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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7년 국민연금 1,702,972,000,000,000원.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6, 2005

“소득의 3%만 내면 나중에 70%를 주겠다고 정부가 거짓말을 해서 만든 제도다. 지금은 9%를 내고 60%를 받고 있는데 적어도 15% 정도를 내고 50%를 받는 정도로 고쳐야 겨우 유지된다.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니까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심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사기를 쳐서 만든 제도였고 지켜질 수가 없는 제도다.”

4월 14일 국회에 출석한 이해찬 총리의 발언이다. 이 총리는 “올해 안에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며 “새로운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조금 더 많이 내고 조금 덜 받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원론적인 해법을 내놓았을 뿐 새로운 틀을 고민하는 수준까지 가지 못했다. 국민들 반발을 의식해서다.

국민연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너무 뜨거워서 선뜻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다. 최근 기획예산처가 마련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소득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그때쯤이면 소득도 더 오르고 화폐가치나 물가 수준도 달라지겠지만 보험료율 30%는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연봉 3000만원을 받는 노동자는 지금 달마다 22만8600원씩 보험료를 낸다. 회사와 노동자가 절반씩 나눠서 내니까 실제로 내는 돈은 달마다 11만4300원, 1년이면 137만원 정도다. 그런데 보험료율이 지금 9%에서 30%로 올라가면 달마다 월급 250만원 가운데 32만5000원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이런 가정은 지금처럼 소득 대체율 60%를 가정했을 경우다. 소득 대체율이 60%라는 건 보험료를 40년 동안 내면 65세부터 그동안 받았던 월 급여 평균의 60%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납부 기간이 40년이 안되면 당연히 소득 대체율은 그만큼 낮아진다. 연봉 3000만원을 받고 달마다 11만4300원씩 40년 동안 낸다면 65세부터 120만1070원씩을 받을 수 있다.

납부기간이 30년 밖에 안된다면 보험 급여는 90만4640원으로 떨어진다. 20년 동안 냈다면 60만8200원 밖에 안된다. 그나마 이건 연봉 3000만원의 경우고 연봉 2000만원에 20년 동안 보험료를 냈다면 보험 급여는 47만6200원으로 줄어든다. 노후를 의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도의 연금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연봉 2000만원에 20년 동안 보험료를 낸다면 납부한 보험료는 모두 3585만6000원이 된다. 이만큼 내고 한달에 47만6200원씩 받는다면 75개월이면 본전치기가 된다. 65세부터 받기 시작해 71세가 되면 낸 돈 보다 받은 돈이 더 많게 된다는 이야기다.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은 당연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2년 기준 평균 수명은 남성이 73.4세, 여성이 80.4세다.

만약 보험료를 올려받지 않고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국민연금은 2036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해서 2047년이면 완전히 바닥난다. 당연히 보험료를 더 많이 받거나 연금 급여를 더 적게 지급하는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을 9%에서 2030년까지 15.9%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금 급여도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출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건 그래서 거짓말이거나 착각이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얼마든지 고갈을 막을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뒤로 미룰 수 있다. 또는 소득 대체율을 낮춰 연금 급여를 지금보다 더 적게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소득 대체율을 낮추면 가뜩이나 실속없는 연금이 더 실속없게 된다는 데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연봉 2000만원의 노동자가 한달에 26만3940원씩 20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받게되는 연금 급여는 40만원이 조금 안되는 정도다. 30년 동안 내면 59만원, 40년 동안 내면 78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물론 이 정도도 금융상품으로는 훌륭한 수익률이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이런 용돈 정도도 못받게 될 이른바 연금 사각지대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모든 국민이 다 가입한다고 하지만 국민연금의 납부 예외자는 벌써 28%에 이른다. 전체 가입자 1718명 가운데 484만명이 소득이 파악되지 않거나 적어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들은 연금 혜택을 못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료도 못낼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연금조차 못받게 되면 이들의 노후는 누가 어떻게 챙겨야 하는가.

