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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를 만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8, 2005

지난달 27일 비정규노동법공대위가 20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7.8%가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을 제한하고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응답했다. “노동계 및 경영계의 합의를 끌어낸 뒤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81.8%나 됐다. 이런 조사 결과는 지난해 10월 국정홍보처가 일반 국민의 77.9%가 정부 법안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상충된다. 올해 들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기까지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역할이 컸다. 센터는 오는 7월 13일 창립 5주년을 맞는다. 김성희 소장을 만나 비정규직 문제 쟁점화 5년을 돌아보고 과제와 전망을 짚어봤다.

– 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미흡하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이를 두고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돌부리”라며 “파내는 게 예방차원에서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바쁘니까 그냥 가겠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늘어놓았다.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거나 “단세포적 기준”이라고도 했다. 김 장관의 이런 돌발 발언을 어떻게 보나.
= 작년에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내놓았을 때 “어, 정부가 왜 이래” 하는 사람들 많았다. 이 정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거다. 굉장히 어설픈 기대였고 지나친 기대였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과실범이 아니라 확신범이라고 본다. 출범 4개월까지만 해도 조금 기대가 있었는데 마침 새만금 헬기 시찰 사건 등으로 보좌진이 전면 물갈이 되면서 끝장났다. 지금은 완전히 경제 정책에 예속돼 있다. 독립적인 노동 정책을 펼칠 힘도 의지도 없다.

– 노무현 정부에 기대를 버렸다는 이야기인가.
= 자유주의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동문제의 해법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노동문제는 시장의 핵심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시장을 거스를 수 있다고 보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대다. 자본의 논리가 여과 없이 관철되는 사회로 가는 거다. 그런데도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도 이 정부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정부가 노동정책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도대체 이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법안, 이 정도 말고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노무현 정부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 정책은 관료들이 쭉 틀어쥐고 있다. 김영삼 때부터 하나도 안 바뀌었다. 국민의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개위가 국가 경쟁력 운운하면서 은근슬쩍 들어가고 초창기에는 신중한 행보를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바뀐다. 정치가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장치를 하나도 못 만들어 냈다. 결국 이 정부는 자본의 이해를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거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그렇다면 결국 진보 정당이 해답이라는 말인가.
= 그렇다. 수구와 보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많이 한다. 수구냐 보수냐가 아니라 보수냐 진보냐를 놓고 크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해법은 결국 진보정당을 튼튼히 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승부를 해야 하는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

–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 유연화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 문제는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 동안 근무하면서도 고용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임시직 기간제 고용이 전체 노동자의 40%에 이른다. 유럽의 경우 정규직 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노동자가 17.7%, 기간제 노동자는 12.5% 정도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 노동이 자발적인 선택인가 강요된 선택인가 하는 부분이다. 유럽의 경우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한 비자발적 파트타임 비중은 16.9%에 지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비중이 59.5%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강요된 차별이 비정규직의 대부분이다. 유럽에서 차별금지와 동등대우의 원칙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다르다.

– 국회 계류 중인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
= 그런 보호라면 아무런 장치가 없는 상태와 동일하다. 풀려있는 걸 막아주는 게 보호 아닌가. 그런데 이 법은 보호가 아니라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정규 확산법이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는 거의 없다. 노사정 합의라는 게 뭔가. 정부가 발 빼고 있을 거면 노사정 합의를 뭐하러 하나.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내내 뒤에 빠져있었다. 공익위원 보고 중재안을 내라고 했다가 나중에 그걸 뒤바꿔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걸로 내놓았다. 보호법안이라고 이야기하기 낯 뜨거울 정도다.

– 보호법안의 취재에 맞게 수정한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 핵심은 사유제한이다. 일정 기간만 고용해야할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라는 거다. 출산, 휴가로 결원이 생기거나 계절적 업무인 경우, 사업완료 기간인 경우 등이다. 사유제한은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기간제 제한 방식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우 사유제한 제도를 두고 있짐나 기간제 비중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가 노동 현실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력과 교섭력이다.

– 노동계가 법이나 제도적인 해결에 의존해 왔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장에서는 법도 제도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직력과 단체교섭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딜레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과 제도가 아직도 영향력을 크게 갖고 있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왔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국가 권력이 법과 제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법과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의존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명확하다. 결국 노동자 주체의 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면승부가 시작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주체적인 노력이 확산되는 거다. 초보적인 권리, 노동3권도 부정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제도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제대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만큼 열악하다. 파업도 어렵고 조직력을 동원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비정규 조직이 있는데 모두 사업장 단위에 머물러 있다. 전국적인 연대가 있긴 하지만 권위를 가진 연합체는 아니고 민주노총 산하에 있어서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현재로서는 어떤 전향적인 해결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일단은 사업장 단위를 넘어선 해법을 찾아야 하고 법과 제도적 해결 보다는 세력관계에서 결정될 거라고 본다.

– 그렇다면 산별 전환이 해답인가.
=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산별로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직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문제는 특히 그렇다. 다시 강조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 속도가 더디긴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로 나서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비약적인 계기가 언젠가 나타날 거다.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될 거다. 멀지 않을 거라고 본다.

–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 스웨덴은 최근 사유제한을 완화했다. 독일은 사유제한은 없고 기간제한만 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는 노동 유연화를 도입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 나라 모두에서 기간제 비중이 높거나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비정규 고용의 개념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고 정규 고용이 고용의 기준으로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영향력과 단체 교섭의 포괄정도가 넓기도 하다. 법과 제도가 문제해결의 핵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비정규노동센터의 5년을 평가해 달라.
= 우리 센터의 5년은 비정규직 문제 쟁점화 5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간과했거나 불충분하게 인식했던 많은 과제들을 새롭게 제기했다. 노동자의 연대와 노동운동에 대한 성찰, 노동시장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 법과 제도 해석의 보수화 경향과 신자유주의의 범람, 유연화 일변도 자본전략의 사회경제적 결과, 재벌중심 한국경제의 초과착취구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하의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 등 한국사회 주요 당면한 현실을 깊이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 비정규 노동운동의 전망을 말해 달라.
= 다행히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 비정규 투쟁은 사회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거라고 본다. 비정규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생존의 문제이지만, 보수권력과 자본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존립의 문제다. 경쟁력의 핵심원천을 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에 의존하는 현재의 기반을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노동운동 전반이 천민적 자본의 폭압적인 행태와 맞서는 과정에서 자기 발전을 했듯이 앞으로 비정규 운동은 시장폭력의 횡포와 맞서 버티는 만큼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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