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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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좋다고 할 때, 그때가 바로 천정이다.” 지금 우리 주식시장이 꼭 그렇다. 한번도 쉬지 않고 가파르게 뛰어올랐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사상 최고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가 비관론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가능성을 다시 검토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주가는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행복감 속에서 저물어 간다.

광복절 휴일 다음날이었던 8월 16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한때 1137.46까지 치솟았다. 1994년 11월 18일의 최고기록, 1138.75에 1.39포인트 모자라는 주가다. 그야말로 사상 최고가 돌파를 앞두고 시장에는 들뜬 기대와 조바심이 넘쳐났다. “확신이 필요하다(대신증권)”거나 “서둘러 주식을 팔 필요는 없다(대우증권)”, “역사적 순간을 맞이할 것(키움닷컴증권)”, “외국인이 주도하는 실적장세에 순응하라(현대증권)”는 등 자기최면을 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가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뒤 3일 연속 빠지면서 19일에는 1089.88까지 떨어졌다. 불안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자기최면은 여전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부국증권)”, “후퇴는 있어도 후회는 없다(미래에셋증권)”, “하락 추세 전환 아니다(우리투자증권)”, “반등 시도 이어질 전망(교보증권)”, “불안할수록 분명해지는 투자 척도(한국투자증권)” 등등. 돌아보면 우리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주가가 천정을 찍고 떨어질 때 시장의 분위기는 늘 그랬다.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는 유동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상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시장의 기대가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일단 1000까지는 빠진다고 봅니다. 기업들 실적은 2분기가 피크였습니다. 2분기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기대가 너무 높게 잡혀있어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실적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3분기 실적이 나오면 실망 매물이 쏟아질 거라고 봅니다.”

기업들 실적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만으로도 주가에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유 상무는 기업들 실적 전망에 판관비 증가가 거의 잡혀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익은 심지어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어날 거라고 잡혀있다. 수출 전망도 지나치게 높게 잡혀있다. 배당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홍콩이나 싱가폴 수준에는 못 미친다. 한마디로 아직은 ‘리레이팅’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 상무는 일단 1000까지 빠지는 걸 지켜보고 그때 가서 900으로 낮출 것인가 반등할 것인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900까지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이익을 실현하고 1000 언저리에서 다시 사들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1000에서는 더 빠져도 최대 10%의 손실 밖에 안 보겠지만 지금은 위험이 너무 크다. 한동안 조정은 불가피하고 냉정하게 그런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이 좋은 건 사실입니다. 적립식 펀드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그거 다 해봐야 2%도 안 됩니다. 주가가 빠질 때 받쳐주기는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주가가 계속 오를 수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얼마나 계속 사주느냐가 관건이죠. 지금은 기대를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도이체방크의 스티브 마빈 상무도 유 상무 못지않은 비관론자다. 그는 일찌감치 올해 초부터 한국 시장에서 주식 비중을 낮추라고 경고해왔다. 1월에는 ‘셀 코리아’라는 섬뜩한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고 서비스 부문의 수익성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미국 경기 침체에 따라 수출 전망까지 어둡다는 것이었다. 마빈 상무는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던 7월 말에도 ‘붐의 해부, 분열의 예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리 시장의 펀더멘털을 문제 삼았다.

마빈 상무 역시 유동성이 좋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주가가 펀더멘털에서 괴리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코스피 주가는 2003년부터 미국의 2년 만기와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쫓아갔다. 국내에서는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쫓아갔다. 미국 경제와 한국 수출, 내수 사이클, 기업 이익이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해 4분기부터 GDP 성장률과 주식시장이 따로놀기 시작했다. 기업이익의 움직임과도 엇갈렸다. 주가가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유동성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마빈 상무는 펀더멘털이 따라주지 않는데도 주가가 오르는 것은 미국의 그린스펀이 만들어낸 세계적인 거품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매력적이어서가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관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개인은 여전히 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외국인들이 떠나게 되면 시장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 미국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동반 몰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주가를 기차에 비유했다. “달리는 기차의 앞에 서지 마라. 그러나 우리는 그 기차의 연료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만약 연료가 떨어진다면 그 기차는 멈출 것이다.”