기초연금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기초연금으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은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65세부터 1인당 평균 임금의 15%, 28만원 정도를 기초연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직 명확한 대안이 없다. 자본거래세 등 일반 조세와 일부 국민연금에서 충당해 마련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부가가치세를 2% 올려서 재원을 마련하자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65세 이상 모든 국민들에게 달마다 2인 가구 최저 생계비의 50%를 지급하자는 대안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면 3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 1년에 최소 7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

주목할 부분은 부가가치세가 간접세라는 사실이다. 간접세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이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건 상식이다. 저소득 계층의 복지라는 기초연금의 취지에도 크게 벗어난다. 한나라당은 애초에 기초연금에 큰 관심이 없다. 한나라당의 진짜 의도는 기초연금과 함께 도입될 소득비례연금에 숨어있다.

소득비례연금은 소득의 7%를 보험료로 내고 65세 이후에 평균 소득의 20% 정도를 연금 급여로 받도록 하자는 제도다. 당연히 많이 낸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낸 사람은 적게 받게 된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고 저소득 계층은 기초연금으로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소득비례연금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결국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저소득 계층을 돕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연금에서 배제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고소득 계층이 낸 연금을 저소득 계층과 나누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저소득 계층 복지는 결국 정부의 몫으로 돌아간다. 소득비례연금에는 공적 연금의 사회복지 기능을 축소하겠다는 의도도 들어있다. 적게 내고 적게 받겠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계획대로 소득비례연금을 도입하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이 7%로 낮아지고 소득 대체율도 60%에서 20%로 크게 낮아진다. 평균 소득의 20%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건 여기에 노후를 의지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족한만큼 저축을 하거나 다른 사적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노후는 국민들이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너무 간섭하지 말라는 논리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기초연금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리하면 한나라당은 덜 내고 덜 받자는 쪽이고 정부는 더 많이 내고 덜 받자는 쪽, 열린우리당은 더 많이 내고 받는 건 그대로 받자는 쪽이다. 민주노동당은 일단 지금처럼 내고 지금처럼 받되 기초연금을 추가로 도입하자는 쪽이다.

정해식 ‘사회복지와 노동’ 포럼 편집위원은 “한나라당과 정부, 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은 결국 안정적인 소득계층을 분리시켜 이들을 연금의 금융화 전략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최 국장은 “적당히 ‘싸구려’ 기초연금을 도입하고 그걸 빌미로 국민연금을 축소 또는 사적 연금으로 외주화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쉽게 풀어보면 한라나당은 공적 연금을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쪽이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어떻게든 지금처럼 끌고 나가면서 다만 파탄을 지연시켜보자는 쪽이다. 민주노동당은 공적 연금의 틀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딱히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연금의 과잉 적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액은 2036년에 최고로 늘어났다가 2047년에 바닥이 난다. 그 뒤로는 엄청난 적자다. 지금처럼 소득의 9%씩을 보험료로 내고 65세 이후에 달마다 평균 소득의 60%를 연금 급여로 받는다는 가정에서다. 보험료를 올려받거나 급여 비율을 낮춘다면 적립금액은 더 늘어나고 고갈 시점도 더 늦춰질 수 있다.

(단위는 10억원이고 파란색 선이 국민연금의 수입, 빨간색 선이 지출이다. 수입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데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2036년이 되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아래 그래프는 적립기금 추이다. 2036년에 최고로 늘어났다가 2047년이면 바닥이 난다. 그 뒤로는 엄청난 적자다.)

눈여겨 볼 부분은 적립금액의 규모다. 2036년이면 무려 1702조원까지 늘어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2.5배, 정부 예산의 14.3배 되는 규모다. 고민할 문제는 이 돈을 모두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서 수익을 낼 것이냐다. 어디에 투자하든 그 돈은 10년도 안돼서 다 찾아와 나눠줘야 하는 돈이다. 어디든 집어넣는 것도 좋지만 찾을 때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두고 어항 속의 고래에 비유하기도 한다. 시장은 좁은데 적립금액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다.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은 4월 15일 기준으로 440조원 정도다. 주식시장을 통째로 4번 사고도 남을 돈이 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돈을 모두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을까. 주식이든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시장이 왜곡되는 건 물론이고 살 때는 사더라도 정작 나중에 팔 수가 없게 된다.

