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한 한국투자공사(KIC), 그 한계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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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가 KIC를 금융 허브로 가는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다면, 이제 관건은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를 얼마나 많이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재경부는 국내에 주재하고 내국인을 고용할 것 등을 조건으로 2015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 가운데 10~20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KIC를 통해 국제 금융시장의 고급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 신용평가회사 등과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크게 높이게 될 것”이라며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뒀다.

반면,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재경부의 이런 기대를 ‘과대망상’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한 조건이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대외 경쟁력인데 KIC만으로는 그 2가지 조건을 충족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단적으로 “싱가폴과 비교해 보라”고 말한다. 외국 자산운용사들이 굳이 싱가폴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올 유인이 있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외국투기기관에 보유 외화자산 운용을 맡긴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며 재경부의 이런 계획을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자산운용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심 의원은 “이건 한국투자공사의 성패를 떠나 국가 위신에 관한 문제이고, 결과적으로 외국 자본의 도우미 역할 또는 외국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기구로 전락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을 하게 됐지만 KIC가 넘어야 할 산은 앞으로도 무척이나 험난하다. 시행령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이 10% 이상 2개월 연속 줄어드는 등 비상사태 때는 한국은행이 KIC에 위탁 자산의 회수를 요청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KIC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현금화할 수 있을 만큼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제약이 있는 한 주식이나 부동산투자는 섣불리 꿈도 꾸기 어렵다. 그만큼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 수익성과 안정성, 2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KIC는 국내의 돈을 모아 외국에 투자하는 회사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수익성 높은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투자하러 몰려들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인 꼴이다. 김우찬 교수는 “결국 우리나라보다 더 기대수익이 낮은 나라나, 그만큼 위험이 큰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과 수익률 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도 KIC에겐 부담이 된다. 그동안 한은은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해 6%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올려왔다. 한은으로부터 위탁을 받게 될 KIC는 최소한 한은보다는 더 높은 수익을 내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손을 댈 수 없도록 묶여 있는 상황에서 6%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KIC는 외국 자산운용사들에게 위탁 수수료까지 물어야 한다.

이를 두고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너무 안정성을 요구하다 보니 절름발이가 됐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외환보유액 가운데 넘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투자회사라면, 3년이나 5년씩 장기적으로 맡기고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는 게 우 사장의 생각이다. 그러려면 주식이나 부동산투자에 대한 규제도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 우 사장은 믿고 맡기되 감사와 공시의무를 강화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운용내역 공개 여부를 놓고도 여전히 논란이 많다. 외환전략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상위 5개 이외의 위탁기관은 아예 정보 접근권조차 갖지 못한다. 상위 5개 위탁기관도 제한된 권한만 갖는다.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건 전체 자산운용 규모와 운용수익률, 자산 배분비율 정도가 고작이다. 이에 대해 장화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KIC가 외환보유액과 국민연금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만큼 국민연금 수준의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우찬 교수는 정작 KIC의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질 경우에 대해 우려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위탁을 받게 되면 KIC의 자산은 10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지금이야 공개를 한다 해도 크게 상관없지만, 운용 자산 규모가 커지면 KIC의 움직임에 따라 시장 자체가 크게 요동을 치게 된다. 그때 가서는 공개를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온다는 얘기다. 김 교수가 대외적 투명성 못지않게 내부 지배구조와 CEO의 도덕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당장 한은 입장에선 KIC에 170억달러를 내주려면 그만큼 외화자산을 내다 팔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은이 미 국채를 얼마나 내다 팔 것인가는 국제금융시장이 초미의 관심거리라는 데 있다. 한은이 미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하면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와 우리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한은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미 국채를 팔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한은이 당장 유동자금을 꺼내서 활용한다고 해도 결국 그만큼의 유동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미 국채를 내다 파는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모르겠다, 이건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추홍식 한은 외화자금국 팀장은 구체적으로 KIC 위탁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끝내 답변을 꺼렸다. 한은은 170억원을 한꺼번에 빼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나눠서 위탁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넘치는 외환보유액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외환보유액을 줄이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 핵심이다. 이런 주장은 정부의 금융 허브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국장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1년에 5조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문제는 이렇게 조성된 외환보유액이 다시 미 국채형태로 미국으로 빠져나간다는 데 있다. 결국 국내에서 비싸게 자금을 조성해 미국에 싼값에 빌려주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그동안 미 국채 의존도를 벗어나기 위해 투자 다변화 등 여러 시도를 계속해 왔지만, 여전히 외환보유액 가운데 미 국채 비중은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심화되면서 달러 자산의 가치가 계속 줄어들고, 이 과정에서 한은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여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해 왔다. 정 국장은 “대미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 정책을 버리지 않는 이상, 이런 국부 유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어쨌든 끊이지 않는 논란 속에서도 KIC는 일단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앞날의 시계는 여전히 제로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국가대표’ 투자회사. 자칫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실패한 금융정책의 사례로 남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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