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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무노조 경영, 어떻게 만들어지나.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1, 2005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인력 구조조정에서 빛을 발한다. 경영여건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협력업체로 쫓겨나거나 강제로 희망퇴직을 당해도 삼성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저항할 수단이 없다. 노동자들은 조직화에 실패했거나 조직화할 의지가 없고 회사는 철두철미하게 이를 방해해왔다. 월간 ‘말’이 입수한 ‘인력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내부문서는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실체를 드러낸다.

때는 1998년 7월이다. 삼성코닝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직원 3062명 가운데 706명을 구조조정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반기 이후 극심한 경영여건의 악화로 손익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553명을 협력회사로 분사화하고 153명을 희망퇴직 시키기로 했다.

삼성코닝은 1997년에 417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구조조정의 덕분인지 1998년에도 17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경영여건의 악화라는 핑계가 무색할 정도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삼성의 치밀한 노조와해 공작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라는 문서를 보면 예측가능한 사안마다 문제점 및 대응방안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먼저 사내에 낙서가 뜨거나 유인물이 살포될 경우에는 간부가 비상가동되고 낙서 발견 장소를 폐쇄하도록 돼 있다. 발생 장소에 감시조를 배치하는 한편 지문을 채취하고 주동자가 확인되면 다른 직원들과 접촉을 막기 위해 격리시킨다. 관할지역에 24시간 당직제를 가동하고 사내 순찰을 강화시킨다. 삼성의 사내 통신망에 문제되는 글이 올라왔을 경우에는 즉시 삭제하고 작성자를 면담하도록 돼 있다.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면 비상상황실이 구성된다. 교육팀이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가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간부들이 집단 호출된다. 또 채증조를 가동하고 부서장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투입해 해산을 유도하도록 돼 있다. “CC 근무 강화”라고 적힌 부분도 주목된다. ‘CC’는 ‘City Civil Affair Administration’의 약자로 시청 민원실을 뜻한다.

이밖에도 인터넷과 PC통신을 수시점검하고 언론기관을 사전 섭외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단체 출입자를 확인하는 등 직원들에 대한 철저한 사전 감시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은 ‘번개팀’이라는 제2의 노사조직도 가동하고 있다. 번개팀은 “교육팀 가운데 A급 인력 10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시나리오별 행동요령을 숙지하고 사업장 소요사태나 CC 접수상황 등에 긴급 투입된다. 그해 7월 30일에는 번개팀 도상훈련도 실시됐다. 이 문서에는 이들의 명단은 나와있지 않다. 보안을 강조한 듯 “명단은 별도 관리”라고 돼 있다.

만약 직원들이 노조 설립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입수할 경우 모든 조직이 동원돼 노조와해 공작에 나선다. 먼저 상황실에서는 접수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한다. “접수자 그림자 실시”라는 항목은 그림자처럼 밀착 감시를 한다는 의미다. 또 인사부서에서는 “접수자 및 관련 인물 해고 방안을 강구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CC의 역할이 중요하다. 권아무개가 CC에 협력요청을 하면 CC는 “서류 핑퐁”을 하고 보완지시를 협조하도록 돼 있다. “서류 핑퐁이”라는 건 트집을 잡아 반려하거나 부서끼리 떠넘기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의미한다. 임아무개가 CC 근무를 강화하는 임무를 맡게 돼 있다. 이밖에 홍보팀은 언론 대책을 준비하고 “지역 및 중앙언론 차단 작전”에 들어간다. 상황실은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한다. 역시 임아무개의 역할이다.

접수자의 신병이 확보되면 “외부로 이동(피닉스파크 등)”을 시킨다. 격리 면담조가 대기하고 있다가 함께 이동해 접수자를 조사하고 가담자와 배후세력을 파헤친다. 혐의자 전원을 조사하고 인사조치를 단행하는 수준으로 노조와해 공작은 마무리된다.

