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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신문 ‘조선일보’가 독도를 보는 방식.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8, 2005

조선일보의 친일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친일 문제를 보는 우리의 인식은 다분히 감정적인 데가 있다고 나는 본다. 친일 부역은 물론 철저하게 평가하고 넘어가야겠지만 반일의 맥락 또한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친일과 반일의 단순 도식을 넘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가 독도 문제에 상대적으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신문이 과거 친일 활동을 했고 지금도 친일 신문이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이 신문은 과거의 친일 활동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건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다. 일본 제국주의 예찬에서 조선일보에 결코 뒤지지 않았던 이 신문은 어이없는 민족신문 행세를 하고 있다.

이 신문들은 반일 민족주의에 그 어느 신문 못지 않게 열성적이다. 반일 민족주의가 이 신문들이 대변하는 가치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굳이 반일을 외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일부에서 비판하는 맥락은 그래서 핵심을 벗어나 있다. 조선일보는 과거 친일을 했던 것처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반일에도 앞장설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조선일보는 왜 문제인가. 수구보수라서? 수구보수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수나 진보나 어느 것도 절대 선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놓인 계급의 이해에 따라 보수가 되기도 하고 진보가 되기도 한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대변하는 계급의 이해를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안티조선 운동은 계급 운동일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사회정의는 아니다. (안티조선 운동은 가끔 이런 경계를 넘어서서 조선일보를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일보의 문제는 이들이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를 대변하든 진보를 대변하든 언론이라면 사실은 왜곡하지 않아야 하고 주장을 하려면 충분한 근거를 두고 제대로 된 논리를 갖춰야 한다.

이 신문은 자신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주장을 불온한 사상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분단 상황은 그런 전략을 충분히 가능하게 했고 정당성 없는 권력의 이해와 맞물렸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조선일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조선일보는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수구보수의 색깔을 숨기고 막강한 주류 언론으로 성장했다.

안타까운 것은 수구보수와 맞서 싸워야 할 계급의 사람들까지 조선일보를 읽고 이 신문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계급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조선일보의 논리를 수용하고 추종한다. 조선일보와 그들이 이해를 대변하는 계급을 준거집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흔한 논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IMF 외환위기 이후 조선일보는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를 대변해왔다. 시장의 논리는 이제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한다. 조선일보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계급을 몰아붙이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양극화를 방치하거나 부추겨 왔다. 그리고 그런 조선일보의 논리는 아직도 여전히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너무 완고하고 막강해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조선일보가 문제 되는 건 이들이 너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이 어떤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어떤 계급의 이해를 침해하는가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이들과 싸우지 않는 것은 동의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넓히는 비결이다. 조선일보의 판매부수는 300만, 실제로 보는 사람은 1000만명에 이른다.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파편화돼 있다. 사람들은 이 신문이 자신들의 이해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나은 계급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옮겨가기 원하고 그 실패의 책임을 사회의 탓이라기 보다는 그가 무능하고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는 철저하게 자본과 시장, 기득권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게 이 신문의 존재 이유다. 그리고 그게 이 신문이 돈을 벌고 돈을 뿌리대면서 엄청난 발행부수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일련의 경제신문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이들 수구보수 언론이 이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다. 이걸 깨뜨리지 못하면 변화는 없다.

다시 독도 문제로 넘어가면 조선일보는 어느 다른 신문 못지 않게 반일 민족주의에 앞장서고 있다. 조선일보가 친일 신문이라 독도 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조선일보는 자신과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의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친일과 반일을 선택할 수 있다. 친미나 반미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 신문은 자신들의 이해와 상충되지 않는 범위에서 반일을 선택하고 친미를 선택한다.

다만 이 신문은 반일 민족주의가 한국과 일본의 감정 대립을 넘어 미국과 일본, 중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과 그게 이들의 이해와 상충되는 상황을 걱정한다. 최근의 사설과 칼럼에 그런 우려가 충분히 드러나 있다.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과거의 친일만큼이나 현재의 친미도 심각하다. 반일 민족주의는 그런 매국의 본성을 숨기는 눈가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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