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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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화섬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한다. 결국 나는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고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공장이 망해서 문을 닫으면 그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디로 갈까.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한동안 실직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실직 상태는 오래 계속되거나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5년 구미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때 산업화의 전진기지였던 이곳은 이제 사양산업의 무덤이 됐다. 공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밀려나고 있다.

금강화섬 공장의 기계들이 멈춰선 것은 지난해 3월의 일이다. 이 회사에 돈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원료를 납품하던 삼성석유화학 등은 하루 단위로 물품대금을 결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결제가 미뤄지자 가차 없이 납품을 중단했고 공장의 기계는 그날로 멈춰 섰다. 경영진은 부도를 방치했고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565일 동안 텅 빈 공장을 지키면서 폐업반대 투쟁을 벌여왔다.

폐업반대 투쟁은 힘겹고도 막막한 싸움이다. 공장의 기계는 조금씩 녹이 슬고 작업장에는 군데군데 잡초가 돋아난다.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티기에 565일은 너무 긴 시간이다. 올해 2월 처음 금강화섬을 찾았을 때, “왜 다른 일자리를 찾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여기서 물러서면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돌아가면서 며칠씩 공사판에 나가 막노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이제 자리가 거의 없다고 했다.

“물러서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이 회사 노동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섬유산업은 2000년대 들어 내내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직물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직물 원사를 만드는 금강화섬은 만들어도 팔 데가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가까지 오르면서 원재료 가격도 두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중국 업체들이 추격해오면서 해외 수출도 쉽지 않게 됐다. 위기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고전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금강화섬은 구미의 화섬업체들 가운데서도 가장 최신의 최첨단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금강화섬의 몰락은 이 회사가 부실하거나 경쟁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비싸서도 아니었다. 다만 한 나라의 한 산업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는데 한 기업이 이를 거스를 재간은 없었다. 금강화섬의 몰락은 연쇄적으로 또 다른 회사의 몰락을 부추긴다. 그게 이른바 산업 공동화다. 그 공동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사업을 접으면 그만이다. 공장의 경우 기계를 떼어 내 고철로 팔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다른 공장을 짓거나 아예 공장 부지까지 내다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내다팔 것이 없다.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거나 요즘 같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은 거리로 밀려나는 즉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은 텅 빈 공장을 볼모로 잡고 공장을 다시 돌리든가 아니면 다른 새로운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경영진이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정부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그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 공장 곳곳에 바리케이트가 쳐졌고 이들은 날마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서면서 공장을 지켰다. 이들은 그렇게 지난 565일을 버텨왔다.

“사업에 실패해서 문 닫는 공장을 왜 정부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반문했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지느냐. 산업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럼 모두 어디로 가면 좋으냐. 이렇게 그냥 죽어가도록 내버려둬도 되느냐.”

한 노조 간부는 말했다. “금강화섬의 투쟁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폐업반대 투쟁의 선봉 투쟁이다. 우리의 요구는 폐업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을 정부가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벼랑 끝으로 내몰 게 아니라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거다. 사양산업의 문제, 제조업의 위기 문제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지만 문제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개인의 문제로 보면 답이 없다. 우리는 살아남는 자들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도태되는 자들, 죽어가는 자들을 돌아봐야 한다. 그게 다음 차례에는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고 결국 너의 문제고 나의 문제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은 그 최전선에서 싸워왔다.

금강화섬은 그러나 올해 2월, 결국 경한정밀이라는 회사에 320억원에 팔려나갔다. 경한정밀은 금강화섬 노동자들에게 당장 공장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그 뒤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몇차례 공장 진입을 시도했고 공장을 지키던 노동자들과 거세게 부딪혔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버티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언젠가 공장을 다시 가동시키고 일자리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기대는 모두 무너졌다.

경한정밀은 공장을 부분적으로 재가동하고 나머지 설비는 매각한 뒤 부지는 물류 센터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고용 승계 계획도 없었다. 노조로서는 아무런 협상의 카드도 갖지 못했다. 법적인 권리도 물론 전혀 없었다. 저쪽 입장이 저렇게 완고한데 버텨봐야 뭘 더 얻을 수 있겠느냐는 패배감이 확산됐다. 2년 가까이 버텨왔던 탄탄한 조직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한정밀은 아무런 대화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막판에 선심이라도 쓰듯 약간의 위로금을 내놓았고 노조는 결국 그걸 집어드는 걸로 이 힘겨운 투쟁을 끝냈다. 지난 565일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게 10월 7일의 일이다. “죽어서 뼈를 묻더라도 공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던 노동자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공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싸워서 이겨주기를 바랬다. 끝까지 버텨서 다시 일자리를 찾고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금강화섬과 경한정밀을 넘어 그들이 더 본질적인 사회적인 해법에 이르기를 바랬다. 진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증명해주기를 바랬다.

“왜 더 버티지 못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떠날 거면 지금까지 왜 그렇게 힘들게 싸워왔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묻지 못했다. 565일을 버텨온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과 서러움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짠하면서도 자랑스럽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고 믿게 됐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HR 프로패셔널’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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