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으로 댓글 안 달면 1000만 원,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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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놀라신 분도 있겠지만 언론사에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말입니다.

2012년 8월,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났습니다. 한국 인터넷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사건이었습니다.

미디어오늘과 진보네트워크 등이 헌법 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44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 이를 사전에 제한하기 위해서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해야 한다”면서 “인터넷 실명제로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명확한 정리였죠.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고 불렸던 인터넷 실명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흑역사였습니다. 하루 방문자 10만 명 이상의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려면 실명 확인을 하도록 의무화한 이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했고 그 뒤로 중국 정도가 한국을 벤치마킹해서 도입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2011년 9월 “한국에서의 경험은 실명을 강요하는 정책이 멍청한(lousy) 아이디어라는 걸 입증했다”면서 “온라인에서의 익명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이 아니라 아랍의 반정부 시위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거나 기업의 기밀을 폭로하려는 내부 고발자에게 필수적”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였습니다.

놀라운 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선거 운동 기간에는 인터넷 실명제가 부활한다는 겁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941

본인확인제는 사라졌지만 한국의 언론사들은 공직선거법 82조 6항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문자·음성·화상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정보통신망법은 하루 10만 명 이상 방문자를 받는 언론사가 대상이었지만 선거법은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범위도 더 넓습니다.

저희 미디어오늘 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사들이 이번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댓글 창을 폐쇄해야 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문을 받았을 겁니다.

언론사가 선거운동 기간에 인터넷 익명 댓글 창을 유지하거나 본인확인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으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2012년 8월,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던 헌법재판소는 2015년 7월, “선거 운동 기간, 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해 흑색선전이나 허위사실 등이 유포될 경우 언론사의 공신력과 지명도에 기초해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며 선거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항”이라는 논리로 익명 댓글 차단을 합법화 했습니다.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지만 공직선거법의 인터넷 실명제는 합헌으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건 헌재가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던 논리 그대로입니다.

익명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개입할 수 없고 인터넷 실명제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자기 검열을 강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익명 표현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비방과 혐오, 무책임하게 지르는 가벼운 단어의 범람이 갖는 문제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름을 걸고 말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고 그게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다는 게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인터넷은 원래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고 억압한다고 해서 더 건전하거나 더 민주적인 공론장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오늘은 항의 차원에서 선거 운동 기간에 댓글을 닫아왔습니다. 2012년 헌법 소원 때도 주장했듯이 미디어오늘은 비교적 다른 언론사 대비 댓글이 많은 편이고 댓글을 차단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독자의 반응성이 줄고 트래픽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게 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한때 소셜 댓글을 허용한다고 했다가 언젠가부터 소셜 댓글도 안 된다며 주민등록번호 기반의 실명 확인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명으로 댓글을 달아야 한다고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편집국장으로 있던 2012년 8월 미디어오늘은 이런 알림 기사를 냈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342

“소셜 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습니다. 같은 소셜 채널인데 언론사 댓글로 달릴 때만 실명을 인증해야 한다는 선관위의 발상은 시대착오적입니다. 미디어오늘은 독자 여러분의 익명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댓글을 닫겠습니다. 실명인증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독자 분들도 많지만 실명인증을 할 수 없거나 실명인증을 원하지 않는 독자 분들을 공론의 영역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에도 실명제를 거부한다는 알림 기사를 냈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270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착오적인 댓글 실명제는 폐지돼야 합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번에도 항의 차원에서 댓글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법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실효성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실명 댓글이 넘쳐나는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 창이 어떤 꼴인지 살펴보면 건전한 여론이라는 게 실명 여부와 무관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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