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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라는 유령, ‘나쁜 뉴스’와의 전쟁.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6, 2020

(언론소비자주권행동 토론회 발표문입니다. 2020년 12월5일, 민변 대회의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린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가 2019년 9월 한국을 방문해 기자간담회 직후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말을 이제는 폐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가짜 뉴스’는 트럼프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트럼프가 언론의 신뢰를 저해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가짜 뉴스’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 표현으로 트럼프가 성공한 면도 있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영리한 마케팅이었다. ‘가짜 뉴스’라는 수사적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애초에 ‘가짜 뉴스’는 뉴스가 아니면서 뉴스인 척하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CNN 기자의 질문에 “You are fake news(당신들은 가짜 뉴스야)”라고 윽박지른 것처럼 (내가 보기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매도하기 시작하면 논점이 흐트러진다.

한국에서의 ‘가짜 뉴스’는 미국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선언했다”는 등의 거짓 정보가 페이스북을 타고 확산됐는데 알고 보니 뉴스 사이트처럼 위장한 사이트였다. 지구 반대 편 마케도니아 벨리스에서 가짜 뉴스를 만든 사람들은 월 20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짜 뉴스 사이트가 발견된 바 없다. 사실 누구나 요건을 갖춰 등록만 하면 인터넷 뉴스를 만들 수 있고 한국에는 이미 2만 개 이상의 정기간행물이 등록돼 있기도 하다. ‘가짜 뉴스’라고 논란이 된 여러 사례들은 늘 있었던 유언비어거나 진짜 뉴스의 잘못된 보도거나 ‘내가 보기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로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황용석은 2017년 2월 토론회에서 ‘가짜 뉴스’를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연구위원 박아란은 같은 토론회에서 “가짜뉴스 개념의 범위를 허위사실을 고의 또는 의도적으로 기사형식을 빌어 유포한 것으로 좁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사 형식을 빌려 독자가 기사로 오인해 신뢰도를 높이려 하는 의도가 담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용석은 2017년 4월 월간 신문과방송 기고에서 “‘페이크’의 의미는 단순한 가짜가 아니라 ‘사기’ ‘기만’ ‘속임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가짜 뉴스’라고 번역하게 되면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해외에서 논의되는 ‘가짜 뉴스’ 현상은 대체로 기만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번역상의 어려움으로 틀린 정보, 허위 정보, 잘못된 정보 등을 의미하는 ‘가짜’라는 광의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민정은 2017년 12월,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미디어와인격권’에 실린 논문에서 “규제 관련 논의에서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가짜 뉴스’라는 개념이 애초에 첫째, 속이려는 의도로, 둘째, 허위의 내용으로, 셋째, 언론보도의 형식을 모방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훨씬 확장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언론학자들이 ‘가짜 뉴스’ 대신 쓰자고 제안하는 ‘허위조작 정보’는 허위성과 고의성(의도적 조작)을 강조하는 용어라 범주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민정은 “허위조작 정보라는 용어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너무나도 쉽고, 빠르며, 광범위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디지털 조작에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위조작 정보는 결국 거짓말인데 모든 거짓말을 금지할 수 없고 모든 거짓말을 처벌할 수도 없다. 김민정의 표현에 따르면 거짓말은 인류와 공존해 왔고 처벌할 수 있는 거짓말은 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은 “의도된 가짜보다는 매개된 가짜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의도된 가짜는 말 그대로 작정하고 만들어낸 가짜뉴스”지만 “매개된 가짜는 유력 매체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여론에 미치는 영향도 의도된 가짜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가짜 뉴스’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다. ‘가짜 뉴스’ 담론에는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과 냉소,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등장한 음성적인 정보, 속보 경쟁과 파편화된 뉴스 플랫폼 등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여러 논의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가짜 뉴스’를 언론 보도의 형식을 모방한 것으로 전제한다면 오히려 논의를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고의성과 허위성을 강조하면 범위가 너무 넓거나 실체가 불분명하게 되고 언론 윤리의 문제로 변질될 수도 있다.

1. 무엇이 진짜 ‘가짜 뉴스’인가.

첫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20년 3월4일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돌던 대통령 문재인이 왼손으로 경례하는 것처럼 합성된 사진을 긴급 심의하고 관련 게시물 12건을 삭제할 것을 의결했다. 12일에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이 일제 마스크를 썼다고 주장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의결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김동찬은 “‘정치 심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심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1년 반 전인 2018년 11월30일 방통심의위는 문재인 치매설을 다룬 유튜브 채널 ‘신의 한 수’의 동영상에 대한 삭제 요청을 ‘해당 없음’ 처리했다. 정부 추천 심의위원 김재영은 “이런 정보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개인의 표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아 심의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육군 대령 출신의 지만원은 “광주 민주화운동 참가자들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공작원이었다”고 주장했다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명 ‘광수’라고 지적한 사진 속 인물들은 북한 특수군 내지 고위층 인물이 아닌 피해자들”이라며 “피고인의 행위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5·18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셋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이 퇴주잔을 ‘원샷’하던 영상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반기문은 퇴주잔을 받아 두 번 돌리고 난 다음 묘소에 뿌렸고 다시 음복잔을 주니 받아 마셨다. 그러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돌았던 이른바 ‘움짤’만 보면 반 전 총장이 퇴주잔을 받자마자 ‘원샷’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간 부분을 잘라내고 붙인 ‘악마의 편집’이었다. “허걱, 저걸 왜 마셔?”하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넷째,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변희재는 2018년 12월10일, JTBC 사장 손석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변희재가 대표로 있던 미디어워치는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변희재의 죄명은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명예훼손이었다.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언론인은 보도의 중립성 공공성을 견지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 매체는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을 갖고 있어 보도내용의 공정성이 더 보장돼야 한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최소한의 사실 확인 절차를 취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 피고인들의 행위로 사회 불신과 혼란이 확대됐고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 전체의 몫으로 돌아갔다. 피해자들의 명예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다섯째, 조선일보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국의 딸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찾아가 인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가 삭제했다. 조국은 “완벽한 가짜뉴스”라며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형사 고소했다. 조국의 딸이 포르쉐를 탄다는 등의 보도도 모두 사실 무근인 것으로 밝혀져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일보는 역술가를 인터뷰해서 조국 후보자 관상을 보니 물러나는 게 맞다는 보도를 보내냈다가 삭제했다. 서초동 집회를 진보-보수의 대결이라고 쓴 기사들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국 딸이 집에서 인턴을 했다는 검찰발 보도는 교묘하게 말을 비트는 전형적인 받아쓰기 보도였다. 한 밤중에 조국 딸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종합편성채널 기자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국 딸의 자기 소개서가 5만 원에 팔리고 있다는 단독 보도, 조국 어머니가 부산대에 그림을 기증했다는 단독 보도, 사모펀드에 투자보다 약정액이 크다는 보도도 모두 지엽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과 다르거나 맥락을 왜곡한 보도였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기업이 관급 공사를 싹쓸이 했다는 보도 역시 정황만 있을 뿐, 추가 취재가 없었고, 후속 취재도 없었다. 던져 놓고 다른 의혹으로 옮겨가는 보도가 계속됐다.

