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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삼겹살, 맛은 비슷하고 가격은 절반.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6, 2005

“우리 집은 수입 삼겹살 안 써요.” 마포구 공덕동의 한 삼겹살집 주인 아주머니는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집 삼겹살은 사실 삼겹살이 아니라 오겹살이다. 껍데기를 벗겨내지 않은 오겹살은 삼겹살보다 1㎏에 1500원 정도 싸다. 삼겹살 가격이 너무 올라서 이 집은 어쩔 수 없이 삼겹살 대신 오겹살을 들여놓는다고 했다. 대부분 손님들은 그 차이를 모르고 먹는다.

이 집은 롯데 하이포크에서 고기를 들여오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1㎏에 1만2천원 정도하던 것이 올해 들어 1만3500원까지 올랐다. 원가가 올랐는데 메뉴 가격은 올릴 수 없으니 그만큼 마진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손님이 떨어질까 봐 수입 고기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국산 고기를 쓴다는 게 이 집의 가장 큰 자랑이다. 요즘은 그만큼 국산을 내놓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집은 삼겹살 1인분을 7천원에 파는데 밑반찬을 빼고 고기만 놓고 보면 4900원 정도가 남는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마진이 1인분에 400원 정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만약 1㎏에 4천원밖에 안하는 수입 고기를 쓰면 1인분 원가가 800원 밖에 안 된다. 마진이 무려 6천원 이상. 지금보다 1천원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음식점 주인들은 수입 고기를 국산으로 속여 팔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사실 국산과 수입 삼겹살에 맛의 차이는 거의 없다. 농림부에서도 이를 인정한다. 축산물위생과 신대식 사무관의 말을 들어보자. “똑같은 수입 사료를 먹고 자라니까 국산이나 수입산이나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구별하기 어렵죠. 다만 냉장과 냉동의 차이는 있습니다. 얼어있는 고기를 불에 녹여서 구워먹으면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겠죠.”

식품위생법은 정육점과 할인점 등의 육류 판매에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음식점에서는 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현재로서는 수입 고기를 국산으로 속여 팔아도 단속할 근거가 없다. 음식점 주인도 굳이 밝히지 않고 손님들도 어디에서 기른 돼지인줄 모르고 그냥 먹는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가격 파괴 삼겹살집 같은 경우 100% 수입 삼겹살을 쓴다고 보면 된다. 국산으로는 1인분에 3천원 정도의 가격이 도저히 나올 수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은 돼지고기는 모두 85만여t. 이 가운데 수입 돼지고기는 12.8%인 10만9천t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3억달러 규모다. 나라별로는 역시 미국산이 25.6%로 가장 많고 칠레와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도 많이 들어온다. 돼지고기 수입은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상반기에만 10만6천t이 수입돼 지난해 전체 수입량에 맞먹을 정도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1년에 평균 17.9㎏의 돼지고기를 먹는다. 10년 전보다 30%나 더 먹는다. 반면 소고기나 닭고기 소비는 오히려 더 줄어들거나 제자리다. 5년 전과 비교하면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8.5㎏에서 6.8㎏으로, 닭고기는 31.9㎏에서 31.3㎏으로 줄어들었다. 양돈협회 이병석 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몇년 동안 광우병 파동에다 조류독감 등이 겹치면서 식생활 습관이 바뀐 탓이라고 봅니다. 자연스럽게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는 문화에 익숙해진 거죠. 문제는 이렇게 소비는 늘어나는데 양돈농가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수입업체들만 신바람이 난 거죠.”

