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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7, 2005

편견을 무너뜨리는 특별한 책이다. 장하준·정승일 선생의 대화를 이종태 선배가 옮겨적었다. 지난 1년, 사고와 발상을 전환하는데 내게 크게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다. 중요한 부분을 요약 또는 발췌해 다시 정리한다.

장하준은 개혁이 종속을 부른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의 얼치기 개혁이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하고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 그런데 사실 신자유주의는 저성장주의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설비 투자를 막고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성장은 정체되는데 금융자본의 이익은 늘어난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재벌의 과잉 투자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과잉 투자 때문에 성장해왔다. 포항제철도 그렇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도 그렇다. 과잉인가 아닌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런 과잉 투자 때문에 금리도 높았고 저축도 계속 늘어났다. 그래서 저축과 투자,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했다.

신자유주의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무너뜨렸다. 이제는 기업의 이익이 설비 투자에 들어가지 않고 주주들에게 빠져나가고 있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든다.

정승일은 지적한다. IMF 직전에는 분명히 과잉 투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잉 투자는 금융시장 개방을 타고 흘러들어온 외국 자본이 조장한 것이었다. IMF의 진짜 원인은 재벌의 과잉 투자가 아니라 금융 자유화에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종속은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는 조금 다르다. 그때 우리는 엄청난 빚에 시달렸지만 결국 모두 갚아버렸다. 그게 다른 주변부 나라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멕시코와 달랐다. 우리에게는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수출 산업이 있었다. 기술 종속은 불가피했지만 결국 자립에 성공했고 종속을 벗어났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본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자본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지배권을 내주는 상황이 됐다. 주주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인 종속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1961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였다. 아프리카의 가나는 179달러, 아르헨티나는 400달러였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평균 6%에 이르렀다. 6%면 12년만에 두배가 된다는 이야기다.

장하준은 경제 발전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박정희의 자립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충격적인 문제제기는 계속 이어진다. 장하준은 우리의 경제 발전은 착취 때문에 성공했지만 그보다는 착취한 부를 이승만처럼 흥청망청 날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잘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장하준은 박정희가 한때나마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성장을 추구했지만 전통적인 시장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시장주의는커녕 오히려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고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주의라면 몰라도 시장주의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은 여기서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성장과 기득권의 이익이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정희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아니었다. 이건 당연하다. 장하준은 박정희가 성공한 이유가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승일의 논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성장은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한 결과였지만 그 30년 동안 실질 임금은 꾸준히 상승했다.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억압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박정희 옹호는 재벌 옹호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 중심의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었거나 적어도 불가피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냐고 반문한다. 장하준은 재벌을 깨면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 자본만 이익을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경우도 사회적 타협은 재벌이 지배할 때만 가능하다. 금융자본은 이익을 챙겨서 떠나면 그만이다. 금융자본은 기업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여기서 장하준은 지적은 놀랍고 불편하다. 박정희가 시장주의와 거리를 뒀기 때문에 시장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인 주주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정승일은 우리 경제가 아프리카처럼 저투자 저성장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뜻 막연한 박정희 시대 성장주의의 향수처럼 들린다. 정승일은 외형 성장이 나쁜 거냐고 반문한다. 내실있는 성장을 하느라 성장도 없고 분배도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장하준은 한발 더 나가 분배를 잘 하려면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성장이 둔화된 1997년 이후 분배가 급속도로 악화된 걸 봐라. 투자가 없으면 일자리도 없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계속된다. 좌파라면 시장주의를 비판해야 한다.

다시 정리하면 이 일련의 논의에서 시장주의와 성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시장주의가 성장을 막고 있다는 논리를 편다. 분배를 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성장을 하려면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와 맞서싸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부채비율도 관건이다. IMF 이후에 우리 기업과 은행들은 앞다투어 부채비율 줄이기에 나섰다. 부채비율을 낮춘다는 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기업의 성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채비율이 줄여서 보는 이익은 결국 주주들의 몫이다. 주주들은 부채를 늘려서 새로운 사업에 나서기 보다는 그냥 현금을 쌓아두기를 바란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이익을 수탈하는 합법적 창구가 됐다. 주주들은 돈을 벌겠지만 그 이익은 결국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희생한 대가다.

은행은 손쉬운 주택담보 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돈이 몰리면서 부동산은 폭등하고 중소기업에는 돈이 마른다. 은행과 대기업이 돈을 벌지만 그 돈은 주주들에게 빠져 나간다. 미래는 암담하지만 주주들은 먼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든지 떠나면 그만이니까.

신자유주의의 천국, 영국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금융자본이 경제를 쥐고 흔들면서 파운드화 강세를 유도했고 제조업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설비 투자에 실패하면서 기업들 경쟁력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결국 저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은 한번 잘려나면 인생이 끝장 난다는 인식으로 맞섰다. 사회복지는 열악했고 노동자들은 물러설 데가 없었다. 영국의 망국병이라는 강성 노조는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장하준의 경고는 살벌하다. 영국은 축산업 규제를 푼 다음 광우병을 맞았고 철도를 민영화한 다음 열차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노조를 탄압하고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해 왔지만 결국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줄줄이 망했다. 대처가 망국병을 치유했다고 떠들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승일은 노동운동의 주적이 재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전문 경영인이 더욱 주주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재벌은 사회적 통제의 범위에 있지만 금융자본, 특히 외국 투기자본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운동이 재벌과 맞서 싸운다면 자칫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노동운동의 주적은 결국 초국적 금융자본과 시장 근본주의다. 이게 핵심이다.

논의는 다시 국가의 역할로 돌아온다. 장하준은 관치금융이 왜 나쁘냐고 반문한다. 정부가 금융에 개입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정부는 과연 무조건 나쁜 것인가. 시장에 마냥 맡겨두면 되는 것인가. 시장이 신인가.

박정희가 시장을 억압했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을 풀어줘야 한단 말인가. 그게 과연 민주주의인가. 정부의 힘을 뺏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장하준은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투쟁에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눌렀는데, 이제 다시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정부의 간섭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맞서 시장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이데올로기다.

분명한 것은 국가와 관료주의를 거부하면 그 대안은 시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사회적 타협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명확한 결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부분 설명은 조금 부족하다. 이른바 한국형 사회적 타협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상황이다.

할 말은 많지만 평가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한다. 세 사람 모두의 건강을 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 대화, 이종태 엮음 / 부키 펴냄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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