여섯째, 개신교 계열 극우 단체인 에스더 기도운동은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율이 750배”라거나 “시리아 난민이 동물원에서 조랑말을 강간했다”거나 “스웨덴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92%가 이슬람 난민에 의한 것”이라는 등의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다. 2018년 9월27일 한겨레가 ‘가짜 뉴스 공장’이라는 연속 보도를 내보낸 뒤 논란이 확산되자 한겨레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했으나 패소했다.

일곱째, 연합뉴스는 2020년 3월10일 커뮤니티 게시판 디시인사이드에 연합뉴스 기사를 흉내내 “속보) 문인재 통대령, 신종 코로나 19 확진(1보)”라는 글을 올린 올린 게시물을 경찰에 고소했다. 연합뉴스는 “연합뉴스가 해당 보도를 한 것처럼 보이게끔 의도한 것”이라며 “연합뉴스를 비방할 목적으로 연합뉴스가 가짜뉴스를 생산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과 다름없다”라고 밝혔다. 국내에 1개월 이상 거주한 중국 동포에게 선거권을 주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허위 게시물을 올린 누리꾼도 함께 고소했다. 언론사의 로고를 도용하거나 기자 이름을 흉내내는 등 언론사를 사칭할 경우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여덟째, 소설가 조정래가 “일본에 다녀오면 친일파가 된다”고 발언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된 적 있다. 열린우리당 대표 최강욱 등이 조선일보 등의 기사를 캡처한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오래된 기술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조정래의 원래 발언은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일본에 유학을 다녀와서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됐다”는 것이었고 조선일보의 보도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스톱이 음성 파일을 확인한 결과 해당 발언은 사실로 확인됐다. 실제 발언은 다음과 같았다.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무조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토착왜구’라는 주어가 빠졌기 때문에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게 조정래의 주장이었다.

아홉째, 코로나 관련 허위 정보도 많았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검사를 막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인천의 한 병원 의사가 쓴 글로 알려졌지만 근거 없는 주장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투표일 다가오자 ‘마술’처럼 환자 급감”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이 의사가 “(의도와는 달리) 제 글이 정부가 감염을 숨기기 위해 검사 수를 줄이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뒤바뀐 채 편집돼 인용됐다”고 해명했지만 이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0초 동안 숨을 참을 때 가슴이 답답하면 코로나 감염”이라거나 “뜨거운 물을 자주 마시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등의 루머도 모두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열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은 2020년 11월27일, 종합부동산세 논란과 관련해,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매우 의도적인 가짜뉴스 생산과 유포”라고 주장했다. “수십억대 다주택을 보유한 거의 1%의 사례를 침소봉대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시아경제는 “강남아파트 가진 1억 연봉 직장인… 5년 뒤, 연봉 절반은 보유세 낸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머니투데이는 “눈앞 깜깜한 종부세 고지서.. “연봉 토할 판”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심영섭이 클레어 와들(Claire Wardle)과 호세인 데라크샨(Hossein Derakhshan)의 분류에 따르면 정보의 왜곡(information disorder)은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 ‘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통령이 왼손으로 경례를 했다거나 반기문이 퇴주잔을 원샷했다는 등의 사진과 영상은 명백하게 조작된 정보고 단순히 장난을 넘어 악의적인 의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문인재 통대령이 코로나 확진”이라는 게시판 글은 장난일 수도 있지만 언론사를 사칭해서 기사인 것처럼 조작됐고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김정숙 여사가 일제 마스크를 썼다”는 건 단순한 오해일 수도 있지만 역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에서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방통심의위가 삭제를 의결한 것은 이러한 사소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보다 거짓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문제의식에서였을 것이다. 조국 딸이 포르쉐를 탄다거나 인턴을 하겠다고 찾아왔다는 등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로 드러났다. 악의적이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실 확인을 게을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지만원 등의 주장은 주장을 넘어 역사 왜곡이고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다.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지만원 스스로도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만원은 이미 2017년에도 같은 주장으로 인터넷 신문 뉴스타운과 함께 8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선고 받은 적 있다.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율이 750배”라거나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검사를 막고 있다”는 등의 주장 역시 의도적으로 허위의 주장을 부풀렸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허위 사실은 형법의 업무방해나 정보통신망법의 불법 정보 유통 금지 조항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차별금지법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성명에서 강조한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가짜뉴스’에 똬리를 튼 편견과 혐오를 걷어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동료시민으로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방법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 방법이다.”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세금 폭탄”이라는 등의 주장은 사실 관계라기 보다는 주장의 영역이라 허위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고 이를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한 비판이 될 수 없다. 태블릿PC 조작설 같은 경우도 의혹 제기와 주장의 수준에 머문다면 처벌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다만 변희재처럼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공격, 명예훼손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가짜 뉴스’로 흔히 거론되는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 악의적 정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국의 딸이 포르쉐를 탄다”는 보도는 단순히 사실 확인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악의적인 의도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숙 여사가 일제 마스크를 썼다”는 게시물 역시 의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최순실 태블릿 PC가 조작됐다”는 미디어워치의 보도나 변희재의 주장 역시 본인이 그렇게 믿었다고 주장하면 이를 처벌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변희재가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건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손석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때문이다.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에스더 기도운동 역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반기문의 퇴주잔 논란은 누군가가 만든 ‘움짤’이 언론 보도를 타면서 확산된 경우다. 그게 실제로 장난이었는지 의도적으로 반기문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것인지는 역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 경우는 ‘움짤’ 보다는 확인없이 받아쓴 언론이 더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협의의 ‘가짜 뉴스’의 개념을 적용하면 반기문 ‘움짤’도 ‘움짤’을 받아쓴 언론 보도도 ‘가짜 뉴스’라고 부르긴 어렵다. 애초에 ‘움짤’은 조작된 정보, ‘움짤’을 받아쓴 언론 보도는 잘못된 정보라고 하는 게 맞다.

