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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통계는 조선일보도 이긴다.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14, 2005

그동안 숱하게 많은 부동산대책이 쏟아져나왔지만 정작 문제는 그런 대책이 제대로 먹혀드는지조차 확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온갖 자료가 정부 부처에 흩어져 있는 데다 그나마 정확하지 않은 자료가 많아 실태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집이 새로 지어졌지만 도대체 누가 그 집을 사는 것일까. 아직도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떤 집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기초적인 통계가 없으니 대책도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다.

7월15일 행정자치부 부동산정보관리센터가 내놓은 개인 토지소유 현황 통계는 그런 의미에서 사상 최초의 직접적인 통계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땅 부자 상위 5%가 전국 개인소유 토지 가운데 82.7%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 1%의 소유 비중은 51.5%에 이른다. 간단한 자료처럼 보이지만 이런 통계를 뽑아내려면 행자부의 지적 정보와 토지 및 주민 정보를 망라하는 자료를 하나하나 일치시켜 가며 분석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자료는 수집 대상이었을 뿐 분석 대상은 아니었다. 분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유의미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지만 워낙 엄청난 규모라 쉽게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어떤 토지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는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다른 토지를 얼마나 더 소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표한 자료를 만드는 데도 팀원 모두 보름 넘게 야근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번 자료는 우리나라의 토지 소유 편중 현상이 체감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숫자로 증명해 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료를 보는 일부 보수언론의 태도였다. ‘조선일보’는 사흘 뒤 정부가 통계를 왜곡했다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토지 소유자를 가구수 대신에 전체 인구수로 나눠 계산하면서 실태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기사에 이어 사설에서도 “정부가 조작된 자료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양심과 양식을 벗어던진 악의적 선동”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행자부는 땅을 1% 이상 가진 사람이 28.7%라고 발표했는데 ‘조선일보’는 인구수가 아니라 가구수로 나눠야 한다며 그 비중이 79.1%라고 맞섰다. 그리고 이 같은 수치를 근거로 토지 소유 편중 현상도 16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 신문은 이번 발표를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왜곡된 자료”라고 평가절하했다.

행자부 지적팀의 양근우 팀장은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내용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일단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여러 가구원이 각각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가구의 경우를 반영할 수 없게 된다. 정확한 통계는 다시 뽑아봐야겠지만 실제로 상위 가구의 경우 상당 부분 중복되는 부분이 발생한다는 게 양 팀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센터는 이번 자료를 발표하면서 우선적으로 개인별 현황을 발표하고 추후 세대별 현황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행자부는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가 센터의 신뢰성을 크게 손상했다고 보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8월8일 행자부의 제소를 받아들여 ‘조선일보’에 반론보도 게재 명령을 내렸다. 양 팀장은 “그동안 언론에서 부정확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추측보도를 일삼아왔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통계로 말하고 통계로 분석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동산정보관리센터는 지난해 6월 발족해 지금까지 10억건에 이르는 부동산정보를 수집해 왔다. 행자부 지적팀의 정해익 사무관의 총괄 아래, 행자부 직원 6명과 시스템 관리를 맡은 LGCNS 파견직원을 포함해 모두 13명의 직원들이 이 방대한 정보관리에 달라붙어 있다. 센터는 이번에 개인별 소유 현황을 발표한 데 이어 앞으로 세대별 소유 현황과 토지 소유 변동 추이 등을 분석해 추가 발표할 계획이다.

정 사무관은 “부동산 해법은 정확한 통계만 있어도 절반은 성공”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센터의 과제는 국세청과 건설교통부, 재정경제부 등에 흩어져 있는 부동산 관련 정보를 모두 취합, 본격적인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구축된 자료는 모든 부처가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한 일반에게도 공개할 계획이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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