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 제조업 외면하고 금융에 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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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필립스의 합작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혔다. IMF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외국 자본 대부분이 칼라일이나 론스타, BIH 등 투기적 성격의 금융자본이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LG필립스LCD의 사례가 돋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립스와 론스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먼저 필립스는 투자한지 6년이 다 돼도록 투자 지분을 거의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고배당을 요구하거나 자산을 매각해 이익을 늘리고 유상감자 등으로 이익을 빼내가는 투기자본과는 근본이 다르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필립스가 시세차익에 욕심이 없다고 보는 건 무리다.

필립스는 최근 전체 보유지분 6조8천억원 가운데 3천억원 분량을 매각했다. 필립스도 일차적인 투자목적은 어떤 형태든 차익실현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필립스는 지난 6년 동안 5조2천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을 보고 있다. 2000년에는 설비투자에 쫓기는 와중에 6900억원의 배당을 실시해 LG전자와 필립스가 반반씩 나눠갖기도 했다.

물론 필립스의 경우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 필립스는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높여왔다. 그 결과 LG필립스LCD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6년 동안 업계 5위에서 1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LG필립스LCD의 이사회는 LG와 필립스쪽에서 각각 3명씩, 그리고 사외이사 2명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구성된다. 연구개발과 영업, 마케팅, 위험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두 회사의 노하우를 서로 나눈다는 게 구덕모 부사장의 설명이다. 구 부사장은 “선진 금융시스템에 익숙한 필립스의 노하우 덕분에 지난해 한미 동시 상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LG는 필립스가 심어놓은 브랜드 이미지의 효과 덕분에 유럽 시장을 손쉽게 개척할 수 있었고 필립스로서도 LCD 유리기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무엇보다도 필립스의 초기 투자자금이 없었으면 LG필립스LCD도 일본 업체들처럼 경쟁에 뒤처졌을 가능성이 있다. 필립스의 합작은 그야말로 윈윈 전략의 시너지 효과로 이어졌다.

필립스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얻은 드문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LCD 담당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필립스쪽 경영진들이 신규 설비투자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회사쪽 관계자는 “경영진이 투자에 소극적이라면 이렇게 천문학적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관측을 전면 부인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당장은 아니겠지만 필립스도 언젠가는 시세차익을 챙겨서 빠져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직접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1970년부터 1997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누적 기준 177억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나 1997년 IMF 이후 2004년까지 계산하면 누적 기준 1038억달러로 지난 30년의 5배 규모에 이른다. 그동안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이 모두 필립스 같지는 않다. 특히 IMF 이후에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성장기여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와 성장률과의 상관관계는 0.025로 나타났는데 1997년 이후만 놓고 보면 -0.017로 오히려 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윤여필 연구위원은 “IMF 이후에는 제조업보다 서비스 부문에 투자가 집중됐고 M&A형 직접투자가 늘어나면서 재투자 유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별 비중을 보면 이런 차이는 명확하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1999년 45.9%에서 2002년 24.2%로 2003년에는 22.9%로 계속 줄어들었다. 반면 서비스업은 1999년 53.8%에서 2002년 73.8%로 2003년에는 74.8%로 계속 늘어났다. 서비스업 가운데 금융 및 부동산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5.5%에서 31.0%, 48.1%로 늘어났다. IMF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가 성장 기여도가 낮은 금융 부동산 부문에 집중됐고 제조업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비스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47.2%로 미국(82.3%)나 일본(94.1%), 호주(76.2%)보다 훨씬 낮다.

올해 들어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달 산자부가 내놓은 외국인 투자동향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46억달러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줄어들었다. 서비스 부문 투자는 16.3% 늘어났으나 제조업은 거꾸로 51.3%나 줄어들었다. 결국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 가운데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60.0%에 이른다.

최근 외국계 투자기업들의 잇따른 철수 도미노는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다. 비교적 건전한 제조업 직접투자는 사라지고 투기적 금융투자만 범람하는 상황이다. 덴마크의 블록 완구업체인 레고는 최근 우리나라에 진출한지 21년만에 공장을 전면 철수하고 판매조직만 남기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시장이 위축된 탓이겠지만 인건비 등 생산원가가 높아져 타산이 맞지 않아 철수한다는 게 레고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밖에도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릴리, 와이어스 등이 잇따라 생산공장을 매각하고 철수해 이런 우려를 더했다.


LG는 합작을 좋아해.

