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릎꿇은 코오롱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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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가면서 대안도 없이 쫓기듯이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정리해고, 할 테면 해보라고 끝까지 버텨야 했는데 말이죠. 판단착오였습니다.”

코오롱 노동조합 성주엽 부위원장의 이야기다. 코오롱 노조는 2월 1일 회사와 밤샘 협상을 벌인 끝에 전체 직원 가운데 32%를 감원하고 남아있는 직원들 인건비를 15% 삭감하기로 합의했다. 코오롱 노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또 한번 처참하게 깨졌다.

지난해 11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실시된 희망퇴직으로 전체 직원 3083명 가운데 864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도 회사는 103명의 추가 감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처음에는 304명이었는데 이번 협상에서 103명으로 줄어들었다. 회사는 희망퇴직 신청이 목표만큼 더 들어오지 않으면 정리해고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속수무책으로 회사에 끌려가고 있다.

“정리해고를 하나라도 줄이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당장이라도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할 분위기였고 이미 상당수 조합원이 빠져나간 뒤라 부담이 컸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이정진 노조 선전차장의 이야기다.

문제는 이 회사가 일손이 넘쳐나서 직원을 자르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번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새로 설립될 하청회사에 비정규직으로 다시 고용될 계획이다. 하청회사라는 중간단계를 두기는 했지만 결국 이번 구조조정은 결국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해 인건비를 줄이는 과정이다. 희망퇴직을 하고도 일용직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직원들도 있다.

월간 ‘말’이 입수한 ‘고용조정 계획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3083명 가운데 감원 대상은 1169명, 이 가운데 667명을 하청회사에 채용시킬 계획으로 돼 있다. 이들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동안 받았던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으면서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회사는 이 과정을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이라고 부르지 않고 공정 분할과 아웃소싱이라고 부른다.

“전문성과 숙련도가 낮은 공정을 따로 떼내 하청회사로 아웃소싱하자는 겁니다. 희망퇴직한 직원들도 먹고 살 걱정은 해야될 테니까 새로 생기는 회사에 우선적으로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배려 차원에서 말이죠.” 조재현 인력개발팀장의 이야기다.

노조가 뿔뿔이 흩어진 데는 이같은 공공연한 협박과 각개격파 전술이 한몫을 했다. 직원들은 희망퇴직을 하고 하청회사에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정리해고로 회사에서 강제로 쫓겨나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아왔다. 지난 석달 동안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864명이나 됐다.

“정리해고 되면 그나마 위로금도 없고 하청회사 재 취업도 안된다고 하는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죠. 잘리기 전에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스판덱스 생산 라인에서 일한다는 한 조합원의 이야기다.

“말도 마세요. 시도 때도 없이 불러다 면담을 하지를 않나. 골방에 앉혀놓고 서류를 작성할 때까지 잡아두지를 않나. 나중에는 온갖 구실을 붙여서 압력을 넣었어요. 밥을 많이 먹는다고 나가라거나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나가라거나. 노조 활동 열심히 했다고 정리해고 대상이라고도 하고. 결국 더러워서 나간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석채 노조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노조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수많은 협상을 하고 성명과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위원장이 나서서 단식 투쟁까지 했지만 회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급기야 1월 27일에는 파업 찬반투표까지 실시했지만 투표율이 낮아 무산됐다. 회사가 노동부에 정리해고 계획을 제출하고 노조가 전면 파업을 경고하며 맞선 때가 1월 18일. 그 뒤 2주일을 못채우고 무릎을 꿇은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노조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는데 있다. 조합원들은 결국 남느냐 떠나느냐 개인적인 판단을 내려야 했다.

“처음에 노조 입장에서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조합원들이 버텨줬으면 회사 쪽에서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들고 나왔을 거고 그랬으면 다같이 들고 일어날 수 있었겠죠. 그런데 희망퇴직이 이렇게 많이 나올줄 몰랐습니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믿음을 잃었고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 간부의 이야기다.

노조에 따르면 그 무렵 공장에서는 투표에 참여만 해도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다들 섣불리 회사의 눈밖에 나는 걸 두려워했고 결국 투표율은 40%에도 못미쳤다. 일반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전직 노조 간부들까지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이미 정리해고 대상자로 찍혀 그동안 퇴직 압력을 받아왔던 사람들만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투표 참여를 두려워했거나 아예 무관심했다.

