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봉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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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처는 잊혀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광주 사람들에게 1980년 5월의 상처가 그렇다. 윤한봉 선생을 다시 찾은 것은 그 상처를 더듬어 보고 반성하기 위해서다. 윤 선생은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에서 민주화의 망지로 추락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5월의 상처만 기억할 게 아니라 그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을 끊임없이 현재에 되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윤 선생은 그게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25년째다. 2005년에 우리는 5월 광주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그게 화두다.
= 냉정하게 보자. 밖에서는 착각들 하는데 광주의 진보성, 그런 거 이제 없다. 1987년까지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광주는 전국을 통틀어 가장 보수적인 도시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선 후보들 가운데 고건 인기도가 제일 높게 나온다. 권영길은 1.2%로 맨 꼴찌다. 박근혜, 이회창, 이명박 보다 훨씬 낮다. 1997년 대선 때 광주에서 권영길 지지도가 0.2% 나왔다. 전국 평균 1.2%에 턱없이 못 미친다. 2002년에는 1.2% 나왔다. 그때 전국 평균은 4.3%였다. 지금도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전국에서 제일 낮다. 광주가 제일 낮고 전남이 그 다음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정치 행태냐. 도대체 진보성 없는 운동이 어디에 있냐.

–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아직도 반 독재, 반 한나라당 정서가 심각하기 때문 아니겠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불행하게도 5·18이란 게 사상적 이념적 통일성을 갖고 시작된 게 아니다. 자연발생적 민중항쟁인 셈인데, 기본적으로 경상도에 지지기반을 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다. 결국 가장 큰 목표는 정권 타도였고 정작 정권을 타도하고 난 다음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하는 변혁적 관점은 없었다. 이를테면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식이다. 다시 말하면 김대중을 내세워 이 지역이 권력을 장악해야겠다는 거다. 민주화의 열망 보다는 적개심이 앞섰다. 말로는 민주화를 떠들면서 민주화의 구체적 상이 없었다.

잔인했던 1980년 5월, 귀를 막고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도 마음 편히 광주를 비판하지 못한다.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그해 5월 광주에 빚이 있다. 현장을 떠나있었던 윤 선생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광주를 비판하는 것으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한다. 빛바랜 5월 정신을 되살리는 게 죽어간 동지들을 대신해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적나라한 비판을 쏟아냈다.

– 정권 교체가 그만큼 급박한 목표였던 건 사실 아니었나.
= 김대중이 어떻게 대안이냐. 그것 때문에 사람들하고 엄청나게 싸웠다. 민주주의? 정권 바꾸고 김대중이 잡으면 그게 민주주의냐. 이거 퇴행적인 발상이다. 뺏긴 걸 다시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같은 거 없다. 적개심에 눈이 멀면 앞도 뒤도 안 보인다. 다른 거 생각 못한다. 25년이 지났는데 광주는 아직도 정권 타도에 모든 걸 걸고 있다.

–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피해의식 때문인가.
= 계엄군이 잠깐 물러갔던 21일부터 24일까지 광주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물리적으로 봉쇄되고 언론은 일방적으로 왜곡 보도만 했다. 사람들은 버티기만 하면 어딘가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들고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27일에 계엄군이 들어와서 왕창 깨진 거다. 우리 밖에 없구나, 그런 절망과 불안, 공포, 고립무원 상태가 이런 배타적 단결을 만들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싸우려면 통일 단결밖에 없지 않은가. 그 구심이 김대중과 민주당, 지금은 열린우리당이 된 거다.

– 그런 의미에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는 고립돼 있는 것 같다.
= 1987년 대선이 지역 대결 구도로 왜곡되면서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지역 대 지역의 구도로 갔다. 광주 사람들, 또 다시 5월의 고립감을 맛보게 된 거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떻게든 한나라당 정권 잡는 걸 막아보자고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제기하면 ‘그럼 한나라당 찍자는 거냐’고 한다. 그냥 적과 아밖에 없다. 아를 안 찍으면 적을 찍는다는 논리다. 김대중 비판하면 김영삼, 한나라당 돕는 이적행위라고 한다. 말이 안 통한다. 민주노총 사람들까지 권영길 욕을 한다.

– 그렇지만 광주가 부산 출신 대통령을 만들지 않았나. 그때 다들 역시 광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 당시 상황을 제대로 살펴야 된다. 처음에는 이인제가 대세였다가 이인제와 김대중 사이가 틀어지는 것 같자 갑자기 노무현으로 기울었다. 김대중 이후로 광주는 보수냐 진보냐 따지지 않고 무조건 당선 가능한 쪽에 모든 걸 건다. 이인제가 500만표를 가져가서 김대중 당선을 도왔다고 이인제 지지 바람이 불 때도 있었다. 한때는 정몽준 바람이 불기도 했다. 광주는 이제 누구하고도 손잡을 수 있다. 노무현 뿐만 아니라 이인제나 정몽준이나 한나라당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표를 몰아준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이제 꺾였을 것 아닌가. 구심점이 사라졌는데.
= 최근 여론 조사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사람이 44.7%나 된다.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거다. 그래도 앞으로도 적은 계속 한나라당이다. 뭘 잘 되게 해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저쪽을 안되게 하려고 투표를 한다. 이른바 거부투표, 증오투표다. 적을 이기기 위해 똘똘 뭉쳐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노동자들도 민주노동당을 안찍는다. 그런데 김대중과 손을 잡으면 김종필도 훌륭한 사람이 된다. 김영삼은 못와도 김종필이 망월동에 올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 노무현 지지도가 전국 평균 30% 안팎이라는데 광주 전남은 늘 50%가 넘는다. 노무현 정부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데 관심도 없다. 우리 지역에 뭘 해주느냐만 관심이다. 우르르 몰려가서 무조건 찍고 찍어주면 당연히 뭘 해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거다. 그러다가 기대한만큼 안되면 호남만 푸대접한다고 난리가 난다.