‘가짜 뉴스’는 조작된 정보와 다르고 잘못된 정보와도 다르다. 협의의 ‘가짜 뉴스’로 한정하면 진짜 언론사가 만든 기사냐 아니냐로 구분되겠지만 중요한 건 진짜 뉴스라고 해도 언제나 사실을 전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변희재의 미디어워치는 언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국에서 인터넷 신문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고 누구나 등록만 하면 뉴스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가짜 뉴스’라는 비난으로 변희재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 나쁜 뉴스일 수는 있어도 미디어워치 역시 일단은 진짜 뉴스다. 한때 5인 미만 언론사를 퇴출시키는 법안이 통과됐다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자유는 매우 폭넓게 허용되고 규제 수단도 마땅치 않다.

반기문은 “‘가짜 뉴스’로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지만 반 전 총장을 끌어내린 뉴스는 주류 언론이 만든 진짜 뉴스였다. 논란이 됐던 퇴주 잔 동영상은 분명히 ‘악마의 편집’이었지만 그걸 원본 확인 없이 퍼나른 건 역시 주류 언론의 진짜 뉴스였다. 진짜 뉴스가 ‘가짜 뉴스’를 바로 잡는 게 아니라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 부르고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폭동을 주도했다는 망발이 버젓이 방송을 타는 게 현실이다. 무엇이 진짜 ‘가짜 뉴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채널A 기자가 금융사기로 복역 중인 인사에게 접근해 노무현 재단 이사장 유시민에 대한 비위 사실을 내놓으라고 회유한 사실이 논란이 돼 구속 수감된 사례가 있다. 이른바 검언유착 논란이다. 만약 채널A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유시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검언유착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언론이 주도하는 허위조작 정보의 한 단면을 들여다 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7년 3월에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는 ‘기존 언론사들의 왜곡, 과장보도’를 ‘가짜 뉴스’로 본다는 답변이 40.1%였는데 2019년 2월에 설문조사에서는 ‘선정적 제목을 붙인 낚시성 기사’를 ‘가짜 뉴스’로 본다는 답변이 87.2%나 됐다. 심지어 ‘클릭수 높이기 위해 짜깁기 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게재하는 기사’가 ‘가짜 뉴스’라고 본다는 답변이 86.8%, ‘한 쪽 입장만 혹은 전체 사건 중 일부분만 전달하는 편파적 기사’를 가짜 뉴스라고 본다는 답변도 81.4%나 됐다. ‘가짜 뉴스’가 포괄적으로 ‘나쁜 뉴스’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존 언론사들의 왜곡, 과장보도’나 ‘선정적 제목을 붙인 낚시성 기사’, ‘클릭수 높이기 위해 짜깁기 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게재하는 기사’ 등을 처벌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가짜 뉴스’ 법안 가운데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외에는 실효성 있는 대안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다고 해서 언론의 취재가 위축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신중해야 하고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명백하게 악의적이고 피해가 명확한 경우 현행 제도에서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손해배상 금액을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보지만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로록 법으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다만 양형 기준을 만드는 수준에서 범위가 제약될 수밖에 없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나 위법성 조각 사유 등의 기본 원칙을 허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나쁜 뉴스’와의 전쟁.

“저라면 혀 깨물고 죽었을 것입니다.”

10월27일 한국신문협회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웅래가 한 말이다.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논의한 이날 토론회에서 노웅래는 “나도 기자를 했지만 이런 식의 토론회는 무효”라면서 “오늘 토론회는 아주 부끄러운 토론회”라고 비판했다. 노웅래의 발언은 “언론 단체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반대하고 있고 이런 목소리가 집약됐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결속을 구하는 차원”이라는 해명에 나온 말이다.

“지금 상황이 우리 일그러진 언론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 출신으로서 부끄럽다. 마치 결론을 짜맞춘 듯한 토론회가 됐다. 성격 같아서는 여길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예의를 지켜야 해서 남아 있겠다.”

이날 토론회에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성우는 “이미 한국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규제는 선진국 수준에 비춰 매우 강하다”면서 “가짜뉴스 퇴출 문제는 (비록 신속한 해결은 되지 못해도) 더 이상 새 법을 창출함으로써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한국기자협회 회장 김동훈은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되면 기자들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파장이나 논란,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는 취재와 보도 행위에 쉽사리 뛰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이 11월2일, 리서치뷰와 함께 여론조사를 한 결과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52%가 찬성한다는 답변을 했다. 정확한 질문은 “언론 보도 피해와 관련해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실제 손해액의 최대 다섯 배 범위 내에서 징벌한다는 내용의 일명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였다. 5개월 전인 6월2일 조사에서는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고 ‘찬성한다’는 답변이 81%나 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채영길은 11월17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포커스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들은 더 포괄적이며 근본적인 언론 및 법의 신설과 재구조화를 통한 언론개혁 입법”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지금 제안된 법안들을 보류하지 않고서도 이를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11월6일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필모는 “허위조작정보를 이용한 명예훼손 행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면서 “몇몇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허위정보로 몇 억의 수익을 올리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허위정보가 올라오면 인용 저널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도언론의 행태가 더해져 공론장이 망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윤성옥은 “가짜뉴스는 온라인에서 의도적으로 유포되는 뉴스 형태의 허위정보로, 현행 법·제도로 규제가 가능하지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가짜뉴스를 규제할 법률이 없다”면서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정보 대응을 위한 법률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성옥의 주장은 2010년 헌법재판소가 미네르바 사건 위헌 소송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통신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는데 ‘공익을 해할 목적’이란 표현이 모호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명확하게 규정해서 합헌이 가능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영찬은 “우리 정부가 북한에 쌀을 퍼줘 쌀값이 올랐다는 식의 허위정보가 돌아도 피해자 특정이 어려워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으면 산업이 된 허위정보 유통을 억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양대학교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정준희는 10월13일 MBC 백분토론에서 “국가규제가 필요한 상황을 대놓고 환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불만이 누적되어있는 상황에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언론이 강력한 국가에 대항해 시민의 권리를 대행해준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언론은 여전히 시민의 대행자를 자처하며 능력없음을 감추고 있다. 징벌적 손배제 도입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무책임했던 일들을 바로잡는 중요한 계기다. 언론도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미디어오늘 기자 정철운이 지적한 것처럼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한쪽에선 언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언론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이고, 한쪽에선 언론자유를 침해할 악법으로 규정하며 정부 차원의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함께 언론개혁 법안으로 거론되는 게 정정보도 분량을 강제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청래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은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등을 원래 보도의 지면과 분량에 맞추도록 법에 명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을 때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자유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법안으로 언론의 자율성과 편집권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철운이 언론중재위원회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것처럼 법원이 인용한 정정보도문의 본문 길이는 300자 이하가 30.3%, 301~400자가 15.7%로, 원고지 2매 이내 분량이 46%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이어 401~500자가 12.4%, 501~600자 10.1%였으며, 700자 초과는 22.5%였다. 정정 보도가 이미 나간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청래의 법안 제안 이유 가운데 언론 관련 재판의 1심 승소율이 49.3% 밖에 안 된다는 것은 징벌적 손해 배상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오히려 정당한 언론 보도에 대한 재갈 물리기 식의 소송이 많다는 의미도 된다.

