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카트라이더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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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컴퓨터 게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투표일이었던 4월 30일, 원 의원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원희룡은 카트 폐인? ^^”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토요일 오후 이 시간만 되면… 항상 선택의 고민에 휩싸입니다.^^ 카트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 그래 결심했어. 딱 한 판만 하는 거야.”

문제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 글을 문제 삼으면서부터다. 이 글을 올린 날이 하필이면 선거 투표일이었던 탓이다. 박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있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있었다”고 원 의원을 비난했다. 이 논란은 자칫 박 대표와 당내 소장파 의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조짐까지 보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원 의원은 다시 글을 올려 변명에 나섰다.

“투표 당일은 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날입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이날 그것도 잠시 짬을 내어 1000만 명이 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그들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체험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우리 한나라당에 커다란 대역죄를 지은 것이라면 그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딱히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지만 이 작은 소동은 카트라이더의 인기를 새삼 절감하게 한다. 원 의원이 얼마나 이 게임에 빠져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은 한판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볍게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게임이다. 이를 두고 의원이 의정활동은 팽개치고 게임이나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게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해 6월에 첫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1년도 안돼서 올해 5월 기준으로 회원이 1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이 게임을 한번 이상 해봤다는 이야기다. 요즘도 신규 가입자가 날마다 4만~5만명씩 들어온다고 한다. 하루 이용자가 200만명, 동시 접속자는 최고 22만 명, 평균 18만 명에 이른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평균 18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이 게임을 하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 200명 가운데 1명 꼴로 지금 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임 전문 분석업체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카트라이더의 PC방 점유율은 16.2%로 일찌감치 지난해 11월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도대체 카트라이더가 뭐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이 게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5월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온게임넷 메가 스튜디오. 코카콜라가 후원하는 카트라이더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상금이 무려 5000만원이나 걸려있다. 방송중계 때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릴 만큼 후덥지근하지만 스튜디오 안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20대가 많고 교복 차림의 중고등학생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다. 게임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웬만한 스포츠 경기 중계 저리 가랄 정도다.

“요즘은 카트 모르면 왕따 당해요.”
– 이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어?
“예. 빨리 루찌 모아서 솔리드 프로 사려고요.”
“얘는 어제도 밤새 카트하고 학교 왔어요.”

카트라이더는 온라인 자동차 경주 게임이다. 컴퓨터랑 하는 경주가 아니라 최대 7명까지 인터넷으로 접속한 다른 사용자들과 경주를 한다. 익명의 사용자들이 만나 실력을 겨루는 만큼 게임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게 이 게임의 매력이다. 한판 하는데 3~4분, 게임이 끝나면 순위에 따라 루찌가 주어진다. 루찌는 이 게임 안에서만 통용되는 이른바 사이버 머니다. 루찌를 모으면 아이템이나 더 좋은 차를 살 수 있다.

게이머들 사이에 인기가 좋은 솔리드 프로라는 차는 4만 루찌를 줘야 살 수 있다. 8명 가운데 1등을 하면 100루찌를 받는데 4만 루찌를 모으려면 무려 400판 이상 게임을 하고 모두 1등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번 1등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초보자들은 순위권은커녕 시간 초과로 탈락되기 일쑤다. 순위권 안에 들지 못하면 10루찌를 받거나 그나마 못 받게 되는 수도 있다.

루찌가 부족해서 차를 살 형편이 못되면 기본으로 주는 연습용 차를 계속 타는 수밖에 없다. 이 차는 속도는 물론이고 가속력이나 안정감, 코너링 등에서 루찌로 사는 차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진다. 그만큼 다른 차에 뒤쳐질 확률이 크고 순위권에 들기도 어렵다.

루찌를 모으기 힘들면 진짜 돈을 내고 차를 사는 수도 있다. 현금을 결제하면 캐시라는 사이버 머니를 받을 수 있다. 루찌가 영구적으로 차를 사는 거라면 캐시로 사는 차는 일정 기간밖에 쓸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이를 테면 3500원(=3500캐시)를 내면 세이버 프로라는 차를 30일 동안 탈 수 있다. 1800원을 내고 일주일 동안만 탈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캐시로 좋은 차를 사서 게임을 하면 순위권에 들기도 더 쉽고 루찌도 훨씬 더 빨리 많이 모을 수 있다. 게임을 잘하려면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휴대전화 결제로 차를 사느라 전화요금이 10만원 넘게 더 나왔다는 사람도 흔히 눈에 띈다. 캐시를 쓰지 않고 그야말로 실력만으로 루찌를 모아 좋은 차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이머들이 이 게임에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빨리 점수를 모아서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다. 등급이 올라가면 운전면허증이 갱신되고 새로운 등급의 좀더 실력있는 게이머들과 경주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노는 물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카트라이더는 장갑으로 게이머들의 등급을 표시한다. 처음 막 게임을 시작하면 노란 장갑을 받는데 점수를 많이 쌓아 등급이 올라갈수록 초록, 파랑, 빨강 등으로 장갑의 색깔이 바뀐다.