–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실제로 정부에서도 돈 깨나 쏟아 부었지만 지역 경제는 크게 달라진 것 없다. 여전히 산업 기반은 취약하고 일자리는 없고 성장은 정체돼 있다.
= 그런데 여기 여론이 다 그렇다. 광양만권 개발이 어떻고 호남 고속철도가 어떻고 우리가 표를 몰아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야단법석이다. 요즘은 또 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슬쩍 비친 문화 중심도시 이야기로 계속 시끄럽다. 한번 약속했으니까 지키라고 떼를 쓴다. 시장부터 발벗고 나섰고 언론도 계속 떠들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도 그렇게 위에서 툭 내려온 거다. 조건 없는 몰표에 대한 선물 같은 거다.

어쩌면 기억하는 것조차 아프고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동안 광주는 늘 죽은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통한과 추모로만 이야기돼 왔다. 해마다 5월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망월동을 다녀가지만 정작 죽은 그들이 무엇을 외치고 무엇과 그렇게 처절하게 맞서 싸웠는가 기억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5월 광주는 1980년대 어느 시점, 과거의 기억에 멈춰있다. 그러나 윤 선생은 그런 광주에서 아직도 희망을 발견한다. 1980년 민주화의 물꼬를 텄듯이 광주가 진보정당과 진보운동의 토양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가 사랑하는 광주에 이 모진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역사적으로나 사회 경제적으로나 광주는 진보의 온상이고 고향이다. 그런데 그 광주가 진보성을 잃고 있다. 광주는 이제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라 망지다. 통탄할 일이다. 5년, 10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광주가 진보정당을 키워내야 한다. 지역구도를 깰려면 새로운 지역구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구도를 깰만한 새로운 정책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광주가 나서야 한다.

– 2005년에 5월 광주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5월 정신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 민주화니 인권이니 평화니 이야기들 하지만 그건 보편적 가치 아닌가. 나는 5·18의 정신으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을 주장한다. 오늘의 의미로 이야기한다면 개혁과 진보, 통합과 통일이다. 개혁과 진보가 항쟁정신이라는 한 축이고 통합과 통일이 대동정신이라는 다른 한 축이다. 그런데 광주는 이런 5월 정신에서 한참 멀어져 있다. 항쟁정신도 대동정신도 없다.

– 무엇에 항쟁하고 어떻게 함께 대동할 것인가가 과제다.
= 절차적 민주주의나 형식적인 것은 모두 갖췄으니까 핵심적인 것, 사회 경제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가장 큰 관건은 빈부격차와 양극화,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다. 양극화 문제는 피땀 흘려 만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문제다. 여기에 모든 걸 맞춰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도 우리는 양극화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게 진보고 통합이다.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이 진보라는 가치에서 서로 만난다. 광주의 아픔을 기억할 게 아니라 그 항쟁과 대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그걸 2005년의 광주와 대한민국에 살려나가야 한다. 그게 19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광주는 아직도 희망이다. 광주가 희망이 돼야 한다.


윤한봉은 누구인가.

1980년 5월, 그는 광주에 없었다. 이른바 민청학련 조작 사건 등으로 3차례 감옥생활을 했던 그는 5·18이 터지자마자 다시 수배자 신세가 됐다. 예비검속으로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경찰을 피해 광주를 빠져 나왔던 그는 광주 변두리를 맴돌면서 죄책감과 절망, 무력감에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27일 도청이 함락된 이후 그는 5·18의 핵심 주동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잡히면 사형될 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숨어 다니기를 꼬박 1년, 그 이듬해인 1981년 4월, 그는 화물선 갑판 아래 숨어 미국에 밀항한다. 1993년 5월까지 무려 12년의 망명 생활 동안 그가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않는다. 조국의 가난한 동포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생각해서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도피 생활할 때처럼 허리띠를 풀고 자지 않는다.’

결국 그는 도망쳤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죽은 사람들 덕분에 시대가 바뀌었고 그는 그 부채의식을 갚으려고 맹렬하게 싸우고 있다. 언젠가부터 멈춰선 광주, 그는 그런 광주를 비판하는 많지 않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다. 먼저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역사를 만드는 것이 그 뿌리 깊은 채무의식을 갚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1948년 전남 강진 출생이고 현재 민족미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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