만약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을 경우는 CC 근무자가 시청에서 1차로 실력 저지를 하도록 돼 있다. 이 경우 세가지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데 언론을 대동했을 때는 CC에 협조를 요청하고 상황을 보고한다. 언론을 대동하지 않았을 때는 그냥 실력 저지한다. 노동계 관련자를 대동했을 때는 CC 근무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어떤 경우는 CC 근무자는 자체 선접수를 시킨다. ‘자체 선접수’란 유령 노조의 설립 신고서를 미리 접수시킨다는 말이다. 복수노조 설립이 금지돼 있는 허점을 이용한 공작이다.

이런 철두철미한 노조와해 공작이 가능한 것은 기본적으로 노동부와 시청 등 공무원을 사전에 포섭했기 때문이다. “대외 정보망 강화”라는 문건을 보면 “관공서 업무 담당자 내 사람화”라는 문구가 보인다. 노동부의 근로감독관과 직업안정과의 기존 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 옆에 담당자 두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또 시청과 민원실, 노정계 계장과 민원 담당자 항목에는 권아무개와 CC 근무자라고 적혀있는 걸로 봐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삼성 직원 가운데 누군가가 시청 직원으로 위장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기관으로는 경기지검과 수원남부와 중부경찰서, 경기경찰청, 기무사, 안기부, 서울지검, 서울시경 등을 담당할 담당자가 각각 두명씩 잡혀있다.

이밖에 사외팀 김아무개의 활동도 주목할만 하다. 이 사람은 경기지역 노동집회를 모니터링하고 노동관련 기사를 수집․분석한다. 특히 “수원지역 단체 TEL 문의내역 확인, 분석”이라는 문구로 볼 때 직원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단체 출입자 파악”이라고 적힌 걸로 봐서 노동단체 내부에도 연락책을 심어놨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삼성SDI 불법위치추적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은 이렇게 여러 정황이 드러나는데도 관련 공무원이나 삼성 노무담당부서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이 문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삼성의 손길이 검찰 내부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의혹도 가능하다. 직원들을 상대로 통화내역을 조회하거나 미행하고 감시한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나 있다.

결국 삼성코닝은 그해 하청업체 분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 가운데 하나가 아텍엔지니어링이다. 이른바 잘 나가던 ‘삼성맨’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전락한 아텍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은 그 이듬해 12월 노조 설립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청서를 접수하러 갔다가 몇분 전에 신청서가 접수됐다는 설명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이 회사에까지 삼성의 입김이 미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듬해 삼성에스원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했다. 유령 노조가 몇분 앞서 노조를 설립해 버린 것이다. 드러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뿐 비슷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월간 ‘말’ 관련기사 참조)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이 모든 계열사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가상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접수기도)

– 정보입수
= 접수자 인적사항 파악, 상황실.
= 접수자 및 관련인물 해고 방안 강구(서류 준비 등)
= 교육 태스크포스 발동, CC근무 강화, 사업장 순찰 강화, 실력 저지 준비
= CC 협력 요청, 서류 핑퐁, 보완 지시 협조.
= 언론 대책 준비, 지역 및 중앙언론 차단작전.
= 보고(지대위/비서실), 홍보팀.
= 경찰 협조요청, 실력저지 충돌시 협조, 상황실.

– 사후 대책
= 접수자 신병 확보(격리 면담조 대기), 외부이동(피닉스파크 등), 상황실.
= 접수자 조사, 가담자/배후세력.
= 혐의자 전원 조사.
= 보고.
= 인사조치 단행.
= 대외동향 지속 파악.

– 정보를 사전 입수 못했을 경우
= CC 근무자 1차 실력 저지
= 1. 언론 대동시 : CC 협조, 상황보고.
= 2. 언론 미대동시 : 실력 저지.
= 3. 노동계 대동시 : CC 근무자 판단.
= CC 근무자 자체 선접수, 서울 구미 선접수 대기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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