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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포르나’를 보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25, 2005

포르노는 가라
즐겁고 유쾌한 포르나가 왔다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다. 수백명의 관중이 함께 모여 포르노를 단체 관람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그들의 성적 욕망을 당당히 풀어내는 것도 낯설고 놀라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었지만 덩달아 즐겁고 유쾌했다.

안티 성폭력 페스티발의 연례 행사로 올해는 포르노의 폭력성과 왜곡된 성 관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성 문화를 모색하는 ‘포르노 포르나’가 열렸다. 포르나는 포르노의 여성형 명사다. 6월 18일 서강대학교에서 여성주의 월간지 ‘이프’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성이 즐겁고 유쾌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흔히 포르노는 은밀하고 음침하다. 어떤 포르노는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이고 실제로 폭력이기도 하다. 그런 포르노는 잘못된 성 관념을 만들어 내고 잘못된 성 관계를 이끈다. 굉장히 많은 비율의 남성들이 제대로 섹스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포르노를 열광적으로 보든 보지 않든 이 남성들은 포르노가 만들어낸 왜곡된 성 문화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포르노가 성폭력을 만든다면 포르나가 과연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건 굉장히 도발적인 질문이다. 포르나는 포르노와 달리 은밀하거나 음침하지 않다. 포르나는 성을 당당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성은 이제 폭력적이지 않고 당연히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 욕망은 여전히 개인적이지만 이기적이지는 않다. 성은 소통이고 교감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포르나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동등하다. 때로 여성과 남성은 모두 중성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성의 구분을 떠나 두 사람은 욕망을 갈망하고 서로의 욕망을 채워준다. 포르나는 그래서 여성을 위한 포르노라기 보다는 포르노를 넘어선 대안 포르노, 새로운 성 문화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모호하고 과장됐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포르노를 넘어선 대안 포르노의 실험

연극 ‘구지 이야기’는 여성과 남성이 뒤바뀐 세상의 이야기다. 주인공으로 나온 남자아이는 집안 일만 하는 아빠 보다는 엄마처럼 회사에 나가서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운동회에서 여자아이들을 제치고 달리기에서 1등한 그는 그날 저녁 여자 선배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남자가 건방지다는 이유에서다. 이 세계에서는 절망에 빠지면 ‘하나님 어머니’를 외친다.

1인 연극 ‘원 나잇 스탠드’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1회성 섹스에 탐닉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는 숱하게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다. 스스로 성을 억압하고 그 억압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의 섹스에 결여된 것은 따뜻한 소통과 교감이다. 무용극 ‘시소를 타다’는 애정없는 섹스가 만드는 참혹한 결말을 보여준다.

마임극 ‘치즈로 빚어진 사람’은 강에서 우유를 길러다가 치즈로 남자친구를 만드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치즈로 빚어진 사람은 또 다른 나다. 나와 치즈로 만든 사람은 완벽하게 서로를 사랑한다. 이 연극에서 여자아이는 두 사람의 사랑을 주도적으로 이끈다.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 치즈로 만든 사람은 언뜻 유약해 보이지만 부드럽고 섬세하다. 두 사람은 완벽하게 하나로 어울린다.

‘페니스 수난사’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뇨기과 의사 윤하나씨가 나온다. 그는 “다른 데서 평생 교육을 외칠 게 아니라 성에 관해서도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지 않으면 잘 사랑할 수 없고 진짜 사랑을 찾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이야기다. 크면 클수록 좋은 거 아니냐는 남성 출연자의 엉뚱한 질문에 그는 질 안의 G스팟까지 3센티미터면 충분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중간에 잠깐 진짜 포르노를 보는 시간도 있었다. 여성 관객들은 경악했고 몇 안되는 남성 관객들은 움츠려 들었다. 콩트 ‘포르노 인간연구 X파일’은 남성들의 억압된 성적 욕망을 파헤친다. 포르노의 환상이 만들어낸 고되고 힘든 섹스, 그런 섹스가 만들어낸 중압감과 피로, 성기 확대 수술과 비아그라, 변강쇠의 신화… 결국 남성들도 포르노의 피해자들이다.

퍼포먼스 ‘더미’는 섹스 불감증에 걸린 여성과 섹스 중독증에 걸린 여성의 대화를 통해 섹스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여성들이여, 입을 열어 우리의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자. 감추고 묻어두기보다는 드러내고 소통하는 섹스가 훨씬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양대산맥’에서는 놀랍게도 거대한, 동시에 앙증맞고 귀여운 남자 성기 모형이 등장한다. 세명의 강사들이 나와 입으로 어떻게 남성을 흥분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뒤이어 나온 꽃 모양의 모자를 쓴 여성은 여성이 어떻게 자극에 반응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이들은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요구하라고 강조했다. 나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고 그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다.

일련의 퍼포먼스들은 모두 여성들에게 성적 욕망에 더욱 솔직해질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 순서로 잡힌 ‘포르노 오르가즘 교향곡’은 더 노골적이다. 1천여명의 관객들은 출연자의 지시에 따라 오르가즘 호흡법을 배웠다. 강당 가득히 여성들의 장난섞인 신음소리가 넘쳐났다. 그 신음소리는 가볍고 밝고 유쾌했다.

건강하고 당당한 섹스를 하자

안티 성폭력의 해법은 성을 억압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억압되고 왜곡된 성 문화가 성폭력을 만든다. 포르나는 그런 왜곡된 성 문화에 맞서는 도발적인 실험이다. 포르나는 포르노를 억압하기 보다는 밝은 곳으로 끌어내서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든다. 포르노는 은밀하고 음침하지만 성은 얼마든지 건강하고 당당할 수 있다. 포르나는 포르노를 대체할 밝고 건강한 성 문화를 모색하는 의미있는 실험이다. 자칭 밝히는 여자들의 포르노 포르나는 그래서 더욱 유쾌했다.

이정환 월간 말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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