 두 번째 사건에서는 이익의 당사자가 홍석현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정리하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은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제3자 배정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하고 본인이 직접 제3자가 돼 그 전환사채를 모두 인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지배권과 함께 수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기업의 규모는 다르지만 홍석현은 첫 번째 사건의 허태학 등처럼 배임 혐의를 피해갈 수 없다. 오히려 훨씬 죄질이 나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을 연결시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버랜드의 대주주였던 중앙일보는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고 이재용 남매들에게 지분을 헐값에 넘겨줬다. 중앙일보의 대주주였던 이건희는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고 홍석현에게 지분을 헐값에 넘겨줬다. 이건희는 이재용 남매의 아버지고 홍석현과는 처남·매형 사이다.

시간 차이는 있지만 종합해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얼핏 보면 지분을 서로 맞교환한 것 같지만 이재용 남매에게 넘어간 것은 에버랜드의 주식이고 홍석현에게 넘어간 것은 중앙일보의 주식이다. 에버랜드의 경우 중앙일보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봤고 중앙일보의 경우 이건희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봤다. 물론 직접적인 피해는 에버랜드와 중앙일보, 그리고 그 주주들이 봤다.

이재용 남매의 경영권 승계에 에버랜드의 대주주였던 중앙일보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중앙일보의 사장 홍석현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홍석현은 회사의 이해를 포기하면서 이재용 남매를 밀어줬고 그 대가로 중앙일보의 경영권을 넘겨받게 된다. 이게 바로 ‘에버랜드-중앙일보 빅딜’의 실체다.

결국 이익을 챙긴 쪽은 이재용 남매와 홍석현, 피해를 입은 쪽은 두 회사와 그 주주들, 그리고 이건희였다. 이 두 사건은 결국 이재용 남매와 홍석현의 지분 늘리기 작전이었고 그 부담은 두 회사와 그 회사의 주주들이 나눠서 졌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이건희가 일종의 빅딜을 주선했고 일정 부분 희생을 감당하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홍석현은 배임의 대가로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중앙일보 직원들, 특히 기자들의 결단이다. 첫 번째 사건은 이미 법원의 결정이 났고 고등법원에서 다시 가려지게 되겠지만 두 번째 사건은 그동안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앙일보의 기자들은 매출 규모 국내 2위의 언론사가 왜 대주주 일가에게 독점돼 있는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6월 말 기준으로 홍석현 일가의 지분은 45.7%까지 늘어났다.

결론은 명확하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홍석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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