삼성이 자체 유보자금이나 계열사 출자를 활용해 직접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것과 달리 LG와 GS, LS 등 범LG 계열사들은 외국 선발업체와 제휴를 맺어 합작법인을 세우는 전략을 쓴다. LG필립스LCD 구덕모 부사장은 “합작기업의 경우 지분매각에 따른 유동성 확보와 대규모 신규투자에 대한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영 제휴관계를 형성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LS니꼬동제련은 과거 LG산전의 동제련사업 부문을 분리, 일본의 니꼬금속과 합작해 1999년에 설립된 회사다. LG필립스LCD의 경우처럼 3억7천만달러의 자본을 끌어들인 바 있다. GS칼텍스정유 역시 1967년 미국의 칼텍스와 50 대 50으로 합작 투자해서 만든 회사다. LS전선은 1971년 일본의 히다찌전선과의 합작투자로, LG마이크론은 1983년 일본의 DNS, LG-IBM은 1996년 미국의 IBM, LG다우폴리카보네이트는 1998년 미국의 다우케미칼과 합작으로 탄생한 회사다. LG전자는 LCD사업을 매각한데 이어 2001년에는 CRT 모니터 사업부문을 역시 필립스에 매각, LG필립스디스플레이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LG전자는 이때도 15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LG는 이같은 방식으로 IMF 이후 최근까지 65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해왔다. 알짜배기 기업이 헐값에 넘어갔다거나 고율 배당으로 국부가 빠져나간다는 우려도 있지만 적절한 시기의 합작 투자 전략가 LG 계열사들의 재무건전성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설립 6년만에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회사. 상장 1년만에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3위로 떠오른 회사가 있다. 그 성공의 비결은 13조원을 웃도는 엄청난 규모의 설비투자에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략이었겠지만 돌아보면 이런 공격적인 설비투자가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성장 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7년 우리나라는 그런 성장 동력을 잃고 정체돼 있다. LG필립스LCD의 성공사례는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인터뷰 / 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
기술력과 자본의 만남, 윈윈의 선택.

필립스전자는 1976년 필립스 그룹의 한국 현지법인으로 설립됐다. 신박제 사장은 1993년 사장에 취임해 1999년 LG필립스LCD 합작투자에도 주도적인 공헌을 했다. 최근 외국기업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 가운데 일부 투기적 금융자본의 폐해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자본의 유입은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산업 투자는 줄어들고 투기자본의 국부유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 외국 자본이 무조건 만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 투기적 성격의 금융자본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용이나 부가가치 창출 등 현지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따라 혜택이나 지원에 차등을 둘 필요가 있다.

– 국내 LCD 산업이 이제 막 첫발을 내딛던 무렵 필립스가 당시 LG-LCD의 성장가능성에 주목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필립스는 당시 LG-LCD에서 LCD 유리기판을 수입해서 썼는데 당시 업계 5위였지만 기술력은 일본 업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필립스의 자본이 LG의 기술력과 결합한 것은 그야말로 윈윈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현재 LG필립스LCD는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 LG와 필립스의 합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있었나.
= 필립스로서는 안정적으로 제품 공급을 받을 수 있고 LG로서는 거꾸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선진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필립스의 노하우를 상호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 증권시장에 동시에 상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너지 효과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까지 외국으로 공장을 옮겨가는 상황이다. 외국 투자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시장의 매력은 무엇인가.
= 한국은 인력자원과 인프라가 뛰어나다. 특히 정보기술 분야의 인프라가 그렇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업체들도 많지만 핵심기술은 여전히 한국에 강점이 있다.

– 외국 투자기업이 성공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할까. 외국 투자기업이 겪는 고충은 어떤 것들이 있나.
= 기술과 경영은 글로벌 수준으로 기업의 문화와 고객 서비스 등은 철저히 현지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게 성공의 첫째 조건이다. 외투기업이 겪는 고충이라면 무엇보다도 인허가 관련 규제를 들 수 있다. 많이 합리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문제가 많다. 이 부분만 개선돼도 외자유치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고 본다.

– 외국기업협회 신임 회장에 부임하는 계획을 말해 달라.
=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 동안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인데 책임감이 크다. 회원사들과 교류 및 협력 채널을 확대하고 투자와 경영,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도 활발히 해 나갈 방침이다. 선진 경영기법을 국내에 정착시키고 일자리 창출과 외자 유치 등에 회원사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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