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사각지대, 기초연금으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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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기초연금이 화두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각각의 입장 차이와 그 배후 논리를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은 이대로 가면 늦어도 2047년에 재정이 바닥난다는 데 있다. 지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으로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조금 더 많이 내고 조금 덜 받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당연히 국민들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고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입장도 조금씩 엇갈린다. 가뜩이나 아예 폐지하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판이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을 도입해 65세 이상 모든 국민들에게 달마다 2인 가구 최저 생계비의 50%를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면 30만원이 넘는 정도, 1년에 최소 7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를 모두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은 이를 위해 부가가치세를 2%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꽤나 진보적인 대안처럼 들린다.

그러나 먼저 부가가치세가 간접세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접세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이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건 상식이다. 저소득 계층의 복지라는 기초연금의 취지에도 크게 벗어난다. 한나라당은 애초에 기초연금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의 진짜 의도는 기초연금과 함께 도입될 소득비례연금에 숨어있다.

소득비례연금은 소득의 7%를 보험료로 내고 65세 이후에 평균 소득의 20% 정도를 연금 급여로 받도록 하자는 제도다. 당연히 많이 낸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낸 사람은 적게 받게 된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고 저소득 계층은 기초연금으로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소득비례연금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결국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저소득 계층을 돕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연금에서 배제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고소득 계층이 낸 연금을 저소득 계층과 나누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저소득 계층 복지는 결국 정부의 몫으로 돌아간다. 소득비례연금에는 공적 연금의 사회복지 기능을 축소하겠다는 의도도 들어있다. 적게 내고 적게 받겠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계획대로 소득비례연금을 도입하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이 7%로 낮아지고 소득 대체율도 60%에서 20%로 크게 낮아진다. 평균 소득의 20%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건 여기에 노후를 의지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족한만큼 저축을 하거나 다른 사적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노후는 국민들이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너무 간섭하지 말라는 논리다.

민주노동당도 기초연금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맥락은 크게 다르다.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연금 사각지대에 주목한다. 모든 국민이 다 가입한다고 하지만 국민연금의 납부 예외자는 28%에 이른다. 전체 가입자 1718명 가운데 484만명이 소득이 파악되지 않거나 적어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연금 혜택을 못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명확한 대안은 없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65세부터 1인당 평균 임금의 15%, 28만원 정도를 기초연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 재원은 자본거래세 등 일반 조세와 일부 국민연금에서 충당해 마련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핵심은 기초연금으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자는 데 있다. 어떤 경우에도 공적 연금의 축소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도 고민이 많다. 구멍날 게 뻔한 연금을 메우려면 지금부터 보험료를 올려받아야 하지만 국민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보험료를 9%에서 15.9%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 연금 급여는 평균 소득의 60%에서 50%까지 낮추자는 해법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은 보험료를 올리지 말고 연금 급여만 5%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 의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정리하면 한나라당은 덜 내고 덜 받자는 쪽이고 정부는 더 많이 내고 덜 받자는 쪽, 열린우리당은 더 많이 내고 받는 건 그대로 받자는 쪽이다. 민주노동당은 일단 지금처럼 내고 지금처럼 받자는 쪽이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한라나당은 공적 연금을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쪽이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어떻게든 지금처럼 끌고 나가면서 다만 파탄을 지연시켜보자는 쪽이다.

정치권의 이런 논의가 빠뜨린 중요한 부분은 국민연금의 대형화와 금융화가 가져올 문제들이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지난해 말 130조원에서 2035년이면 17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보험료율을 올려받으면 2482조원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적립금을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이냐다. 투자할 데가 없거나 어디든 한군데 들어가기만 하면 가격이 뛰어올라 시장이 왜곡될 위험도 있다. 투자할 곳을 찾아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 돈을 주식 투자나 이른바 한국형 뉴딜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는데 쓸 계획이다. 투자도 투자지만 들어왔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나타나는 문제도 심각하다.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산 가치가 크게 떨어질 위험도 있다. 또 세계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도 있다. 결국 그 과정에서 금융 자본만 이익을 챙기게 된다. 그 상당 부분은 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송원근 진주산업대학교 교수는 “시장 중심의 연금 개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축소하고 그만큼 금융 자산을 안겨주는데 자산소득 증대와 노동소득 증대라는 목표는 서로 충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송 교수는 “특히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의 성장은 산업자본의 성장을 억압하고 지속적인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덧붙였다.

진보진영 일부에서 국민연금을 보완할 대안으로 기초연금을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커지는 걸 막되 공적 연금을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괄적으로 보험료를 높이거나 연금 급여를 낮출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고소득 계층의 부담을 늘려 기초연금의 재원을 마련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자는 이야기다.

최원탁 민중복지연대 국장은 “한나라당과 정부, 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은 결국 안정적인 소득계층을 분리시켜 이들을 연금의 금융화 전략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최 국장은 “적당히 ‘싸구려’ 기초연금을 도입하고 그걸 빌미로 국민연금을 축소 또는 사적 연금으로 외주화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해식 ‘사회복지와 노동’ 포럼 편집위원은 “고소득 계층의 기여율을 누진적으로 증가시키고 필요하다면 사적 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중단해서 이들의 국민연금 이탈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적립된 연금 기금을 해소하고 부과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종건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금융 자산 운용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 교수는 “부과 방식의 기초연금은 공적 연금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율을 늘리고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적 연금을 둘러싼 논의의 근본적인 대안은 연금 하나만으로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노후는 보장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핵심은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다. 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덩치만 커지고 실속은 없는 국민연금의 미래를 위한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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