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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산업가스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3년 6개월.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21, 2005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한 뒤 3년 6개월째 복직 투쟁을 벌여왔던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회사 본사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데 회사는 이들과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업무 방해 혐의로 이들을 경찰에 신고한 상태다.

4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본사. 경찰들이 정문을 겹겹이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 책임자를 면담한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본관 현관에서 다시 제지당했다. 대성그룹 직원들이었다.

“곽민형 지회장을 만나러 왔다. 들여보내달라.”
“돌아가라. 기자를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직원들은 아예 문을 걸어잠궜다. 유리문 틈 사이로 취재 목적을 밝혔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2층 창문 안쪽 복도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이 눈에 띄었다. 곽민형 지회장이었다. 1층에서 막고 있어서 올라갈 수 없다고 하자 직접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직원들의 제지에 부딪혔다. 2층에서는 기자를 들여보내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에야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법원에 계류돼 있는 사안이다. 법으로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재판에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
“취재까지 거부하는 것인가.”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
“노조의 요구를 어떻게 보나.”
“몇년 전부터 진행된 사안이다. 내부적인 문젠데 화섬연맹 등 노동자 단체에서 이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려는 것 같다.”

2층의 사람들은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명과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조합원 8명, 모두 10명이다. 20일 오후 3시부터 점거에 들어가 꼭 하루 만이다. 곽민형 지회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직원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1층으로 내려올 수 없다고 했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6년이나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2박 3일 동안 잠 한숨도 못자고 차를 몰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 들어가면 몇시간 뒤에 빨리 출근하라는 재촉을 들어야 했다. 1년 365일 휴일도 휴가도 없이 일하고 정작 그렇게 일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 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는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고 그것 때문에 해고됐다.”

곽 지회장은 이 회사에서 탱크로리 기사로 일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회사의 하청업체인 대성용역의 직원으로 일했다. 대성용역의 직원들은 대성산업가스의 정규직 직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았다. 그런데 업무 지시는 대성산업가스에서 받았다. 위장 도급이고 불법 파견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6년이나 일한 회사에서 부당 해고를 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계약 만료였지만 진짜 이유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파견법에서는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를 정식 고용으로 본다. 그러나 대성산업가스는 하청 관계였을뿐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성용역과 이들과의 문제도 알 바 아니라는 이야기다.

2001년 9월, 이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대성산업가스는 하청 계약을 해지하고 대성용역을 폐업시켰다. 거듭해서 대화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우리 직원들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다는 태도로 나왔다. 이 사건은 결국 법원으로 갔고 2003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불법 파견과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의 항고심에서는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항고심에서는 대성용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등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노조는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오는 6월쯤 나올 예정이다.

3년 6개월 동안 노조는 회사와 맞서 싸워왔다. 12명의 조합원은 현재 2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10명은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거나 일부는 이 회사와 특수고용 계약을 맺었다. 특수고용이란 기사들이 각각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고 회사와 도급 업무계약을 맺는 형태를 말한다. 고정적인 급여는 당연히 없고 일거리가 없을 때는 수입도 그만큼 줄어든다. 노동자로서 권리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이 회사는 결국 탱크로리 기사들을 모두 특수고용 형태로 전환했다. 그나마 있던 정규직도 모두 특수고용으로 돌렸고 하청회사도 모두 폐업시켰다. ‘할줄 아는건 운전 밖에 없다’는 노동자들은 결국 훨씬 열악해진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곽 지회장에게도 여러차례 회유가 있었지만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고 했다.

“왜냐고요? 옳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노조를 만든 겁니다. 이렇게 쉽게 꺾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사 후문 바깥에는 화섬연맹을 비롯해 연대 노조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유영구 화섬연맹 교육선전실장은 “구속될 걸 각오하고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며 “억지로 끌려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물러서면 안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충태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조직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회사 차량을 운전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니 이게 말이 되나. 차량 유지비는 물론이고 수리비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단가 인하를 해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나마 그거라도 잘리니까. 특수고용 계약을 맺으면 노동자의 권리는 모두 사라진다.”

무려 3년 6개월이다. 그동안 회사는 단 한차례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교섭에 응한다는 건 이 회사가 이들의 사용자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교섭을 약속했다가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했다. 이들을 고용한 적이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는 논리다. 놀라운 건 이 회사가 지난해 1371억원 매출에 238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는 결국 법으로 풀겠다고 한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법은 일단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이들의 점거 투쟁은 한동안 지속될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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