8명이 경주를 하면 1등은 22점, 꼴찌는 10점, 시간초과 탈락은 6점을 받는다. 최고 등급인 무지개 장갑을 받으려면 8만1900점 이상을 모아야 하는데 계산해보면 1등만 무려 3722번 이상 해야 한다. 한 게임에 5분씩 잡고 하루 두시간씩 계산하면 155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게임을 하고 그 게임에서 모두 1등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게 무지개 장갑을 낀 게이머가 무려 1100명에 이른다. 놀랍지 않은가.

가장 낮은 노란 장갑에서 초록 장갑으로 건너뛰는 것만 해도 4900점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늘 탈락하거나 겨우 꼴찌를 면하는 수준 밖에 안 된다. 평균 8점씩 잡으면 612번 이상, 한 게임에 5분씩 잡으면 거의 51시간 가까이 게임을 해야 한다. 파란 장갑을 받으려면 1만3300점, 빨간 장갑은 2만8700점, 검정 장갑은 5만1100점이 필요하다. ‘선수’ 소리를 들으려면 몇날 몇일 밤을 새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카트라이더 게이머들 연령층을 살펴보면 기가 막히다. 초등학생이 11.0%, 중학생이 15.3%, 고등학생이 14.4%로 10대 청소년이 40.7%를 차지한다. 물론 카트라이더는 지극히 건전한 게임이지만 한창 공부해야 할 청소년들이 자동차 경주 게임에 이렇게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기자가 찾은 경기도 안산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수업 중인데 학생들 3분의 1 가량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공부에 지쳐서기도 하겠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밤새 게임을 한 학생들이라는 게 김명하 교사의 설명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간단히 설문을 해봤다. 53명의 학생 가운데 카트라이더를 한번도 안 해본 학생은 6명밖에 안됐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한다는 학생이 14명, 24%나 됐다. 날마다 한다는 학생도 3명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와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빨간 장갑까지 올라갔다는 박희찬 학생을 만나봤다. 빨간 장갑이면 점수로는 3만점, 많게는 4만점이 넘는다. 아주 높은 등급은 아니지만 줄곧 1등만 했다고 해도 2000번 가까이 게임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이 정도 점수를 내려면 게임을 얼마나 해야 하지?
“날마다 하루 두세 시간씩 석달 걸렸어요.”
– 시간으로 치면 200시간이 넘는데 같은 게임을 그렇게 계속하면 질리지 않아?
“근데 이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실력이 계속 늘어나기도 하고 지고 있다가 막판에 역전이라도 하면 얼마나 신나는데요.”
– 게임 중독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
“집에 가면 컴퓨터를 켜자마자 게임을 하는데 그래도 이건 리니지나 다른 게임보다는 덜한 것 같아요. 한 판만 더하자는 생각 때문에 계속 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게임할 때 걸리는 시간이 짧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끝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카트라이더는 재미있다. 좌·우·위·아래 방행키와 시프트·콘트롤키 정도만 쓸 줄 알면 되고 길을 따라 장애물을 피해 빠른 시간 안에 결승점에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여느 운동경기 못지 않는 박진감과 긴장이 있다. 순발력과 동물적인 감각도 필요하다.

그리고 카트라이더는 건전하다. 이 게임은 폭력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앙증맞고 귀엽기까지 하다. 심심풀이로는 딱이다. 그런데도 이 게임이 걱정스러운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저 카트라이더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가르친다. 이 게임의 목표는 남들보다 빨리 들어와서 높은 점수와 루찌를 받고 그걸 모아서 더 좋은 차를 사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는데 있다. 남들보다 빨리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게이머들을 제치고 앞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 게임에서는 물폭탄이나 미사일을 쏘면서 앞서 가는 게이머들을 맞추고 뒤쳐지게 만드는 게 중요한 실력이다.

카트라이더는 또 은연중에 차별을 가르친다.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같은 실력이라면 타고 있는 차가 순위를 가른다. 그 차는 돈으로 사야 한다. 더 좋은 차를 사려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카트라이더는 무료 게임이지만 돈을 지불하는 게이머와 그렇지 못한 게이머는 사실 출발선부터 다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차별이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는데 있다. 차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거짓 논리가 이런 차별을 무시하게 만든다.

이런 차별은 이 게임 안에 일상화돼 있다. 여러 사업적 고려가 있었겠지만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은 일반 가정에서 하는 게이머들보다 루찌를 두배로 받을 수 있다. 게임 안에 있는 상점에 가면 점수와 루찌를 차별적으로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아이템(로두마니, 배찌 등)을 살 수 있다. 실력은 각자의 몫이지만 약간의 비용을 지불한다면 그 실력을 뒷받침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이 게임은 게이머들을 경쟁에 매몰시킨다. 끊임없이 더 많은 점수와 루찌를 받도록 만들고 수많은 밤을 새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장갑을 받고 등급이 올라가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그걸 알면서도 그 거의 무의미한 목표에 게이머들은 도전한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보다 더 무의미하다. 카트라이더에서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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