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TC가 질낮은 일자리를 확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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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빈곤층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근로소득보전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EITC)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2007년 시행을 목표로 현재 당정협의가 진행 중이고 늦어도 11월에는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EITC의 실효성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EITC가 최선일까.

EITC는 근로빈곤층을 돕기 위한 제도다. 그런데 만약 이 제도가 근로빈곤층을 돕기보다는 이들을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이 제도를 성급하게 받아들이기에 앞서 꼼꼼히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진보정치연구소 성은미 상임연구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누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합니까. 일자리가 없어서 안 하는 겁니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EITC는 일하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죠. 그렇다면 일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누가 돕습니까.”

성 연구위원이 걱정하는 것은 EITC가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열악한 일자리를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로 유인 효과라는 것,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EITC가 도입돼서 일을 하면 월 8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죠. 그 8만원 때문에 일을 안 하던 사람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일자리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일자리가 생겨날 거라고 보세요? 근로 유인 효과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문제가 많아요.”

이를테면 아이를 돌봐야 하는 독신 여성이 슈퍼마켓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다. 아이는 방치되거나 다른 데 떠맡겨지고 이 여성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다 월 8만원의 EITC 급여를 추가로 받는다. 그 8만원은 이 여성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 여성은 8만원을 더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거꾸로 생각해도 좋다. 8만원을 더 받지 않는다면 이 여성은 일을 하지 않을까.

문제는 슈퍼마켓의 시간제 일자리조차도 구할 수 없는 경우다. 일자리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8만원이라도 받으려면 이 여성은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어디든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기꺼이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정부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 유인 효과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문제가 많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8만원은 일이 싫어서 안 하는 사람을 끌어들이기에는 너무 적죠. 그보다는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했던 사람들을 더 열악한 일자리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8만원만큼 덜 받아도 되는, 더 질 나쁜 일자리 말이죠. 그런 일자리라면 없는 게 낫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없애야 할 텐데 말이죠. EITC는 그런 일자리로 저소득층을 몰아넣습니다.”

EITC는 최저임금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낮추는 효과가 있다. 정부가 낮은 임금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 나쁜 일자리로 계속 내몰리고, 고용주 입장에서는 굳이 임금을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성 연구위원은 EITC의 대안으로 최저임금제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확대 실시를 제안한다. 원론적이지만 일단 있는 거라도 제대로 잘 하자는 이야기다. 사실 이 2가지 제도만 잘돼도 EITC는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대안은 실업부조와 아동수당이다. 실업부조는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장기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아동수당은 평균 소득 미만 가정의 아이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EITC의 가장 큰 문제는 EITC가 실업부조나 아동수당 등 더 적극적인 복지제도의 도입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EITC도 하고 실업부조나 아동수당도 다하면 좋겠지만, 관건은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다. 성 연구위원은 말한다.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보면 10명 가운데 9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40대 이상은 아무도 써주지 않아요. 이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겁니까. EITC가 만능이 아니라는 거죠. EITC보다 본질적인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산 부족하다고 난린데 EITC가 다른 제도를 막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조건부 수급을 바로잡는 것도 선결과제다. 조건부 수급이란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 계층에게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는 예산 부족 때문에 수급 대상자를 줄이려는 궁여지책의 성격이 크다. 만약 EITC가 도입되면 이들 조건부 수급 대상자들은 그나마 이 제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나 겨우 월 8만원씩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EITC는 이들에게 무엇이든 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도 없다, 또는 일을 해서 알아서 벌어가라는 새로운 원칙을 만드는 셈이다. 결국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사각지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여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EITC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기보다는 오히려 확대시킬 수도 있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에 따르면 전체 빈곤층 716만명 가운데 500만명 이상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근로능력이 있는 근로빈곤층은 이 제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EITC가 이들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사각지대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근로빈곤층 가운데 66%가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 상태에서 EITC를 도입하면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도 소외되고, 그것도 아니면 EITC를 받지도 못하는 거대한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 재원 부족에 허덕이는 정부가 노인이나 환자, 육아 양육자 등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이 사각지대에 방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류 소장은 다만 EITC의 도입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런 우려에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EITC는 근로빈곤층의 최저생계를 보장해 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일단 주는 것은 받고 더 얻어내는 전략이 패배주의적인 비관론보다 낫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한국형 EITC’의 설계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조세연구원의 김재진 연구위원은 “재정여건만 되면 실업부조나 아동수당이나 다 하는 게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EITC는 일단 근로빈곤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근로능력이 없는 빈곤층에 대한 대책도 동시에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EITC가 질 낮은 일자리를 확산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건 사회구조적인 문제고 앞으로 제도를 디자인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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