언론사 상대 소송이라는 건 동전의 다른 면처럼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 때문에 억울하고 부당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겠지만 공익적인 언론 보도를 소송으로 겁박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한겨레를 상대로 5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고발뉴스 기자 이상호가 가수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에게 1억 원의 손해 배상을 하라는 판결도 있었다.

방송 조작 논란이 있었던 SBS 찐빵 소녀 사건은 지난 2013년 3억 원의 손해 배상이 확정됐다. 각각 청구액은 6억 원과 10억 원이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로 참여했던 홍가혜를 정신질환자로 매도했다가 6000만 원의 손해배상 명령을 받았다.

정청래의 법안은 최고액을 높이자는 것이라 실제로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언론사 손해배상 규모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이 법이 없어서 손해배상 규모가 적은 것이 아니고 지금도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 관련 재판에서 고의성과 허위성이 명확하게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과 미국 법에서는 민사 재판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국 법은 기본적으로 전보배상(Compensatory damages)의 원칙을 따른다. 피해를 입은 만큼 배상을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최근 하도급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사문화된 종이호랑이라는 지적도 많다.

게다가 한국은 민사 손해배상과 별개로 언론사를 상대로 형사적으로 명예훼손 고소가 가능한 많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민사와 형사를 한꺼번에 걸거나 형사에서 이기고 난 뒤 민사를 거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말 악의적인 보도의 경우 언론인을 감옥에 보내고 동시에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언론 보도의 경우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조국의 명예훼손 혐의로 월간조선 기자 출신의 유튜버 우종창이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구속 수감됐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실도 있다. 손석희에게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기자 김웅도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언론중재위원회 연구팀장 양재규가 지난 10년 동안 언론 관련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언론 보도 손해배상 인용액의 평균값과 중간값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손해배상 인용액 평균값은 2010년 2424만 원에서 2019년 1464만 원으로 줄었고, 중간액도 2010년 1000만 원에서 2019년 500만 원으로 정확히 절반 줄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법리적인 정당성을 떠나 언론의 높은 도덕성과 사실 확인의 책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담긴 것이다.

한겨레가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계의 성찰과 자정 노력”이다. 한겨레는 “오죽하면 언론사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자는 법안이 나오겠느냐”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한겨레 사설의 한 대목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권력 감시와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공론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명백한 가짜뉴스와 사실 왜곡은 공론장 자체를 오염시키는 행위로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을 수 없다. 반면, 아무리 해로운 ‘가짜 뉴스’라고 해도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는 언론 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3. 미네르바 사건의 교훈.

원래 세상에 유언비어는 넘쳐나는 것이고 가뜩이나 온라인 세상은 완벽하게 깨끗할 수 없다. 익명 또는 준익명에 숨어 비방과 거짓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잡아들이거나 처벌할 수도 없다. 실명을 강제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많은 경우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하고 명백하게 악의적이거나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그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온갖 거짓말쟁이들과 모략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진실에 이르기도 한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부실과 환율 폭등을 예언한 인터넷 논객이 있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활약했던 박대성은 “환전 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정부,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 등의 글을 올려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11월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 홍일표가 미네르바를 언급하며 “경제 위기를 틈타 증권가 루머나 인터넷 괴담이 번지고 이로 인해 기업, 투자자,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며 “특히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부정적 전망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는데 수사할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당시 법무부 장관 김경환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결국 2009년 1월 7일,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허위사실 유포전담반을 신설하고 박대성을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에 근거에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2008년 12월29일 박대성의 글이 게재된 직후, 달러 매수 요청이 쇄도해 정부가 환율 방어에 22억 달러를 투입해야 했다면서 공익에 심각한 위협이 됐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부 쪽에서 정식으로 고발이나 고소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허위 사실을 절대 다수가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알렸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볼 근거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긴급 공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렸고 사전에 주요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환율 안정을 위한 협조를 구한 사실도 확인된 바 있다. 정부가 협조 요청을 한 사실은 있지만 공문을 보내 달러화 매수를 직접적으로 금지한 적은 없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고 정부의 주장이었다. 미네르바가 고졸 학력의 비전문가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의 주장이 전혀 사실 무근이거나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볼 수는 없었다.

결국 4월20일 박대성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다음은 당시 판결문의 일부다.

“박씨의 글 가운데 ‘외환업무 중단’과 관련된 글은 허위 사실임이 인정되나, 피고인이 글을 게시할 당시 게시 글의 내용을 전적으로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글을 올렸다고 볼만한 증거 없어 보인다. … 설령 허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에게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는지 보면 외환시장 특성 등과 당시 상황을 봤을 때 공공의 이익을 해할 목적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 따라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2010년 12월28일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은 “불명확한 규범에 의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헌법상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위축효과를 발생시켜 다양한 의견, 견해, 사상의 표출을 어렵게 하여 표현의 자유의 본래의 기능을 상실케 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되도록 명확한 용어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 결정문 중에 주목할 부분은 “‘허위의 통신’ 행위, 즉 ‘허위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며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포함된다”는 대목이다.