올해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돼지 사육두수는 879만마리로 지난해보다 23만마리나 줄어들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50만마리 이상 줄어들었다. 지금이야 가격이 뛰고 있지만 2003년 폭락 때 영세 양돈농가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탓이다. 그 뒤로도 사료 값이 계속 치솟았고 올해 들어 악취방지법이 발효되고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공급이 달리면서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있다. 산지에서는 100㎏ 나가는 다 큰 돼지 한 마리 가격이 30만원을 넘어섰다. 15만원에도 못미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배 이상 올랐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 가격이다. 문제는 그 틈을 타고 수입 돼지고기가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올라도 양돈농가들의 주름살이 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까지는 수입 돼지고기가 국내 양돈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일단은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고 소고기도 마찬가지지만 국산이 더 맛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진각 양돈자조활동자금위원회 사무국장은 앞으로의 상황을 우려한다. 냉장 돼지고기가 수입돼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맛에서 큰 차이가 나는 소고기와는 다릅니다. 수입 돼지고기가 냉장 상태로 들어오면 국산과 본격적인 경쟁이 될 겁니다. 자칫 양돈산업이 송두리째 붕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돈농가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의 추이를 주목한다. 칠레는 FTA가 통과된 이후 우리나라에 관세 없이 돼지고기를 수출하면서 돼지고기 수입 비중 2위로 올라섰다. 거리가 먼 탓에 칠레 돼지고기는 아직 냉동상태로만 들어온다. 그러나 만약 낙농 선진국 캐나다 등과 FTA를 체결하게 되면 냉장 상태의 수입 돼지고기가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캐나다 돼지고기의 경우 국산보다 더 맛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농림부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냉장과 냉동의 차이만 강조하고 있다. 돼지고기 시장을 개방한지 7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들이 언제까지 국산이라는 이유로 국산 돼지고기를 고집할 것이냐는데 있다. 맛의 차이가 없고 수입 고기의 품질을 확신할 수 있다면 굳이 국산을 고집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애국심으로 지켜내기에 맛은 비슷하고 가격의 차이는 너무 크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냉동돼 있으면 수입 삼겹살 의심.

‘동의보감’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허약한 사람을 살찌게 하고 음기를 보하며 성장기의 어린이나 노인들의 심신허약을 예방하는데 좋은 약이 된다. 특히 돼지고기에는 뇌세포와 신경세포 활성화에 필수적인 비타민B1가 풍부하다. 돼지고기 100g당 비타민B1은 0.72∼0.96㎎으로 다른 고기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 성인이 하루 필요로 하는 양은 1.1∼1.3㎎으로 부족하면 기억력 상실과 집중력 산만, 어깨결림 등을 일으키기 쉽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 중에서도 특히 삼겹살에 집착한다. 등심이나 안심, 뒷다리살 등은 남아도는데 삼겹살만 부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00㎏짜리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삼겹살은 10㎏ 정도 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 다들 삼겹살만 찾으니 공급이 달릴 수밖에 없다. 양돈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도축된 돼지 가운데 삼겹살은 98.6%가 소비되고 있지만, 이를테면 뒷다리 소비량은 25.5%에 그친다. 지난해 전체 수입 돼지고기의 47.2%가 삼겹살이었다. 오죽하면 양돈자조금협회에서 삼겹살 말고 다른 부위도 많이 먹어달라고 광고까지 낼 정도다.

소비자 입장에서 국산과 수입 삼겹살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냉장과 냉동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양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돼지고기 10만9천t 가운데 냉장 고기는 3천t 정도밖에 안 된다. 3%에도 못미치는 셈이다. 나머지는 모두 냉동돼서 들어온다. 냉동돼 있는 고기가 모두 수입 고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수입 고기는 거의 모두 냉동 고기라고 보면 된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에서 맛의 차이가 갈린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냉동된 수입 삼겹살을 녹여서 냉장 삼겹살처럼 내놓는데 이 경우 물이 많고 어딘가 흐물흐물한 느낌이 난다. 요즘은 통째로 냉동해서 들여와 국내에서 녹여서 잘라 파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냉장 삼겹살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잘려진 결을 잘 살펴보면 기계로 자른 냉동 삼겹살을 구별해낼 수 있다.

양돈협회는 음식점에서도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입산을 국산으로 속여서 두배 이상 폭리를 취하는 양심불량 음식점들을 단속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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