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남은 브릿지증권, 직원들이 인수하기로.

Scroll this

7년 가까이 단물을 빨아먹던 대주주가 마침내 떠날 계획이다. 그들은 이익을 챙길만큼 챙겨갔고 그 결과 회사는 거의 껍데기만 남았다. 이런 회사를 직원들이 사들여 살려보겠다고 나섰다. 브릿지증권은 상장기업으로는 국내 첫 ESOP 도입사례가 될 전망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BIH는 매각이 여의치 않으면 청산이라도 할 태세였다.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멀쩡한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으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애가 탈만도 했다. 그래서 결국 직원들이 나서서 회사를 사들이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게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거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6월 24일 골든브릿지와 ESOP 컨소시엄은 기자회견을 갖고 브릿지증권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골든브릿지는 자산관리 및 구조조정 전문회사고 ESOP은 브릿지증권 직원들의 우리사주조합이다. 정확히 말하면 골든브릿지가 벼랑 끝에 내몰린 직원들을 끌어들여 타협점을 찾고 청산 직전의 회사를 사들인 셈이다. 이날 오전 이들은 대주주 BIH와 독점적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250억원의 매각대금 가운데 850억원은 유상감자로 나머지 400억원은 골든브릿지와 ESOP이 자체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BIH는 2200억원을 투자해서 지금까지 배당과 유상감자 등으로 2359억원을 빼내간 바 있다. 이번 매각이 성공하면 1250억원을 더 가져갈 수 있다. 투자수익은 모두 3609억원, 수익률은 무려 64.0%에 이른다. 7년이라는 투자기간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수익률이다.

BIH는 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의 약자다. 말레시이아의 조세회피지역, 라부안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로 미국의 위스콘신 연기금과 홍콩의 리젠트 퍼시픽 그룹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다른 구체적인 실체는 알려진 바 없다. BIH는 1998년 대유증권을 인수한데 이어 2000년 일은증권을 인수하고 2002년, 두 증권사를 합병, 브릿지증권을 출범시킨다. BIH의 지분비율은 42.7%였다.

BIH는 이미 대유증권 시절, 액면가의 70%에 이르는 배당으로 204억원을 챙긴 바 있었다. 2002년 브릿지증권 출범 이후에는 좀더 본격적인 투자회수가 시작됐다. 대표적인 수법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한 지분 늘리기. 회사 자산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인 다음 소각하면 그만큼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늘어나게 된다. 브릿지증권은 2002년과 2003년 사이 213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했고 BIH의 지분은 42.7%에서 77.8%까지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더 고질적인 수법은 무상증자와 유상감자였다. 무상증자를 하면 회사의 자산이 자본금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어 유상감자를 하면 이 자본금이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빠져나간다. 브릿지증권은 합병 이후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유상감자를 했다. 자본금은 1164억원에서 한때 2296억원까지 늘었다가 796억원으로 줄어들었고 714억원에 이르는 을지로와 여의도 사옥도 팔려나갔다. BIH는 이 과정에서 2155억원을 챙겼다.

BIH는 올해들어 청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매각 상대를 물색해 왔다. 5월에는 리딩투자증권에 브릿지증권을 매각하는 계획을 추진했다가 금융감독위원회의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리딩투자증권은 외상매각 방식으로 브릿지증권을 사들인 다음 자산을 매각해 인수대금을 지불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350억원의 인수대금을 지불하고 나면 브릿지증권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 될 상황이었다.

이상준 골든브릿지 사장이 BIH를 접촉한 것은 5월 말, 리딩투자증권의 매각 협상이 좌절된 직후였다. 2000년에 설립된 골든브릿지는 골든브릿지자산운용과 골든브릿지구조조정 등 자회사를 거느린 금융지주회사다. 2003년에는 쌍용캐피털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골든브릿지를 종합 투자은행 그룹으로 키울 계획으로 증권사 인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브릿지증권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BIH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BIH는 투자자들에게 돈을 끌어모아 만든 사모펀드입니다. 펀드의 만기가 끝났으면 원금과 투자이익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겁니다. 투자했다가 이익 챙겨서 빠져 나가겠다는데 그걸 막을 방법이 없는 거죠. 법적으로 유상감자는 물론이고 청산도 합법이니까요.”

이 사장은 BIH의 자본회수를 돕되 브릿지증권이 생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 동시에 노동조합의 동의도 얻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ESOP와 공동인수였다. 100억원을 깎아서 1250억원 가운데 850억원을 유상감자로 내주고 나머지 400억원 가운데 50억원을 ESOP가 부담하는 계획이었다. 마침 올해 10월부터는 차입형 ESOP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는 점도 이런 계획을 뒷받침했다.

차입형 ESOP는 회사차원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사고 그 주식을 ESOP에 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번 브릿지증권의 경우에는 50억원이 ESOP에 배정될 계획이다. 직원들 200여명이 한 사람 앞에 평균 2500만원 정도씩 부담하게 된다. 골든브릿지 입장에서는 인수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의 청산을 막을 뿐만 아니라 주요주주로서 경영참여의 기회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소속감과 책임감도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는 효과도 있다.

ESOP의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직원들이 전원 퇴직하고 재입사하는 과정에서 퇴직금을 출자하는 방안과 일단 차입을 하고 회사와 직원들이 공동으로 출연해서 장기적으로 상환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어느 경우에도 직원들의 출혈 또는 부담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골든브릿지와 노조는 앞으로 ESOP에 이사 1명과 사외이사 1명의 추천권을 주기로 협의했다. ESOP는 이사회 참여뿐만 아니라 회사경영 전반에 폭넓게 참여할 계획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국장은 “회사의 존속과 고용 보장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보지만 직원들 출혈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또 “투기자본의 횡포를 묵인하고 850억원의 유상감자를 방관한 부분도 아쉽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줄 건 다 내주고 브릿지증권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 부담은 결국 남아있는 직원들이 질 수밖에 없다.

이상준 사장은 골든브릿지가 ‘토종자본’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투기자본 BIH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 사장은 “브릿지증권을 골든브릿지의 강점인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분에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또 “인수 이후 1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장기적으로는 ESOP의 지분 비율을 50%까지 늘려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칫 노조의 경영참여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BIH의 철수를 돕고 새로운 투기펀드를 맞아들이는 결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국적을 떠나 BIH와 골든브릿지가 과연 어떻게 다르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강승균 노조 지부장은 “ESOP는 노동자 자격이 아니라 주주 자격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ESOP 체제에서는 BIH 때와는 달리 경영진이 노조의 의견에 상충되는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청산을 막기는 했지만 BIH가 지난 7년 동안 남긴 상처는 크고도 깊다. 2001년 대유증권과 일은증권이 합병할 무렵 4842억원에 이르렀던 자본규모는 올해 9월 매각이 마무리되고 나면 1170억원으로 줄어든다. 자본금도 500억원으로 줄어든다. 지점 수는 40개에서 6개로, 직원 수는 820명에서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BIH가 난도질을 하던 지난 3년동안 브릿지증권은 사실상 경영공백 상태에 놓여있었다.

브릿지증권이 정상화되기까지 갈 길은 아직 멀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골든브릿지는 투자수익이 아니라 영업의 목적으로 브릿지증권을 인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브릿지증권을 중심으로 계열사들을 연계해 사업영역을 확대·다변화하고 새로운 성장전략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ESOP가 이런 변화에 어떤 형태로 참여할 것인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도입사례인만큼 브릿지증권 ESOP에 거는 기대는 크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Submi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