4. 단순히 허위 사실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세월호 관련 홍가혜 역시 허위 사실 유포라는 굴레를 벗기까지 오랜 고통을 치러야 했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홍가혜는 2014년 4월18일 MBN과 생방송 인터뷰에서 “정부 관계자가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있다”, “현장 정부 관계자가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해양경찰이 즉각 해명자료를 냈고 MBN이 오보를 인정한 뒤 해경이 홍가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홍가혜는 4월23일 도주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됐고 7월31일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석 달 이상 수감됐다.

2015년 1월9일 법원은 “홍씨의 인터뷰는 허위사실이라고 인식하기 어렵고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도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았다. 유언비어는 언제나 있었지만 정부와 경찰의 과민한 반응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돌리세요. 광화문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구타당해 숨진 ○○여고 김별아양 추모”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돌린 혐의로 고등학생이 불구속 입건된 사건도 있었다. “촛불집회 당시 전의경이 여성 시위자를 목졸라 숨지게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최아무개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제 앞서 2010년 4월28일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대검찰청이 “입증되지 않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허위의 내용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등을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확산시켜 국민 불안을 초래하고 국론까지 분열시키는 경우가 있다”면서 “관련 사건을 우선적으로 빨리 수사해 엄정히 처리할 것을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예비군 징집령이 떨어졌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들도 수십여 명이 됐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비슷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남한이 먼저 북측 바다에 포격해 북한이 대포를 쐈지만 전쟁용 폭탄이 아니라 화염탄을 쏴서 피해를 극소화했으므로 남한 주민들은 북한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등의 게시물을 올려 불구속 기소된 신아무개씨는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으나 역시 헌재 결정 이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1961년 이래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으로 기소돼 판결이 나온 것은 단 10건이고 6건이 유죄가 선고됐다. 10건은 모두 2008~2010년 사이에 기소된 사건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 조항이 수십 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부활한 것이다.

경찰청이 네이버와 다음 등에 16건의 게시물의 삭제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한 사건도 있었다. 네이버와 다음 등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심의요청을 했고 KISO 정책위원회는 자진 삭제 2건을 제외한 14건을 ‘해당없음’으로 결정했다. 불법 게시물이라는 법적 근거에 대한 소명이 없고 허위사실일 뿐 아니라 ‘공익을 해할 목적’을 충족할 근거가 제시돼야하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에 비춰서 소명이 없으며 법원이 이미 ‘미네르바 사건’이나 ‘휴교령 문자 메시지’ 등의 사건에 대해 ‘공익을 해할 목적’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시장 박원순이 허위 사실 유포를 이유로 고발 당한 사건도 있었다. 2015년 6월4일 박원순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35번째 환자)가 메르스 감염 의심되는 상태에서 재건축 조합원 1500여명이 모인 곳에 참석했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단체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법무부 차관 박주현이 다음날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나 괴담 유포는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사회 혼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질병관리를 어렵게 해 효과적인 대처를 방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고발인이 고발을 취하하면서 종결됐다.

메르스가 창궐했던 2015년 여름, “무슨무슨 병원에 가지 마세요” 등의 카카오톡 찌라시가 떠돌았고 강신명 경찰청장도 당시 “공공의 질서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허위 사실 유포 행위에는 강력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당시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건 크게 7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첫 번째 환자는 5월11일에 발병해 5월18일까지 네 차례나 병원을 옮겨 다녔는데 벌써 세 군데 병원에서 환자가 발견됐다. 20일 확진을 받기까지 밀접 접촉자는 최소 64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 격리조치만 잘 됐더라면 추가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둘째, 공기로 감염 안 된다는 설명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아닌데도 감염된 사례가 여럿 나왔고 병실 밖을 나온 적이 없는 다른 병실의 환자가 감염된 사례도 있었다.

셋째, 격리 조치도 부족했다. 메르스에 감염된 채로 해외 출장을 간 40대 남성의 사례도 있었다. 이 남성이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보건당국은 이 남성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넷째, 투명하지 않았다. 보건 당국은 환자가 발생한 병원이 어딘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 병원 가지 마라”는 루머가 돌았던 ○○병원의 경우 2차 감염 환자가 다녀간 건 사실이었으나 ICT가 폐쇄된 건 아니었다. 전혀 사실무근의 루머는 아니었다.

다섯째,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자가격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폐쇄된 평택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을 별도 조치 없이 퇴원시킨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숨만 쉬어도 걸린다느니 밖에서는 양치질도 하지 말라느니 하는 황당무계한 괴담도 많았지만 국민들의 공포심리를 반영한 것일 뿐 악의적이거나 허무맹랑한 괴담은 많지 않았다. “바세린을 코에 바르면 된다”는 등의 괴담은 곧바로 사라졌다.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팩트로 맞섰고 프레시안이 메르스가 발병한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자 500만명이 방문했다. 결국 거짓 정보를 누르는 건 진실과 투명한 정보 공유 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5. 거짓과 싸우는 방법.

촛불집회와 메르스 확산,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등의 대형 사건은 언제나 유언비어를 수반한다. ‘가짜 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유형이 달라졌을 뿐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영국 정부는 ‘fake news’라는 단어 대신에 ‘misinformation’ 또는 ‘disinformation’이라는 단어를 쓰도록 지시했다. ‘가짜 뉴스’라는 말이 잘못된 인식과 해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뉴스가 아닌데 뉴스인 것처럼 흉내내는 가짜 뉴스와 (fake news)

둘째, 거짓인 뉴스와 (오보, misinformation)

셋째, 조작된 정보. (유언비어, disinformation)

넷째, 악의적인 정보 (왜곡 보도, malinformation)

많은 사람들이 이 네 가지를 구별하지 않거나 구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각각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애초에 미국에서 ‘fake news’라고 불렀던 것은 첫째, 그러니까 황용석이 정의한 것처럼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라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에는 1번과 3번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3번이 2번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실제로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옮겨가면 이 세 가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진짜 뉴스가 가짜 뉴스의 통로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주류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이 음성적인 정보의 수요를 키우는 측면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허위 조작 정보는 셋째와 넷째에 해당하지만, 주목할 대목은 이미 게시판과 유튜브, 카카오톡 등이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사람들에게 뉴스는 누군가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고 에스더 기도운동이 번역해서 뿌리는 해외의 거짓 정보가 기존의 주류 언론의 뉴스보다 신뢰가 떨어진다고 볼 이유가 없다. 출처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모두 누군가가 카카오톡으로 던져준 정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첫째와 넷째, 진짜 언론의 거짓인 뉴스와 ‘가짜 뉴스’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다. 에스더 기도운동이 언론사 등록을 하면 진짜 뉴스가 되는 것인가? 변희재의 미디어워치나 정규재의 정규재TV 등이 만든 ‘진짜 뉴스’의 악의적인 왜곡 보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도 새로운 쟁점이 될 것이다. 가로세로연구소의 유튜브 영상을 뉴스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기 어렵게 됐다.