비관론자라면 모건스탠리증권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이코노미스트, 엔디 시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7월말 “아직 진짜 바닥을 찍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추가하락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 한국은 이에 따른 타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내년에야 진짜 바닥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앤디 시에는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며 “중국 경제가 위안화 절상 영향 등으로 경기하강 국면에 들어서면 한국경제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해 한국의 예상 GDP를 3.8%로 보고 있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 최소한 4.5%의 성장률을 기록해야 한다”며 “이는 현재 수출 하락추세와 평균 이하의 내수 회복세를 감안할 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침체 국면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굳이 비관론자가 아니라도 우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린다. 다만 그동안 시장의 관심이 온통 낙관론에 쏠려있었을 뿐이다. 시장의 분위기를 의식해 섣불리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탓도 있다.

홍춘욱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면서도 몇가지 전제 조건을 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 유가의 상승과 내수 경기의 회복 속도다. 국제 유가가 70달러를 넘어서면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벌써부터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월마트는 판매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내수 경기가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소비자들의 6개월 뒤 소비심리를 반영하는 소비자기대지수가 4개월째 하락하고 있는 것도 그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홍 팀장은 지금 주가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물론 주가수익비율로 따지면 9.5배 정도로 낮아 보이지만 EV/EBITDA(기업 가치를 영업이익으로 나눈 비율)은 5.7배로 꽤 높은 수준이다. 흔히 EV/EBITDA는 6배를 넘어서면 오버슈팅, 4배를 밑돌면 언더슈팅이라고 하는데 지금 수준은 거의 오버슈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홍 팀장은 “지금 국면이 고점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과열 국면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르고 미국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릴 거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끝장난다”고 강조했다.

김승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도 과열 가능성을 지적한다. “올해들어 코스피가 나스닥보다 25% 이상 더 올랐습니다. 과거 기록을 보면 동조화가 붕괴되면 3개월 정도는 추세가 유지되지만 결국은 더 크게 빠지는 경우가 많았죠. 이번에도 5월부터 8월까지 석달 가까이 코스피가 나스닥을 앞질렀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일찌감치 8월 11일, “조정이 필요한 4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고 국제 유가와 환율, 미국 시장의 추가적인 조정 등을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그때만 해도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던 무렵이었고 이 연구위원은 엄청난 항의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단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하락추세로 돌아섰다는 건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여전히 장기적인 상승추세는 유효하다는 전제 아래 이 연구위원은 올해 들어 세계에서 우리 주식시장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선은 단기적인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중국과 브라질만 빼고 모두 주가가 크게 올랐죠. 바야흐로 세계적인 대세 상승 국면이라는 겁니다.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미국 시장이 무너진다면 세계적으로 동반 몰락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외국인들 움직임이다. 모든 조건을 다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들이 팔기 시작하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주가가 8월 16일 천정을 찍고 내려온 이후 3일 동안 외국인들은 3천억원 이상 주식을 내다팔았다. 가뜩이나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외국인들의 매도공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자칫 주가 1000이 다시 무너질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들의 이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싱가폴과 대만, 홍콩 등 이머징 마켓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와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미국 시장의 소비둔화가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비관론과 낙관론 사이에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기업 실적이다. 수출이 그런대로 호조를 보이면서 매출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보였지만 이익은 크게 줄어들었다. 거래소 시장 532개사의 상반기 순이익은 11.63%나 줄었다. 무엇보다도 핵심 수출산업인 정보기술 업종까지 부진을 면치 못해 우려를 더한다.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전기전자업종의 순이익은 62.4%나 급감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은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의 목표주가를 합산해 계산한 종합주가지수 전망은 8월 1일 기준으로 1168.65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주가에 이르더라도 지금보다 주가가 크게 오르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기업 실적에 비해 지금 주가가 높다는 이야기도 된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들이 목표주가만 올리고 기업 실적은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실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은데 목표주가만 높여 잡았다는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리서치센터 팀장은 “모두가 1200, 1400까지 이야기하는데 딱히 주가가 오를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낙관론에 가세하기는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미국 시장까지 흔들린다면 미래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며 “쉽게 무너질 장은 아니지만 지나친 기대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지금 주가가 변곡점에 이르러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나친 비관론에 빠질 이유도 없지만 맹목적인 낙관론을 경계해야 할 때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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