국민연금의 금융화 문제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송원근 진주산업대학교 교수는 “시장 중심의 연금 개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축소하고 그만큼 금융 자산을 안겨주는데 자산소득 증대와 노동소득 증대라는 목표는 서로 충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송 교수는 “특히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의 성장은 산업자본의 성장을 억압하고 지속적인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 뛰어들 때 누가 이익을 보는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면 좋지만 자칫 바람만 잡고 시장을 띄우는데 그칠 수도 있다. 덩치 큰 국민연금이 묶여 있는 동안 시장 참가자들은 돈을 번다. 소득 재분배는커녕 소득이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고민을 들어보자. 기금정책팀 한성윤 팀장의 입장을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한다.

–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30%까지 높여야 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그럴만한 사회적 여건이 된다고 보나.
“30%까지는 안갈 거라고 본다. 18.7% 정도만 돼도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이런 불균형은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서 비롯한다. 연금의 문제만으로 풀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 기금의 과잉 적립이 오히려 심각한 문제다. 대안이 있는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채권 시장도 포화상태고 달리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다. 해외 투자도 고민하고 있는데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감안하면 국내 투자보다 실익이 없다. 장기투자 상품이 있다는 것 말고는 해외라고 딱히 매력은 없다. 국내에서 자금을 끌어다가 외국에 투자한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

– 문제는 감당하지 못할만큼 많은 돈이 한군데 묶이게 된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의 비중이 커질수록 생산적인 투자가 줄어들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잉 적립이 문제라면 적립 규모를 줄이는 방법도 있지 않나.
“적립 규모를 국내총생산 대비 일정 규모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고 스웨덴처럼 보험료를 적립하지 않고 개인마다 가상 계좌에 저축하도록 하는 명목확정기여 방식으로 갈 수도 있다. 사실상 부과식이 되는 셈이다. 한군데서 기금을 운용하는 게 문제라면 칠레의 경우처럼 기금 운영기구를 여러개 두고 가입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 보험료율을 누진 적용하는 대안은 어떤가. 소득이 많은 계층이 더 많이 부담하고 그 혜택을 소득이 적은 계층에게 돌리자는 이야기다.
“지금도 상한이 높은 편인데 더 높일 수는 없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낸 만큼 돌려주는 제도다. 보험료를 누진 적용하자는 건 연금 제도의 틀을 흔드는 이야기다. 사회적 여건이 되면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한 팀장은 국민연금의 과잉 적립과 투자 대안의 부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급격한 노령화와 출산률 감소에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4871만2022명,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481만1631명, 9.9%에 이른다. 이 비율은 2050년이면 37.3%로 4배 가까이 늘어난다. 지금 10명의 어른이 1.4명의 노인을 모셔야 한다면 그때는 6.6명의 어른이 4.5명의 노인을 모셔야 한다.

(이 그래프는 연령별 인구 추계를 나타낸다. 연두색 선은 14세 미만, 파란색 선은 15세 이상 64세 미만, 주황색 선은 65세 이상이다. 2050년이 되면 파란색 선과 주황색 선이 각각 2276만명과 2165만명으로 거의 만난다. 노인 인구의 추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481만1631명에서 2050년이면 2165만2888명으로 무려 4.5배나 늘어난다.)

결국 현재의 연금제도를 유지한다면 적립금액이 감당하지 못할만큼 엄청나게 쌓였다가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걸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라면 언젠가 연금이 고갈되는 상황을 맞거나 보험료를 잔뜩 높여서 다음 세대에 그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다.

적립식 연금제도를 부과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 돈 내가 내고 쌓아뒀다가 몇십년 뒤에 불려서 다시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필요한만큼 거둬서 바로 쓰자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돈 버는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이 된다. 쌓아둘 필요가 없으니까 과잉 적립과 투자 대안 부재의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과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본적으로 내 돈을 내가 찾아가는 방식이지만 낸 돈 보다 더 많이 찾아가기 때문에 결국 다음 세대들이 낸 돈을 더 가져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음 세대들의 부담이 커지고 나중에는 결국 다음 세대들에게 100%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적립식이냐 부과식이냐의 논의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다음 세대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보험료, 사실상 복지 세금으로 내면서 우리들의 연금 급여를 부담하게 된다. 핵심은 우리 다음 세대들이 짊어지게 될 그 엄청난 부담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데 있다. 또는 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는데 있다.