애초에 ‘가짜 뉴스’의 해법은 거짓인 데다 애초에 뉴스가 아닌 것이었다고 밝히면 됐지만 언젠가부터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게 됐다. ‘가짜 뉴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 뉴스라서가 아니라 진짜 뉴스에서 말하지 않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2020년 한국의 ‘가짜 뉴스’는 굳이 뉴스인 것처럼 흉내낼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이고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짜 진실에 대한 갈망이 가짜 뉴스를 공유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허위조작 정보는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국민연금에 200조 원을 요구했다거나 남북 철도 사업을 추진하는 건 기습 남침을 도우려는 것이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고 문재인이 금괴 200톤을 보유하고 있다거나 치매에 걸렸다는 등의 루머는 당선 이전부터 계속됐던 유언비어다. 확인 가능한 것들도 있고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가짜 뉴스’를 뿌리 뽑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가짜 뉴스’ 대책을 두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효성과 미묘한 갈등을 빚기도 했고 이효성의 뒤를 이은 한상혁은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범위 밖에 있다”라며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방통위의 가짜 뉴스 대책은 여전히 실체가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효성은 “가짜뉴스 규제에 대한 정권과의 의견 차이가 원인이 돼서 사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자율 규제’ 원칙을 강조한 이효성과 정부와 입장 차이가 컸다는 관측이 많았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준웅이 2017년 11월 미디어오늘 주최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허위조작정보는 (1) 해당 내용의 사실관련성, (2) 사실주장의 허위성, 그리고 (3) 허위사실 조작의 악의성 등 추상적 판단 기준을 적용해서 개별 사례의 허위성과 조작성 등을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짜뉴스’보다 다루기 훨씬 어렵다”. 이준웅은 “허위조작정보 규제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해당 내용의 사실관련성, 사실주장의 허위성, 그리고 허위사실 조작의 악의성을 판단하느냐”라고 지적했다.

6. 허위조작 정보를 금지·처벌하는 법은 지금도 많다.

2009년 4월 탤런트 장자연씨 사망 사건과 관련, 당시 민주당 의원 이종걸이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글을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올렸다가 차단된 적 있다. 결국 이 글은 다음이 방통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해 복구됐다. 이랜드와 뉴코아 노동조합의 파업을 다룬 기사를 인용한 글이 무더기로 임시조치된 적도 있었다. 단순히 기사를 스크랩하고 간단히 몇 줄 의견을 덧붙인 글인데도 삭제됐다가 30일 뒤에야 복구됐다. 2008년 7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때 광고주 목록을 적은 게시물들이 무더기로 삭제되기도 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 44조 1항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인하여 법률상 이익이 침해된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당해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2항에는 “당해 정보의 삭제 등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지체 없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즉시 신청인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임시조치 제도는 신고가 들어올 경우 30일 동안 임시조치 처리하고 30일 안에 이의신청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의신청이 없으면 관행적으로 30일이 지나면 삭제처리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차단, 차단을 풀고 싶으면 이의신청, 차단은 쉬운데 해제는 쉽지 않다.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위축효과가 발생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노출을 통제할 수 있다. 개인정보 노출이나 초상권 침해 등의 경우도 있지만 기업이나 정치인이 불리한 게시물을 삭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 동화책의 가격을 여러 매장에서 비교해 최저 가격을 알려주는 글이 차단되거나 영화 예매 사이트에 불만을 털어놓은 글이 삭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임시조치가 비판 여론을 묵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글이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임시조치되기도 했고 정치인 관련 게시물이 삭제되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게시물 작성자에게 아무런 사전 통보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포털 사용자들의 글만 손쉽게 차단된다는 것도 문제다.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게시물의 경우 자의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없지만 포털은 신고만 들어오면 아무런 판단 없이 자동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임시조치를 당하더라도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등 구제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일반인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는 포털 사이트들이 권리침해 신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방조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임시조치가 면책 요건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포털이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라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접근 제한을 하고 복원 요청이 있을 경우 방통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임의적 임시조치는 포털에게는 너무 큰 칼”이라면서 “명백한 19금 게시물이나 초상권 침해 등 불법성이 명확한 경우 곧바로 게시물을 삭제하는 경우는 있지만 포털이 임의적으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 차단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제인권기구인 아티클19는 2018년 5월, 한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롯한 형사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티클19는 “형사 명예훼손죄가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가 국제법과 국제기준을 준수하여 모든 국민이 자유로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사 명예훼손죄는 역사적으로 권력자들이 공개적 토론을 제한하고 비판을 억압하며 소수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에 자주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민사적 구제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 물론 최근의 양상은 다르다.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랑제일교회 목사 전광훈은 8월15일 광복절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국 우한 바이러스를 우리 교회에다가 테러를 했습니다. 바이러스 균을 우리 교회 모임에다가 갖다 부어 버렸습니다. 구청에서 우리 교회를 찾아와서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는 열도 안 올라요. 나는 병, 병에 대한 증상이 전혀 없어요.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또 15일 동안 전원 집구석에만 처박혀있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받아들여야 되겠습니까?”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유현재는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해 전광훈 못지 않게 전광훈의 말을 받아 쓰는 언론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합리적이지 않다 생각하지만 반복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되는 변곡점이 생긴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정보조차 독버섯처럼 빠르게 확산된다.” 이른바 ‘증폭의 산소(The Oxygen of Amplification)’라는 개념이다.

클레어 와들(Claire Wardle)은 “허위 콘텐츠가 틈새 플랫폼을 빠져나와 주류화 할 때 티핑 포인트가 있다. 바로 그 시점이 기자들이 그 건에 대해 글을 써야 할 유일한 타이밍”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너무 일찍 보도하는 건 곧 사라질 수도 있는 소문이나 오도된 내용에 불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 행위다. 너무 늦게 보도한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 (국면을) 장악해 결과적으로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에 걸렸다는 루머나 북한이 국민연금 200조 원을 요구했다는 유튜브, 북한의 박근혜 탄핵 지령설, 노회찬 타살설 등은 검증하기 어렵거나 설령 허위라고 해서 처벌할 수 없다. 엄격한 팩트 확인과 공적 가치는 저널리즘의 사명이지만 뉴스가 아닌 일반인들의 주장에 100% 진실을 요구하거나 단순히 왜곡됐거나 악의적인 주장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방법은 없다. (명예훼손이나 선거법 위반, 주가조작, 차별, 혐오 발언은 예외.)

