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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위에 지주회사, 윤석민의 SBS 먹튀 수순일까.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9, 2020

태영건설이 다시 SBS의 지배구조를 흔들고 있다. SBS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위에 TY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하나 더 얹으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SBS의 지난 10여년의 변화를 보면 이익이 안 되는 플랫폼 부문과 이익이 되는 콘텐츠 부문을 분리해 태영건설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신해 왔다. 현재 SBS의 지배구조는 태영건설이 지주회사 성격의 SBS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고 이 회사가 SBS와 SBS콘텐츠허브를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다. 태영건설이 과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BS미디어홀딩스에 이익이 집중됐고 SBS는 갈수록 속 빈 강정이 됐다.

나는 2년 반 전 블로그에 쓴 글에서 “모두 SBS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자회사들이 모회사의 등골을 빨아먹는 전형적인 터널링(tunnelling)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주회사 10년, SBS의 지배 구조 분석.

태영건설은 지난달 23일, 태영건설을 사업회사인 태영건설과 투자회사인 TY홀딩스로 분할할 계획이라는 공시를 내보냈다. 분할 비율은 각각 50.9%와 49.1%다.

태영건설의 의도는 대략 들여다 보인다. 지금은 SBS가 태영건설의 지배 아래 있지만 건설과 방송을 분리하고 방송 부문을 윤석민 일가가 직접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방송 부문을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SBS를 매각할 경우 그게 태영건설의 이익으로 잡히지만 방송 부문을 건설 부문에서 떼어내서 팔면 윤석민 일가에게 고스란히 현금으로 떨어진다.

김동원 언론노조 전문위원이 미디어오늘 기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단물 빠진 SBS를 털고 나가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TY홀딩스 설립과 분할 절차는 결코 쉽지 않다. 당장 TY홀딩스가 들어서면 SBS는 손자회사가 되고(TY홀딩스-SBS미디어홀딩스-SBS) SBS의 자회사들은 증손자회사가된다. 문제는 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증손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확보해야 하는데, 방송광고법에 따르면 증손자회사인 SBSM&C의 지분을 40%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돼 있다. (SBSM&C는 SBS의 광고를 대행하는 미디어렙이다.)

언론노조 SBS 본부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이미 2016년부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첫째, 일단 SBSM&C는 TY홀딩스의 증손자회사로 남을 수 없다. SBS가 SBSM&C의 지분을 100% 확보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방송법에 따라 40%가 한계). 둘째, 그렇다고 그나마 돈 되는 자회사들을 팔아치울 수도 없다. 미디어렙을 팔아치운다는 것은 그냥 방송 사업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웨이브도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하는 단계고 DMC미디어나 더스토리웍스도 돈이 된다. 그런데 팔아치워야 한다고? 그게 윤석민의 계획은 아닐 것이다. 셋째, 자회사들을 SBS미디어홀딩스에 넘기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SBS는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고 싶겠지만 엄청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넷째, SBS와 SBS미디어홀딩스를 합병하는 방안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윤석민 입장에서는 실익도 없다. 다섯째, TY홀딩스와 SBS미디어홀딩스를 합병하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다섯 가지 시나리오 모두 지주회사 설립을 전제로 SBS의 자회사들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윤석민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많은 재벌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진짜 목적은 자회사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직접 소유하지 않는 기업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007년, SBS를 SBS미디어홀딩스 체제로 바꾸면서 돈 되는 사업 부문을 SBS콘텐츠허브 등 자회사로 분리해 SBS미디어홀딩스 밑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SBS는 2019년 2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SBS콘텐츠허브를 다시 SBS의 자회사로 사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SBS와 방송 계열사 전체를 통째로 태영건설에서 떼 내어 윤석민이 직접 지배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태영건설을 끼고 SBS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직접 지배하겠다는 그림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TY홀딩스 프로젝트는 SBS를 언제든지 내다 팔기 좋게 포장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흥국증권 김승준 연구원 등의 전망에 따르면 TY홀딩스를 다시 건설 부문과 미디어 부문으로 분리하고 미디어 부문을 다시 SBS미디어홀딩스와 합병하는 방안으로 공정거래법 등의 규제를 우회하려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2년의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SBS미디어홀딩스를 매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 윤석민 일가가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를 직접 지배하는 모델로 갈 가능성도 있다. 윤석민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머니 게임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상파 방송. 장기 말처럼 이익에 따라 팔려다니는 자회사들. 윤석민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여기서는 이래도 되니까.”

결국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야 할 문제다. 아무리 지상파 방송이 위기라지만 이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적당히 사고 팔려서는 안 된다. 어차피 민영 방송이니까 언젠가 팔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지상파 방송의 대주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책임감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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