투표를 중단하기 전에 노조는 최후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임금을 20.16% 삭감할테니 정규직 정원을 유지해달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의 이런 제안을 단칼에 잘랐다. 조재현 인력관리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조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노조는 희망퇴직으로 그만둔 직원만큼 신규 채용을 요구했습니다. 노조가 삭감하겠다는 20.16%에는 기존 직원을 신입 직원으로 대체할 경우 절감되는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겁니다. 정작 자기들 임금은 거의 깎지 않고 조합원 숫자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제안인 셈이죠. 이건 구조조정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집니다. 회사로서는 이런 제안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이번 구조조정은 회사의 주장과 달리 잉여인력의 정리가 아니라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일 뿐이다. 인건비 절감이 목표라면 비정규직 대신 정규직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것으로 전체 인건비를 11%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희망퇴직으로 그만둔 사람들을 신입직원으로라도 다시 받자는 이야기다.

물론 이 경우 기존 직원과 신입직원의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15년차 직원이 신입직원으로 다시 들어오면 연봉이 4490만여원에서 2827만여원으로 줄어든다. 그런데도 이들은 다시 일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신입직원으로라도 들어오겠다고 말한다. 월급은 절반 정도 깎이겠지만 하청회사에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하청회사의 상황은 비슷하거나 훨씬 더 열악하다.

그러나 노조의 제안은 결국 일부 동료들에게 희생을 떠넘기는 궁색하고 구차한 대안이다.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면 다같이 임금을 깎고 희망퇴직을 무효로 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노조는 조합원들을 설득시킬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노조는 조합원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조합원들은 그만두고 나간 동료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노조의 명분은 크게 퇴색했고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회사는 금방이라도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할 것처럼 밀어붙였고 막바지에 몰린 노조는 결국 정리해고 인원이라도 줄여보자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2월 1일 노조는 추가 구조조정 인원을 304명에서 103명으로 줄이는 대신 인건비를 총 지급액 기준으로 15% 줄이기로 최종 합의했다. 신입직원을 채용하자는 제안은 안건에 오르지도 않았다.

“자진해서 임금을 더 깎더라도 협상해서 신입직원 채용을 관철해야 했습니다. 희망퇴직으로 빠져나간 빈 자리를 하청회사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노동운동은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신종대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대구경북본부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코오롱은 섬유 원사와 필름, 타이어코드 등을 만드는 화학섬유 회사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을 보면 매출 9520억원에 영업이익이 35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경상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5억원과 27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아직 결산은 안됐지만 4분기 실적도 좋지 않다.

코오롱의 적자는 기본적으로 유가와 원료가격 인상, 환율 하락 등 영업환경의 변화에서 비롯한다.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원료가격 상승으로 지난해에만 12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했고 환율 하락으로 인한 손실도 117억원에 이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련 산업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고 중국 업체들이 추격해오면서 수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 결과 지난 3년 동안 16대의 설비가 폐기되거나 가동 중단됐고 655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했다.

“노조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1인당 직접 인건비가 4440만원으로 경쟁사인 효성보다 550만원이나 높고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도 11%로 6.1%인 효성의 두배에 이릅니다. 잉여인력이 존재하고 그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조재현 인력관리팀장의 이야기다.

코오롱 노사는 이미 지난해 6월, 구조조정 계획을 놓고 파업과 직장폐쇄로 거칠게 맞붙은 바 있다. 그러나 64일의 파업기간 동안 철저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됐고 조합원들은 하나둘씩 지쳐 나가떨어졌다. 겨우 고용보장의 약속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그 약속은 넉달만에 깨졌고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노조는 영업환경의 변화는 인정하지만 경영부실이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9월, 계열사인 코오롱캐피털의 횡령 사건이다. 코오롱캐피털이 하나은행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473억원의 횡령 사건이 드러나고 코오롱 그룹 계열사들이 이 돈을 나눠서 갚아준다. 코오롱도 코오롱캐피털의 유상증자에 251억원을 집어넣었다.

251억원이면 연봉 2827만원을 기준으로 신입직원 887명을 채용할 수 있는 돈이다. 노조가 구조조정에 앞서 그룹 지배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조는 코오롱의 이익이 계열사들을 거쳐 이웅렬 회장 일가에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부실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삼성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코오롱의 지난해 경상이익 적자는 5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지분법 평가대상 계열사인 코오롱캐피탈과 HBC코오롱, 코오롱건설 등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하나은행 지분을 매각하면서 350억원의 특별이익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코오롱의 위기는 영업환경의 못지 않기 경영부실의 탓도 크다.

“코오롱의 위기는 과도한 인건비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경영부실의 책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몇년 있다 또 사람 자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린다고 이 부실한 회사가 살아날 것 같습니까.”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역협의회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는 이제 누가 남고 누가 나가느냐의 싸움이 됐다. 조합원들은 노조를 믿지 못했고 노조는 그런 조합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하청회사 비정규직으로 옮겨가는데도 이 회사 노조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살아남은 자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노사합의에 따르면 아직도 103명이 더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희망퇴직이 더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정리해고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회사도 노조도 잘 알고 있다. 부당하지만 저항할 힘이 없다. 수십년을 몸담아온 직장이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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