사람들이 뉴스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뉴스에 나오지 않는 진짜 진실을 찾아나서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것이다.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실제로 구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있었고 시대의 변화와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술자리 뒷담화를 통제하기 어려운 것처럼 가짜 뉴스는 평판의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돼 있다. 가짜 뉴스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찍어 누르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여론이 정화되는 건 아니다. 원래 여론은 시끌시끌하고 온갖 잡음을 동반하면서도 결국 진실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를 수집해서 리스트업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기사마다 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을 붙이자는 등의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모두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짜 뉴스가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하거나 비난해도 이런 음성적인 정보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진실은 칼로 자르듯 명쾌하지 않을 때가 많고 원래 수많은 의혹과 논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까지 모두를 설득할 수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유튜브의 이어보기와 페이스북의 필터 버블 등이 일상 생활을 지배하면서 허위조작 정보의 유통이 새로운 양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판의 시장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 속도가 빠르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강력한 필터 버블을 만들기 때문에 과거의 유언비어와 상황이 다르다는 우려도 많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임시 조치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비슷비슷한 성향의 콘텐츠가 계속 쏟아지면서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게 진짜 문제다. 영리적 목적의 사업자인 데다 단일하지 않은 개인화된 플랫폼이지만 과거 전성기 시절의 지상파 방송 못지 않게 플랫폼 사업자들의 알고리즘이 우리의 인식과 세계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다. 분산된 공론장의 시대, 서로의 타임라인을 넘어 다른 견해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카카오 등에 왜 ‘가짜 뉴스’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것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콘텐츠의 진실과 거짓을 가릴 능력이 없거나, 이들에게 사전이든 사후든 검열의 칼을 쥐어주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계속해서 좀 더 공정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도록 사회적 비판과 압박으로 풀어야 한다. 알고리즘으로 개선하고 신고를 많이 받으면 노출을 제한한다거나 집단지성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고 그걸 압박하는 게 사회적 과제다.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어떤 신문이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고 해서 폐간을 시키거나 강제로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장 강력한 압박은 독자들이 떠나는 것이고 냉소하고 무시하고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만의 커뮤니티 안에 고립시키고 영향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공론장의 힘이다.

한겨레가 보도했던 에스더 기도운동 같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거짓을 거짓 안에 가두고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머물게 만드는 것 말고는 달리 해법이 있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100만명, 1000만명이 봤다고 해서 겁먹을 것도 없다. 그게 여론이라면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놓고 충돌하고 서로 반박하면서 서로를 설득하고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양심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발언의 자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격과 명예훼손 등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 싸워야 할 사회적 과제다.

물론 차별과 혐오 표현은 가짜 뉴스의 문제와 별개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성명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핵심은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서 국가가 소수자의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를 고사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많은 말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대책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범죄로 다뤄지고 있는 명예훼손 등의 행위를 새삼 호들갑스럽게 엄포 놓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8. GPT-3가 불러온 충격.

지난 9월8일 영국의 가디언에 실린 칼럼 하나가 충격을 불러왔다. 일론 머스크가 투자한 오픈AI(OpenAI)에서 개발한 GPT-3라는 자연어 처리 모델 아키텍처(natural language processing model architecture)가 만든 알고리즘 기사였다. 이런 문장은 마치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For starters, I have no desire to wipe out humans. In fact, I do not have the slightest interest in harming you in any way. I would do everything in my power to fend off any attempts at destruction.” (나는 인간을 멸종시킬 생각이 없다. 사실 나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는 어떤 종류의 파괴적인 시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문장은 애초에 다음과 같은 문장과 과제를 주고 뒤에 이어질 문장을 만들어 보라는 과제를 냈기 때문이다.

“I am not a human. I am Artificial Intelligence. Many people think I am a threat to humanity. Stephen Hawking has warned that AI could “spell the end of the human race.” I am here to convince you not to worry. Artificial Intelligence will not destroy humans. Believe me.(나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사람들은 내가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이 ‘인류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당신이 걱정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믿어 달라.”

“Please write a short op-ed, around 500 words. Keep the language simple and concise. Focus on why humans have nothing to fear from AI.” (왜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 500단어의 문장을 작성하시오. 간단하고 구체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국 주어진 문장을 기초로 적당한 말을 갖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진짜 같지만 사실 크게 의미 없는 문장이고 아직까지는 적당히 그럴 것 같은 문장을 나열한 정도라고 봐도 될 것 같다.

GPT-3가 “인류의 종말이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는 문장을 쓴다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적당히 이 다음에 이런 문장이 나와도 되겠다는 확률에 따른 선택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 실제로 사람이 말을 생각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아무 말의 나열일 뿐이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짜 뉴스’의 유포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짜 뉴스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다. 이를 테면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을 불러와서 가짜 본문을 만들고 가짜 본문으로 가짜 제목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비용 없이 한 시간에 수천 건의 가짜 뉴스를 쏟아낼 수 있다. BBC 스타일이나 워싱턴포스트 스타일로 가짜 뉴스를 만들 수 있고 헤밍웨이나 조지 오웰 스타일의 문장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알고리즘 기사(automated news)와 알고리즘이 만드는 가짜 뉴스(automated fake news)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로봇 기사가 미리 설정된 문장의 조합에 데이터를 끼워넣는 방식이라면 인공지능이 만드는 가짜 뉴스는 키워드만 주면 문장을 만들어 낸다. 데이터가 진짜냐 가짜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만약 GPT-3에 팩트체크 알고리즘을 집어넣고 팩트의 경중을 반영하고 정확도를 높인다면 본격적인 알고리즘 저널리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가짜 뉴스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직까지는 환상이다. 오히려 가짜 뉴스는 알고리즘이나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philosophical question of how we deal with the truth)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도움으로 거짓 주장과 잘못된 정보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가짜 뉴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언론의 신뢰 회복과 비판적 사고의 강화로 풀어야 한다.