다시 정리하면 대안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과잉 적립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적립된 기금은 적절히 해소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부과식으로 가되 소득을 재분배하고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원칙은 연금이 모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노후 생계보장은 돼야 한다는 데 있다.

김종건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는 “부과 방식의 기초연금은 공적 연금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확실한 수단”이라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율을 늘리고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또 “보험료를 올리거나 금융 자산 운용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오건호 정책보좌관은 해법을 기초연금에서 찾는다. “소득대체율 20% 수준의 기초연금을 도입하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60%에서 40%로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기초연금을 부과식으로 국민연금은 적립식으로 운영된다. 연금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과잉 적립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정부가 65세 이상의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 생계비 정도를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재원은 정부가 세금을 거둬 마련한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기초연금 20%를 깔고 그 위에 국민연금 40%를 더하면 젊을 때 평균 소득의 60% 정도를 받게 된다. 기초연금이 도입되면 국민연금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기초연금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로 돌아온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투자분석부 부장은 좀더 나가서 복지 제도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전체 국내총생산에서 기업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는다. 미국이나 일본은 겨우 2~3% 밖에 안된다. 기업만 돈을 벌고 개인은 가난하다는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이렇게 가면 몇몇 수출 기업은 돈을 벌겠지만 나라 전체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성장은 한계가 분명하다.”

오 부장이 보기에 우리나라는 세금이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거둬들인 세금이 국민들에게 가지 못하고 기업들에게 흘러가는 것이 문제다. 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내수는 끝없이 침체되고 복지 제도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복지 제도가 축소되는 분위기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제도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경제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가 돈을 푸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숙자들에게 10만원씩 돈을 나눠줘봐라. 그 돈은 바로 경제를 살리는 데 들어간다. 중소기업 지원이니 사회간접자본 투자니 엉뚱한 데 돈을 쓸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돈을 풀기는커녕 국민들 돈을 거둬서 1702조원씩 쌓아둔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오 부장이 볼 때 적립식 연금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저소득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렇게 엄청난 금융상품을 운영할 이유가 뭐냐는 이야기다. 적립식 보다는 부과식으로 가는 게 맞고 더 좋은 건 정부가 노후 복지 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오 부장은 연금도 필요하지만 복지 제도의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민중연대 최원탁 국장은 노령화와 출산율 저하가 당면한 현실이라면 그런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 과제라고 지적한다.

“적립식이든 부과식이든 앞으로 젊은 세대는 엄청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쌓아뒀다가 적당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불려서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국민연금의 적립 기금을 교육과 의료 부문에 투자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더 많은 연금을 부담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받아내려면 그럴만한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교육과 의료 부문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화할 수 있다면 그만큼 가계의 지출 여력이 늘어나게 된다. 1702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적립금액이라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금 보험료율이 30%까지 올라도 큰 부담이 안될 수도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낸 돈을 그대로 쌓아뒀다가 몇십년 뒤에 다시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낸 돈은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들어가고 다음 세대가 내 연금 급여를 지불하면 된다. 이번 세대와 다음 세대, 세대간 타협이 되는 셈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팀 이용하 팀장은 이런 발상에 동의하면서도 우려를 표명한다.

“사회적 인프라가 확충되고 선순환으로 납부 여건이 좋아지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고비 고비 잘 돼야 한다는 가정이 너무 많아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 모험을 걸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합의를 끌어내기도 결코 쉽지 않다. 이른바 과세형평성이 관건이 된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연금의 고갈을 막는 대안으로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소득 대체율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 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고갈을 막거나 지연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노후 복지의 비용을 사회화하느냐에 있다. 공적 연금은 기본적으로 세대간 연대에 기초한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1702조원이나 되는 국민연금은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30여년의 시간이 있다. 국민연금은 흔한 금융상품과 달리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다. 1702조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고통스러운 미래가 될 수도 있고 좀더 넉넉하고 여유로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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