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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도 죽고 서점도 죽고… 출판 시장 공멸 위기.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3, 2005

출판산업은 정보화시대 또는 탈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다품종 소량생산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3만5천종 이상의 전혀 다른 상품이 생산된다. 소량 생산이라고는 하지만 한해 출시되는 제품 수가 모두 1억896만개에 이를만큼 시장은 크다. 전체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출판대국의 범주 안에 든다.

출판산업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장단점을 그대로 따른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서 좋겠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품종이 늘어날수록 생산비용이 늘어난다. 생산의 체계화가 어렵고 업체들끼리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시장예측의 위험 부담도 크다. 생산 중심적이기 보다는 철저하게 고객 중심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시장이 위기냐 아니냐는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통계는 이미 위기의 징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판시장 규모는 2조3484억원으로 추산된다. 2003년의 2조4463억원, 2002년의 2조8077억원과 비교하면 해마다 시장규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데 경쟁업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는 2만2498개로 2003년 2만782개에서 1년동안 1716개나 더 늘어났다. 1997년 1만2759개에서 7년만에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출판시장의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먼저 대형 출판사의 등장이 두드러진 변화다. IMF 시절만 해도 매출 100억원을 넘는 출판사가 거의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300억원이 넘는 출판사가 5개나 됐다. 100억원 이상의 출판사는 30개나 됐다. 이들 30개 출판사의 매출이 전체 단행본 매출 1조5천억원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전체 등록 출판사 가운데 1년에 20종 이상 신간을 내는 발간하는 출판사는 333개로 전체의 1.6% 밖에 안 된다. 반면 1년에 한권도 내지 못하는 출판사가 무려 2만783개로 92.4%에 이른다. 10개 가운데 1개꼴로 사실상 영업중지 상태라는 이야기다. 이 같은 무실적 출판사의 비율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인쇄소나 제본소의 빚독촉을 피하기 위해 폐업신고를 하지 않고 문을 닫는 출판사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출판시장의 불황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딱히 책을 덜 읽는 것은 아니다. 월 평균 독서량은 1.3권으로 거의 비슷하다. 다만 한달에 3권 이상을 읽는 다독자의 비율은 일본이 조금 더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억2천만명의 시장과 4600만명의 시장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웬만한 책이 기본 부수만큼은 나간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내는 한 출판사는 2001년 등록 이래 지난해 말까지 60종의 책을 냈지만 이 가운데 초판 1천부 이상 팔린 책은 2종 밖에 안 됐다. 책값이 1만5천원이라면 1천부가 다 팔려봐야 매출이 1500만원밖에 안 된다. 저작권료와 유통비용을 떼고 나면 제작비와 인건비, 관리비 등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적은 돈이다. 이런 책은 낼 때마다 출판사가 적자를 떠안아야 한다.

출판계에서 도서관 구매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전국의 도서관에서 신간 도서를 1천권씩만 사줘도 출판사들이 마음놓고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도서관 수는 471개로 일본의 2681개의 6분의 1수준이다. 1인당 장서 수도 0.56권으로 일본의 2.19권에 턱없이 못미쳤다. 한 소장은 “공신력 있는 기구가 선정한 우수도서를 도서관이 의무적으로 구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베스트셀러도 철저하게 상업적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다. 웬만큼 잘 나간다는 저자들은 이미 대형 출판사들에 소속돼 있거나 몸값이 치솟아 있는 상황이고 새로운 저자를 찾기도 결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에 있는 저자 계층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국내 신간은 이슈를 잘 파고든 실용서가 아니라면 초판도 다 팔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윤기나 최재천, 유홍준 같은 분들 책이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분들 필력이라면 상식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그 가운데 좋은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딱 저런 몇분 뿐입니다. 출판시장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기획의 위기고 저자의 위기입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린 그린비처럼 3년 이상 저자와 공동으로 기획을 해가면서 작품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출판사들은 손쉬운 실용서에 손을 대거나 번역서로 눈을 돌린다. 그린비 유재건 사장은 “인문도서도 충분히 공을 들이면 5천부까지는 팔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린비는 그래도 저자를 잘 만난 경우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출판사들에게는 3년씩 기다릴 여유가 없다.

기획이 어렵기는 번역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웬만큼 외국에서 잘 나갔다는 책은 저작권료가 터무니없이 치솟기 일쑤다. 잭 웰치 전 GE 회장 책의 선인세는 한때 13만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시장규모가 비슷하다는 대만에서 1만달러에 들여온 책을 13배나 비싸게 들여온 셈이다. 이 정도면 중소형 출판사들은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출판계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을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꼽는다. 일부 인터넷 서점의 경우 요즘은 적립금이나 마일리지, 무료 배송을 포함, 최고 70% 이상 할인판매를 하는데도 있다. 문제는 이런 파격적인 할인판매의 부담이 결국 출판사들에게 돌아온다는데 있다. 장기적으로는 오프라인 서점을 죽이고 시장 전체를 죽이는 자충수가 된다. 필맥출판사 이주명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통혁명으로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출판사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점도 출혈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이미 몇몇 인터넷 서점들은 대금지급조차 제때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시장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가격파괴 경쟁은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할인폭을 조금만 낮춰도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에 경쟁업체들을 따라 계속 할인폭을 늘려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출혈경쟁을 감당하면서 오래 버티기를 하는 형국이다 .

요즘은 심지어 TV홈쇼핑에서도 이른바 박스 떼기로 책을 판다. 수십권짜리 도서 세트가 “딱 오늘 이 시간에만 이 가격”이라는 광고에 무더기로 헐값에 팔려나간다. 덤으로 몇권씩 더 얹어주는 행사도 있다. 홈쇼핑 업체들과 대형 출판사들도 짭짤하게 재미를 보겠지만 시장의 질서는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독자들은 베스트셀러와 할인판매에 길들여지고 동네 서점은 죽어나간다.

GS홈쇼핑과 CJ홈쇼핑은 지난해 각각 420억원과 400억원어치의 도서를 홈쇼핑으로 팔았다. 두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교보문고 광화문점 매출에 맞먹는 규모가 된다. 홈쇼핑 뿐만 아니라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점까지 파격적인 할인 공세에 나서면서 중소형 서점들의 목을 죄고 있다. 교보문고의 점유율이 이미 30%에 이르는 것을 비롯해 몇몇 이들 메이저 업체들이 놀라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결국 동네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1994년 기준으로 5683개에 이르렀던 전국 서점 수는 2000년 들어 3300개로 줄었다가 지난해에는 1950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10년 사이에 무려 65% 가량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이러니 출판사들도 요즘은 지방 곳곳까지 책을 내려보낼 이유가 없다. 초판 1천부면 웬만한 서점에 다 깔고 남는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나마 그 1천부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은 대형 출판사와 대형 서점, 가격 파괴 할인 매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중소형 출판사와 중소형 동네 서점은 더이상 발을 붙일 곳이 없다.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장에서 이런 빈익빈 부익부는 결국 종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출판사들이나 서점들이나 잘 팔리는 책을 선호하게 되고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도태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소비자들까지 시장을 떠날 수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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