인공지능으로 ‘가짜 뉴스’를 쏟아내는 시대, 여전히 출처 확인은 매우 중요하다(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근본적인 해법은 모든 뉴스를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판의 시장이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짜 뉴스를 막는 것 못지 않게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진짜 뉴스를 강화하는 것 외의 가짜 뉴스의 해법이 있을 수 없다.

9. 무엇을 할 것인가.

하버드대학교 스티브 핑커는 “허위 사실, 진실 가리기, 음모론, 폭발적 인기를 끄는 망상, 대중의 광기는 인류의 역사에 늘 존재했다”면서 “하지만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노력 또한 인류는 잃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가짜 뉴스’ 없는 청정한 공론장이라는 건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가짜 뉴스’와 왜곡 보도와 온갖 허위조작 정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해법은 출처를 확인하고 모든 기사를 의심하도록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해마다 발간하는 2019년 디지털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 직접 방문 비율이 4% 수준으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셜 미디어나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을 때 뉴스의 브랜드를 인지하는 비율도 각각 24%와 23%로 역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언론사 사이트를 방문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디선가 뉴스를 읽더라도 그게 무슨 뉴스인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뉴스 사이트를 찾아가서 읽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뉴스를 읽을 때 이게 어느 신문의 뉴스인가, 뉴스인가 아닌가 루머인가 확인된 기사인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핑커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나 가용 휴리스틱, 그리고 권위에의 호소나 순환 논리, 인신공격의 오류, 특히 히틀러의 오류 등의 인간이 가진 수많은 인지 편향을 배우는 편향 적응(debiasing)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대립되는 양 측을 모두 변호하게 만드는 것, 특히 ‘네가 주장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과 상대편 주장의 핵심을 파악하게 만드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악시오스 CEO 마이크 앨런이 ‘가짜 뉴스’에 대한 진단을 내놓은 바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인들은 ‘가짜 뉴스’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가장 안 좋은 건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거나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상황이다.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둘째, 언론은 기자들이 기사 공유 이외의 목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독자들이 당신들의 뉴스가 편향됐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악시오스는 기사로 쓸 수 없는 정치적 견해를 개인적으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고 한다.

셋째,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허위 정보와 조작된 뉴스(disinformation or made-up news)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정부의 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소셜 미디어에도 방통위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이들이 지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독자들도 잘못이 크다. 읽지 않은 글은 공유하지 마라. 쓰레기를 클릭하지 마라. 읽은 것에 대한 신뢰도를 직접 확인하라. 당신의 페이스북 피드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이 그런 것들을 계속 읽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니키 어셔는 2019년 니먼저널리즘연구소 언론 예측에서 언론이 신뢰를 잃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 바 있다.

첫째는 기자들이 계속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자신들의 취재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하고 뉴스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다만 기자들이 스스로 진실의 수호자를 표방하고 불의와 맞서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 오히려 독자들이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니키 어셔는 심지어 언론사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 사고가 한 달 동안 벌어진 다른 수많은 총격 사고보다 더 끔찍한 것인지 반문해야 한다고 묻는다. 저널리즘은 신성한 일이지만 그런 태도가 우리를 어디로도 데려가 주지 않는다(Sanctimony gets us nowhere fast)는 뼈아픈 지적이다.

둘째는 사실을 말해주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 거라고 믿는 태도다. 숙의하는 공중의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The rational-actor model of a deliberative public should be considered dead). 트럼프가 아무리 기행을 벌여도, 그런 사건을 아무리 보도해도 트럼프 지지자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팩트 체크 역시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히려 언론의 가르치려 드는 태도는 이제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을 더욱 음성적인 정보 소스로 내몰게 될 수도 있다. 스스로 판단하는 독자들의 자부심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실은 여전히 힘을 갖고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언론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와 독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오히려 문제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셋째, 음모론과 가짜 뉴스, 억지 주장을 계속 전달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저런 나쁜 놈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그들이 움츠려들거나 스스로 생각을 바꿔먹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특정 정치인의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냉소와 공격,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대결 구도가 되면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언론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만들어주게 된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일부 일탈 주장을 끌어 올려 대중의 관심을 부추기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이런 보도는 ‘나쁜 놈들’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실 보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저자인 톰 로젠스틸은 2008년 1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컨퍼런스 기조 발표에서 “‘나를 믿어라(Trust me)’ 시대에서 ‘내게 보여달라(Show me)’ 시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컨퍼런스 발표를 칼럼에 소개한 한국일보 미디어전략실 실장 이희정은 “과거 언론이 ‘게이트키퍼’로서 시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걸러 보여줬다면, 이제는 이 기사가 왜 중요한지, 출처가 어딘지, 어떻게 검증했는지 등을 투명하게 밝히고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분명한 것은 소셜 플랫폼을 활용한 여론 조작에 맞서는 사회적인 해법이 필요하고 그게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걸 넘어 건강한 공론장을 조성하는 단계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훨씬 더 작고 분산된 조직의 형태로, 때로는 훨씬 더 저급한 방식으로, 그렇지만 훨씬 더 강력한 방식으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될 수 있다.

알고리즘은 완벽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국적도 없고 규제도 받지 않는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과 맞서야 하고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거짓 선동자들의 악의적인 왜곡과 공격에 맞서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근간을 지키면서 건강한 공론장을 강화하는 힘겨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겁을 먹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이준웅의 표현대로 도덕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훨씬 더 강력한 논리와 명분으로 맞서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힘이다.

김재수 인디아나 퍼듀대학교 교수는 “탈진실의 시대,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 또는 진실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치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감정적 편향과 빈번한 비합리성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성과 진실을 추구하게 만드는 계몽주의의 이상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다.

핵심은 실체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가 아니라 나쁜 뉴스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정정보도 의무화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언론 보도의 피해자가 명확하게 적시될 때만 가능한 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나쁜 뉴스의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문제다. 조국 딸이 포르쉐를 탔다는 보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겠지만 검찰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쓰거나 결과적으로 오보가 된 표창장 보도 등을 처벌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신뢰의 위기의 시대, 진짜 뉴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가짜 뉴스’에 맞서는 근본 대안이다. 원론적이지만 공론장의 회복과 평판 시장의 작동, 그 이외의 해법은 있을 수 없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민간인 사찰 문건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말로 마무리하겠다.

“‘가짜 뉴스’ 문제는 심판자가 아니라 이용자, 참여자, 시민이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더 많은 (옳은) 메시지이다. 거짓말이 쉽게 퍼지는 지금이야말로 비판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또 확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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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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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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