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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은 자식 하이닉스의 금의환향.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15, 2005

하이닉스반도체만큼 주식 투자자들을 울린 기업도 없다. 한때 하이닉스의 주식 수는 52억4천만주나 됐다. 주식 한장 길이를 15㎝라고 하고 한줄로 늘어놓으면 78만6천㎞, 서울과 부산을 873번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될 정도였다. 달나라까지 한번 왔다 갔다 하고도 남는 거리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이닉스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가장 많은 주주를 몰고 다니는 기업이다. 2002년에는 주주가 4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도 23만명에 이른다. 아직도 전체 주식 투자자 10명 가운데 한명은 하이닉스의 주주인 셈이다. 하이닉스는 이들의 눈물을 먹고 자라왔다.

1999년 6월 5만3100원이었던 하이닉스의 주가는 2003년 3월 125원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21분의 1로 감자까지 했다. 감자 비율을 감안하면 그해 3월 실제 주가는 5.95원이었다. 주가가 거의 1만분의 1로,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됐다. 1천만원을 집어넣었으면 1120원 밖에 안 남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주가가 빠지는 가운데서도 단타 투자가 몰렸고 한때는 하루 거래량이 13억주에 이르기도 했다. 증권거래소 전체 거래량의 70% 규모였다. 하이닉스 하나만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체 거래량에 맞먹을 정도였다. 증권사 수수료 수입의 20%를 하이닉스가 벌어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만인의 주식이었다.

그런 하이닉스가 바닥에서 탈출, 7월 12일 마침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했다.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지 3년 9개월만이고 원래 계획보다는 1년 8개월이나 앞당겨졌다. 주가는 그 사이에 125원에서 2만2050원까지 무려 176배나 뛰어올랐다. 실적도 크게 나아졌다. 지난해 1조693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데 이어 올해도 1조원 이상은 무난할 전망이다.

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은 2003년 14.7%에서 지난해 16.2%로 늘어났다. 반면 한때 하이닉스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마이크론의 시장 점유율은 19.1%에서 15.9%로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률도 하이닉스는 33%, 마이크론은 9%로 비교가 안될 정도다. 부활한 하이닉스는 이제 삼성전자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한 업계 2위 자리를 탄탄히 굳혔다.

하이닉스의 부활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3년 전 일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하이닉스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을 때 시장은 하이닉스의 퇴출을 종용했다. 그해 하이닉스는 매출 4조원에 적자가 5조원, 부채는 8조7천억원에 이르렀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독자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해 봄과 여름, 세계적으로 공급이 넘쳐나면서 디램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하이닉스는 물론이고 덩달아 삼성전자까지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주주들과 노동조합,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이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주장했지만 설득력은 빈약했다.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가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가까스로 헐값매각과 국부유출은 막았지만 하이닉스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때 하이닉스는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 취급을 받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미국과 유럽연합은 하이닉스가 채권단의 부당한 지원을 받고 있다며 상계관세를 부과해 숨통을 조였다. 포화상태에 이른 세계 반도체 시장은 그야말로 누군가가 죽어야 사는 상황이었고 흔들리는 하이닉스가 그 공격대상이 됐다. 하이닉스가 살아날 거라고 보는 살마은 거의 없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때 우리에게 하이닉스는 내놓은 자식이었다. 시장에는 “하이닉스가 죽어야 삼성전자가 산다”는 논리가 넘쳐났고 하이닉스가 주식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주주들은 너도나도 주식을 내던졌고 주가는 껌값도 안될만큼 곤두박질쳤다.

그랬던 하이닉스가 살아난 것은 무엇보다도 혹독한 구조조정의 성과였다. 채권단은 비주력 사업부문이었던 현대큐리텔과 현대LCD, 현대시스콤, 하이디스, 현대네트웍스, 매그나칩, 현대이미지퀘스트 등을 모두 떼내어 팔았다. 그렇게 갚은 빚이 2조4천억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반도체만 남겨놓고 모두 내다 판 셈이다.

그렇게 반도체에 ‘올인’한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이 반등한 것은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2000년 5달러에서 2002년 한때 1달러 언저리까지 떨어졌던 128메가 디램 가격은 2003년 들어서면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출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숨통을 틔웠다. 경기도 경기지만 운도 크게 따랐다. 경쟁업체들이 300㎜ 웨이퍼 공장을 짓던 무렵 하이닉스는 낡은 설비들을 리모델링하면서 버텨왔다. 생존을 걱정하던 상황이라 신규 설비투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새로운 시장은 빨리 뜨지 않았고 먼저 치고 나갔던 업체들은 엄청난 시행착오와 손실을 치러야 했다. 하이닉스는 그동안 설비투자 비용을 3분의 1로 줄이면서 위기를 버텨왔고 그 과정에서 기술력과 생산성이 크게 늘어났다. 하이닉스는 올해 들어서야 300㎜ 공장을 짓고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이번에 지은 공장은 경쟁업체들 보다 두배 이상의 생산효율을 자랑한다.

플래시 메모리도 하이닉스의 회생에 큰 기여를 했다. 경쟁이 치열한 디램과 달리 플래시는 이익이 굉장히 많이 남는다. 생산 효율도 디램보다 훨씬 높다. 2분기 기준으로 플래시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8% 밖에 안되지만 이익 비중은 61.4%에 이른다. 일찌감치 플래시 시장에 뛰어든 전략이 주효했던 셈이다. 플래시 부문에서는 앞으로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독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하이닉스 부활의 숨은 주역은 역시 40만명의 주주들과 채권단이다. 엄청난 규모의 출자전환과 감자를 치르면서 하이닉스의 자본금은 한때 26조2천억원에서 2조2천억원까지 줄어들었고 그 부담은 모두 주주들과 채권단이 떠안았다. 이들의 눈물이 지금의 하이닉스를 만들었다. 하이닉스는 이제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정부는 왜 매각에 안달했을까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지만 2002년 4월 하이닉스 이사회가 막판에서 매각 협상안을 뒤집지 않았으면 자칫 하이닉스는 마이크론코리아가 될뻔했다. 박종섭 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그때 만장일치로 매각 협상안을 부결시켰다. 박 사장은 그 책임을 지고 사장에서 물러난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무렵 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거의 거저 주다시피 마이크론에 하이닉스를 넘겨주려고 했다. 전윤철 당시 부총리를 비롯해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 당시 금감위장 등 정부 관료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하이닉스의 매각을 외쳐왔다.

매각 조건은 매우 불리했다. 매각대금은 34억달러, 여기에 마이크론은 15억달러의 채권단 지원을 요구했다. 34억달러도 현금이 아니라 마이크론의 주식으로 받기로 했다. 마이크론으로서는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셈이고 채권단 입장에서는 매각이 되더라도 건질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마이크론은 15억달러의 지원을 요구하면서 보증을 설 수 없다고 버텼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급기야 매각협상에 소극적이었던 김경림 외환은행장이 중도 퇴진하기에 이른다. 자진 사임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입김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김경림 행장의 뒤를 이은 사람이 지금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으로 가 있는 이강원 행장이다. 이 행장은 취임하자 마자 하이닉스의 매각을 몰아부쳤다. 심지어 “가격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사회에서 매각 협상안이 부결됐을 때는 즉각 “경영진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끈질긴 구애는 마이크론이 협상을 포기하고 물러나면서 물거품이 됐다. “하이닉스는 끝났다”고들 말했지만 그로부터 3년 뒤 하이닉스는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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